일자일언一字一言28-향鄕

‘시골’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발음은 ‘향’으로 하는 鄕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다채로운 변화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흥미로운 글자다. 우리말에서 시골이라고 하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면서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개발이 덜 된 지역, 혹은 도시로 떠나온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을 왜 訓을 붙여서 이해해야 하는지 의아할 정도다. 왜냐하면 鄕은 시골이란 뜻보다는 都市, 城市 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골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설문해자에 등장하는 小篆과 같은 초기의 형태에서 鄕은 글자의 양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형상으로 된 사람의 모습이 있었고, 중앙에는 음식을 담은 그릇을 나타내는 모양의 글자가 있었다. 그러다가 楷書가 등장하기 전인 漢나라 시대에는 양옆에 邑이 있고, 중앙에는 食器를 나타내는 모양의 글자인 皀(향기로울 급)이 있는 모양으로 변화했다. 그러다가 楷書가 등장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정착된다. 鄕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楷書 이전의 글자체에 담겨 있는 것을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邑은 囗(나라 국, 둘러쌀 위, 圍와 같은 뜻)과 巴(땅이름 파)가 아래위로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뿐이었으나 나중에 囗이 더해지면서 일정한 지역을 나타내게 되었다. 圍의 古字인 囗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城市, 都邑 등을 나타내며, 아래의 巴는 원래 무릎을 꿇은 사람의 모양으로 성안에서 질서있게 살아가는 주민을 표시하였다가 나중에 도읍지에서 명령받아 일을 하는 신하를 나타내는 卪(병부 절)로 바뀌었다가 漢나라 이후 楷書에 와서 巴 로 바뀌었다. 옛날에는 國과 邑이 서로 혼용되어 쓰였다. 따라서 邑은 나라, 국가, 성읍, 고을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邑이 偏旁의 部首로 쓰일 때는 阝(언덕 부)로 된다.

글자의 가운데에 있는 皀(향기로울 급)은 솔직함, 담백함, 본질 등의 뜻을 가진 白(흰 백)과 음식을 먹기 위한 작은 숟가락인 匕(숟가락 비)가 아래위로 결합하여 곡식의 향기로운 맛, 음식의 냄새 등을 나타낸다. 이렇게 됨으로써 皀은 향기로운 음식이 담긴 그릇을 나타내게 되었다. 즉, 皀은 맛이 좋은 음식을 많이 담아놓은 그릇이 되는 것이다.

鄕의 초기 형태는 皀의 양편에 邑이 하나씩 있는 𨛜+皀의 모양이었는데, 이것은 이웃 지역, 인접한 지역의 사람이 마주 보고 모여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렇게 됨으로써 鄕은 두 사람이 맛있는 음식이 담긴 그릇을 가운데에 놓고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하면서 접대한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군주가 신하와 함께, 신분이 높은 사람이 신분이 낮은 사람과 함께, 어른이 어린이와 함께, 이웃과 함께 서로 마주 보면서 대접하고, 밥을 먹는 것이 바로 鄕이다.

그러다가 큰 규모의 절대왕권 국가가 확립되면서 군주가 있는 곳은 都(서울 도)라 하고, 그 외의 지역을 鄕이라고 하면서 지금 우리가 붙이고 있는 시골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자의 뜻을 시골이란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고 나의 뿌리가 있는 지역, 지방, 나, 혹은 우리 등으로 보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고향이라고 하는 어휘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자신의 뿌리가 되는 곳 등으로 쓰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鄕의 訓으로는 ‘시골’보다는 ‘우리’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