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일언一字一言21-현賢

어짐, 현명한, 도덕적인, 재능이 있는 등의 뜻으로 해석되는 현(賢)은 뜻을 나타내는 글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형성자(形聲字)에 속하며, 두 글자가 아래위로 결합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賢은 아래에 있는 貝가 뜻을 담당하고, 위에 있는 臤(어질 현, 굳을 견)이 소리를 담당한다. 아래에 있는 貝가 없는 글자도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이것은 賢의 고자(古字), 혹은 속자(俗字)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래와 위의 두 글자가 모두 뜻을 담당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글자의 본래 뜻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賢의 기본적인 뜻은 재물이나 재산 늘리는 일을 잘하는 사람,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 재능있는 사람 등이고, 더 들어가면 노예, 부하 등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현명하다, 어질다 등의 뜻으로 쓰이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성요소로 작용하는 글자들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위의 글자인 臤에 대해 살펴보자. 이것은 신하, 부하 등의 뜻을 가지는 臣과 오른손을 나타내는 又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회의자(會意字)다. 상형자(象形字)인 臣은 고개를 숙이고 곧추서 있는 사람의 눈 모양을 그린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굴복하여 복종하느라 고개를 들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사람이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 눈동자는 곧추서 있는 그 자리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면서 굴종하겠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아 눈동자의 모양을 그린 것이 臣이다. 그러므로 이 글자는 화가 나 눈을 부릅떠서 노려보느라 눈 가운데의 동자가 커져 있는 것을 그린 目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가차(假借)되어 노예, 하인, 신하, 관리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상형자인 又은 사람의 손 모양을 본뜬 것인데, 그중에서 무엇인가를 움켜잡는 오른손의 모양을 가리킨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잡을 때는 주로 오른손을 쓰기 때문에 손을 사용하여, 혹은 어떤 수단을 이용하여 무엇인가를 장악하다, 움켜쥐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臣과 又가 결합한 臤은 자신의 아래에 있는 존재들을 손안에 넣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력, 권력 등을 확실하게 잡은 것으로 되었고, 나아가 능력 있는, 재능이 있는, 현명한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물건을 살 수 있는 돈, 화폐 등을 나타내는 貝는 중국 남부나 인도양의 깊은 바다에서 나는 마노 조개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자이다. 마노 조개는 연체동물로 외형은 딱딱하고 등짝은 둥글게 솟아 있으며 색이 매우 화려하다. 몸통의 아래는 여러 갈래의 파임 무늬가 있는데, 貝는 이런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부를 상징하는 장식용, 혹은 보물으로 쓰였다. 심해 동물로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으므로 희소가치를 인정받아 화폐로 통용되었다. 그러므로 貝는 조개 정도의 뜻이 아니라 재물, 부, 돈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상대를 제압하여 복종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아래에 두는 것을 가리키는 臤과 재물을 나타내는 貝가 결합한 賢은 그 뜻이 확장되어 현명한, 능력이 있는, 재능이 있는, 도적적인, 어진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준다는 의미에서는 어질고 착한 것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재물을 모아 증식하는 능력과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참으로 묘한 글자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