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양각애가 목숨을 바쳐 우정을 지키다羊角哀捨命全交 2

양각애가 목숨을 바쳐 우정을 지키다 羊角哀捨命全交

추위는 온몸을 파고들건만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 양각애는 그렇게 초나라에 당도하였다. 여각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입성하여 사람들에게 물었다.

“초나라 왕이 현자들을 초빙한다고 하는데 내가 어떡하면 초나라 왕을 만나 뵐 수 있겠소이까?”

“저 궁성 출입문 옆에 객사를 만들어놓고 상대부 배중裴仲을 파견하여 천하의 선비들을 맞아들이고 있다하오.”

양각애가 객사 앞을 찾아가니 마침 상대부 배중이 마차에서 내리는 길이라 양각애가 앞으로 나가 인사를 하였다. 배중이 양각애를 바라보니 형색은 남루하나 눈빛과 기세는 비범하기 짝이 없어 서둘러 답례를 하고서는 물었다.

“선비께서는 어디서 오셨소이까?”

“소인은 성은 양이오, 이름은 각애로, 옹주雍州 사람입니다. 초나라 국왕께서 현자를 초치한다는 소문을 듣고서 이렇게 특별히 찾아왔나이다.”

배중은 양각애를 객사로 맞아들이고 술과 음식을 준비하게 하여 대접하고 객사에서 묵도록 배려하였다.

다음 날 배중이 객사로 와서 양각애를 찾더니 흉중의 일을 양각애에게 질문하면서 더불어 양각애의 학문을 시험하였다. 양각애는 배중이 묻는 대로 척척 대답하는데 하나도 막힘이 없었다. 배중은 양각애의 학식에 감복하여 바로 입궐하여 초왕에게 보고하였다. 보고를 받은 초왕이 양각애를 불러들여 양각애에게 부국강병책을 물으니 양각애는 자신의 열 가지 대책을 아뢰는데 그 열 가지 대책이 하나같이 현실에 맞고 묘책 중의 묘책이었다. 초나라 원왕은 너무도 맘에 들어 궁정에서 잔치를 열어 양각애를 환영하고 양각애를 중대부에 임명하였다. 더불어 황금 백 냥과 비단 백 필을 하사하였다. 양각애가 재배를 하며 감사를 표하는데 외려 두 눈에서 눈물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왕이 깜짝 놀라면 그 연유를 물으니 양각애는 저간의 사정을 일일이 아뢰었다. 왕은 그 말을 듣고서 감동을 받았으며 신하들 역시 모두 애통해 하였다. 왕이 양각애에게 물었다.

“공의 의향은 어떠하오?”

“저에게 잠시만 말미를 주신다면 좌백도에게 찾아가 그를 잘 장사지내주고 다시 돌아와 왕을 받들겠나이다.”

그 말을 듣고서는 초왕은 죽은 좌백도에게 중대부를 추증하고 부의금 역시 후히 내려주고는 마침내 사람들을 붙여 양각애를 모시고 좌백도에게 다녀오게 하였다. 양각애가 초왕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고 양산을 지나 좌백도와 작별하였던 곳에 이르니 과연 좌백도의 시신이 거기에 있는데 그 얼굴이 살아있을 때와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양각애는 좌백도에게 재배를 올리고 곡을 한 다음 수행원들을 시켜 동네 노인장들을 불러오게 한 다음 포당浦塘의 들판에 묏자리를 잡으니 앞으로는 내를 바라보고 뒤로는 언덕배기를 등졌으며 좌우의 봉우리가 묏자리를 호위하는 형국이었다. 향을 푼 물에 좌백도의 시신을 씻긴 다음 대부의 의관으로 염을 하였다. 속 관과 바깥 관을 잘 갖춰 시신을 안치하고 땅을 파고 묻은 다음 봉분을 올렸다. 무덤 주변에 나무를 심고 무덤에서 30보 정도 떨어진 곳에 사당을 짓고 좌백도의 형상을 세우고 깃발을 세우고 기둥위엔 현판도 걸었다. 더불어 자그마한 집도 지어 사람들 두어 묘를 돌보도록 하였다. 모든 일을 다 마친 다음 사당에서 제사를 올리고는 다시 한 번 곡을 하니 주변 사람과 마을 사람들 가운데 따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모든 일이 다 마무리되니 사람들이 흩어졌다.

이날 밤 양각애는 방안에서 촛불 심지를 돋우며 상념에 묻혀 있었다. 한데 갑자기 한 바탕의 쌉쌀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촛불이 꺼질 듯하다가 다시 밝아졌다. 바라보니 누군가 한 사람이 서있는데 다가오려는 것인지 떠나가려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가늘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양각애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이렇게 늦은 밤 감히 불쑥 찾아오다니!”

그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양각애가 일어나서 살펴보니 바로 좌백도라. 양각애가 깜짝 놀라 물었다.

“형님을 이미 장사지냈으니 저승길로 가셔야할 텐데 이렇게 이 아우에게 나타나신 것을 보니 뭔가 사연이 있으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고맙네, 아우. 그대가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초왕을 만나자마자 내 장례 치르는 일부터 주청하여주고 나로 하여금 중대부에 추증되게 하고 관과 수의를 이렇게 잘 갖추어 주었으니 모든 일이 다 흡족하다네. 하나 다만 한 가지, 내 유택이 형가荊軻의 묏자리와 너무 가까운 게 흠이라네. 이 형가는 생전에 진나라 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여 오히려 죽임을 당하고 말아 고점리高漸離가 그 시신을 이곳에 거두었지. 형가의 혼백은 아직도 기세가 당당하여 밤마다 검을 빼어들고 나에게 달려와 이렇게 욕한다네.

‘너는 얼어 죽고 굶어 죽은 주제에 어찌 내 어깨 자리에 묘를 써서 내 어깨를 짓누르고 내 묏자리의 풍수를 망치고 있느냐? 만약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않는다면 내가 너의 무덤을 파헤쳐서 너를 들판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니 아우께 특별히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니 나를 다른 곳으로 이사 가게 해주시길 바라네.”

양각애가 재차 질문하여 자세한 사정을 더 알아보고자 하였으나 홀연 바람이 불더니 좌백도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양각애는 사당에서 자다가 꿈에서 본 일을 일일이 기록하여두었다. 날이 밝자마자 양각애는 동네의 어르신을 찾아 물었다.

“이 근처에 다른 무덤이 또 있는가?”

동네 어르신이 대답하였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형가의 무덤이 있고 무덤 앞에 사당이 있습니다.”

“형가는 예전에 진나라 왕을 살해하려다 실패하여 죽임을 당한 자인데 어이하여 여기에 무덤이 있다는 말인가?”

“원래 고점리가 이 동네 사람입니다. 고점리는 형가가 진나라 왕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다음 죽임을 당하고 그 시신이 들판에 던져진 것을 알고는 몰래 그 시신을 수습하여 여기에다 묻어준 것입니다. 형가의 영혼이 영험함을 보이니 사람들이 여기에다 사당을 짓고 철마다 제사를 지내고 복을 빌곤 하였답니다.”

양각애는 동네 어르신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꿈에서 본 일이 이해가 되었다. 하여 수행원들을 이끌고 형가의 사당을 찾아가 형가 초상을 보면서 꾸짖었다.

“그대는 연나라의 촌놈에 불과한 주제에 연나라 태자의 인정을 받고 여인들과 보물을 그득히 받았으나 그에 상응하는 계책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겨우 칼 한 자루를 들고 진나라고 갔다가 일도 그르치고 네 자신도 죽임을 당하고 말았구나. 그래 이제 죽어서 이곳에 이르러 마을 사람들에게 겁이나 주고 제사나 받아먹는 것이냐. 내 형님 좌백도는 당대의 빼어난 선비요, 청렴결백하고 인의가 넘치는 분이신데 네가 감히 우리 형님에게 텃세를 부린단 말이냐. 다시 한 번만 더 내 형님에게 텃세를 부린다면 내가 네 사당을 다 부숴버리고 네 무덤을 들어내 버려서 네가 이곳에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리라.”

양각애는 말을 마치더니 좌백도의 무덤 앞으로 다가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님, 형가가 오늘 또 형님에게 나타나거든 저에게 바로 말씀하여 주십시오.”

양각애가 사당으로 돌아와 촛불을 켜고 기다리려니 정말 좌백도가 꺼억꺼억 울음을 울며 다가왔다.

“아우님의 배려에 감사하다네. 그런데 형가에겐 마을 사람들이 바친 졸개들이 너무 많아 상대하기가 버거우니 아우님을 지푸라기를 엮어서 사람 모양을 만들고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힌 다음 내 무덤 앞에서 태워주길 바라오. 내가 그 힘을 얻어 형가가 다시는 내 유택을 넘보지 못하게 하리다.”

말을 마치고 좌백도는 사라져버렸다. 양각애는 밤새 사람들을 시켜 지푸라기로 인형을 만들게 하고 비단으로 옷을 만들게 하여 입히고는 창과 칼 등을 인형에 쥐어주고는 수십 개의 인형을 좌백도의 무덤 옆에 세운 다음 불에 태우면서 축도하였다.

“이 인형으로 말미암아 형님의 걱정거리가 해결되기 바라나이다. 일이 잘되면 이 아우에게도 알려주십시오.”

양각애가 사당에 돌아오니 밤새 비바람 소리가 나는데 마치 그 소리가 전쟁터의 북소리 징소리 같았다. 양각애가 문을 열고 나가서 바라보려니 좌백도가 황망하게 달려와 말했다.

“아우께서 많은 인형을 만들어주었으나 형가는 고점리가 옆에서 끝끝내 지켜주고 있으니 아무래도 내 몸이 이 무덤에서 들려나올 것만 같네. 아우께서 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여 주시는 게 좋을 듯싶네.”

“그놈이 어째서 우리 형님을 그렇게 능멸하려든단 말입니까? 제가 형님을 도와 같이 싸우겠나이다.”

“아우는 산 사람이고 나는 죽은 귀신 아니요. 비록 이 세상 사람이 아무리 용력이 뛰어나다 한들 어찌 죽은 귀신을 도와 싸울 수 있겠소? 인형을 만들어 불태운 덕분에 도움이 되긴 하나 그것들은 그저 옆에서 고함을 질러줄 뿐 저 강한 귀신을 직접 물리치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네.”

“형님 먼저 가 계십시오. 저에게 나름 생각이 있습니다.”

다음 날 양각애는 형가의 사당을 다시 찾아가 형가를 꾸짖고 형가의 신상을 부숴버렸다. 그런 다음 형가의 사당을 불태우고자 하였다. 동네 어르신들이 양각애에게 애절하게 빌었다.

“이 사당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일이 있을 때마다 와서 비는 곳인데 만약 불에 태워버린다면 그 화가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미칠까 걱정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네 사람들이 모두 와서 애절하게 간구하니 양각애는 차마 모질게 태우지는 못하였다. 양각애는 초당으로 돌아와 초왕에게 올리는 글을 하나 닦았다.

“지난 날 좌백도는 소신에게 식량을 내어주었고 그 덕에 저는 살아남아 폐하를 뵐 수 있었습니다. 제가 폐하게 받은 은혜는 이미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정도입니다. 원컨대 저는 저세상에 가서라도 폐하께 보답하고자 합니다.”

양각애가 쓴 글은 이토록 애절하였다. 양각애는 이 글을 수행원에게 맡겼다. 그런 다음 양각애는 좌백도의 무덤 옆에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양각애가 수행원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

“내 형님이 지금 형가의 혼백으로 말미암아 고생을 당하시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시느니라. 내가 이런 상황을 차마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법. 그렇다고 형가의 사당을 불태우고 무덤을 파내려니 마을 사람들이 눈에 밟히는구나. 그러니 차라리 내가 죽어서 음부의 귀신이 되어 형님을 도와드리는 게 나을 듯하구나. 너희들은 내 죽은 몸을 형님 무덤의 오른쪽에 묻어 주거라. 나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형님과 함께 하여 자기 몸을 던져 나를 살려주신 형님의 은혜에 보답하련다. 돌아가서는 폐하께 너희들이 본대로 들은대로 아뢰고 내가 폐하를 알현하고 아뢴 말씀을 실천하셔서 사직을 영원토록 보존하시라고 하여라.”

말을 마치고 양각애는 차고 있던 검을 꺼내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수행원들이 황급히 말리고자 하였으나 그럴 틈조차 없었다. 수행원들은 관을 구하고 양각애의 시신을 염하여 좌백도의 무덤 옆에 묻어주었다.

그날 밤 한시부터 세시 사이,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벼락과 번개가 무섭게 치면서 사람 죽이라는 고함소리가 10리밖에서도 확연하게 들려왔다. 날이 밝은 다음에 보니 형가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백골이 다 무덤 주위에 흩어져 있으며 무덤 주위의 소나무 잣나무가 뿌리째 뽑혀져 있었다. 형가의 사당에서는 원인 모를 불이 일어나 흔적도 없이 다 타버렸다. 동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양각애와 좌백도의 무덤에 가서 향을 사르고 재배를 하였다.

수행원들은 초왕을 뵙고서 자신들이 보고 들은 일을 아뢰었다. 초나라 왕은 양각애와 좌백도의 우정과 의리에 감탄한 나머지 관리를 파견하여 두 사람의 무덤 앞에 사당을 짓도록 하고 그들의 지위도 중대부에서 상대부로 올려주고 사당의 이름도 “충의지사”로 하도록 하고 저간의 일을 기록한 석비를 세우게 하니 그 사당의 향불은 지금껏 끊이지 않더라. 형가의 혼령은 이 일로 말미암아 더 이상 행세하지 못하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철마다 양각애와 좌백도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기원하는데 그 영험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예부터 이름난 인의는 천하를 뒤엎고,
사람들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네.
두 의인의 사당에 가을 햇살 맑게 비추는데,
두 혼령은 달빛 아래 청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