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령공이 구슬아씨를 억지로 되돌려 보내다葛令公生遣弄珠兒
다음 날 갈령공은 집무실로 나와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신도태는 그런 갈령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였다. 갈령공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청할 때까지 그날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하루 또 하루가 지나가니 신도태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갈령공은 신도태가 불안해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하여 갈령공은 그를 불러 좋은 말로 위로한 다음 관사 신축을 전담하라고 당부하였다. 하나 신도태는 갈령공이 자신을 다른 곳으로 파견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줄을 끊는 것과 마찬가지라 받아들이고는 비록 갈령공이 좋은 말로 자신을 위로한다고 하여도 이건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하고는 낮이나 밤이나 공사를 감독하면서 조금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어느 날 갈령공이 우후 허고許高를 보내어 신도태 대신 관사 신축 건을 대리하고 신도태에게는 자신에게 찾아오라고 시켰다. 신도태는 이 사실을 알고서는 바짝 긴장하면서 집무실로 갈령공을 찾아갔다. 집무실에 도착하여 갈령공에게 보고하였다.
“불러계시옵니까?”
“주상께서 협책에서 곤궁함을 겪으신 이후로 당나라 병사들이 여러 갈래 길로 우리 강토를 넘보고 있소. 이존장李存璋이 병사를 이끌고 산동 경계를 넘보고 있으니 현지를 지키는 우리 병사들이 급히 문서를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오. 내가 지금 병사를 이끌고 도우러 가고자 하는데 마땅히 같이할 자가 없어 아무래도 그대가 같이 가주어야 할 것 같소.”
“소인이 어찌 그 명을 거역하겠나이까?”
갈령공은 무기고를 열게 하고는 구리를 벼리고 벼려 만든 갑옷 한 벌을 신도태에게 하사하였다. 신도태는 기쁘고도 걱정되었다. 갈령공을 모시고 전장으로 나감은 당연히 기쁜 일이나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다면 전에 악운루에서의 실수가 더불어 가중처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긴장이 되었다.
청룡과 백호가 함께 하니,
길할지 흉할지 알 수가 없구나.
한편 갈령공은 병사들을 모으고 장수들을 선발하여 그날로 출정하였다. 깃발은 하늘을 가리고 징소리와 북소리는 땅을 흔들었다. 군사들이 섬성剡城에 이르니 당나라의 장수 이존장이 연주에 서 대규모 병사들이 이동하여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연주에서 출발한 병사들이 섬성에 웅거할 거라 예상하고 먼저 낭야산瑯琊山의 높은 언덕을 차지하고 병사를 세 무리로 나눠 세 곳에 진을 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갈령공이 병사를 이끌고 이곳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지형상 우세한 곳을 이미 적병들이 차지하고 있는지라 일단 30리를 다시 물러나 진을 치고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4,5일 동안 적병에게 싸움을 걸어도 이존장은 진을 굳게 지키기만 하고 진문을 열고 나서지를 않았다. 7일째 되는 날 갈령공의 병사들은 끝장을 내겠다는 심산으로 모두 소리를 지르며 이존장의 본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존장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이 방어선을 굳게 다지고 사방에서 갈령공의 군사를 막아 싸웠다. 이존장이 매복시켜둔 병사들이 사방에서 화살을 마치 하늘에서 비를 뿌리듯이 쏘아대니 진지로 달려들던 갈령공의 병사들은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졌다. 갈령공이 직접 휘하의 병사들 앞에 서서 적병을 바라보니 적병은 질서정연하게 정렬하고서 꿈쩍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병사를 막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저 이존장, 백향柏鄕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그리 유명하더니만 오늘 이존장이 치고 있는 진법을 보니 정말로 명불허전이로구만.”
이존장이 치고 있는 진법은 일명 구궁팔괘진으로 옛날 오왕 부차夫差가 진공晉公과 황지黃池에서 맞불었을 때 이 진법으로 대승을 거두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갈령공은 그저 무식하게 공격하는 것은 아무런 승산이 없으니 적병들이 피곤하여 느슨해질 때를 기다려 공격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갈령공은 즉시 명령을 내려 병사들을 물리고 경거망동하지 하지 말도록 하였다. 오후 세시경이 되었을 무렵, 갈령공의 병사들은 주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였고 그저 서 있는 것 자체도 힘들어 보였다. 병사들을 물리려니 당나라 병사들이 이 틈을 타서 타격해올까 봐 걱정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갈령공은 옆에서 보좌하고 있던 신도태에게 물었다.
“방장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저의 우둔한 소견으로는 저 상대방 병사들은 비록 보기에는 잘 정돈되어있는 것 같으나 우리 병사들이 힘들고 지친 만큼 그네들도 힘들고 지쳤음이 분명하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들을 뽑아서 적들이 전혀 예상치 못하는 순간 기습을 감행하며 적진 깊숙이 밀고 들어가게 하고 우리의 본진이 그 뒤를 이으면 틀림없이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
갈령공이 신도태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용맹함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인데, 그대가 나를 위하여 적진을 교란시켜줄 수 있겠는가?”
신도태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즉시 말에 올라타서 칼을 빼어들고는 외쳤다.
“용기 있는 자는 나를 따르라. 나는 적병의 목을 따버리련다.”
아뿔싸 막사 근방에서 신도태를 따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신도태는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적진을 향해 말을 달려 나갔다. 갈령공은 너무도 놀라서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앞으로 달려가 상황을 살폈다. 보이나니 신도태가 타고 있는 말 한 필, 신도태의 칼 한 자루뿐이나니 말발굽은 끊임없이 달리고, 칼은 쉼없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번개가 치듯이 빠르게 달리는 말발굽이여,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칼날이여. 이거저거 가리지 않고 적병들을 파고들었다. 당나라 병사들도 그저 단기필마로 한 장수가 달려드는 것이니 뭐 미친놈이 다 있나 하는 심정으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리?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드는 신도태의 기세에 눌려 당나라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니 신도태는 마치 무인지경을 마음대로 활보하는 것과 같았다. 당나라의 내로라하는 선봉장 심상沈祥은 신도태에게 일합을 버티지 못하고 목이 날아갔다. 신도태는 심상의 목을 베어들고 다시 나는 듯이 말 잔등에 올라타 적진을 유린하니 감히 막아서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갈령공이 장병을 이끌고 다가오니 신도태가 허리를 굽히고 소리를 지른다.
“적진은 지금 혼란에 빠졌으니 실기하지 마시고 즉시 궤멸하소서.”
신도태는 심상의 모가지를 갈령공의 말 아래에 집어 던지고 다시 말머리를 돌려 적진을 향해 돌격하였다. 갈령공이 공격 깃발을 흔드니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적진을 향해 달려갔다. 당나라 병사들은 일대 혼란에 빠져 이존장이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존장은 하는 수없이 먼저 말을 달려 퇴각하였다. 당나라 병사들은 양나라 병사들에게 열에 일곱 여덟은 목이 달아나고 걸음이 빠른 놈만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느린 놈은 그저 전장의 이슬이 되어버렸다. 이존장은 당나라를 대표하는 명장인데 오늘의 이 전투에서 수없는 병사들을 잃었으며 무기와 마필을 잃어버린 자가 얼마인지 도저히 셀 수조차 없었다. 양나라는 대승을 거두었다. 갈령공이 신도태를 불러 일렀다.
“오늘의 승리는 온전히 그대의 공로이오.”
신도태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제가 무슨 공을 세웠겠습니까. 오직 공의 위엄 덕분이옵니다.”
갈령공은 너무 기뻐하며 보고서를 작성하여 조정에 신도태의 공을 알렸다. 병사들에게 특별히 먹을 것을 내리고 3일 동안 휴식을 취하도록 하였다. 4일째 되는 날 병사들을 돌려 연주로 돌아갔다.
승전의 기쁨에 채찍을 들어 말등자를 두드리고,
웃음 지으며 승전가를 부르며 돌아오네.
한편, 갈령공이 관사로 돌아오니 시첩들이 인사를 올리며 승전을 축하하였다.
“장수된 자가 전쟁터로 나가 적병을 무찌르는 것이야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이지 뭐 그리 칭찬받고 호들갑 떨 일이던가?”
갈령공이 농주아를 가리키며 여러 시첩들에게 말하였다.
“여봐라 오늘의 이 기쁨은 특별히 저 아이에게 축하해야 할 것이다.”
여러 시첩들이 말하였다.
“오늘 상공께서 특별한 공을 세우셨으니 조정에서 특별히 상을 내리실 것이고, 그러니 나리를 모시는 저희들에게도 자동적으로 영광이 될 것인데, 어이하여 특별히 저 아이를 가리키며 축하하라 하시는지요?”
“이번에 내가 전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내 휘하의 장수 한 명 덕분이라. 그 장수에게 따로 선물을 줄만한 게 마땅하지 않으니 내가 그에게 나의 애첩 하나를 주고자 하노라. 그래 이제 그 애첩에게는 평생을 맡길 낭군이 생기는 셈이니 어찌 축하할 일이 아니겠느냐?”
평소 갈령공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농주아는 설마 자신을 그 장수에게 주려고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갈령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리 설마 그럴 리가요.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아서라, 나는 평생 함부로 농담을 해본 적이 없느니라. 이미 창고에서 60만 전을 꺼내어 너의 결혼 예물로 쓰라 하였느니라. 오늘 밤에는 나를 시중들 필요도 없으니 서쪽 채에서 따로 자도록 하여라.”
농주아는 갈령공의 말을 듣고서 대경실색하여 두 줄기 눈물을 줄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천첩이 나리를 모신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나리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사온데 오늘 이렇게 하루아침에 저를 버리시다니 천첩은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이 명령만큼은 따를 수가 없나이다.”
갈령공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바보 같은 년! 나도 목석이 아닌데 어찌 그대에 대한 정이 없으리. 하나 이전에 악운루에서 연회를 열던 날 이 장수를 너를 바라보고 눈길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그 장수가 너를 보고 한눈에 반했음을 알게 되었지. 이 장수는 나이도 젊고 아직 장가들지도 않았고, 이제 큰 공도 세웠으니 네가 아니고는 그 장수를 만족시킬 수가 없게 되었구나.”
농주아는 갈령공의 소맷부리를 잡고서 온갖 아양을 떨면서 이 명령만은 받들 수가 없다고 도리질하였다.
“이것만은 내가 너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노라. 게다가 첩으로 사는 것보다 정실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이 장수는 나중에 큰 공을 세울 것이 분명하니 너에게도 큰 복이 될 것이니라. 내가 너를 잘 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인데, 어찌 그리 슬퍼하느냐?”
갈령공은 시첩들에게 농주아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라 하였다. 시첩들은 평소에 농주아가 갈령공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농주아를 시기질투하고 있던 터라 갈령공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농주아를 부축하여 나갔다. 갈령공의 말을 듣고서 시첩들은 좋아라 하며 농주아를 부축하고 밀고 또 끌어서 서쪽 채에 데리고 가서 어르고 달래고 하였다. 농주아는 이제는 하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대장부 갈령공의 마음이 이제 자신과 같은 아녀자에게 더 이상 미련 두지 않을 것임을 깨닫는 순간 한숨을 쉬며 그저 이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날부터 갈령공은 매일 두 명의 시녀를 보내어 농주아를 시중들게 하고는 다시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그녀,
이젠 더 이상 찾지 않는다오.
그녀를 향한 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그녀를 향한 정이 더욱 일어날까 봐.
한편 신도태는 섬성에서 돌아온 다음 자신의 전공은 일체 언급하지 않은 채 갈령공에게 보고를 드린 다음 예전처럼 관사 신축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공사가 다 끝나고 신도태가 갈령공을 찾아와 건물이 완공되었음을 보고하였다. 보고를 다 마치고 나가려는데 창고지기가 들어와 다른 보고를 하였다.
“결혼 예물로 사용할 60만 전을 이미 준비해놓았습니다. 분부만 내려주시옵소서.”
“그대로 잘 보관하고 있어라. 관사를 옮긴 다음 쓸 것이니라.”
갈령공은 점쟁이를 불러 길일을 택하게 하더니 온 가족을 거느리고서 새 관사로 이사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농주아와 농주아를 시중들 하녀 십여 명만은 유독 옛 관사에 그대로 남도록 하였다. 창고지기는 갈령공의 결재를 받고서 60만 전을 들여 구입한 결혼 예물들을 모두 옛 관사로 옮겨 배치하고 장식하였다. 사람들은 그저 갈령공이 옛 관사를 별채처럼 사용하시려나보다 생각하였지, 그 속에 나름 깊은 뜻이 있음은 아무도 헤아리지 못하였다.
이 날 신도태는 다른 동료 관리들과 신 관사로 갈령공을 찾아뵙고 이사를 축하하였다. 이때 갈령공이 신도태만을 따로 불러서 앞으로 나아오라 하였다.
“그대가 섬성에서 크나큰 공적을 세운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내가 아직 보답하지 못하였소이다. 듣자하니 그대가 아직 장가를 들지 않았다 하니 내 첩 가운데 인물이 반듯하고 품행이 방정한 아이가 있으니 내가 특별히 그 아이를 그대와 짝 지워주고 싶소이다. 약소하나마 결혼 예물을 옛 관사에 다 준비해두었소이다. 오늘은 길일 중에 길일이라 하니 옛 관사로 가서 혼례를 치르게 하고 그 집을 그대에게 주고 싶소이다.”
신도태는 갈령공의 말을 듣고 나서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며 그저 바닥에 엎드려 감히 신이 그런 걸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노라고 연신 사양하고 또 사양하였다. 갈령공이 또 이어서 말하였다.
“대장부들끼리 의기가 투합하기만 하면 목숨이라도 서로에게 아끼지 않고 줄 터인데, 그깟 첩 하나가 뭐가 대단하겠소?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괜히 사양하지 마시오.”
그래도 신도태는 계속하여 감히 받을 수 없노라고 뻗대었다. 갈령공은 다른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신도태에게 결혼 예복을 입히고 꽃을 꽂아주게 하였고 악공들에게는 축하 연주를 하게 하였다. 여러 관리들이 신도태에게 소리를 쳤다.
“신도태는 어서 일어나 갈령공께 절하고 감사의 표시를 하시오.”
신도태는 마치 꿈을 꾸는 것과도 같은 심정으로 얼결에 일어나 갈령공에게 절하였다. 신도태는 자기도 모르게 그저 분위기에 이끌려 앞장서고 다른 관리들이 뒤를 따랐고 풍물쟁이들은 음악을 연주하며 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갈령공의 옛 관사를 호위하고 보좌하던 관리들이 갈령공의 명령을 미리 받들고서 옛 관사의 구석구석을 꽃과 비단으로 장식해두었다. 하녀와 유모 등이 모두 나와서 신도태 일행을 맞아주었다. 음악 소리는 하늘을 찌르고 화려한 촛불을 밝히며 잔치자리를 열었다.
신도태가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자신의 짝이 될 여자는 바로 자기가 악운루 연회에서 보았던 그 여자가 아니던가. 그때 악운루에서 그녀를 바라볼 때는 마치 하늘나라에서 잠시 내려온 선녀 같은지라 그녀를 바라보느라 하마터면 큰 화를 자초하여 목숨마저 부지하지 못할 뻔하였는데 이렇게 그 여자와 백년가약을 맺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리? 구 관사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온갖 살림살이가 다 갖추어져 있는데 하나같이 모두 다 새것이라 마치 비단으로 만든 보금자리에 들어가는 것 같아 너무도 기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서쪽 행랑채에서 첫날밤을 보냈으니 그 기쁨이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다음 날 아침 부부의 연을 맺은 신도태와 농주아는 신 관사로 갈령공을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갈령공은 면회를 사절한다는 표지를 내걸고는 일부러 만나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다시 구 관사 이제는 신도태 부부의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있지 않아 대문에서 갈령공이 직접 찾아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도태가 황망히 달려 나가 갈령공의 말 아래에 몸을 조아리고 갈령공을 맞았다. 갈령공 역시 황급히 말에서 내려 신도태를 일으켜 세우고는 같이 관사 안으로 들어갔다.
관사 안에서 갈령공은 관직 임명장을 꺼내 들고서는 신도태에게 참모를 맡아줄 것을 간청하였다. 당시 변방을 지키는 책임 장수는 백지 임명장을 받아서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그 임명장에 해당자의 이름을 적고서 먼저 임용하고 나중에 조정에 보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물며 신도태야 이미 혁혁한 공을 세웠으니 조정에서도 신도태를 비준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갈령공은 신도태에게 참모의 관대를 건네주며 그에 맞게 예우해주었다. 이제 신도태는 자신의 애칭인 ‘방장’이란 칭호를 떼어버리고 정식 관직 호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갈령공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다.
하루는 신도태가 아내 농주아와 한담을 하다가 갈령공이 그렇게 총애하였는데 어이하여 하루 아침에 자기에게 줄 수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농주아는 신도태가 악운루 연회에서 자신에게 눈을 떼지도 못하였던 일을 상기시키고는 이렇게 말했다.
“갈령공께서 그대가 나를 한눈에 보고 반한 것을 눈치 채고는 이렇게 자신이 아끼는 소첩을 당신에게 주신 거라오.”
이 말을 듣고 나서 신도태는 갈령공이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현명한 자를 우대하는 진정한 대장부의 풍도가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신도태의 이런 사연을 전 군대에 다 퍼져서 갈령공의 어질고 덕 있음을 찬양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갈령공을 위해서라 목숨마저도 아끼지 않겠다는 자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갈령공이 살아 있는 동안 사람들이 모두 갈령공을 따랐으니 세상이 두루 평안하였다.
현자를 숭앙하고 여색을 멀리하는 자는 고금에 드물더라,
원망을 되돌려 은혜를 갚는 자는 고금에 더욱 드물더라.
연주의 공적부를 들춰보니,
공훈으로 여인을 받은 일도 있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