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의 멋진 말 6
유비의 멋진 말 여섯 번째는 멋지다기보다 유비답다랄까, 유비를 잘 말해주는 말이어서 뽑았다. 명언이고 격언이어서가 아니라 어떤 심경을 그 말이 아니면 대신할 수 없는 말이어서이다. 그래서 오히려 인상에 남게 되고 되짚어 보게 된다.
“내가 인의를 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형세가 부득이해서라오!”(제65회)
이 말은 214년 6월 유비가 성도에 입성할 때 익주목 유장에게 한 말이다. 유비가 익주(사천)로 들어가기 시작한 211년부터 3년만에 익주를 점령한 것이다. 유비가 익주를 염두에 두기 훨씬 이전부터 익주의 유장이 먼저 출로를 모색하였다. 소설에서 장송이 등장하는 건 형주쟁탈전이 끝나고 초점이 익주로 옮겨지면서 시작되지만, 역사적 사실로 장송이 허창에 들어간 것은 208년 적벽전이 일어나기 바로 전이었다. 천하 제패의 꿈에 부푼 조조에게 있어 장송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소설은 전후 맥락을 쉽게 보이기 위해 함께 몰아 썼을 뿐이다. (조조가 마등을 허창으로 부른 것도 208년이었는데 마초와의 전투가 일어나는 211년에 붙여 썼다.)
유비의 익주 진격은 유장과의 부성 회동, 가맹관 점령, 방통의 중책(中策), 부수관 전투, 방통의 죽음, 제갈량의 2차 진격, 낙성 전투, 마초 회유 등 일련의 곡절이 있었지만 유비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동오의 간섭은 형주에서 관우가 막아주었고, 조조의 진입은 마침 마초의 복수전 때문에 진령산맥을 넘어오는 시기가 한참 늦춰졌다. 결국 유비는 3년만에 성도를 점령하였다. 유비가 성도성을 들어설 때의 모습을 보자.
“마침내 간옹이 진복과 함께 들어가 유장을 만났다. 간옹은 유비가 관대하고 도량이 크다고 말하면서 해칠 의사가 없다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유장이 투항하기로 결정하고 간옹을 후히 대접하였다. 다음날 유장이 직접 익주 패인과 문서를 들고 간옹과 함께 수레를 타고 성문을 나가 항복하였다. 유비가 군영에서 나가 맞이하는데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내가 인의를 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형세가 부득이해서라오!” 두 사람은 함께 유비의 군영에 들어가 익주 패인과 문서를 인수인계한 후, 나란히 말을 타고 성도성에 들어갔다. (遂同入見劉璋, 具說玄德寬洪大度, 並無相害之意. 於是劉璋決計投降, 厚待簡雍; 次日, 親齎印綬文籍, 與簡雍同車出城投降. 玄德出寨迎接, 握手流涕曰: “非吾不行仁義, 奈勢不已也!” 共入寨, 交割印綬文籍, 並馬入城.)
유비와 유장은 같은 황손으로 조조와 장로를 막기 위해 처음에 형제간의 우애로 연합하였지만 삼 년 동안 그 과정은 단순하지가 않았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권력 앞에 선 형제라면 으레 일어나는 일이어서 동서양의 역사에서 빈번하게 재연되었다. 모종강은 진 문공이 회공을 죽이고, 제 환공이 자규를 죽이고, 이세민이 이건성과 이원길을 죽인 일을 제시하였다. 결국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장송, 법정, 맹달 등 친유비파든 왕루, 황권, 유파 등 반유비파든 모두 두 사람이 공존한다고 예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장송의 편지가 그의 형 광한태수 장숙에게 발각되지 않았어도 유비와 유장의 연합은 결렬되었을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장기판에 오른 ‘말'(馬)일 수밖에 없었다. 유비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유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내가 인의를 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형세가 부득이해서라오!”(非吾不行仁義, 奈勢不得已也!)
유비가 성도 성문을 들어설 때와 같은 경우에 정복자는 여러 가지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유장을 아예 무시할 수도 있고, 정복자의 모습으로 강퍅하게 유장의 불손을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과정이야 어떻든 처음의 우의가 틀어진 것은 결국 자신 탓임을 인정하였다. “형세가 부득이했다”는 말이 어찌 보면 무책임하지만 또 가장 정직한 말일 것이다.
방통은 유장을 공격하는 것은 역취순수(逆取順守)이자 겸약공매(兼弱攻昧)라고 반복해서 강조하였다. 그런다고 다른 지역을 무력으로 겸병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어서 숙제를 남긴다. 유비 자신이 부성에서의 검무(劍舞)를 멈추게 하며 인의를 강조하지 않았던가. 유비의 말에는 변명과 함께 부끄러움도 묻어있다. 그것이 위선이라면 간사함이 되겠지만, 진심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양심이기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