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융원伊永文 교수와의 대담

김민호(한림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진행/정리

[진행자의 말] 2006년 8월 중국 헤이룽쟝대학(黑龍江大學) 중문과 이융원(伊永文) 선생의『동경몽화록전주(東京夢華錄箋注)』가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출판되었다. 필자는 헤이룽쟝대학 우광정(吳光正) 교수의 소개로 이 책의 출판사실을 알고 책을 구입하였다. 현재까지『동경몽화록』의 번역본 혹은 주해본에 있어 제일 권위가 있는 책으로 일본 헤이본샤(平凡社)에서 나온『동경몽화록―송대의 도시와 생활(東京夢華錄-宋代の都市と生活)』과 중화서국에서 출판된 덩즈청(鄧之誠) 교주본(校註本)『동경몽화록주(東京夢華錄注)』를 들 수 있다. 헤이본샤 본은 이리야 요시다카(入矢義高)와 그의 제자 우메하라 카오루(梅原郁)가 35년 간에 걸쳐 번역한 것으로 필자 역시『동경몽화록』 번역을 하면서 많이 참고를 하였고, 또 그 공력에 기가 죽었던 그런 책이다. 그런데 이번에 중화서국에서 나온 이융원 선생의『동경몽화록전주(東京夢華錄箋注)』는 어떤 부분에서는 헤이본샤 본『동경몽화록』을 능가하고 있다. 이융원 선생은 27년 동안 혼자만의 힘으로 1200여 종의 방대한 자료를 활용해 수많은 주를 달았으며, 이러한 주들은 헤이본샤 본에서 범한 오류를 많이 잡아내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접한 뒤 이 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07년 3월 6일에서 10일까지 하얼빈(哈爾濱) 헤이룽쟝대학으로 가 이융원 선생을 만나 뵙고 책에 대한 이야기며 자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에 간단히 이융원 선생과 만나 대담한 내용을 소개한다.

김민호 : 우선 선생님의 간단한 약력을 부탁드립니다.

이융원 : 저는 1950년 10월 3일 하얼빈(哈爾濱)에서 출생했습니다. 본적은 산둥 멍인(山東蒙陰)입니다. 학력을 말하자면 73년 톈진(天津)의 난카이대학(南開大學) 중문과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 아시다시피 그 시대는 정치적인 혼란으로 인해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저의 경우도 공식적으로는 공부를 하지 못하였고, 당시 저를 눈여겨보신 고대문학비평사의 대가이신 왕다진(王達津) 선생께서 밤에 집으로 찾아오라고 하셔서 남몰래 이런저런 것을 선생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이외에도 당시 난카이대학에 재직하고 계셨던 정톈팅(鄭天挺), 닝쭝이(寧宗一), 루더차이(魯德才), 주이쉬안(朱一玄) 선생으로부터도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철학과의 처밍저우(車銘洲), 팡커리(方克立) 선생님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 학문의 기초는 이 분들이 닦아 주셨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김민호 : 석사와 박사는 어디서 하셨는지요?

이융원 : 저는 사실 학위가 없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인해서 말입니다. 나중에 중국 정부에서 이 당시 사람들에게 학위 인정서를 주긴 하였지만 말입니다.

伊永文 教授, 출처 sina.cn

김민호 : 『동경몽화록』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셨는지요?

이융원 : 제가 대학에 다니던 1975년 「수호전은 시민계층의 이익을 반영한 작품인가(水滸傳是反映市民階層利益的作品)」라는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당시는『수호전』을 농민 반란이란 관점에서 해석을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글을 발표하고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동경몽화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외에도 송대 도시 및 시민 생활 관련 자료들을 모아오다가 80년대 초에 책으로 묶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80년대 초 중화서국에서 덩즈청(鄧之誠) 선생이 주를 단『동경몽화록주(東京夢華錄注)』를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수준으로는 그의 책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찾은 자료와 덩즈청의『동경몽화록주』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였고, 또 그 책에 있는 자료 외에 수많은 자료가 더 있음을 알게 된 후 아예 내가『동경몽화록주』를 책으로 출판해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민호 : 자료의 양이 방대한데 자료를 찾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이융원 :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었기에 손으로 직접 카드 작업을 했습니다. 경제, 습속, 기예, 건축, 교통, 인물, 미술, 복식, 음식, 화목(花木), 전장제도, 과학기술 등 십여 종으로 내용을 분류하여 카드 작업을 하였습니다. 카드는 당연히 모두 직접 손으로 썼습니다. 당시 주로 하얼빈시도서관(哈爾濱市圖書館)에서 자료를 찾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하얼빈시도서관에는 15만종의 고적이 있기에 자료의 부족은 크게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당시 제가 하얼빈시도서관에 가면 요구하는 자료가 많아 카트 하나 가득 책을 갖고 나와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 직원들이 혀를 내두르곤 하였습니다.

김민호 : 당시 무슨 직장을 갖고 계셨기에 매일 도서관에서 살 수 있으셨나요?

이융원 : 1970-80년대에는 헤이룽쟝의『신청년(新靑年)』잡지사에서 근무했습니다. 제가 담당한 분야가 문학과 역사 방면이었기에 거의 매일 도서관에 가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제가 송대 도시 및 생활사 관련 자료를 많이 갖고 있음을 안 어떤 분이 헤이룽쟝상학원(黑龍江商學院, 현재의 하얼빈상예대학(哈爾濱商業大學))으로 와서『중국음식사(中國飮食史)』를 써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 때 저는『명청음식사(明淸飮食史)』를 써야 했기에 『동경몽화록』의 자료 찾는 것을 잠시 중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음식 관련 자료를 찾은 것이 후에『동경몽화록』 안에 있는 음식 관련 내용을 서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김민호 : 그 방대한 문헌들 가운데 필요로 하는 자료를 어떻게 찾으셨나요?

이융원 :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소대총서(昭代叢書)』, 『당대총서(唐宋叢書)』, 『필기소설대관(筆記小說大觀)』 등 총서 위주로 자료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자료를 찾아냈냐 하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송대와 관련되는 부분을 뽑아내고, 뽑아낸 부분을 분류한 뒤『동경몽화록』의 내용을 보면서 그 자료들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주들을 달았습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무식하게(!), 그리고 우직하게 자료를 찾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호 : 주를 다시면서 어려웠던 점으로는 무엇이 있으셨나요?

이융원 : 고대와 현대, 문과와 이과, 중국과 외국과의 ‘달통(達通)’이 어려웠습니다. 경지에 올라서야 모든 것들의 문리가 트이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데『동경몽화록』에서 다루는 범위가 너무 넓어 문리가 트이지 않았던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습니다.

김민호 : 『동경몽화록』의 의의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융원 : 일반적으로『동경몽화록』을 송대 사회의 백과전서라고 말하곤 합니다. 제 생각으로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동경몽화록』은 이미 문학의 범주를 초월한 책입니다. 교통, 도시 관리, 소방, 화폐유통 등등 상당히 다양한 것을 포함하고 있어, 당시 사회를 다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이 바로『동경몽화록』 입니다. 이미 10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책이기에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대량의 방증들을 통해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동경몽화록』은 단순한 문학 방면에만 국한된 책이 아닙니다. ‘홍학(紅學)’처럼 ‘동경몽화록학(東京夢華錄學)’이란 독립적인 학문이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동경몽화록』은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전 버클리(Berkley) 대학 중국연구중심 주임이었고, 현재 아리조나(Arizona) 주립대학 역사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스티븐 매키넌(Stephen R. MacKinnon) 교수도 중국 학생들과 함께『동경몽화록』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곧 출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 교토대학(京都大學)의 사제지간인 이리야 요시다카(入矢義高)와 우메하라 카오루(梅原郁)의『동경몽화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통을 이어 교토(京都)의 류고쿠대학(龍谷大學)의 혼다 도모(本田知生)도『동경몽화록』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타이완대학(臺灣大學) 역사학과 왕더이(王德毅), 량겅야오(梁庚堯) 교수, 타이완 중앙연구원(中央硏究院) 역사언어연구소(歷史語言硏究所) 부소장인 황콴중(黃寬重) 선생 역시『동경몽화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실『동경몽화록』은 송대 역사 및 문화를 연구함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에 송대사 연구자들은 다『동경몽화록』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김 선생의『동경몽화록』 번역본이 곧 출판 될 예정이니 국제적인 학회를 개최할 충분한 여건이 성립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민호 :『동경몽화록』 외에 작업한 것이 있으시면 소개를 좀 해 주시지요.

이융원 : 대만에서 출판된『명청음식연구(明淸飮食硏究)』(洪葉文化事業有限公司 中華發展基金管理委員會 聯合發行, 1997),『고대 중국으로 가는 여행(到古代中國去旅行)』(中華書局, 2005),『고대의 도시로 가기(行走在古代的城市)』(中華書局, 2005) 등의 저작이 있습니다.

김민호 :『동경몽화록』 출판 후 어떤 반향들이 있었습니까?

이융원 : 국내외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우선 중화서국에서 출판한 제1판이 다 팔려서 제2판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 문학연구소(文學硏究所)의 『중국인문사회학전연보고(中國人文社會科學前沿報告)』 2006년권의 중국고대문학부분(中國古代文學部分)에 수록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고, 중화서국에서도 우수저서로 뽑혔습니다.

그리고 미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 격려 메일이 오고, 중국 내에서도 많은 학자들의 격려를 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 광명일보(光明日報), 헤이룽쟝일보(黑龍江日報) 등에서도 제 책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제 책의 경우 정통 역사 문헌에서만 자료를 뽑은 것이 아니라 소화(笑話), 소설 등 비역사문헌에서 많은 자료를 찾아 넣었고, 또 많은 삽화를 넣은 것이 이전의 주석본과는 다른 특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김민호 : 향후 계획이 있으신지요? 또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이융원 : 이 책을 수정, 보강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책은 80만자 정도인데 사실 자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우선 일본 헤이본샤본의 성과와 덩즈청본의 주 등을 제 책에 더 넣어 100만자 정도로 확대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송원명 도시시민의 일상생활과 문학(宋元明城市市民日常生活與文學)』이란 책을 출판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외에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동경몽화록』을 ‘동경몽화록학’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된다면『동경몽화록』 관련 국제학회를 개최하고, 또『동경몽화록』 관련 전문 강좌가 개설되어 전문가들이 번갈아가면서 강의를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김민호 :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융원 : 저를 찾아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김 선생의 방문이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엮은이 주: 이 글은 원래 『중국소설연구회보』 제68, 69합집(2007년 03월)에 실린 것을 엮은이가 수정 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