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임(姜宗姙 東國大 中文系 教授) 진행/정리
[진행자의 말] 리젠궈(李劍國) 교수님께서는 1943년 산시성(山西省) 링추현(靈丘縣)에서 출생, 1962년 난카이대학 중문과(漢言文學專業)에 입학하셨다. 그 당시 대학은 5년제였는데, 대학 4학년 때(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는 관계로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셨다. 문혁 당시 공농병의 연계를 통한 사상개조라는 공산당 정책에 의해 1968년부터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무단장시(牧丹江市) 빙궁창(兵工廠(121工廠))에서 작업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1년을 지내고 1년 후 그곳 공장의 디쯔중학(子弟中學)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고, 1971년부터는 다시 선양(沈陽)의 134중학에서 8년에 걸쳐 교학을 담당하셨다.
1978년 다시 연구생제도가 회복되었고, 1979년에 난카이대 중문과의 연구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전공은 중국고대문학의 중국소설사부문이며, 주이쉬안(朱一玄)과 닝쭝이(寧宗一)교수에게 사사받으셨다. 1982년에 석사학위를 받고 중문과의 소설희곡연구소에 재직하게 되어 지금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1984년 난카이대출판사(南開大出版社)에서 출판된 『당전지괴소설사(唐前志怪小說史)』는 이 교수님의 석사 학위논문이다.
1986년에 부교수, 92년에 교수를 거쳐, 96년에 박사 지도교수(博士導師)가 되셨다. 현재 난카이대학(南開大學) 중국고대문학비교연구소(中國古代文學比較硏究所)의 교수와 시베이대학(西北大學(西安)) 당문화국제연구중심(唐文化國際硏究中心) 특위(特委) 연구원(硏究員)을 겸직하고 계신다.
강종임 :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한국의 소설 연구자들에게 선생님에 대해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매우 기쁩니다. 선생님은 그간의 저서를 통해서, 더구나 한국에도 일년 간 계셨던 관계로 이미 한국의 많은 연구자들에게 친숙한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자리를 빌어 몇 가지 질문들을 준비했습니다. 우선 선생님의 근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리젠궈 : 요즘은 중국 사회과학원의 류스더(劉世德), 스창위(石昌渝), 그리고 프랑스의 천칭하오(陳慶浩)교수와 함께『중국고대소설총목제요(中國古代小說總目提要)』의 편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종임 : 중국 소설 연구에 있어서, 중국대륙 역시 전반적으로 백화소설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한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문언소설을 연구하시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으십니까?
리젠궈 : 제가 연구생 때 중국소설사 부문을 연구하게 된 동기는 아주 우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부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장르는 『시경(詩經)』․『이소(離騷)』를 비롯해 당시(唐詩)․송사(宋詞) 등의 시가(詩歌) 문학이었습니다. 시를 지을 수도 있지요. 『시원만보(詩苑漫步)』는 중학교사 시절에 써낸 시가문학에 대한 저서입니다. 1978년에는 마침 딸이 출생하는 바람에 시험 볼 여유가 없었고, 1979년 난카이대 중문과 고대문학 파트에는 소설사와 희곡사 부문에서만 연구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소설사를 선택하게 되었지요. 따라서 소설사 부문으로 입학해서 지금까지 소설사를 연구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적인 것이었지 원래의 희망과는 결코 일치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이전에 이미 고전소설들은 대부분 읽은 상태였지요. 그래서 고전소설에 대해서도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어요.
강종임 :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시작해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셨다니 전혀 상상 밖이네요.
리젠궈 : 물론 그것 뿐만은 아닙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당시 중국대륙의 소설 연구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백화소설의 연구가 많았고, 문언소설의 연구는 적었답니다. 또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연구는 많고, 소설사에 대한 연구는 적었습니다. 문언소설이 아주 중요하다고 느꼈지만, 연구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저작이나 논문을 포함해서요. 그래서 문언소설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구체적으로 특히 당전지괴소설(唐前志怪小說)을 택하게 된 것은 명대(明代) 후잉린(胡應麟)의 『소실산방필총(少室山房筆叢)』을 읽게 된 이후입니다. 그의 『소실산방필총』은 문언소설에 대해 전면적인 연구를 한 최초의 저작이라 할 수 있지요. 후잉린(胡應麟)의 중국 문언소설연구에 대한 성과가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소실산방필총』에서 이미 일전(佚傳)된 『급총쇄어(汲冢瑣語)』 혹은 『고문쇄어(古文瑣語)』라고도 하는 고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는 『급총쇄어(汲冢瑣語)』를 가리켜 “고금기이지조(古今紀異之祖)”․“고금소설지조(古今小說之祖)”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이 특히 저의 관심을 끌었지요. 이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 「전국고소설『급총쇄어』고론(戰國古小說『汲冢瑣語』考論)」 (南開學報, 1980)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저의 문언소설에 관한 최초의 논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문언소설 연구의 필요성과 그 과제의 무궁무진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문언소설 자체가 매우 풍부한 예술적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되더군요. 그 이후로 문언소설에 대한 연구를 일생의 연구 방향으로 결정했습니다. 그 이외에도 활발히 연구가 되고 있는 연구 분야는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고려한 이유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홍루몽』․『수호전』등은 매우 활발히 연구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의식적으로 중시지적(衆矢之的)을 피하고 연구의 공백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사실상 당시 문언소설의 연구자는 확실히 적었습니다. 연구자는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그 영역을 반드시 점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영역에서 자신의 연구를 진행할 때 더욱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홍루몽』이나 『삼국연의』․『수호전』 등 너나 나나 다 하는 분야를 선택했을 때, 아마 저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몇 편의 논문을 쓰고 한두 권의 저서를 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제 영역이 아닐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제 영역에서 만큼은 가장 영향력 있는 발원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또 저의 연구 성과가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발원지적인 역할을 하기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2년 반에 걸쳐 『당전지괴소설사(唐前志怪小說史)』를 완성했고, 그것은 중국 문언소설사에 관해서는 제일 처음으로 나온 전저(專著)입니다. 이후로 4년에 걸쳐 『당오대지괴전기서록(唐五代志怪傳奇叙錄)』을 완성했지요. 계속해서 2년에 걸려 『송대지괴전기서록(宋代志怪傳奇叙錄)』를 완성했고,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원(元)․명(明)․청대(淸代)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강종임 : 그렇게 본다면, 선생님께서 중국 문언소설연구에 있어서 개척자의 역할을 하셨다고 볼 수 있겠군요.
리젠궈 : 꼭 그렇게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연구자들도 있으니까요. 그저 처음으로 문언소설사(文言小說史)에 대한 계통적인 연구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강종임 : 이전에 진행되었던 연구의 개황을 들어보자면 어떻습니까?
리젠궈 : 루쉰(魯迅) 선생도 문언소설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지 않습니까? 저는 루쉰 선생을 아주 존경합니다. 마땅히 루쉰 이후, 그리고 대륙에서라고 말해야 되겠지요. 타이완의 왕멍어우(王夢鷗)선생과 왕궈량(王國良) 선생 등 몇몇 학자들도 일찍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왕멍어우 선생은 저보다도 훨씬 먼저 시작했고, 왕궈량 선생이 저와 같은 연배이지요.
강종임 : 선생님의 주요한 연구 방법과 경향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습니까?
리젠궈 : 저의 연구 방법은 주로 일종의 역사적 연구 방법입니다. 특히 자료와 사실(史實)을 중시합니다. 곧 대량의 원시자료를 수집하고 장악하는 것이지요. 원시자료에 대한 정리와 분석을 거쳐, 저의 관점을 제시하지요. 다시 말해 사실에 대한 정확한 고찰을 거친 후에 가설에 대해 판단을 합니다. 한마디로 “불무허이상실(不務虛而尙實)”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실질적인 방법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저의 저작의 특징은 자료가 풍부하고 고증을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료에 대한 장악이 풍부하고 확실할수록 그 기초 위에서 개괄해 낼 수 있는 관점도 새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미시적 연구와 개별적 연구를 중시하지요. 미시적인 것으로부터 거시적인 것으로, 그리고 개별적인 것에서 정체(整體)적인 연구로의 절차를 중시합니다. 『당오대지괴전기서록』과 『송대지괴전기서록』 모두 이러한 방법에 입각해 나온 저서들입니다. 개별 작품에 대해 전면적인 고증을 거치고, 각 작품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통해야 거시적인 견해를 낼 수가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러한 연구방법이야말로 유일하게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종임 : 앞으로 출판 예정인 『호문화사(狐文化史)』에서 다루신 연구방법 혹은 연구 각도라고나 할까요? 기존의 논저들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리젠궈 : 연구 각도에 있어서 다소 변화가 있었습니다. 중국문언소설, 특히 지괴․전기에 대한 연구는 특히 종교․민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깁니다. 저는 지괴소설이 종교적 토양에서부터 생겨났고 또 성장했다고 봅니다. 곧 종교는 지괴소설을 탄생시킨 기본 토양인 셈이지요. 따라서 중국고대의 민간종교나 민간신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중국 고대의 지괴나 전기가 담고 있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종교나 민속 모두 문화에 속합니다. 중국의 지괴소설 안에는 풍부한 문화적 내용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문화․민속문화․윤리문화 등등을 포함해서요. 따라서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일종의 전망이 광대한 방법입니다. 중국문학을 중국문화라는 광대한 범위에서 다시 연구를 시도하는 것은 아주 발전적인 시각이라고 봅니다.
강종임 : 이전에는 중국 대륙의 경우 이러한 방식의 연구가 흔하지 않았습니까?
리젠궈 : 이전에는 아주 적었지요. 문학적 관점에서 문화를 보거나, 문화적 관점에서 문학을 보는 것, 문학과 문화를 결합해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중국문학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경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서 중국의 요정(妖精)문화 중의 “호(狐)”를 하나의 연구 제목으로 잡은 것이지요. 중국 요정문화 중에서의 호정(狐精)은 매우 특이합니다. 중국의 호요(狐妖)는 한국과 일본․월남 등 주변국가에 전파되었고, 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미 독일, 일본, 미국 등 국외 학자들의 연구업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국학자들 중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한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이런 상황 하에 연구를 하게 되었지요.
『호문화사』에서의 문학 연구는 이미 문화성 연구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문학적 연구도 내재되어 있지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국의 원시문화․유․불․도 등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주된 자료는 소설과 희곡, 특히 소설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화연구이기도 하지만 사실 문학연구이기도 하지요. 소설연구를 문화라는 범주에 접근시켜 그 시야의 범위를 확장시킨 것입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푸쑹링(蒲松齡)의 『요재지이(聊齋志異)』에 등장하는 여우는 매우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문화적인 각도에서 본다면, 사실상 명대에 시작된 호신(狐神)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만일 명대에 시작된 호신숭배와 신앙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포송령 작품에서의 사작기법에 대해 심도 있는 이해를 할 수 없겠지요. 이러한 류의 연구 주제는 문언소설 안에서도 매우 다양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비록 연구 각도의 변화가 있긴 하지만, 연구 방법은 여전히 같습니다. 우선 대량의 자료를 수집하고 상세한 분석을 거쳤지요. 그 자료들을 당시의 각종 문화 관념으로 조명했습니다.
강종임 : 이후에 있을 연구도 이렇게 문화적 각도에서 접근하는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실 계획인지요?
리젠궈 : 그렇습니다.
강종임 : 그렇다면, 연구 각도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단계라고 할 수 있겠군요.
리젠궈 : 일종의 새로운 연구 경향이라고 하겠지요. 이러한 연구경황은 상당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문화는 사실상 고대인들의 사회현상과 관념, 정신 및 물질 현상에 대한 개괄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고대 중국과 중국인, 그리고 고대의 중국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중국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강종임 : 현재 중국 대륙의 문언소설 연구 경향 역시 선생님의 관점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까?
리젠궈 : 글쎄요. 기본공(基本功)에 있어서 다소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연구 방법에 입각해 본다면 연구자는 교감이나 고증, 그리고 각종 역사와 문화지식 등을 포함한 풍부한 학식이 요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연구에 깊이 들어갈 수가 있거든요. 연구는 장시간의 노력으로 진중하게 해야 하지요. 경솔하게 출판이나 논문발표에만 급급해선 안 됩니다. 대륙 학계의 경우 최근 몇 년 전에 기타 문학 장르를 포함해 문언소설 연구에 있어서 그다지 안 좋은 풍토가 성행했었습니다. 비교적 경솔하게 방법론을 중시하고 기본공을 소홀히 여기는 거지요. 따라서 논지의 중심이 없고 틀린 부분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호전되고 있습니다. 지금 대륙의 학풍은 구실(求實)에 많이 치중하고 있습니다. 문언소설 방면에 있어서도 많은 발전과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성과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관건은 연구자 본인의 연구 태도와 학문적 수양의 문제에 있지요. 이점에서 아직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문언소설 방면의 연구자로는 청이중(程毅中) 선생과 왕궈량 선생을 존경합니다. 그들의 연구 특징은 비교적 실재적입니다. 자료와 고증을 중시하지요. 문언소설에 대한 연구는 특히 많은 의문들이 제기될 수 있거든요. 가령 작자, 판본, 편목 등등에 관해서지요.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 대해 대부분 학자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당연히 저작출판에도 영향을 주겠지요. 자료상에 있어서 많은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강종임 : 현재 대륙의 경우 문언소설에 대한 연구는 연구자나 논문, 저작, 연구생 등을 포함하여 백화소설 연구에 비해 수적으로도 적지 않습니까?
리젠궈 : 아주 적지요. 수량으로 말하자면 문언소설에 대한 연구는 영원히 백화소설의 연구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겁니다. 만일 백화소설보다 많다면 그것이 비정상이지요. 왜냐하면 백화소설은 많은 수의 작품에 그 규모가 크지 않습니까? 『홍루몽』 작품 하나만 봐도 그 자체로 홍학(紅學)을 형성하고 있지요. 현재 금학(金學)․수학(水學) 등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 작품들 각각에는 아주 풍부한 하나의 세계가 내재되어 있지요. 그들 작품이 각각 하나의 학문으로 독립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타당한 일입니다. 영국의 세익스피어에 대한 연구와 마찬가지이겠지요. 전문적인 도서관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점에서 문언소설을 본다면, 아무래도 백화소설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요재지이』 등 몇 부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문언소설 작품 자체가 하나의 학문을 형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러니 백화소설에 비해 문언소설의 연구가 수적으로 적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차가 지나치게 크다면 비정상이겠지요. 일정정도의 연구자와 아울러 백화소설과 결합해서 문언소설을 연구하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현재 중국의 경우 비교적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강종임 : 선생님께서는 한국에 1년간 계시지 않았었습니까? 한국의 소설학계의 연구 활동이나, 연구 경향에 대해 조금이라도 느끼시는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리젠궈 : 글쎄요. 한국에서 두 번 정도 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문장을 읽어낼 수가 없었던 관계로 무엇이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논문 안에 보이는 몇 개의 한자들로만 내용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나 제가 보았던 석사나 박사학위 방면의 논문 제목들을 통해 소설 방면의 연구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연구 제목의 범위가 매우 거시적이더군요. 또 타이완에서 유학을 했던 몇몇 학자들의 학위 논문도 봤지만, 수적으로 너무 적어서 단언하기가 어렵군요.
강종임 : 하지만 이전에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중문학 연구가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리젠궈 : 그러나 그다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한 나라의 연구 방향을 개괄하여 어떻다고 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타이완의 경우만 해도, 왕궈량 선생 등 어떤 학자들은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비교적 현대적인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도 그렇고 아마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단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일본 학자들의 경우 특별히 자료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는 중국 고대의 문헌들이 많은 원인도 있을 겁니다. 대륙에서 찾을 수 없는 자료들도 일본에 가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비교적 세밀하게 연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만나보았던 몇몇 박사 연구생들은 비교적 논문 자료나 연구 저서를 중시하는 것 같았어요. 제 생각으로는 아마도 한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원시자료들이 상대적으로 보았을 때 적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구자가 연구를 진행할 때 우선은 관련된 각종의 원시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현대 학자들의 논문이나 저서는 그 다음이지요. 그러한 자료는 현재의 연구 현황이나 연구 동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겠지요. 그러나 원시문헌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원시 자료들을 다른 학자의 논문이나 저서에서부터 끌어와 수집한다면, 절대로 좋은 학문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논문은 참고를 할 수 있을 뿐이지요.
강종임 : 논문에 대한 말이 나와서 생각이 났는데요. 중국 대륙에서 나오는 논문이나 저서는 그다지 주석을 중시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한국의 경우는 논문의 본문 뿐 아니라 주석도 비교적 중시하거든요.
리젠궈 :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석을 달지만, 주로 인용문이나 관점의 출처를 명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륙의 경우 주석에 대해 특별히 정해진 규범이 없어요. 그리고 자신의 관점이나 논지는 대부분 주가 아닌 본문에서 처리합니다. 아마 이 점에서 한국의 상황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릅니다. 논문을 쓰는 방법이 다른 것이겠지요. 심지어 모두 본문 안에서 처리하고 주가 하나도 없는 문장도 있습니다. 참고문헌에 관해 말하자면,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한국에서 본 몇 개의 학위논문의 참고문헌 목록 중에는 색인에서나 볼 수 있지 결코 찾아보기 힘든 자료들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학문을 하는 연구자라면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종임 : 그렇군요. 사실상 중국학자들의 한국학계에 대한 이해는 아직 전면적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과 중국간의 학술 교류도 그 역사가 길지 않고, 언어 문자상의 문제로 인해 많은 한국 학자들의 논문이나 저서들이 중국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원인도 있다고 봅니다.
리젠궈 : 그렇습니다. 오히려 일본 측의 것들은 제법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몇 권의 한문학사를 대략적으로나마 읽긴 했지만 확실히 한국학계에 대한 이해가 적습니다.
강종임 : 선생님께서 한국에 계신 동안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에 관한 연구를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소설을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계신지요?
리젠궈 : 우선 『신라수이전』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하지요. 『신라수이전』은 확실히 신라 말기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작품입니다. 최치원은 중국의 화이난(淮南) 절도사로 있을 당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쌍녀분기(雙女墳記)』라는 전기 작품을 썼습니다. 귀국한 후에 다시 『신라수이전』을 지었지요. 그는 『쌍녀분기』의 내용을 『신라수이전』에 수록했습니다. 『쌍녀분기』는 완벽한 당전기 작품이라 할 수 있고, 중국 송대에까지 전해졌었습니다.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20여 편의 일문(佚文)을 보면 기본적으로 신라시기의 신화와 역사전설들입니다. 문체상으로 말하자면 한문이고, 지괴(혹 전기)소설의 방식으로 지어졌지요. 곧 당대 지괴의 문체방식으로 신라시기의 문화와 신화와 역사전설 등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확실히 당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신라수이전』에 수록된 신라 시기의 역사전설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이미 전해지지 않는 것은 참 유감스럽지요. 또 하나 예로 방이(旁㐌) 민간전설을 들 수 있어요. 신라시기의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이지요. 정확한 기억은 못하겠지만 조선시대에 그것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당대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이미 그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대륙에 있는 조선족들 사이에는 지금까지도 유전되고 있지요. 실제로 『유양잡조』 안에는 신라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보입니다. 제가 볼 때 이러한 비교 연구는 상당히 의의가 깊습니다.
강종임 : 이후에 다른 특별한 연구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리젠궈 : 특별히 계획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지금까지 말씀 드렸던 관점과 방법으로 계속 연구해 나갈 생각입니다.
강종임 :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들려주신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한국의 여러 연구자들에게도 많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건강하십시오.
리젠궈 : 감사합니다.
(1997.9.1.대담)
[엮은이 주: 이 글은 원래 『중국소설연구회보』 제36집(1998년 11월)에 실린 것을 엮은이가 수정 보완했다.]
[참고] 리젠궈(李劍國, 1943~ ) 교수 소전(小傳)
고대소설 연구가. 산시성(山西省) 링추현(靈丘縣)에서 태어나 1967년에 난카이대학(南開大學) 중문과(中文系)를 졸업하였다. 1982년에는 동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중문과 고대소설희곡연구실(古代小說戱曲硏究室)에 남아 가르쳤는데 1986년에 부교수, 1992년에 교수로 승급하였고 1996년에는 박사연구생 지도교수가 되었다. 지금은 난카이대학(南開大學) 중국고대문학비교연구소(中國古代文學比較硏究所) 교수이며 일찍이 영남대학(嶺南大學) 중문과(中文科)의 객원교수를 지낸 바 있다. 주요 저작으로는 『시원만보(詩苑漫步)』(春風文藝出版社, 1980), 석사논문 『당전지괴소설사(唐前志怪小說史)』(南開大學出版社, 1984), 『당전지괴소설집석(唐前志怪小說輯釋)』(上海古籍出版社, 1986; 文史哲出版社, 1987), 『수당오대문학사(隋唐五代文學史(상·중))』(羅宗强·郝世峰과 공저, 天津 高等敎育出版社, 1993~1994), 『당오대지괴전기서록(唐五代志怪傳奇敍錄(상·하))』(南開大學出版社, 1993), 『송대지괴전기서록(宋代志怪傳奇敍錄)』(南開大學出版社, 1997), 『중국호문화사中國狐文化史』(人民文學出版社, 근간), 『전송전기집(全宋傳奇集)』(中華書局, 근간), 『전당시주주석(全唐詩注註釋(상·하))』(文化藝術出版社, 근간)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戰國古小說「汲冢瑣語」考論」(『南開學報』 1980년 제2기), 「論漢代志怪小說(상·하)」(『南開學報』 1982년 제1~2기), 「志怪叙略」(『古代小說戱曲探藝錄』 天津人民出版社, 1982), 「六朝志怪中的洞窟傳說」(『天津師大學報』 1982년 제6기), 「地理博物體志怪小說的産生和發展」(『南開學報』 1984년 제5기), 「嵇康生卒年新考」(『南開學報』 1985년 제3기), 「論南北朝的“釋氏輔敎之書”」(『天津師大學報』 1985년 제3기), 「張說傳奇考論」(『遼寧敎育學院學報』 1985년 제4기), 「「虯髥客傳」考」(南開大學 中文系 『文學硏究年刊(1985)』 南開大學出版社, 1986), 「“一枝花”非李娃辨」(天津 『文學探索』 1986년 제2기), 「「續玄怪錄」作者重議」(『南開學報』 1986년 제5기), 「唐代小說叙錄四篇」(南開大學 中文系 『南開文學硏究(1987)』 天津古籍出版社, 1988), 「「靑瑣高議」考疑」(『南開學報』 1989년 제6기), 「「夷堅志」引用宋人小說考」(南開大學 中文系 『南開文學硏究(1988)』 天津古籍出版社, 1990), 「「夷堅志」成書考: 附論“洪邁現象”」(『天津師大學報』 1991년 제3기), 「「全唐小說」序」(『臨沂師專學報』 1991년 제3기), 「「夷堅志」佚文考」(『天津敎育學院學報』 1992년 제2기), 「瞿佑仕宦經歷考」(陳國軍과 공저, 『文學遺産』 1992년 제4기), 「宋人小說: 巓峰下的徘徊」(『南開學報』 1992년 제5기), 「燕山外史」(『明淸小說鑒賞辭典』 浙江古籍出版社, 1992), 「怎樣讀唐傳奇」(『古典文學知識』 1993년 제3기), 「痴人說夢夢方幽: 讀「夢文學史」」(『天津社會科學』 1994년 제5기), 「關於張登的卒年及其他」(『書品』 1994년 제3기), 「「龍會蘭池錄」産生時代考」(『南開學報』 1995년 제5기), 「唐代小說이 韓國 初期小說에 끼친 영향」(崔桓 역 『韓國中國小說學會·제26호』 韓國中國小說學會, 1996년 6월), 「魏晋南北朝 志怪小說의 硏究에 관하여」(鄭元基 역 『中國語文學·제27집』 1996년 6월), 「關於“穀皮”」(『文史知識』 1997년 제2기), 「說“虎子”」(『文史知識』 1997년 제3기), 「瞿佑續考」(『南開學報』 1997년 제3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