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思想文化術語詞典 13-은수隱秀

은수隱秀

시와 산문은 풍부한 생각과 감정을 은밀히 담고 있으며 빼어난 명언과 문장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문심조룡》의 편명에서 나왔으며 그 편에서 ‘은’은 일의 서술이나 경치의 묘사가 일, 경치 밖의 의미를 은밀히 담고 독자들에게 무한한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수’는 한 편의 글에서 그 글의 의미를 두드러지게 하는 절묘한 단어와 문장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는 불가분의 관계로서 함께 우수한 문학 작품의 심미적 특징을 구성한다. 훗날 시문 쓰기의 한 수사법이 되기도 했다.

예) 그래서 우수한 글은 ‘수’와 ‘은’을 겸비해야 한다. 이른바 ‘은’은 글에서 언어 밖에 숨겨진 겹겹의 함의를 뜻하고, 이른바 ‘수’는 주제를 드러내면서도 독특하게 불거진 빼어난 단어와 문장을 뜻한다. 是以文之英蕤, 有秀有隱. 隱也者, 文外之重旨者也; 秀也者, 篇中之獨拔者也. (유협, 《문심조룡·은수》)

생각과 감정이 언어 뒤에 은밀히 담겨 있는 것을 ‘은’이라 하고 생각과 감정을 담은 경치와 물상이 생생하게 독자 눈앞에 펼쳐진 것을 ‘수’라고 한다.情在詞外曰隱, 狀溢目前曰秀. (장계張戒, 《세한당시화歲寒堂詩話》 상권에 인용된 유협의 말)

유덕자필유언有德者必有言

인품과 덕성이 고상한 사람은 반드시 저술이나 뛰어난 글을 세상에 남긴다는 뜻이다. 유가에서는 작가의 인품(도덕적 수양)과 작품이 보통 내적인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인품과 덕이 고상한 사람은 당연히 글이 빼어나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꼭 도덕적으로 훌륭하지는 않다고 보았다. 그리고 작가의 저술은 응당 도덕 전파를 사명으로 삼아서 도덕과 글을 통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후대 유가의 문사들은 때로 글의 도덕적 작용과, 글에 대한 작가의 인품과 덕성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문학 자체의 창작 특징과 가치를 무시하곤 했다.

예) 공자가 말하길,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반드시 후대에 명언을 남기지만, 후대에 명언을 남긴 사람이 꼭 도덕적으로 뛰어나지는 않다.”고 했다. 子曰: “有德者必有言, 有言者不必有德.” (《논어·헌문憲問》)

대장부는 세상을 살면서 가진 재능이 출중해야 하고, 훌륭한 글로 만물을 묘사해야 하고, 완벽한 지혜로 우주의 비밀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덕을 쌓으려는 뜻을 숨길 필요 없이 도를 이해하면 꼭 널리 전수해야 한다. 丈夫處世, 懷寶挺秀. 辨雕萬物, 智周宇宙. 立德何隱, 含道必授. (유협, 《문심조룡·제자諸子》)

유교무류有敎無類

누구든 교화를 받을 수 있거나 받아야 하고 교화를 받으면 빈부, 귀천 등으로 인해 생긴 차이가 없어진다는 뜻이다(다른 한편으로, 가르칠 때 학생들을 차별 없이 대하면 지위, 빈부 등에 따라 학생들이 나뉠 리가 없다는 뜻도 있다). ‘교’는 예악의 교화를 가리키고 ‘류’는 종류로서 귀천, 빈부, 지역, 종족, 선악, 등의 차별과 구분을 가리킨다. ‘유교무류’는 등급, 지역, 종족 등의 차별을 초월해 교육을 보급하자는 사상이고, 나아가 편견에 반대해 평등하게 사람을 대하자는 ‘인문’ 정신이기도 하다.

예) 성인의 도덕적 교화는 통하지 않는 데가 없어서 “교화를 받기만 하면 지역, 종족 등으로 인해 생긴 차이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들 돌궐인은 전쟁의 상처를 입고 우리 당나라에 귀순했다. 우리가 그들을 돕고 보호해 내지로 데려가 정착시키고 예의와 법도를 가르쳐 농사를 업으로 삼게 한다면……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聖人之道無不通, 故曰: “有敎無類”. 彼創殘之餘, 以窮歸我. 我授護之, 收處內地, 將敎以禮法, 職以耕農…… 何患之恤? (《신당서·突厥傳上》)

유무有無

‘유무’에는 3가지 다른 함의가 있다. 첫째, 개별 사물의 여러 부분 중 실제로 있는 부분을 ‘유’, 빈 부분을 ‘무’라고 한다. 둘째, 개별 사물이 생기고, 존재하고, 소멸되는 과정에서 생긴 뒤, 사라지기 전의 상태를 ‘유’, 아직 생기기 전과 이미 소멸된 뒤의 상태를 ‘무’라고 한다. 셋째, 형체와 이름이 있는 구체적 사물이나 그 총화가 ‘유’이고 모든 개별 사물을 초월하는, 형체도 이름도 없는 본체 또는 본원이 ‘무’이다. 이 세 번째 함의와 관련하여 일부 철학자들은 ‘무’가 세계의 본체 또는 본원이고 ‘유’는 ‘무’에서 생겨났다고 생각했으며 또 다른 철학자들은 ‘유’가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해 ‘유’가 ‘무’에서 생겨났다는 것을 부정했다. 한편 ‘유무’의 상호관계를 보면 ‘유’와 ‘무’는 서로 구분되는 동시에 서로 의존한다.

예) 그러므로 사물에서 ‘유’의 부분은 사람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고 ‘무’의 부분은 사물의 기능을 발휘한다.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노자·11장》)

‘유’의 발생과 존재는 ‘무’에서 비롯되었다. 有之所始, 以無爲本. (왕필, 《노자주》)

연기緣起

산스크리트어 pratītyasamutpāda의 의역이다. ‘연기’는 인연(일정한 조건)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 그 정확한 의미를 보면 모든 사물, 현상, 나아가 사회의 모든 활동은 다 인연의 결과이고, 또 서로 부단히 이어지는 인연의 관계 속에서 일정한 조건에 따라 생기고, 소멸하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연기’는 불교 사상의 기점이면서 불교 각 종파가 공유하는 이론적 기초이다. 불교는 이것으로 우주 만물, 사회, 각종 정신 현상의 생멸과 끝없는 변화에 내재된 법칙을 설명한다.

예) 만물은 인연이 모여 이뤄지므로 ‘유’라고 말할 수 없고 또 인연에 따라 생멸하고 바뀌므로 ‘무’라고도 말할 수 없다. 物從因緣故不有, 緣起故不無. (승조, 《조론》의 《중론中論》 인용 부분)

지음知音

문예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생각, 감정을 체험하고 이해하는 것. 본래는 음악 감상에서의 지기知己를 뜻했지만 나중에 위진남북조 시대 문예 비평가들을 통하여 문예 감상에서 서로 이해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지음’은 문학 비평의 핵심 개념으로서 문예 창작과 감상에서의 개인적 차이와 공통점 같은 문제들과 관련해 풍부한 정신적 함의를 갖고 있다. 서양의 독자반응비평, 수용미학, 해석학 등의 기본 사상과 일치하는 점이 있기도 하다.

예) 소리를 모르는 사람과는 음률을 얘기할 수 없고 음률을 모르는 사람과는 음악을 애기할 수 없는데 음악을 아는 사람은 거의 예를 이해한다. 是故不知聲者不可與言音, 不知音者不可與言樂, 知樂則幾於禮矣. (《예기·악기樂記》)

음악을 아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음악은 실로 알기 어려워서 음악을 아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어려우니, 음악을 아는 사람과 만나는 것은 천 년에 한 번이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知音其難哉! 音實難知, 知實難逢, 逢其知音, 千載其一乎! (유협, 《문심조룡·지음》)

직심直尋

시인이 즉흥적으로 느끼고 곧장 글을 쓰는 것. 이것은 남조 시기의 종영이 《시품》에서, 전고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현상을 겨냥해 제시한 주장이다. 그는 도가의 자연 사상을 흡수한 상태에서 과거 시인들의 우수한 시들을 고찰하여 새로운 시 창작 방법인 ‘직심’을 고안하였다. 이것은 감지한 사물을 직접 묘사하고, 또 마음속 감정도 직접 토로하여 정경情景이 결합된 심미적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명, 청 시대 시학의 ‘성령설’이 그 영향을 받았다.

예) 고금의 명시들을 보니 대부분 옛 사람의 시구를 빌려오거나 전고를 쓰지 않고 자신의 체험에서 직접 찾아 얻은 작품이었다. 觀古今勝語, 多非補假, 皆由直尋. (종영鐘嶸, 《시품서詩品序》)

내 글로 내가 말하고 싶은 생각을 표현해야지 어찌 옛날 글의 내용과 형식에 속박을 받겠는가? 我手寫我口, 古豈能拘牽? (황준헌黃遵憲, 「잡감오수雜感五首」 중 제2수)

중국中國

고대 화하족이 황하 중하류 유역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활동하던 지역. ‘중국’은 최초에는 지역과 문화의 개념이었다. 화하족은 대부분 황하 유역 일대에 나라를 세우고 천하의 한가운데에 거주했으므로 그곳을 ‘중국’이라 불렀다(대립되는 말은 ‘사방四方’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중원 지역과 중원 지역에 세워진 정권과 국가를 두루 가리키게 되었다. 청나라 이후 ‘중국’은 국가의 영토 전체와 주권을 가리키기 시작했고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이 되었다.

예) 도읍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사방의 제후를 위로하네. 惠此中國, 以綏四方. (《시경·대아·민로民勞》)

강동江東의 병력으로 중원에 맞설 수 있다면 일찌감치 그들과 교류를 끊는 편이 낫다. 若能以吳越之衆與中國抗衡, 不如早與之絶. (《삼국지·촉서·제갈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