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가 풀이 팍 죽어서 우거지상으로 교실에 앉아 있었다.
팔보가 물었다. “오늘 무슨 언짢은 일이 있었느냐?”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선생님 이름을 좋아하십니까?”
(아니, 이 짜식이 계속 나의 아킬레쓰 건을 건드리네… 내가 내 이름 별로 안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고…)
“어험, 어험, 사람이 자기 이름을 싫어하면 쓰겠느냐!”
“그렇죠 선생님! 저도 제 이름이 싫지 않습니다. ‘알 지(知)’, ‘쌓일 루(累)’, 지식이 계속 쌓여간다는 뜻이니, 이렇게 좋은 이름을 얻는 것도 쉽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겼느냐?”
“학우들은 제 이름을 다른 뜻으로 왜곡해서 놀립니다. 저만 보면 ‘늦게 싸는 지루’라며 놀립니다.”
“그래 나도 학창 시절 학우들이 나만 보면 홍시감이니 홍당무니 하며 놀렸지. 그런데 지루야, 너 정말 늦게 싸는 지루가 맞느냐?”
“아니, 이제 선생님까지 저를 놀리십니까?”
“아니, 그게 아니다. 진지하게 묻는 거다. 너 정말 지루냐?”
“아직 모릅니다. 실제로 확인해볼 기회가 아직 없었습니다.”
“음, 아직 경험이 없구나. 나중에 기회를 만나면 결과를 얘기해줘라.”
“그것까지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렇기는 하지. 하여튼 이것은 ‘이름(名)’이라는 주제를 아우르는 거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알 듯 모를 듯 합니다.”
“이왕 이리 된 거, 일단 알기 쉽게 시작하자. 네가 진짜 늦게 싸는 지루라서 이름이 지루라면 억울해 할 거 하나 없다. 만약 네가 일찍 싸는 조루인데 이름이 지루이거나, 늦게 싸는 지루인데 이름이 조루라면, 이것은 천하를 속이는 것이다.”
“실상대로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정착되도 지구 평화, 아니 세계 평화가 멀지 않다.”
“그렇게까지 중요합니까?”
“나는 그렇게 여긴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면서 실제로는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가 얼마나 많으냐! 이름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특징을 집약해 알려주는 기능이고, 하나는 그렇게 되기를 추구하라는 기능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둘 중 어느 기능도 못하는 이름이 너무 많다.”
“지금 말씀하신 것을 공자가 말했던 ‘정명(正名)’과 연결할 수 있습니까?”
“왜 안 되겠느냐! 공자도 이런 심정에서 ‘정명’을 말했다고 나는 본다.”
“그래서 공자도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라고 말했군요.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 너도 이제 <논어>의 말들을 꿸 수 있게 되었구나.”
“선생님께서 풀이해주신 <처음 읽는 논어>를 보았습니다.”
“그래! 그게 좀 팔려서 인세를 받으면 내가 소주라도 사겠는데, 잘 팔리지 않는구나.”
“오타가 꽤 있다는 소문입니다.”
“오타가 있기는 있다. 이미 거의 발견해서 수정할 준비가 되었는데, 추가 제작 기회가 오지 않는구나. 하여튼 ‘정명(正名)’은 중대한 주제라 앞으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