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蟬/당唐 우세남虞世南
垂緌飲清露 갓끈 드리워 맑은 이슬 마시고
流響出疏桐 오동나무에서 울음소리 울리네
居高聲自遠 높은 데 있어 멀리 들리는 법
非是藉秋風 가을바람이 전해 준 건 아니네
우세남(虞世南, 558~638)은 당나라 태종 때의 명신으로 알려져 있다. 태종은 그를 오절(五絶)이라 했는데, 덕행, 충직, 박학, 문사(文辭), 서한(書翰) 이 다섯 가지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우세남은 글씨를 잘 쓴 사람으로 머리에 박혀 있다. 내가 언젠가 《장맹룡비(張孟龍碑)》 를 배우고 난 뒤 우세남의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 를 임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힘을 숭상하는 각진 방필(方筆)의 육조 체가 휩쓸고 있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왕휘지나 조맹부 같은 필체가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우세남은 본래 왕휘지의 7대손이자 승려인 지영(智永)과 같은 동네에 살아 그에게서 글씨를 배웠다. 그래서 같은 해서라도 구양순은 엄격하고 근엄하여 법(法)을 숭상하는 서법이라면, 우세남은 한결 부드러우면서도 왕휘지의 운(韻)이 녹아 있는 필법을 구사하고 있어 매우 수려한 맛을 느끼게 한다.
우세남은 전반적으로 학식이 풍부하여 서법에 있어서도 품격이나 마음의 작용을 중시 여겼다. 이 시 역시 매미를 소재로 하여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다. 매미의 소리가 멀리 퍼지는 것은 매미가 높은 나무에 위치하여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지 바람의 도움을 받아 소리가 멀리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나라 육운(陸雲, 232~303)은 《한선부(寒蟬賦)》를 썼는데, 닭의 5덕에 비기어 매미의 오덕을 서술한 적이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매미는 머리에 갓끈, 즉 더듬이가 있으니 문덕을 갖춘 것이고, 이슬만 마시니 맑고, 곡식을 안 먹으니 청렴하며, 보금자리에 자지 않으니 검소하고, 계절에 맞게 울다가 죽으니 신용이 있다는 것이다. 즉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 이 5 가지 덕목이 있다는 것이다.
이 시는 이 중에서 매미의 청고(淸高)한 품성을 부각하고 있다. 매미는 실제로는 본래 턱에 긴 대롱이 있어 이것을 나무나 풀에 박아 그 진액을 빨아 먹고 사는데 사람들이 매미가 이슬을 빨아 먹는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갓끈이란 의미의 ‘유(緌)’ 자를 쓴 것은 이 때문이다.
소동(疏桐)은 비조(飛鳥)라는 말처럼 그 사물의 특징을 반영한 이름으로 ‘오동나무’를 말한 것이지 ‘성긴 오동나무’를 별도로 구별하여 말한 것이 아니다. 오동나무는 본래 가지가 적고 잎이 크기는 하지만 많지는 않다. 이 시에서 많은 나무 중에 굳이 오동나무를 소재로 쓴 것도 오동나무에 깃든 청고한 은거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동나무는 쭉 곧게 뻗어 높이 자라는 성질이 있고 가을을 가장 먼저 전한다는 인식이 있어 이 시의 배경으로 잘 녹아든다.
이 매미가 높은 오동나무에서 울면 그 소리가 멀리까지 퍼지는 것은 마치 사람의 명성이 멀리 전해진다는 말로 들린다. 이런 것은 바람이 힘을 써서 그 소리를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매미 스스로 높은 나무에 있기 때문이라 한다. 사람의 품성이 고결(高潔)하기에 절로 명성이 난 것이지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인격화된 매미를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유(緌)’ 자를 쓴 것이나 소동(疏桐)이란 말을 놓은 것은 써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나 우연히 본 경치가 아니다. 이런 것은 모두 ‘거고성자원(居高聲自遠)’, ‘높은 데 처하고 있어 그 소리가 절로 멀리까지 전해진다.’는 격언과도 같은 시인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치밀하게 나름대로 잘 안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세남이 그가 지은 서법 이론서 《필수론(筆髓論)》 에서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心悟]’라거나 ‘마음을 맑게 하여 생각을 한다.[澄心運思]’라고 한 것은 다 이런 맥락에서 한 말로 보인다.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 사람이 우세남인 것으로 보인다.
365일 한시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