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하가 출사표를 발견하다 5
문씨는 비구니 암자에 기거한 지 닷새 만에 득달같이 주 청사로 달려가 죽네 사네 하면서 하소연하였다. 하지주는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는지라 장천과 이만을 고문하고 또 고문하였다. 십 수차례 계속된 고문을 통해서 장천과 이만에 얼마나 매질을 하였는지 그들은 이제 걷지도 못하게 되었다. 장천은 결국 병을 얻어 옥사하였고 이제 홀로 남은 이만은 황급히 비구니 암자로 문씨를 찾아갔다.
“나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말 다급한 심정이니 간의 사정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소. 사실 내가 이 일로 출발할 때 문서담당관 김소가 양순 총독의 명령이라며 당신 남편을 호송하면서 도중에 적당한 곳에서 죽여 버리고 그 죽였다는 증거를 가져와 보고하라고 하였소. 우리가 입으로야 그 명령을 받들겠노라 하였지만 어찌 차마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소? 하나 무슨 연유인지 당신 남편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우리가 그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소이다. 하늘에 맹세코 내 말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으면 우리 집안이 멸족을 당해도 좋소이다. 하지주가 우리에게 닷새 기한을 주고 당신 남편을 찾아오라 하였으나 내 동료 장천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버렸고 나 역시 이제 죽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이렇게 억울할 데가 어디 있겠소! 우리가 당신 남편을 죽이지 않았으니 당신은 언젠가는 남편과 만날 날이 있을 것이오. 그러니 제발 주 청사로 달려가 지주에게 울면서 하소연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시오. 대신 당신 남편을 찾는 기한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도록 도와주어 이 내 목숨을 살려준다면 이는 정말 큰 음덕을 쌓는 일이 될 것이오.”
문씨가 대답하였다.
“당신들이 내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는 하나 그 말이 사실인지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어요. 하나 당신이 기왕에 이렇게 애걸복걸하니 내가 다시는 주 청사로 달려가 울며 하소연하는 일은 하지 않고 당신이 내 남편을 찾는 기한이 연장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어요. 절대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제 남편을 찾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주셔요.”
이만은 연신 그러하겠노라고 대답하며 물러갔다. 시로 한 수로 증거하노라:
은 스무 냥 받고 죄수를 죽이려 하였으나,
호송하는 도중에 죄수를 놓칠 줄이야.
주리와 곤장을 견딜 수가 없어,
비구니 암자 찾아가 아낙네에게 살려 달라 애걸하네.
하지주가 이렇게 기한을 정해놓고 다급하게 심소하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양순 총독이 하도 빨리 잡아야 한다고 닦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문씨가 날마다 찾아와 졸라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도 이만의 목숨이 예서 끝날 운명은 아니었는지 이만에게도 나름 기회가 찾아왔다.
한편, 총독 양순과 어사 노해는 시도 때도 없이 만나서 엄재상 부자의 비위를 맞춰주고 조정의 높은 관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계책을 꾸미고 또 꾸몄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병부 급사중 오시래吳時來가 양순이 함부로 백성을 죽이고서 그걸 외려 공적으로 치장한 일이 있다는 말을 듣고선 그 사정을 자세하게 조사하여 상소를 작성하고 더불어 양순이 노해와 함께 짝을 이뤄 패악질한 것을 탄핵하였다. 마침 가정제가 초제 지내며 하늘에 복을 빌고 있던 때였는지라 함부로 백성을 죽임은 결국 천지신명의 조화로운 기운을 해치는 것이라며 대노하면서 친위병을 직접 파견하여 양순과 노해를 잡아오도록 하였다. 엄숭 역시도 황제가 너무도 진노하였는지라 어떻게 손도 못 쓰고 그저 중간에서 잘 조정하여 큰 벌은 면하고 삭탈관직하고 평민이 되는 것으로 무마하였다.
가소롭구나, 양순과 노해가 사람을 죽여 가며 아부하더니 이젠 결국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게 되었구나.
한편, 하지주는 양순의 관직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선 장천과 이만 건에 대한 관심이 급작스럽게 식어버렸다. 게다가 매일매일 와서 읍소하던 문씨도 나타나지 않고 호송원 둘 가운데 하나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났고 이제 남은 이만은 매번 살려달라고 애걸복걸이니 하지주는 이만에게 널리 세상을 돌아다니며 심소하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담은 문서를 주었다. 사실 이건 뭐 이만을 그냥 풀어주기 뭐하여 붙인 구실에 불과하다. 이만은 이 명령 문서를 받으니 마치 사면문서를 받는 것과 같은지라 연거푸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올리고 주 청사를 쏜살같이 떠났다. 하나, 이만이 수중에 돈 한 푼도 없으니 걸식하며 고향으로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한편, 심소하는 풍주사네 벽 틈에 몇 개월이나 숨어 있었다. 바깥소식은 전혀 알 길이 없으니 그저 풍주사가 이런 저런 소식을 전해주면 듣기나 할 따름이었다. 문씨가 비구니 암자에 기거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적이 안심하였다. 일 년이 지나니 이만과 장천이 모두 이곳을 떠나고 이 사건 역시도 흐지부지되었다. 풍주사는 특별히 서실 세 칸을 정리하여 심소하에게 독서하도록 하였으나 절대 밖에 나오지는 못 하게 하였으니 심소하의 소식을 알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풍주사는 삼년상을 마쳤으나 심소하를 챙겨줄 요량으로 관직에 복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이러구러 벌써 8년이 지났다. 엄숭의 일품부인 구양歐陽씨가 세상을 떠났다. 아들 엄세번이 운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아버지 엄숭에게 자신이 서울에 남아서 아버지를 봉양하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게 하였다. 하나 엄세번은 상중에도 첩질을 하는 등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효성이 지극하였던 가정제는 이 소식을 듣고선 매우 불쾌해하였다. 이때 방사 남도행藍道行은 신들과 접신하는 술법을 부릴 줄 안다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가정제는 남도행을 불러 자신의 신하들 가운데 누가 현명한지를 물었다. 남도행이 이렇게 아뢰었다.
“제가 지금 초치한 신은 하늘에서도 정직하기로 유명한 신으로 절대 돌려 말할 줄 모르고 있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신입니다. 비록 제 점괘가 폐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제발 신을 허물하지 말아 주십시오.”
가정제가 대답하였다.
“짐은 오직 하늘의 바른 소리만을 듣고 싶은즉 어찌 그대를 허물하겠는가?”
남도행이 부적처럼 글을 쓰는데 그 붓이 사람의 손이 가지 않아도 저절로 움직이며 마침내 열여섯 글자를 적었다.
높은 산 그리고 울타리의 풀 高山番草,
부자가 조정의 대신. 父子閣老。
해와 달이 빛을 잃고, 日月無光,
하늘과 땅이 뒤바뀌었네. 天地顛倒。
가정제가 그 열여섯 글자를 보더니 남도행에게 부탁하였다.
“그대가 풀이를 해보라.”
남도행이 아뢰었다.
“신은 어리석어 감히 해석하지 못하겠나이다.”
가정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짐이 이미 그 뜻을 아노라. 높은 산이라 함은 뫼 산山 자 아래에 높을 고高 자니 바로 숭嵩이며, 울타리의 풀이란 바로 울타리 번番자 위에 풀 艹자가 올라가는 것이니 번蕃이라. 바로 엄숭, 엄세번 부자를 가리키는 것이로다. 짐은 오래전부터 엄씨 부자가 권력을 농단하고 나라를 망치고 있음을 알고 있었느니라. 지금 하늘도 그것을 다시금 짐에게 일깨워주노니 짐은 이제 그들을 처분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대는 이 일을 절대 누설하지 말라.”
남도행은 머리를 조아리며 감히 어명을 받들겠노라고 하고 가정제의 하사품을 받고서 물러났다. 이 일이 있고나서부터 가정제는 점차로 엄숭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어사 추응룡鄒應龍이 지금이 바로 기회라 생각하고는 마침내 엄세번이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서 매관매직하고 허다한 악행을 저질렀다고 탄핵하고 처형하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의 아비 엄숭은 아들을 편애하여 파당을 짓고 현자의 앞길을 막았으니 의당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여 정치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도 주장하였다. 가정제는 이 상소문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추응룡을 통정우참의通政右參議로 승진시켰다. 엄세번은 법의 심판을 받아 변방의 수자리를 살러 가게 되었다. 엄숭은 마침내 고향으로 쫓겨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서순안어사江西巡按御史 임윤林潤이 상소를 올려, 엄세번이 변방으로 수자리를 살러 가지 아니하고 자기 집에 남아 온갖 포악한 짓거리를 하고 다른 이들의 재산을 강탈하며 아녀자들을 겁간하고 왜구와 내통하는 등 온갖 추잡한 일을 다 저지르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가정제가 이 건을 삼법사三法司에 맡기니 삼법사의 심문관이 조사를 다 마치고 상주한 다음 결국 엄세번을 처형하였다. 아울러 엄세번의 가산을 몰수하였다. 엄숭은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머무는 양로원으로 보내져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그제야 엄숭 부자에게 시달림을 받던 신하들이 분이 풀린 듯하였다.
풍주사는 이 기쁜 소식을 심소하에게 알려주고 이제 세상으로 나가도 좋다고 하였다. 심소하는 바로 비구니 암자로 문씨를 찾아갔다. 부부가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 문씨와 심소하가 헤어질 때 문씨가 임신 3개월째였으니 그 후 출산을 하였고 암자에서 자라 벌써 열 살이 되었다. 문씨가 직접 그 아들을 가르쳐서 오경을 다 암송할 줄 알았으니 심소하가 이를 보고는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랴. 풍주사가 이제 다시 북경으로 가서 관직에 복직하고자 하며 심소하에게 같이 서울로 가서 부친의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게 어떠하냐고 권하였다. 풍주사는 또 문씨에게 잠시 자기 집에 기거하도록 배려하였다.
심소하는 풍주사의 말을 따라 같이 북경으로 갔다. 풍주사는 먼저 추응룡을 찾아가 심련, 심소하 부자의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였다. 그런 다음 심소하가 작성한 재판 신청서를 보여주었다. 추응룡은 이 건을 힘써 처리하여주기로 하였다. 다음 날 심소하는 이 재판 신청서를 통정사通政司를 통하여 천자께 바쳤다.
성지가 내려졌다.
심소하는 충직함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당하였으니 원직 복귀를 허락하며 특별히 한 등급을 승진시켜 그의 충직함을 널리 알리노라. 아울러 그의 아내 문씨와 아들은 심소하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라. 심소하 가문이 몰수당한 재산은 그 양을 헤아려 다 돌려주도록 하라. 심소하는 오랫동안 나라의 녹봉을 받는 수재였으니 이젠 현령의 직을 하사하노라.
심소하는 다시 상소를 올려 황제의 은혜에 감사하였다. 그 상소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었더라.
제 선친께서 보안주에서 총독 양순이 백성들을 함부로 죽여 그걸 외려 자신의 공으로 치장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시를 지어 풍자하였던바 어사 노해가 몰래 엄세번의 부탁을 받고서 선부와 대동 지역을 순찰하러 와서는 양순과 공모하여 신의 선친을 처형하고 더불어 신의 동생 둘을 죽였으며 신 역시 죽을 뻔 하였습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선친은 아직 장사를 지내지도 못하고 거의 멸문을 당한 뻔 하였으니 세상에 신의 집안처럼 재앙을 당한 집안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엄세번은 법에 의하여 처형되었으나 양순과 노해는 아직도 번연히 고향땅에서 평안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변경지방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수천수만의 억울한 혼령들이 그 억울함을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신 집안의 억울한 죽임을 당한 세 혼령도 마찬가지로 그 비통함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정한 법집행도 아니요, 억울한 죽임을 당한 혼령을 달래는 것도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성지가 내려졌다. 양순과 노해를 북경으로 다시 불러 심리하여 사형을 선고하고 일단 하옥하였다. 심소하는 풍주사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고 일단 운주로 가서 어머니와 동생 심질을 모셔와 풍주사 댁과 가까운 곳에서 기거하도록 안돈시키고 그런 다음 보안주로 가서 선친의 유골을 모셔와 장례를 치르겠노라고 말씀드렸다. 풍주사는 심소하의 말을 듣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형수님 소식은 내가 이미 다 알아놓았네. 형수님은 지금 운주에서 별 탈 없이 잘 지내신다네. 동생 심질은 그곳의 상서에 입학하였다고 하네. 자네의 모친과 동생은 내가 가서 모셔오겠네. 선친의 유골을 수습하는 게 더욱 시급하니 조카께서는 어서 보안주를 다녀와서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시게나.”
심소하는 풍주사의 말씀을 따라 바로 보안주로 출발하였다. 보안주에서 이틀 동안 수소문하였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삼 일째 되는 날 몸이 힘들어 남의 집 문 앞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노인네가 안에서 나와 안으로 들어와 차라도 한잔 하라고 청하였다. 그 집 대청에 족자가 하나 걸려 있는데 해서로 써 있는 제갈공명의 「전후출사표」이었다. 족자에는 글쓴이의 서명은 없고 그저 글을 쓴 연도와 달만 적혀 있었다. 심소하가 그 족자를 계속 바라보니 그 노인네가 물었다.
“어인 일로 그리 뚫어지게 보시오?”
“노인장, 한 번 여쭤봅시다. 그 족자는 대체 누가 쓴 것입니까?”
“그건 죽은 내 친구 심련이 쓴 것이오.”
“그분이 어찌하여 노인장 댁에 머무르셨소이까?”
“이 노인은 성은 가, 이름은 석이라. 당초에 심련이 이곳에 유배를 왔을 때 나의 이 누추한 거처에서 살았다오. 나는 그 심련과 의형제를 맺고 서로 아끼며 지냈다오. 하나 그 후로도 심련에게 재앙이 겹쳐 닥쳐오니 나는 혹여 내가 그 일에 연루될까 두려워 하남으로 피신하게 되었소이다. 이 때 나는 저 「전후출사표」를 표구하여서는 벽에 걸어놓고 매일 바라보았으니 마치 내 친구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과 같았다오. 양순이 파직당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소. 형수님 서부인과 막내 심질은 운주에 피신하여 있었으니 내가 시간 날 때마다 가서 보살폈다오. 이제 엄씨 부자마저 권세를 다 잃어버렸으니 형님의 원한도 좀 풀렸을 것이오. 나는 이미 운주에 사람을 보내어 이 소식을 알려주었소이다. 심련의 큰아들이 선친의 유해를 수습하고자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니 나는 이곳 대청에 심련의 친필 족자를 내걸어 놓고 큰아들이 돌아가신 아버님의 친필을 알아보게 하고자 하였던 것이외다.”
노인장 가석의 말을 들은 심소하는 황망히 땅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은혜로우신 숙부님”이라는 인사를 거푸 하였다. 노인장이 심소하를 황급히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그런데 그대는 대체 뉘시오?”
심소하가 대답하였다.
“제가 바로 심소하이고, 저 족자가 바로 제 선친이 쓰신 것입니다.”
“듣자하니 양순 저 죽일 놈이 사람들 보내어 자네를 잡아오게 하고 도중에 자네를 죽여 자네 가문을 모조리 멸족시키려고 했다던데. 나는 자네가 저놈들의 마수에 걸려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있었소?”
심소하는 임청주에서 풍주사 댁을 찾아가 숨어 있었던 일부터 모든 사정을 세세하게 말씀드렸다. 가석은 어찌 그런 일이 다 있을 수 있는가 감탄해 마지않았다. 가석은 하인을 시켜 밥을 챙겨오게 하여 심소하를 대접하였다.심소하가 가석에게 여쭤보았다.
“선친을 장사지낸 곳을 숙부께서 필시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가서 선친께 인사 올리게 하여주십시오.”
가석이 대답하였다.
“자네 선친이 옥중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을 때 내가 몰래 선친을 묻어주었지. 그리고 그 장소를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았어. 이제 이렇게 큰아들인 자네가 찾아왔으니 나의 그 노력이 헛되지 않은 셈이군.”
가석과 심소하가 막 길을 나서려는 순간 밖에서 젊은이 하나가 말을 타고 찾아왔다. 가석이 그 젊은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절묘하군, 절묘해! 시간이 딱딱 맞는군! 저 젊은이가 바로 자네 동생이라네.”
그 젊은이는 바로 심질이었다. 심질은 말에서 내려 인사를 올렸다. 가석은 심소하를 가리키며
심질에게 일렀다.
“이 사람이 바로 자네의 형 심소하라네.”
오늘에야 이렇게 처음으로 형제가 만났으니 꿈인 듯 생시인 듯, 둘은 서로 껴안고 통곡하였다. 세 사람은 함께 심련의 묘소를 향해 출발하였다. 이리저리 잡초가 우거진 곳에 눈에 잘 띄지 않게 작은 봉분이 살짝 올라와 있었다. 가석이 심소하와 심질 두 사람에게 선친의 묘소에 참배하게 하니 둘은 부친 묘소에 절하며 애절하게 곡하며 땅바닥에 떼굴떼굴 구른다. 가석이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자네 둘과 상의할 일이 있으니 너무 그렇게 슬퍼하고 있지만 마시게.”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울음을 그쳤다. 가석이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둘째 형과 셋째 형 그러니까 심곤과 심포 역시 죄 없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당시 옥졸인 모공毛公이 정의롭고 인정 많은 사람이라서 그 둘의 유해를 거둬 성곽 서쪽 3리쯤 떨어진 곳에 장사지냈다네. 지금은 모공이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그 묏자리는 내가 알고 있으니 그대 선친의 유해를 옮길 때 함께 같이 옮겨서 선친과 죽은 자네들의 형제가 저세상에서나마 함께 만나게 해주는 게 어떨까?”
심소하와 심질 두 사람이 대답하였다.
“숙부님의 말씀이 바로 저희들의 생각입니다.”
그날로 바로 심소하와 심질은 가석 숙부를 따라 성곽 서쪽으로 가서 두 형제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그 애절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다음 날 그들은 따로 관을 마련한 다음 길일을 택하여 선친과 두 형제의 묘를 파묘하고 다시 염하고 입관 절차를 밟았다. 심련, 심곤, 심포 셋의 얼굴이 마치 산사람의 얼굴과도 같았으며 유해가 조금도 썩지를 않았다. 아마도 이것은 바로 이 삼부자의 충의로움 때문일 것이다. 이걸 보고서 심소하와 심질은 외려 더 슬픈 마음이 간절해져서 애절하게 울었다. 바로 수레를 마련하여 세 구의 관을 싣고 가석 숙부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길을 떠나려 하였다. 헤어지는 마당에 심소하가 가석에게 말씀을 올렸다.
“숙부님, 제 선친이 쓰신 저 「출사표」족자를 가지고 가서 선친의 사당에 봉안하고 싶습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가석이 흔쾌히 허락하고는 족자를 내려 건네주었다. 심소하와 심질은 가석에게 거듭거듭 감사인사를 올리고 눈물을 머금으며 작별하였다. 심소하가 먼저 관을 메고서 장가만張家灣에 도착하여 배를 사서 관을 실었다.
심소하는 북경에 도착하여 어머님을 뵙고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였다. 그런 다음 어머님을 모셔와 주신 풍주사를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올리고 둘째 부인 문씨와 아들을 만나고자 풍주사 댁으로 출발하였다. 당시 북경의 관원들은 모두 심소하의 선친 심련의 충절을 다시금 추모해 마지않았다. 더불어 심소하가 선친의 유해를 운구해오고 그의 모친과 함께 기거하게 된 것을 알고는 심소하에게 여행증명서를 챙겨주거나 아니면 조의금이나 선물을 챙겨주면서 돕는 손길이 줄을 이었다. 심소하는 그저 여행증명서만을 챙기고 나머지 조의금이나 선물은 모두 사양하였다. 풍주사를 뵈러 가는 길에 장가만에 다시 이르러 심소하는 관선으로 옮겨 탔다. 인부 100여 명이 관선을 끌고 젓고 하니 그 속도가 빠르기가 그지없었다. 임청주에 이르러 심소하는 잠시 배를 정박하라 이르고 혼자서 성안으로 들어갔다. 풍주사 댁에 이르러 풍주사가 가족에게 전달하는 편지를 건네주고 둘째 부인 문씨와 아들을 배에 태우고 북경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먼저 심련 삼부자의 관에 인사를 올린 다음 시어머니인 서부인을 뵈었다. 서부인은 장성한 손자를 보니 기쁘기가 한량없었다. 멸문지화를 당하여 가문이 다 끊어졌다고 절망하였다가 이렇게 장성한 손자를 보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옛날 심련과 그의 아들들에게 몹쓸 짓을 한 원수들이 이제 다 죽임을 다하고 벌을 받으니 이 역시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쁜 짓을 한 놈들은 언젠가는 벌을 받는 법이다. 착한 일을 한 사람들은 당연히 보답을 받는 것이고.
객쩍은 이야기는 여기서 접자. 절강성 소흥부에 이르니 심소하의 장인 맹춘원이 여식 맹씨를 데리고 20리 넘게 달려 나와 심소하를 맞이하였다. 생이별하였던 일가족이 다시 만나 슬픔과 기쁨이 겹겹이라. 관을 실은 배가 부두에 정박하니 일대 관원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치상에 동참하였다. 심씨 일가족의 옛 재산은 그 품목을 조사하여 모두 반환해주었다. 심소하와 심질은 선친과 형제들의 장례를 모두 마치고 삼년상을 치렀으니 모두들 효자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였다. 소흥부의 순무사는 심련의 사당을 건립해주고 봄가을마다 제사를 지내기로 하였으며 친필로 「출사표」를 한 폭을 써서 사당에 걸었다. 삼년상을 마치고 심소하는 북경으로 돌아가 관직을 제수 받아 현령이 되었다. 늘 청렴결백하여 큰 고을의 태수로 승진하였다. 둘째 부인 문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은 일찍이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숙부 심질과 같은 해에 등과하여 진사가 되었으니 자손대대로 서향이 넘쳐났다. 심소하의 목숨을 구해준 풍주사는 그의 의로운 행적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이부상서로 승진하였다. 어느 날 심련이 풍주사의 꿈에 나타났다.
“하늘이 소생의 충정을 가상히 여겨 이미 몇 해 전부터 소생에게 북경 성황당을 책임지게 하였소이다. 한데 그대에게 남경의 성황당을 맡긴다고 하오. 내일 정오에 그대를 임명한다 하오.”
풍주사는 꿈에서 깨어 참으로 이상하다 생각하였다. 정말 다음 날 정오가 되니 풍주사의 눈에 자신의 맞이하러 오는 가마가 보였다. 풍주사는 아무런 고통도 없이 저세상으로 떠났다. 심련과 풍주사가 모두 신선이 된 것이라. 시 한 수가 있어 증거하노니:
살아서 충성을 다하니 유골마저도 향기롭네,
혼백은 신선이 되니 두고두고 칭송을 받네.
간사한 놈들, 죽어서도 지옥에 갈지니,
하늘의 인과응보엔 한 치의 오차도 없으려니.
3) 노나라의 주가를 말한다. 일찍이 항우를 따랐던 계포가 한고조에게 미움을 사 위태롭던 시절 그를 구해준 일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