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어사가 금비녀와 금팔찌를 교묘하게 조사하다 3
‘매사를 세 번 이상 고민하지 않으면 결국은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맹부인이 소리소문내지 않고 노학증에게 은과 장신구를 주어 혼사를 잘 매듭지으려 했던 것은 본디 그 의도는 선한 것이었으나 어찌 이처럼 중요한 일을 준비하면서 심부름시킨 집사에게 노학증을 직접 만나 얼굴을 보고 처리하고 하지 않았던가.
설사 가짜 노학증이 왔다고 하더라도 그 가짜 노학증에게 몇 마디 건넨 다음 은과 장신구를 건넨 다음 집사에게 다시 바래다주라고 하고서 일이 되어가는 상황을 살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부당만부당하게도자 신의 여식을 불러 가짜 노학증을 만나게 하고 그런 다음 다시 그 여식을 동쪽 사랑채에 보내어 가짜 노학증과 또 말을 섞게 하니 이건 바야흐로 문제가 생길 여지를 스스로 만들어주는 셈이니 어찌 일이 터지지 아니하랴. 가짜 노학증이 아니라 진짜 노학증이라 하여도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여 일생의 한을 남겨서는 아니 되었다. 맹부인이 자식 사랑에 잠시 눈이 어두워져서 자식의 일생을 망치고 말았구나.
그래 쓸데없는 이야기는 집어치우자. 가짜 노학증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더니 아수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새벽 4시, 즉 5경이 되자 맹부인은 가짜 노학증에게 일어나 소세를 하라 하고는 차와 탕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들게 하였다.
“아수의 부친이 멀지 않아 돌아올 것이니 공자께서는 어서 떠날 채비를 하시게나.”
가짜 노학증은 맹부인에게 작별인사를 드리고 맹부인 댁 뒷문을 빠져나와 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벼슬아치 댁 규수를 농락하고 이렇게 은과 장신구까지 받았구나. 이 일이 발각되지 않으면 다행일 텐데. 근데, 오늘 저 노학증이 다시 맹부인 댁을 방문하면 모든 게 발각되는 것 아니냐. 고첨사가 멀지 않아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일단 내가 노학증을 하루만 더 붙잡아두었다가 내일 맹부인을 찾아가게 해야겠다. 맹부인을 보러갔다가 고첨사가 집에 있으면 감히 들어가지 못할 것이니 이 일은 간단히 해결될 거라.”
맘속으로 계책을 세운 양상빈은 길가 주점에 들러 연거푸 술을 몇 잔 들이켜고 입 안에 안주를 털어 넣고는 한참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노학증은 양상빈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쓸개가 다 녹아내릴 지경이었으나 입고갈 옷이 없으니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고모 역시 다급해져서 일꾼을 동쪽 마을에 보내어 아들을 찾아보라 하였으나 종무소식이었다. 하여 노학증의 고모는 며느리 전씨한테 가서 물었다.
“애야, 아범 옷 가운데 입을 만한 게 있는지 모르겠구나?”
“아범은 옷을 상자 안에다 넣어놓고 늘 열쇠로 잠그고 다녀요.”
원래 고모의 며느리 전씨는 동쪽 마을 전공원田貢元으로 인물이 출중하고 글도 읽을 줄 알고 예의에도 밝았다. 며느리의 친정아버지 전공원은 본디 석성현에서 행세깨나 하는 주먹이었다. 그런데 석성현의 관리 하나가 그와 원수가 되어 그를 해치고자 벼르고 있었다. 이때 양상빈의 아버지가 처남인 노염헌에게 이 일을 부탁하니 노염헌도 평소 그의 사람됨을 익히 알고 있었던지라 적극 구명에 나섰기에 전공원이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전공원은 양상빈의 부친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도와준 은혜에 감동하여 자신의 여식을 며느리로 주었다. 며느리 전씨도 친정아버지를 닮아 나름 의협심이 강한 여성이었다. 며느리 전씨는 남편이 멍청한 주제에 좋지 못한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을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며느리 전씨는 입만 열었다 하면 남편을 촌놈이라고 불렀다. 이런 연유로 부부사이는 늘 삐걱거렸고 의복 같은 것도 남편이 직접 챙겼으며 며느리 전씨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노학증과 노학증의 고모가 가슴을 졸이고 있는 그 순간, 양상빈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타났다. 고모는 그를 보자마자 꾸짖었다.
“그래 동생이 이렇게 애타게 옷을 기다리고 있는데 너는 어디서 그렇게 술이나 마시느라고 밤새 집구석에 들어오지도 않는 게냐? 네놈을 도대체가 찾을 수가 있어야지.”
양상빈은 어머니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튀어 들어가 소매 속에 숨겨온 것들을 감춘 다음 다시 나와 노학증에게 말하였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 내가 붙잡히는 바람에 동생이 하루 지체하게 만들었네. 나를 너무 책망하지 말아주시게나. 오늘은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내일 돌아가시게나.”
고모가 양상빈에게 욕을 퍼부었다.
“야 이놈아 너는 그저 옷이나 빌려주면 되었지, 정작 일을 할 사람은 네가 아닌데, 네가 뭐 하러 나서서 오늘 가라 내일 가라 하는 게냐.”
노학증이 말하였다.
“옷 말고 신발과 버선도 빌려주시길 바라나이다.”
“청색 비단 신발이 있기는 한데, 옆집 갖바치가 빌려갔어. 오늘 밤에 바로 돌려달라고 할 테니 내일 아침 그걸 신고 가시게나.”
노학증은 하는 수 없이 하루를 더 묵기로 하였다. 다음 날 양상빈은 골치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남들이 아침밥을 다 먹고 난 다음에야 겨우 일어나 도포, 신발, 버선을 꼼지락꼼지락 하나씩 꺼내오는 게 이건 뭐 노골적으로 시간을 지체해서 노학증의 일을 망쳐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노학증은 차마 그 자리에서 바로 입어보지는 못하고 보자기를 빌려 그것을 싸서 집안일 도와주는 노파에게 들고 가라 하였다. 고모는 쌀이랑 나물 같은 것을 챙겨서 머슴을 시켜 노학증의 집에 갖다 주고 오라고 하였다.
“혼례를 치르기로 결정하고 일을 진행하기 시작하면 나에게 바로 전갈을 해주도록 해라. 내가 괜히 걱정하지 않게 말야.”
노학증은 고모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양상빈이 노학증을 전송하는 양 같이 따라 나와서 말을 건넸다.
“고첨사 댁에 가걸랑 동생에게 호의를 베푼다고 하는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꼭 꼼꼼하게 살펴야 하네. 내말 듣고 그대로 하게나. 정문으로 들어가더라도 무작정 들어가지는 마시게. 고첨사가 자신의 사위가 아니라고 쫓아내면 어떡할 건가. 게다가 그 집의 후원을 담당하는 늙은 집사가 자네에게 전갈을 전하는 심부름을 했었던 것이야 틀림없는 사실이니 자네가 뭐 혼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찾아가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 맞기는 하지. 그러나 그가 안면을 싹 바꾸게 되면 자네가 그에게 한바탕 사실을 알려주고자 노력하여야 할 것이라, 그러다보면 동네 사람들에게 다 소문이 날 거야. 만약 그자가 후원의 넓은 곳에서 자네를 손 좀 봐주려고 한다면 자네는 그저 꼼짝 못 하고 당하게 될 거야.”
노학증은 계속 맞장구쳤다.
“형님 말이 지당하십니다.”
마주 보고는 웃더니 등 뒤에다 칼을 꽂는구나. 선량한 사람이 악한에게 당하는구나. 노학증은 집에 돌아와 고종사촌 형에게 빌린 옷으로 갈아입고, 버선이랑, 신으로 갈아 신었다. 다만 고종사촌 형과 자기의 머리 크기가 너무 달라서 두건을 빌리지는 못하였는지라 쓰고 다니던 낡은 두건을 벗어서 물에 깨끗하게 씻었다. 그런 다음 살림을 돌봐주는 노파를 시켜 이웃집에서 빌려온 다리미를 불에 달궈 두건을 다림질하여 빳빳하게 펴고 해지고 구멍 난 곳은 밥풀을 으깨어 붙인 다음 먹물을 묻혀 까맣게 칠하였다. 이렇게 두건을 가지고 한참이나 씨름한 다음에 이리 써보고 저리 써보았지만 아무래도 이게 잘 맞는지 걱정이었다. 노학증은 집안일을 봐주는 노파에게 차림새가 정말 잘 맞는지 꼼꼼히 확인 받고나서야 비로소 고첨사 댁으로 걸음을옮겼다. 고첨사 댁의 문지기가 보니 모르는 사람이라 그저 심드렁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리는 지금 동쪽 마을로 출타하셨습니다.”
노학증은 그래도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답게 이렇게 응대하였다.
“부인마님께 노학증이란 사람이 찾아왔노라 전해주시게나.”
문지기가 지금 찾아온 사람이 노학증이란 거야 알았지만 이 노학증이란 작자가 도대체 왜 찾아왔는지는 알 턱이 없는지라 그냥 이렇게 다시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리가 출타 중인 상황이라 소인이 모르는 사람이 찾아온 것을 함부로 전할 수가 없소이다.”
“부인마님이 친히 나를 찾아오라고 부르신 것이니 어서 가서 전하시게나. 자네가 괜히 상관할 바가 아니네.”
문지기가 안에 들어가 아뢰었다.
“노공자라는 분이 뵙기를 원하는데 들어오라 하리까, 아니면 물리리까?”
맹부인은 이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랐다. 어제 왔다간 사람이 어째 또 다시 찾아온단 말인가? 맹부인은 일단 대청으로 들어오라 하여 앉아서 얼굴을 보고서 말을 나눠보리라 생각하고 하녀에게 그 사람을 맞아오면서 무슨 일로 온 것인지 물어보도록 하였다. 하녀가 나가서 노학증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황망히 발걸음을 돌려 안으로 들어와 맹부인에게 아뢰었다.“이 사람은 가짜입니다. 전날 찾아왔던 그 사람이 아닙니다. 전날 찾아왔던 분은 통통하고 까무잡잡한 사람이었는데 지금 찾아온 사람은 마르고 뽀얀 사람입니다.”
맹부인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이냐?”
맹부인이 직접 후당으로 나가 커튼을 걷고 살펴보니 과연 전날 왔던 자하고는 판연히 다른자였다. 맹부인은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일단 하녀를 시켜 그 사람에게 노씨네 집안 관련 사항을 촘촘하게 알아보도록 하였다. 하녀가 돌아와 아뢰기를 노씨네 집안사람이 틀림없어 보인다고 아뢰었다. 맹부인이 지난번에 가짜 노학증을 만났을 때는 아무래도 뭐가 이상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으나 오늘 만난 이 사람은 인물도 훤칠하고 말주변도 좋아서 이자야말로 진짜 노학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 오늘 무슨 일로 오셨소?”
“일전에 마님께서 노 집사 편에 저를 불러주셨으나 제가 집에 묶여 있다가 오늘 아침에야 돌아와 이렇게 아뵙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늦게 찾아뵙게 됨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그대의 말이 틀림이 없어 보이는구려. 그나저나 그대 흉내를 낸 녀석을 대체 누구란 말이요?”
맹부인은 황망히 일어나 방에 들어가 아수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
“이거 집안 어른도 출타중이어서 없는 사이에 너에게 이렇게 곤란한 일이 생겨버렸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다행히 아무도 아는 자가 없으니 지난 일을 다시 거론하지 말자꾸나. 지금 너와 정혼한 노학증이 이렇게 찾아왔으나 내가 그에게 줄 게 없으니 이를 어쩐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만사가 모두 도루묵이 되어버렸구나. 아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그대로 있었다. 그 아수의 심정을 어찌 필설로 묘사할 수 있으랴.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부끄럽다고 해야 할까, 괴롭다고 해야 할까, 고통스럽다고 해야 할까. 바늘이 사방에서 자기 몸을 찌르듯이 그 뼈아픈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나, 아수는 의지가 강한 여성이라 그래도 정신줄은 놓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그분을 좀 만나고 계십시오. 저에게 나름 생각이 있습니다.”
맹부인은 여식의 말을 듣고서 다시 노학증을 만나러 대청으로 나갔다. 노학증은 의자를 들고서 맹부인 쪽으로 갖다 놓더니 이렇게 말했다.
“장모님께서는 어서 앉으셔서 이 사위의 절을 받으십시오.”
맹부인은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더니 의자 옆에 선 채로 노학증의 재배를 받았다. 아울러 하녀를 시켜 노학증을 일으켜 앉히게 하였다.
“소생이 집안이 가난하여 결례를 너무 심하게 범했습니다. 그런데도 장모님께서 저를 버리지 아니하셨으니 그 은혜는 백골난망이옵니다.”
맹부인은 스스로 너무 참괴하여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맹부인은 황망하게 하녀를 시켜 대청문을 닫고 아수를 모시고 나오도록 하였다. 아수는 커튼 안쪽에 서 있었으나 어찌 발걸음을 옮기고 싶었겠는가? 하여 그저 하녀를 시켜 말을 전하는데,
“공자는 집에서 시간을 지체하느라 저와 어머니의 호의를 거들떠보지 않으셨군요.”
“제가 갑자기 아파서 드러 눕는 바람에 득달같이 달려오지 못하고 오늘에서야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어찌 일부러 약속을 어기려고 하였겠습니까?”
아수가 다시 커튼 안쪽에서 말을 받았다.
“소녀는 3일 전까지는 공자에 속하는 몸이었으나 이제는 공자 가문에 누를 끼칠 수 없으니 그대를 차마 받들 수 없나이다. 공자를 도와줄 수 있는 금은보화와 비단 같은 것들도 지금은 마땅하지 아니합니다. 그저 금비녀 두 쌍과 금팔찌 한 쌍이 있으니 그저 저의 성의로 알고 받아주시길 바라나이다. 공자께서는 또 다른 좋은 인연을 찾으시고 소첩은 가슴에 담아두시지 마십시오.”
하녀를 시켜 금비녀와 금팔찌를 건네는데, 정혼을 물리는 듯한 이 말을 듣고서 노학증이 어찌 그걸 받으려하겠는가.
“제발 받아두시옵소서. 나중에 모든 걸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서 돌아가십시오. 여기서 더 지체하여야 좋을 것이 없습니다.”
아수는 말을 마치고 울음소리만 남긴 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학증은 아무리 해도 이해가 가질 않아서 부인에서 여쭈었다.
“소인의 집안이 비록 가난하다 하더라도 이 금비녀와 금팔찌를 얻으러 여기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오늘 여식께서 이별의 언사를 비추고 있는데도 부인께서는 어찌하여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지요. 이런 말을 전하려고 저를 예까지 부르신 것입니까?”
“우리 모녀에게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오. 다만 공자께서 늦게 왔으니 그게 혼사를 중히 여기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이 들어 내 여식이 기분이 상한 것 같으니 공자께서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구려.”
노학증은 맹부인의 말을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여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양쪽 집안이 얼마나 우애가 두터웠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다시 생각해볼 것을 간청하였다.
“지금 한 분은 돌아가셨고 한 분은 살아계시며, 한쪽 집안은 가난하고 한쪽 집안은 풍족하다고 하여 혼사를 깨려고 하는 것을 그저 참고 견디라는 말입니까? 저는 오직 장모님의 말씀에 따라 달려온 것인데, 3일 늦었다고 이렇게 혼사를 바꾸려 드시다니요!”
노학증은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토설하느라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맹부인 역시 뭐라 할 말도 없는 처지라, 노학증이 말하는 것을 들어주느라 꼼짝도 하지 못하였다. 바로 이 순간 안에서 한바탕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더니 하녀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마님 큰일 났사옵니다. 어서 가서 아가씨를 구하옵소서.”깜짝 놀란 맹부인은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배에도 다리가 한 쌍 더 있기라도 하면 기어서라도 갈 텐데 도대체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녀가 어깨를 부축하여 맹부인이랑 같이 별채에 들어가 보니 아수가 수건으로 목을 매고 자결하였더라. 한달음에 수건을 풀어내었으나 아수의 숨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울기 시작하였다. 노학증은 아수 아씨가 목을 매었다는 말을 듣고서 자기를 떼어내고자 하는 수작이라고 생각하여 대청에서 화를 내면서 고함을 질렀다. 맹부인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노학증을 아수의 방으로 들여보내라고 말을 전했다. 노학증이 아수의 방에 들어와 보니 침상에 아수가 뻣뻣하게 누워있는 것이었다. 맹부인이 울면서 말을 건넸다.
“그려, 내 사위, 자네 부인의 얼굴이나 한 번 보시게나.”
노학증은 심장에 만 개의 화살을 맞은 듯 고통에 겨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려, 내 사위, 여기는 그대가 오래 머물 자리가 아닌 것 같소. 그러다 엉뚱한 말이라도 나면 시비가 붙고 일이 안 좋아질 것이니 어서 돌아가시게나.”
하녀를 시켜 아수가 마련해 준 금비녀와 금팔찌를 노학증의 소매 안에 넣어드리고 전송하여주라 하였다. 노학증 역시 하는 수 없어 그저 울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맹부인은 염을 준비시키고 더불어 동쪽 마을에 가있는 고첨사에게 아수가 정혼을 파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스스로 목을 매어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을 전하게 하였다. 고첨사는 이 소식에 가슴이 미어져 울면서 여식을 장례를 치렀겠다.
목숨을 건 약속은 천금보다 귀한 것,
간사한 꾀가 이렇게 큰 화를 불러올 줄이야.
석 자 길이 붉은 수건으로 약혼자에게 알리고자 함은,
몸은 더렵혀졌을지언정, 마음은 더렵혀지지 않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