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어사가 금비녀와 금팔찌를 교묘하게 조사하다 2
한편 노학증에게는 고모가 한 분 있었다. 일찍이 양梁씨 집안에 시집가서 성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다. 남편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났고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양상빈梁尙賓이었다. 상빈이 아내를 얻으매 세 식구가 같이 한곳에 살게 되었고 집안 형편이 그래도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었다. 이 날은 마침 노학증이 고모 집에 쌀을 얻으러 떠났기에 노학증의 집에는 불 때는 백발의 노파만이 집에 있었다. 늙은 집사는 노파에게 어서 소식을 전하여 노학증을 불러오라고 하였다.
“사실 마님께서 정말 호의를 베푸셔서 나리가 집을 며칠 비우는 동안 노공자께서 찾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니 절대 소식 전하는 것을 늦춰서는 아니 되오.”
말을 마치더니 집사는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노파는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을 미루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자니 말이 날 것 같고. 전에 마님이 계셨을 때 마님을 따라서 고모 집에 가본 적이 있어서 그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긴 하는데.”
옆집 사람에게 집 좀 봐달라고 하고는 한 달음에 고모 집으로 달려갔다. 한편, 노학증의 고모는 노학증을 붙들어두고는 밥을 먹이고 있었기에 노파는 그런 노학증을 보고선 고씨댁 집사가한 말을 자세히 건네주었다. 고모가 말하였다.
“그래 참 잘 되었구나.”
고모는 조카에게 어서 가보라고 재촉하였다. 노학증의 마음은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이 너무 남루하여 차마 그대로 장모를 보러가기가 그러하여 고종사촌인 양상빈에게 옷을 빌려 달라 부탁하였다. 양상빈은 본래 바탕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 뭔가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음흉한 마음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옷이야 빌려줄 수 있지만, 오늘 서둘러 성안에 들어간다 해도 이미 저물었고, 벼슬아치 집안의 담이 또 높기는 얼마나 높은가. 비록 오늘 장모님의 초청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온 집안 식구가 다 아는 것도 아니니 언제 가는 게 좋은가 나름 더 헤아려봐야 할 걸세. 아둔한 내 소견이지만 아우님은 오늘 여기 머무셨다가 내일 아침 일찍 서둘러 가보시게나.”
“형님 말씀이 백번 지당하십니다.”
“내가 동쪽 마을 사람을 만나 상의할 일이 있으니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양상빈은 또 모친에게 말하였다.
“저 노파가 걸어오느라 피곤할 것이니 우리 집에서 재우고 날이 밝으면 되돌아가게 하시지요.”
고모는 자신의 아들이 호의에서 그러는 줄 알고 노파와 노학증 두 사람을 모두 집에서 머물게 하였다. 허나 누가 알았으리요? 노파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고첨사 집의 늙은 집사가 다시 노학증 집에 들르게 되면 노학증이 오늘 저녁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고 그러면 자신이 가짜 역할을 하는 게 드러날까 봐 걱정이 되어서 그렇게 한 것임을.
그 놈은 간사한 꾀를 부리려 했던 것이다.
하늘을 속이는 그 꾀,
사람이 알아차리기 힘들어라.
땅을 뒤엎은 계략,
귀신도 눈치 채지 못하네.
양상빈은 노학증을 속이고 새 옷을 갈아입고는 살며시 문을 나서서 재빨리 성안에 있는 고첨사 집으로 찾아갔다. 한편, 맹부인은 늙은 집사에게 늦은 시각까지 정원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라 하였다. 해는 서산으로 지고 날은 어두워지는데, 어둠 속에서 한 젊은이 모습이 드러났다. 가지런히 차려 입은 모습에 발걸음을 황망히도 옮기고 있는데, 정원 문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혹시 노공자이십니까?”
양상빈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고는 대답하였다.
“예, 맞습니다. 마님께서 보고 싶어 하신다기에 특별히 달려왔나이다. 통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늙은 집사는 양상빈을 정자에까지 안내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맹부인에게 고했다. 맹부인은 집안일을 하는 노파를 보내어 노공자를 맞아들이게 하였다. 노공자가 정자에서 내려오려니 두 계집종이 다가와 비단 갓을 씌운 등불을 들고 와서 맞았다. 이리저리 여러 채의 건물을 지나 붉게 칠한 화려한 건물이 보이니 바로 내실이었다. 맹부인이 주렴을 걷어들어 올리고 촛불을 잡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양상빈은 본디 천출이라서 이렇게 번듯한 집안을 본 적이 없기도 하고 촌놈이라서 문자 속이 좀 신통치 않기도 하고 더욱 지금은 가짜 노학증 행세를 하는 것이어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이라 왠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당에 올라 인사를 올리고 응대하는 것이 법도에 맞지도 아니하고 거칠었으며 말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굼떴다. 맹부인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아무래도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 같지가 않아.”
맹부인은 다시 생각하였다.
“그래, 사람이 빈궁해지면 품행과 생각도 짧아진다고 하는데 노공자가 이렇게 당황해하고 응대를 제대로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야.”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으니 노공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더욱 더 들었다. 차를 마시고 나서 맹부인은 밤참을 내어오게 하였다. 더불어 딸 아수를 불러 만나보게 하였다. 아수는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어머니의 강권이 있기도 하고 또 ‘아버지가 파혼하려고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내 낭군의 얼굴을 한 번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어 아수는 부끄러운 마음을 품은 채로 자신의 방에서 나와 어머니 방으로 향했다. 맹부인이 말했다.
“내 여식이 인사를 올리려 하니 서로 간단하게 예라도 갖추시지요.”
가짜 노학증은 위를 향하여 연거푸 두 번 읍하였다. 아수 역시 두 손을 모아 가슴에 올리고 인사하는 자세를 취한 다음 바로 발걸음을 돌려 돌아가고자 하였다. 맹부인이 말하였다.
“기왕에 정혼한 사이인데 서로 자리를 피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맹부인은 아수를 자기 옆에 앉혔다. 가짜 노학증이 힐끗 아수를 바라보니 용모가 단정하기 그지없는지라 가슴이 떨리고 뼈마디가 다 저려올 지경이었다. 아수는 정혼한 상대를 직접 만나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려오는 가슴에 결국 자기도 모르게 한바탕 통곡을 하고 말았다. 진짜와 가짜는 결국 드러나게 되는 법, 심장과 위장이 어이 같으랴! 잠시 후 음식이 들어오니 맹부인은 상을 두 개로 나눠 차리도록 하였다. 손님 자리에는 공자더러 앉으라 하고, 가로로 놓인 상에는 아수와 자신이 함께 앉았다.
“오늘 이렇게 급작스럽게 공자를 오라고 한 것은 공자께서 혼례를 치르는 데 뭔가 도움이 될까 해서였소. 혹여 결례를 범했다면 너무 책망하지 말고 용서해주시구려.”
가짜 노학증은 그저 황망하게 몇 마디만 주워섬길 뿐이었다.
“정말, 너무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노학증은 당황하여 얼굴이 온통 빨개졌다. 그 자리에서 맹부인은 여식 아수가 일찍이 양가의 부친이 서로 정혼하여준 그 의리를 지키고자 하였던 저간의 사정을 대강 가짜 노학증에게 이야기하였으나 가짜 노학증은 그저 한두 마디 주워섬길 뿐 제대로 응대하지 못하였다. 맹부인은 그가 당황하고 부끄러움을 타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여 그다지 괘념하지는 않았다. 가짜 노학증은 아무래도 자리가 불편한지라 본디 주량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술을 잘할 줄 모른다고 사양하며 마시려 들지 않았고 부인도 강권하지는 않았다. 맹부인 동쪽 사랑채에 가짜 노학증의 잠자리를 봐놓으라고 분부하였다. 가짜 노학증은 일부러 돌아가야 한다고 사양하였다. 맹부인은 가짜 노학증을 붙잡았다.
“서로 이렇게 가까운 사이인데 뭐 그리 신경 쓸 필요 있겠소. 게다가 나하고 아수가 그대에게 긴하게 할 말도 있다오.”
가짜 노학증은 속으로 너무도 기뻐했다. 하녀가 동쪽 사랑채에 이부자리를 다 봐두었노라고고 하였다. 가짜 노학증이 인사를 올리자 하녀가 등불을 들고 동쪽 사랑채에 안내하여 주었다. 맹부인은 여식 아수를 방으로 들어오라 하더니 시녀를 나가라하고는 보석 상자를 열더니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은자 80냥과 더불어 은 잔 한 쌍, 금으로 만든 머리 장식 16개를 같이 건넸는데, 은잔과 머리 장식만 해도 백금은 족히 나가 보였다.
“이 어미 수중에는 이거밖에 없구나. 네가 직접 가서 노공자에게 건네주고서 혼례를 치르는 데 보태 쓰도록 하게 하여라.”
“부끄러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얘야, 예법에도 나름의 예외가 있고, 일에는 완급이 있느니라. 이처럼 서로 곤혹할 때 네가 직접 가서 부부의 정으로 그를 감동시키지 않는다면 그가 어찌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온 정성을 다하려 하겠느냐? 노공자가 너무 가난하게 자라서 세상 물정에 어둡다고 해서 만약 다른 사람을 중간에 내세워 이 일을 도와주게 한다면 노공자가 그 사람한테 휘둘려서 결혼 자금을 한 번에 날려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이 어미는 또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느냐.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네가 이것들을 품안에 잘 안고 가서 직접 전달해 주거라.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유념하여라.”
아수가 들어보니 어머니의 말이 정말 일리가 있는지라 그저 청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그래도 저 혼자 가기는 좀 그렇습니다.”
“내가 하녀 하나를 딸려서 너랑 같이 가도록 하마.”
맹부인은 즉시 하녀를 부르더니 밤이 깊어질 무렵에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아가씨를 모시고 동쪽 사랑채에 다녀오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그 하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일렀다.
“아씨를 모시고 가면 그저 문밖에서 기다려라. 괜히 둘 사이에 눈치 없이 끼어서 이야기 나누는 데 방해가되지 않게 하여라.”
그 하녀는 맹부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눈치를 채었다. 한편 가짜 노학증은 혼자서 동쪽 사랑채에 앉아 뭔가 일이 생겨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일경이 갓 지난 즈음에 하녀가 문을 밀고 들어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씨께서 공자님을 만나고자 찾아오셨나이다.”
가짜 노학증은 황망히 아씨를 맞아들이며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그 가짜 노학증은 맹부인 면전에서는 긴장하여 말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나 아수를 보니 긴장이 풀리면서 편안하게 입을 열게 되었다. 아수 역시도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였으나 어머니도 옆에 없고 하여 편하게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둘은 서로 물으며 대답하며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수는 자기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설움이 복받쳐 두 줄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 가짜 노학증도 억지로 가슴을 치며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고 코를 훌쩍이며 온갖 추접스러운 행동을 다 부렸다. 더불어 아수를 달래는 척하면서 아수를 껴안고 속으로는 너무도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아수를 모시고 따라간 하녀는 두 사람이 서럽게 우는 소리를 듣고는 자기도 괜히 당황하여 눈물을 몇 방울 흘렸다. 하나 그 하녀가 어찌 그 가짜 노학증의 속셈을 알 수 있으랴? 아수는 옷소매에서 은과 장신구를 꺼내어 가짜 노학증에게 전해주면서 재삼재사 당부하였다. 가짜 노학증은 은과 장신구를 받아들더니 아수를 와락 껴안고는 촛불을 불어 끄고 아수와 운우지정을 누리고자 하였다. 아수는 자신이 소리를 질러 하녀가 듣게 되면 대사를 그르치게 될까봐 그저 가짜 노학증이 하는 대로 맡겨두기로 하였다. 누군가 지었다는 꿈길과 같은 노래라는 의미의 「여몽령如夢令」의 가사를 볼까나.
애달프다,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여,
깊 은 곳 몇 겹의 휘장 뒤에 잘 숨겨져 있었더니.
꽃 찾는 낭군의 손길은 미치지 아니하고,
미친 벌 날아들어 헤집고 다니누나.
아뿔싸, 아뿔싸.
저 봄바람은 어찌 벌만 보내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