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 정원藥園/당唐 사공서司空曙
春園芳已遍 봄 정원에 약초 자라 가득하니
綠蔓雜紅英 녹색 덩굴 붉은 꽃과 어울렸네
獨有深山客 오직 깊은 산에 사는 손님만이
時來辨藥名 가끔 와서 약초 이름 판별하네
약초를 키우며 사는 사람의 한가하고 특이한 봄 정취를 소재로 한 시이다. 지난 109회에 사공서(司空曙)의 시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많은 세월을 떠돌아 다녔는데 이 시를 보면 한 때 약초를 키우며 은거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당나라 대종(代宗) 연간에 뛰어난 시인 10명을 가리키는 ‘대력십재자(大曆十才子)’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사람이 약초밭을 가꾸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약초 줄기와 넝쿨, 잎과 꽃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다만 깊은 산에 살고 있는 어떤 은자만이 그 진가를 알아보고 가끔 놀러와 이건 작약, 이건 인삼, 저건 당귀, 요건 천궁… 이런 식으로 구분해 보며 함께 즐긴다는 것이다.
사마광의 <독락원기>에 보면 채약포(採藥圃)라는 것이 있다. 연못 동쪽에 아주 작은 밭뙈기 120개를 만들고 거기에 한 두 포기 씩 다양한 약초를 심고 물명을 구분하여 이름표를 달아 놓았다. 명나라 화가 구영(仇英)이 그린 <독락원도>에는 여러 종류의 약을 일정한 구획을 나누어 재배한 것이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거기에 보면 대나무 위를 묶어 마치 닭의 둥우리처럼 만들어 놓고 호피를 깐 자리에서 약초밭과 울타리에 자라는 약초 넝쿨을 바라보고 약초의 향기를 맡으며 심심의 피로를 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학도 옆에 서 있고 영지도 뒤에 자라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이런 내용은 내가 <구영이 그린 독락원도 속의 누정들>(문헌과해석 73, 2015)에서 자세히 소개하였다.
이 시는 그냥 보면 이거 왜 시가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중국에 가서 차를 파는 가게에 가 보면 같은 보이차나 철관음인데도 가격차가 10배, 100배에 달하는 것이 있다. 마셔 보아도 바로 그 맛을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적당량을 적당한 다구에서 잘 우려 차분히 마셔보면 그 미세한 차이가 결국 천지 차이의 맛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 역시 그와 같아서 언어의 세계로는 범용하게 묘사한 듯하지만 시에 담겨 있는 실상은 그와 달리 독특한 풍정이 있다. 자신이 가꾸는 약초에 대해 일반 사람들은 관심이 없지만 깊은 산의 은자가 와서 약초 이름을 판별하며 같이 즐기는 것을 통해 약초를 가꾸고 음미하는 고상한 즐거움을 담백하게 전달하고 있다. 즉 약초의 넝쿨과 꽃, 등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을 시의 소재로 채택한 것이 우선 의미가 있거니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무심한 태도야말로 이 시인이 도달한 한 즐거움의 경지이기도 한다.
365일 한시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