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선이 매화고개에서 아내를 잃어버리다 1
그대는 백마 타고 구름 속의 잔도를 달리고,
나는 돌무더기 어지러운 여울목에서 배를 젓노라.
그대와 나, 말채찍을 휘날리든 노를 젓든 서로들 비웃지 마세나,
아스라이 멀리 있어 보이지도 않는 명리 때문에 우리 또 얼마나 고생하는가!
이야기인 즉은, 송나라 휘종 선화 3년(1121) 음력 정월, 현명한 선비를 뽑고자 한다는 황제의방이 붙으니 과거 시험이 크게 한 판 열리게 되었다. 동경, 즉 변량성汴梁城의 호이영虎異營이란 곳에 성은 진陳, 이름은 신辛, 자는 종선從善인 수재가 살고 있었으니, 나이는 스물이요, 돌아가신 아버지는 전전태위殿前太尉를 지냈던 분이라. 진종선은 불행히도 부모를 일찍 여의고혼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문무를 겸비하였다.
문장은 공자와 맹자를 넘보고 무예는 손무와 오기에 필적하였으니, 오경삼사, 육도삼략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진종선이 맞아들인 신부는 동경 금량교金梁橋 아래에 사는 장대조張待詔의 딸로 아명은 여춘如春, 나이는 바야흐로 열여섯, 꽃처럼, 옥처럼 예쁘게도 생겼다. 그 꽃은말을 할 줄 아는 꽃이요, 그 옥은 향기를 내뿜는 옥이라. 그들 부부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살 수 없듯이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 않았어도 한날한시에 같이 죽고자 하는’ 그런 부부였다.
진종선은 온 맘을 다해 착하게 살고자 노력하였으며 스님이나 도사들을 대접하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 진종선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황제께서 방을 내걸고 현자들을 가려 뽑고자 하시니 나 역시 과장에 나가 낮은 자리라도 하나 차지하기를 바라오. 그리하여 우리 가문을 새롭게 일으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아내 여춘이 대답하였다.
“당신의 운수가 닿지 않아 급제하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문무를 이미 다 배우고 갖추었으니 응당 왕실에 팔아야 할 것이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진종선은 과거장으로 달려가 (시험을 치르고) 다른 과시생들과 함께 방이붙기만을 기다렸다. 열흘이 채 못가서 방이 붙고 진종선 제3급 진사에 이름을 올렸다. 급제자들을 축하하는 연회가 끝나자 진종선은 황제의 은혜에 감사를 올렸다. 황제는 친필로 진종선을 광동廣東 남웅南雄 사각진沙角鎭의 순검사巡檢司의 순검으로 임명하였다. 진종선은 집에 돌아와아내 여춘에게 말하였다.
“이제 내가 황제의 은혜를 입어 남웅의 순검으로 임명되었으니 당장 부임하여야겠소. 내 듣기로 광동으로가는 길은 높디높은 고개를 넘어야 하며, 만 겹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어 그 길 가기가 쉽지 아니하고 게다가 도적들과 학질을 일으키는 기운도 많다고 하오. 하지만 지금 나는 어서 짐을 꾸려 그 길을 떠나야 하니 이를 어쩐단 말이오?”
“소첩은 낭군에게 시집온 이래로 낭군과 동고동락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낭군께서 벼슬자리를 하러 떠나시는 길이 설사 아무리 험난하다고 하더라도 따라 나서야지요. 무얼 걱정하겠습니까?”
진종선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마음이 적이 놓였다. 이는 바로:
청룡과 백호가 같이 가니,
길흉을 전혀 알 수가 없구나.
그날로 진종선은 하인 왕길王吉을 불러 분부하였다.
“내가 이제 광동 남웅의 순검이라는 직책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갈 길은 험하고 엄청 힘들 것 같구나. 네가 하인 하나를 구하여주어 나랑 같이 가도록 해 주거라.”
왕길이 진종선의 명령을 받들어 시내로 가서 하인을 구하였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진종선은 주방의 하인에게 명령하기를 내일이 사월 초사흘이니 재를 지낼 것이라. 음식을 충분히 준비하여 전진교의 모든 떠돌이 도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대접하라 하였다
진종선 집에서 재를 준비하는 이야기는 잠시 여기서 그치도록 하자. 한편, 대라선계大羅仙界의 진인 그러니까 ‘자양진군紫陽眞君’이 선계에서 바라보니 진종선이 재를 올리고 도사들을 대접하는 것이 너무도 지극정성이라. 이제 바야흐로 남웅에 순검으로 가게 되는 바, 아뿔싸 그의아내에게 천일의 액운이 있겠구나. 자양진군이 대혜진인大慧眞人에게 분부하였다
“동자 도인으로 변신하고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거라. 너는 이제 이름을 나동羅童이라 하고, 임시로 진종선의 수행원이 되어 부부 두 사람을 호송하도록 하라. 진종선의 아내가 요정을 만나면 네가 그녀를 보호해야하느니라.”
동자 도인으로 변한 대혜진인은 자양진군의 말을 듣고서 자양진군을 따라 진종선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재를 마치고 나서 자양진군이 진종선에게 물었다
“예전에 재를 올릴 때는 그렇게 기쁜 내색이더니 오늘은 어째서 그렇게 걱정스런 얼굴이시오?”
진종선이 손을 모아 인사를 올리고는 아뢰었다.
“소생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제가 성은을 입어 남웅의 순검에 임명되었습니다. 하나 길이 멀고도 험난한데다 같이할 형제도 없으니 그래서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양진군이 말하였다
“나한테 나동이라 불리는 동자가 하나 있습니다. 나동이 어리기는 해도 능력은 출중하답니다. 이제 나동에게 그대를 남웅 사각진까지 모시고 가게 할 터이니 사각진에 도착하신 다음 돌려보내주시오.”
진종선 부부 두 사람은 감사의 절을 올렸다
“진인께서 이렇게 찾아주시고 게다가 동자 도인까지 함께 데리고 오셔서 저희랑 같이 가게 해주시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자양진군이 말하였다.
“보잘것없는 이 도인은 물질세계를 초월한 자이며 영욕을 따지지 않는 자이니 무슨 보답을 바라겠소이까?”
자양진군은 말을 마치고 소매를 훌훌 털고는 떠나갔다. 진종선이 말하였다
“나동이 우리랑 짝하여 같이 길을 가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소”
비파와 검과 책 상자를 챙기고 친척과 이웃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문단속을 한 다음 동경을출발하였다. 십 리마다 정자 하나, 오리마다 정자 하나, 구불구불 이어진 길, 그 길에 보이는 것들은:
마을 앞에는 초가 집,
마을 뒤에는 대나무 울타리.
마을 막걸리 냄새가 술항아리에서 배어나오고,
술 단지에는 탁주 가득 담겼다.
옷걸이에 걸린 삼베옷은 농사꾼이 어제 술값으로 벗어놓고 간 것,
술집 깃발의 글자는 촌 동네 선비가 술김에 휘갈긴 것.
술 한 잔 걸치러 온 자들은 잠시 등짐과 배낭을 내려놓고,
갈 길이 바쁜 자들은 아예 말과 마차를 세우지 않는구려.
진종선은 말을 타고, 아내 여춘은 마차를 타고, 왕길, 나동은 책상자랑 짐을 메고 길을 나섰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마시고, 밤이면 잠자리에 들고 아침이면 일어나 길을 갔다.
한편, 나동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몸이 대라선계의 대혜진인아닌가. 한데 자양진군께서 이 몸에게 진종선이 남웅 사각진으로 부임하는 것을 수행하여달라고 하셨구나. 내가 일부러 미친 척하고 바보짓 하여 저 진종선 일행이 내가 누군지를 전혀 상상도 못 하게 하여야지.”
이에 나동은 걸음을 제대로 걷지 아니하고 뒤로 처지기 시작하였다. 여춘은 나동이 이렇게 걸음이 처지는 것을 보고서는 너무 화가 나서 두세 번이나 연거푸 진종선에게 그를 돌려보내라 재촉하였지만 진종선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진종선은 자양진군의 은혜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한참 길을 가다가 불을 피워 밥을 지었다. 나동은 훌쩍거리며 울더니 밥을 먹으려 들지 않았다. 이제 진종선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진종선의 부인 여춘은 어서 나동을 돌려보내라고 성화를 내었다. 나동은 그럴수록 더욱 앙탈을 하며 꿈쩍도 하지 않으려 들었다. 왕길이 나동을 부축하여 억지로 길을 떠났지만 오리도 채 못가서 나동이 허리가 아프다며 울기 시작하더니 도무지 그치려 들지를 않았다. 여춘이 진종선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나동의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했는데, 지금까지 손톱만큼도 일을 하려 들지 않으니 차라리 돌려보내는 게 상책이겠어요.”
진종선이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았어야 했는데. 아내 말을 듣고 나동을 돌려보내고 말았구나
이런 연유로 여춘이 낯선 타향에서 귀신이 될 뻔하였구나. 정말로:
꿈속에서 사슴을 잡았다는 자, 꿈속에서 그 잡은 사슴을 빼돌렸다는 자, 이 둘의 재판을 맡은 정나라 재상은 도시 판결한 길이 없다네, 꿈속에서 나비 꿈을 꾸었다는 장주, 진짜 장주가 나비 꿈을 꾸었는가, 아니면 나비가 장주 꿈을 꾼 것인가?
그 날로 나동을 돌려보내고 나니 귓가에 들리는 귀찮은 소리 역시 깔끔히 사라져버렸다. 진종선 부부와 왕길 세 사람은 계속 길을 떠났다.
한편 매화고개 북쪽에 동굴이 하나 있으니 그 이름을 신양동申陽洞이라 하였다. 그 신양동에는 괴물이 하나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신양공申陽公이라. 신양공은 원숭이 요물이었다. 이 신양공에게는 형 둘과 여동생 하나가 있었다. 첫째 형은 통천대성通天大聖}, 둘째 형은 미천대성彌天大聖}이었다. 자기는 바로 제천대성齊天大聖}이었다. 여동생은 바로 사주성모泗州聖}母였다. 이중에서도 특히 제천대성은 신통력이 광대무변하고 변신술에 능하여 산과 굴속의 요물들을 제압하고 산속의 맹수들을 호령할 수 있었다. 요술을 부려 마음에 드는 여인을 훔칠 수 있었으며,달빛에 휘파람불고 바람에 노래를 부르며, 아주 특별하게 맛난 술을 마셨다. 그는 하늘과 땅이다할 때까지 즐길 것이며 해와 달처럼 오래 살 것이라 하였다.
바로 이 제천대성이 동굴에서 고갯마루 아래로 예쁜 여인을 태운 수레 하나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인은 꽃처럼, 옥처럼 아름다웠으니 제천대성은 그 여인을 훔치고자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에 산신령을 불러 분부하였다.
“내 명령을 듣고서 어서 조화를 부려 객점을 하나 만들고 너는 점원으로 변신하고 나는 객점 주인으로 변신한다. 저놈들은 필시 우리의 객점에 투숙할 것이니 밤이 깊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그 여인을 내 동굴로 데리고 갈 것이다.”
산신령이 제천대성의 명령을 받들어 객점 하나를 만들어내니 신양공은 객점주인으로 변신하여 객점에 앉았다. 마침 때는 바야흐로 황혼녘이라 진종선과 부인은 왕길과 함께 매화고개 아래에 이르렀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는데 마침 손님을 맞이하고자 호객하고 있는 객점 하나가 보였다. 왕길이 성큼성큼 다가가 문을 두드리니 점원이 나와서 묻는다.
“무슨 일이시오?”
왕길이 대답하였다
“나의 쥔장이 남웅 사각진의 순검 직을 맡아 가시는 길이외다. 이 근처에 관리를 위한 객사가 없기에 그대객점에서 묵었다가 날이 밝으면 다시 길을 떠나려고 하오.”
신양공은 진종선 부부를 객점 안으로 맞아들여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하였다. 신양공이 진종선에게 말하였다.
“나이가 여든이나 된 이 노인네가 오늘 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나리께 한 말씀 드리고 싶소이다. 저 앞 매화고개는 너무 험하고 외져서 호랑이와 승냥이랑 도적떼가 출몰하니 부인은일단 이곳 객점에서 머무르게 하시고 나리께서 먼저 임지로 가신 다음 군졸들을 파견하시어 부인을 모시고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진종선이 대답하였다
“이 몸은 3대에 걸친 무인 집안에서 태어난 몸이오. 무예에 통달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일념을 늘 품고 있소이다. 내 어찌 호랑이와 승냥이와 도적떼를 두려워하겠소?”
신양공은 그에게 더 이상 권해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서 입을 다물고는 물러났다
한편, 진종선 부부는 객점의 방에 들어가 저녁 요기를 하였다. 시간은 일경이 지나 이경이라 진종선은 먼저 옷을 벗고서 침상위에 누웠다. 이 때 방안에서 한바탕 바람이 불어왔다. 이는 바로:
지옥문 앞의 나무를 불어 넘어뜨리고,
저승 지붕위의 먼지를 날려버리는구나.
한바탕 바람이 훑고 지나가니 바람에 촛불은 반쯤 사그라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진종선이 놀라 급히 옷을 챙겨 입고 일어나 보니 방에 있던 아내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진종선은 방문을 열고 왕길을 불렀다. 왕길은 자다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진종선이 왕길에게 말하였다.
“방안에 한바탕 바람이 불어오더니 아내가 사라져버렸구나.”
진종선과 왕길이 급히 객점주인을 소리쳐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다. 진종선과 왕길이 자세히살펴보니 객점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왕길 역시 대경실색하였다. 바라보니 자기들이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것 아닌가. 그저 책 상자와 짐짝과 말만이 있을 뿐 등불도, 객점도, 객점주인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바로 이날 밤부터 진종선은 3년 동안 아내 얼굴을 보지못하게 되었구나. 그 후에 일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길이 없구나. 바야흐로:
비와 안개에 덮인 마을이요, 안개에 싸인 도성이라,
남북조차 분간할 수 없으니 갈 길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장승요張僧繇의 그림을 참고하였으면* ,
이젠 그 그림을 다시 말아두어야지.
*남북조 시대 양나라(502-557) 때의 유명한 화가. 특히 사실적인 묘사에 뛰어났다고 한다. 여기서는 사진처럼 풍경을 묘사한 장승요의 그림을 참고하여 길을 찾는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