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 시공간의 함의
철학적 관점에서 풀이할 때, 삼장법사의 서역행은 평범한 인간이 이와 같은 시공간의 특별한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초월자로서 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행—화자(작자)는 종종 이것을 ‘연단煉丹’이라고 표현하는데—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에 등장하는 각종 지명들은 실제의 지리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물론 그 지명들은 기본적으로 투르판吐魯番에 있는 실제의 산과 그 산의 지질학적, 지리적 특성—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아 중국의 서북쪽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산화철이 함유되어 붉은 빛을 띠는 암석으로 뒤덮인 산이라는—에 착안한 화염산火焰山(제40~42회)의 경우와 같이, 상당히 구체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이것은 『서유기』가 현장 법사의 『대당서역기』를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연하게 떠올릴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서유기』가 현장법사의 여행에 대한 전기적傳記的 서술이 아니라 고도의 문학적 형상화를 거친 상징적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소설에서 그런 지명들은 그 자체로 서역으로 향한 여행의 지리적 장애물이라는 점보다 거기에 터전을 잡고 있는 요괴들—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들은 안팎으로 주인공의 수행을 방해하거나 혹은 더욱 정진精進을 재촉하는 훈련관들에 해당한다—이 강조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적 시공간의 특징들은 독특한 지명地名들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이런 지명들은 대개 사타동獅駝洞(제74회)처럼 그 안에 사는 요괴의 정체를 암시하거나 형극령(제64회)처럼 지리적 혹은 지형적 특성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기능과 더불어 철학적인 중의성重意性을 담은 경우도 많다.
가령 제72회에서 일곱 마리 거미 요정이 사는 곳으로 설정된 반사동盤絲洞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회에서 화자(작자)는 대단히 해학적이면서도 교묘한 방법으로 몇 가지 암시를 심어놓았다. 먼저 ‘반사’이라는 동굴 이름은 발음이 같은 ‘반사反思’라는 다른 단어를 연상하게 하니, 이것은 ‘돌이켜 생각하다’ 혹은 ‘돌이켜 생각하게 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 거미는 한자어로 ‘지주蜘蛛’라고 쓰는데, 이것은 ‘지주止住’ 즉 하던 일이나 가던 길을 ‘멈추다’ 또는 ‘멈추게 하다’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 거미 요괴들은 손오공이 굳이 관음보살이나 다른 초월자들의 힘을 빌릴 필요 없이 비교적 쉽게 물리치는 것으로 묘사된 몇 안 되는 요괴들 가운데 하나이니, 장애물이나 방해자로서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은 셈이다. 그보다 이 요괴들은 삼장법사 일행의 수행을 점검하고 자신들의 현재 상태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해 안배된 경향이 강하다.
이처럼 험난하게 안배된 지상의 공간이 지난한 초월자의 경지로 오르기 위한 수행에 필요한 관념적 거리 또는 기간을 암시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장안으로부터 서천까지 십사 년에 걸친 십만 팔천 리의 길이 팔대금강의 인도를 받아 구름을 타자 순식간에 주파되었다는 데에서도 역으로 검증된다. 현실 세계의 이성적 사유의 영역에서 시간과 공간은 불가분의, 그리고 비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초월자들의 세계에서는 양자 사이의 관계가 항상 비례적인 것은 아닌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먼저 시간의 측면에서, 하늘나라의 하루는 현실 세계의 일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만 『서유기』에서 하늘나라에서 시간의 압축과 공간의 압축은 일정한 비례 관계를 보여주지는 않는데, 특히 공간을 압축하는 능력은 수양의 단계가 높은 초월자일수록 더 뛰어난 것으로 묘사된다. 저팔계나 사오정이 타는 구름보다 훨씬 빠른 손오공의 근두운이나 팔대금강의 구름은 십사 년에 걸친 여행 거리—십만 팔천 리—를 ‘순식간’으로 압축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화자(작자)가 상상하는 현실 세계와 초월자들의 세계가 다음 그림처럼 부채꼴 모양으로 중첩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그림에서 훨씬 길게 나타나는 현실 세계의 장안-서역 사이의 시공은 초월자들의 세계로 옮겨가면서 A-B, a-b처럼 점차 짧아진다.
문학사회학적 측면에서 보면, 『서유기』의 이러한 중첩되면서도 뒤섞인 관념적 시공간은 명나라 중엽의 독특한 문화와 윤리 관념을 상징한다. 『서유기』의 화자(작자)는 우주의 시공간이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그러한 시공간의 운행 원리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은 부정한다. 특히 이른바 ‘정통正統’ 관념이 지배하던 당唐나라 때까지의 중국 사회에서는 하늘과 그 아래의 지상, 지하 및 물밑이라는 엄격히 구별된 시공간을 지배하는 중심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했다. 옥황상제와 황제, 염라대왕 및 용왕이 바로 그것인데, 관습적으로 이들 가운데에서도 옥황상제가 최고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여기긴 했지만, 구체적인 통치의 차원에서는 각 시공간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손오공의 반란과 요괴들의 활동에서 잘 드러나듯이 『서유기』의 시공간에서는 그런 절대적 권위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전락해 있다.
이것은 이 작품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명나라 때에 이르면 사람들이 실제로 환관과 외척의 힘에 휘둘리는 나약한 황제들의 선례先例를 이미 많이 겪어보았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 무렵에는 도시 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전통적인 신분 개념과 집단주의가 상당히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역동성이 떨어지는 농업 경제 위주의 봉건 사회에서는 신분과 집단이 중요한 의미를 지녔겠지만, 사업의 성패에 따라 수시로 개인의 위상이 달라지는 사회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그곳에서는 더 많은 이익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우선시되고, 집단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중시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개인주의의 대두는 기존의 안정된 신분 질서 속에서 정립된 많은 가치관들을 파괴해버렸다. 타고난 신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장려되고 그 매체가 경쟁—타인들의 칭송이 아니라—이라는 냉정한 현실은 선악善惡과 같은 기존의 도덕 개념까지 뒤집어버리게 된 것이다. 예의와 인덕이 강조되던 사회의 가장 큰 미덕이 양보와 금욕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집단을 위한 이타적인 희생이나 타고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적 위계질서의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 허울뿐인 명예를 위한 자학적인 희생 등은 이제 새로운 가치관 속에서는 패배주의적인 악덕으로 간주된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의 반란이나 불로장생과 지고한 권력을 추구하는 요괴들의 도발 등은, 비록 그것들이 아직은 최소한의 기반이나마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전통적 관념과 제도의 힘에 의해 결과적으로 좌절되기는 하지만, 변화를 갈망하는 ‘시민’을 중심으로 한 하층 계급의 욕망을 은밀히 충동질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실패는 적어도 궁극적인 변혁을 실현하기 위한 순교자적 희생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한 번의 중대한 좌절을 겪은 후, 무려 오백 년 만에 부활하는 손오공의 위상은 청자(독자)들의 희망에 새로운 불씨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석가여래에 의해 ‘순화’되어 삼장법사의 호위자로 변신한 손오공은 하층 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변절자인 셈인데, 청중(독자)들은 왜 그를 좋아하고 요괴를 물리치는 그의 활약에 환호하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손오공의 머리를 조이는 테를 둘러싼 미묘한 상징을 간파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제약과 타협의 반복을 통해 가장 원만한 공존으로 나아가는 고대 중국인들의 특별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머리를 조이는 테 때문에 대놓고 덤비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손오공이 삼장법사에 대해 반항하고 독설을 퍼붓는 장면은 전통에 저항하는 잠재의식을 키우고 있는 청중(독자)들의 호감을 살만하기는 하다. 그러나 실제로 『서유기』의 전체 내용에서 그런 일의 빈도나 강도는 상대적으로 드물고 약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심지어 여행 도중에 세 제자들 가운데 가장 충심으로 삼장법사를 생각하는 훌륭한 인물로 변신한 손오공은 몇 번이나 일행이 들르는 나라의 왕실을 위협하는 요괴들을 제거해주기까지 한다. 또한 이야기의 뒷부분으로 가면 삼장법사도 무턱대고 손오공을 억압하기보다는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가게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는 것처럼 밀고 당기는 협상을 통해 갈등을 화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고대 중국의 청중(독자)들은 손오공의 별전을 문자 그대로의 변절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조화의 상태로 나아가는 즐거운 놀이의 과정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 모순처럼 보이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삼장법사의 성격을 다시 검토해보아야 한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삼장법사는 보수적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라 중생의 제도라는 대승 불법을 추구하는 개혁적 지식인을 대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