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하게 집을 나서며閑出/당唐 백거이白居易
身外無羈束 외물에는 구속된 마음 없고
心中少是非 마음에는 다투는 시비 적네
被花留便住 꽃에 끌리면 머물러 감상하고
逢酒醉方歸 술을 만나면 취해서 돌아오네
人事行時少 세상일에 참견하는 것 적고
官曹入日稀 관청에 드나드는 것도 드물다
春寒遊正好 쌀쌀한 봄 날씨 다니기엔 딱 좋아
穩馬薄綿衣 길들인 말에 얇은 면 옷 입고서
이 시만 보면 관직에서 떠나 시골에서 한가롭게 지내면서 지은 시 같지만 실제로는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가장 안정된 관직 생활을 하던 828년 그의 나이 57세에 장안에서 지은 시이다. 《백거이집전교(白居易集箋校)(上海古籍出版社, 1988.)에 수록된 연보에 의하면 그는 당시 2월 19일에 낙양서 장안으로 돌아왔으며 비서감에서 형부 시랑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이다. 지난번 <그리운 강남>(63회)에서 언급한 소주 자사에서 돌아온 지 3년 만이다.
‘被花留便住’는 ‘被花√留便住’로 띄어 읽어도 의미상으로는 ‘被花留√便住’ 된다. 즉 ‘꽃에 의해 붙잡히면 곧 머물고’라고 새겨야 하는 말이니, 꽃이 자신을 끌면 끌리는 대로 머물러 감상한다는 말이다. 관조(官曹)는 관청의 의미이다.
출세한 고관들 시에 이런 한적한 생활을 노래한 시가 많다. 우리나라 서거정(徐居正)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많은 관리들의 경우 실제로는 벼슬을 다투고 여러 가지 일로 복잡하지만 이처럼 전혀 벼슬에는 관심이 없고 초연하게 세속의 물욕을 벗어나 은거해 사는 삶을 꿈꾸는 시가 많다.
그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인 경향은 있다. 하나는 다른 관리들에게 자신이 크게 관직에 욕심이 없는 사람으로 포장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관직에는 있지만 마음은 자연에 있기 때문이다. 은자로 사는 사람도 형편은 마찬가지여서 겉으로는 은자로 살지만 실제는 벼슬에 관심이 많은 경우가 있고 어쩔 수 없이 내몰려서 은거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일반 백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벼슬을 하는 관료는 정말 공무에 충실한 사람이 필요하고 은거해 사는 사람은 여러 학문이나 교양의 혜택을 나누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그런 사람은 적고 당대나 후대에 문집이나 여러 기록으로 포장된 경우가 오히려 많다.
백거이 입장에서 이 시를 보자면 강주 사마로 좌천될 때 크게 좌절을 경험했고 또 근년에 병까지 앓아 세상일에 의욕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해 12월에는 100일간 병가를 내기도 한다. 조정의 심각한 당쟁과 개인적인 질병에 시인이 평소 관심을 둔 노자나 불교 취미가 파고들어 이처럼 현실과 적극적으로 대결하지 않고 명철보신하면서 자신의 천명을 즐기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백거이의 호 낙천(樂天)은 이 시 전체의 정조를 지배하는 한(閑)과 아주 잘 어울려 보인다. 시인이 몇 년 뒤 낙양으로 은퇴한 뒤에는 그러한 색채가 더욱 강해진다.
3, 4구는 이런 생활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아름다운 꽃이 나를 잡아끌면 그대로 머물러 그 꽃을 즐겁게 감상하고 좋은 술을 만나면 취하도록 실컷 마신다. 또 자신의 일이 아니면 굳이 나서지 않고 세상일에 참견도 하지 않는다. 관직 생활이 이제는 하나의 은거 방편이기까지 하자. 이런 태도는 전체적으로 달관한 사람의 자세를 보여준다. 끝까지 세상사로 고민했던 두보와는 반대의 인생 태도이다.
아직은 약간 쌀쌀한 날씨. 그러나 봄나들이 떠나기엔 딱 알맞을 때이다. 잘 길들인 말을 타고 가벼운 면 옷으로 갈아입고 산뜻하게 출발하는데서 여유 있는 50대 후반의 백거이의 로망과 당시 당나라 상류층 지식인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365일 한시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