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식을 묻다 두 수問春二首 중 둘째/ [宋] 양만리
설날에 봄 돌아와도
늦었다 못할 텐데
꽃들에게 소식 아직
바삐 알리지 않네
도산당 아래 자리한
붉은 매화 한 그루만
맑은 햇볕 서둘러 빌려
가지 하나 물들이네
元日春回不道遲, 匆匆未遣萬花知. 道山堂下紅梅樹, 速借晴光染一枝.
중국에서는 설날을 춘제(春節)라고 한다. 우리 발음으로는 춘절인데 설날을 전후하여 24절기의 출발점인 입춘이 들기 때문이다. 새봄이 시작된다는 뜻이므로 설날 인사할 때도 “춘제 콰이러(春節快樂)” 또는 “신춘콰이러(新春快樂)”이라고 한다. ‘콰이러’는 쾌락을 즐기라는 뜻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명절을 누리시라는 뜻이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설날과 입춘이 당도하므로, 봄을 기다리는 조바심은 지금 겨우 겨울 끝에 내리쬐는 여린 봄볕에도 봄이 늦은 게 아니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이 은밀한 소식을 봄꽃들에게 서둘러 알리지 않는 것은 아직 산과 들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고 꽃샘추위가 만만치 않은 위력을 떨치기 때문이다. 봄꽃에게 소식을 알리는 주체는 누구인가? 하늘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기도 하다. 하늘이 부여한 맑은 본성을 깨닫는 건 봄이 왔음을 감지하는 일이다.
그러나 홍매는 누가 봄이 왔음을 알려서 꽃을 피우는 화초가 아니다. 내가 봄이 왔음을 남보다 먼저 깨닫는 것처럼 홍매도 온갖 꽃(萬花) 중에서 스스로 맑은 햇볕의 봄기운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한 가지 꽃(一枝梅)을 피운다. 이 대목에서 나와 홍매는 일체를 이룬다. 이른바 선각(先覺)의 의미다.
이 시를 쓴 양만리의 호는 성재(誠齋)다. 당시 남송 지성계의 이학적(理學的)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다. 도산당(道山堂) 앞에 핀 매화의 이미지도 더욱 그런 분위기를 강화해준다. 나는 양만리 시의 청신한 이미지에서 언뜻언뜻 만만치 않은 사상적 깊이를 느낀다. 그것은 이학의 이취(理趣)라 부를 만한 경향인데, 물론 그것은 불교의 선취(禪趣)와도 통한다. 양만리를 포함한 남송사대가가 같은 시기 성리학의 집대성자 주희(朱熹)와 활발하게 교유한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한시, 계절의 노래 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