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호는 화봉상華鳳翔의 한방호에서 그 형태를 가져온 것으로, 조사調砂한 주홍니朱紅泥로 만든 작은 차호이다. 매우 정교하게 제작하여 수려하고 우아하며, 비율이 단정하고 장중하다. 주둥이는 네모난 듯하고 몸통에 밀착된 곡선이 유려하다. 가늘고 각진 손잡이는 재기를 드러내고, 입과 뚜껑은 밀착되어 있으며, 뚜껑 쪽지는 방형이다. 굵은 자사를 세밀하게 제작하여 평론가들의 평가대로 일공逸公은 작은 차호를 잘 만든다 하겠다. 위로는 혜맹신의 기예를 본받아 두 명의 혜씨二惠로 병칭된다. 자사의 색이 가장 독특하며, 작은 차호를 아름답고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
이 기물은 주니호 가운데 매우 보기 드문 한방호 스타일로, 특히 몸통이 작고 앙증맞아 한 웅큼도 되지 않으며, 특히 뚜껑은 차호의 제작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이 주전자가 출토되었을 때 손잡이는 이미 부러져 있었고, 뚜껑 꼭지도 약간 손상된 상태였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기물의 정교함에는 손색이 없다. 차호 바닥에는 행서와 해서의 중간 서체로 ‘정미년 음력 11월 혜일공이 만들다丁末仲冬惠逸公製’라는 여덟 자의 명문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데 서예가 매우 아름답고 서각書刻 역시 정교하여 주니호 가운데 보기 드문 관식款識이다.
《양선사호도고陽羡砂壺圖考》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불탐각에서 작은 자사호 한 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바닥에 ‘정미년 음력 11월 혜일공이 만들었다’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다. 대략 옹정 5년 1727년의 정미년일 것이다. 不耽閣藏紫砂泥小壺一具, 底鐫丁未仲冬惠逸公制八字, 大抵雍正五年之丁未也.
《양선사호도고》 하권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무상은 그의 쇄록金武祥瑣錄에서 일공을 건륭 시기의 사람으로 단정하고 있으나, 이 차호는 정미년 음력 11월에 만들었다고 적혀 있으니, 아마도 이는 옹정 5년인 듯하다. 이는 건륭 시기와도 몇 년 차이에 불과하여 김무상의 언급한 시기와도 가깝다. 또한 일공의 작품이 많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그가 상당히 오래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홍이 적다. 案金武祥瑣錄, 定逸公爲乾隆時人, 而此壺制於丁未仲冬, 疑是雍正五年, 距乾隆之世不過數載, 與武祥之說猶近, 至於所見逸公之夥, 足見此老年高也. 虹識.
두 차호에 새겨진 글자를 자세히 보면 서로 판에 박은 듯 같으니 아마도 한 사람이 새긴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딱 들어맞는 우연은 정말 기이한 기록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