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는 사계절의 세 번째 순서에 해당하는 가을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곡식을 의미하는 禾와 불을 나타내는 火가 좌우로 결합한 모양인데, 이것이 왜 가을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글자의 형성과 변천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어떤 인터넷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秋의 원래 글자에서는 禾가 아니라 메뚜기의 모양을 그린 모양의 글자가 있었다고 하면서 가을이 되면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메뚜기를 불에 구워 먹는 계절이라서 이런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소전(小篆)에 이르러 메뚜기 대신에 禾를 넣어서 지금처럼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낭만적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재고의 여지가 있다.
갑골문에서 秋에 해당하는 글자는 귀뚜라미(蟋蟀)와 풀무치(蝗蟲)가 아래위로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귀뚜라미는 8월 정도에 성충이 되어 9, 10월 무렵에 왕성한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가을 곤충이다. 이 곤충은 가을이 오는 시기에 맞추어 맑은 소리를 내면서 울기 때문에 사람들은 귀뚜라미를 가을의 전령사로 생각해서 글자에 이 모양을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귀뚜라미에 비해 풀무치는 재앙을 몰고 오는 곤충이었다. 풀무치는 메뚜기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잡초와 풀 등을 먹이로 하는데, 환경 조건이 맞으면 엄청난 숫자의 풀무치가 생겨나서 떼로 날아다니면서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풀무치 같은 메뚜기떼가 나타나면 그해 농사는 망쳤다고 보면 된다.
이 곤충은 기본적으로는 녹색이지만 갈색, 혹은 검은색으로 되기도 하는데, 네모난 모양이 마치 거북이 같다고 생각해서 한나라 때에는 글자의 오른 쪽에 龜를 넣기도 하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글자의 왼편에 禾와 火를 넣기도 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日을 넣기도 했다. 너무나 글자 모양이 너무나 복잡했기 때문에 춘추와 전국시대를 지나 小篆에 이르면서는 禾와 火로 단순화해서 지금까지 그 글자체가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귀뚜라미는 禾로 변했고, 풀무치는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던 복잡한 글자 대신에 火로 바뀌었다. 이렇게 바뀐 이유는 역시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식을 생산하는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귀뚜라미가 우는 시간에 곡식이 익어가니 식량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면 禾로 바뀌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귀뚜라미에서 곡식으로 변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짐작해 낼 수 있어서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풀무치라고 할 수 있는데, 잘 생각해 보면 이것도 현실적인 이유에서 이렇게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풀무치는 곡식이 익어갈 무렵이나 수확할 즈음에 떼로 나타나 농작물을 망치는데, 그것을 퇴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이 작업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불을 켜놓아서 빛을 좇아가는 성질(走光性)을 가진 풀무치를 태워죽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확이 끝난 뒤 들판에 불을 놓아서 그것의 유충을 죽이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다음 해의 농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했으므로 불을 의미하는 火를 넣어서 글자의 모양을 秋의 형태로 만들었다. 농사를 망치는 자연재해, 혹은 재앙을 막아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서 나온 글자가 바로 秋라고 할 수 있다. 秋가 가을을 나타내는 것은 맞지만, 해충을 죽이는 것이 秋의 본래 뜻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의 글자 모양만으로 보면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秋에는 인간의 생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급박한 사연들이 숨어 있는 셈이 된다. 시작이 그렇기는 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여러 가지 뜻이 추가되었고, 시간, 세월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秋를 모든 곡식이 익는 계절이라느니 쓸쓸한 계절이라느니, 추수의 계절이라느니 하는 의미들은 모두 가차(假借) 되면서 의미가 확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풀무치(蝗蟲)가 간 데는 가을도 봄’이라는 우리말 속담에서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어느 것도 생존의 문제를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을 아주 잘 보여주는 글자가 秋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