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元日/송宋 왕안석王安石
爆竹聲中一歲除 폭죽 소리 속 한 해가 저물어 갔고
春風送暖入屠蘇 따뜻한 봄기운 도소주에 들어왔네
千門萬戶曈曈日 동네방네 집집마다 해가 밝아 오니
總把新桃煥舊符 복숭아 판 부적을 새로 교체하네
오늘은 설날이다. 설날에는 대개 차례를 지내는데 요즘 차례상에는 예전보다 다양한 과일을 올린다. 그런데 차례이든 제사상이든 반드시 올리지 말아야 할 과일이 있다. 바로 복숭아이다. 이 복숭아는 귀신을 쫒는다는 문화적 상징이 오래 축적되어 왔다. 그래서 아무리 맛있는 복숭아라도 차례 상에는 올리지 않으니 복숭아를 아주 좋아한 부모일 경우 그 자식 입장에서는 매우 서운할 수도 있겠다.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대문에 복숭아 판을 설치하고 거기다 귀신을 잘 알아보고 혼을 내는 신다(神茶)와 울루(鬱壘)라는 귀신을 그리거나 이 귀신 이름을 써서 잡귀나 사악한 기운을 막는 풍습이 있었다. 이 판의 이름이 도부(桃符)인데 이걸 한 해가 시작하는 설날 아침에 새로 교체하는 것이다. 어제 소개한 입춘첩이 이 도부가 나중에 변한 것이라는 학설이 있다. 도부의 원시 형태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직접적인 시원은 당나라로 보고 춘첩은 오대 시대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이 시에서 또 하나 소개해야 할 말은 도소(屠蘇)이다. 도소는 도소주를 말하는데 산초, 방풍 등 여러 약재를 넣어 빚은 일종의 약주로 지금도 중국에서 팔고 있는 술이며 우리나라에서도 판 적이 있다. 새해 아침에 이 도소주를 나이 역순으로 마시며 역병을 예방했다고 한다. 이 술은 후한 때 화타(華陀)라는 의사가 처음 제조하였다가 나중에 개량된 것으로 보이는데 왜 도소라는 이름이 붙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간단치 않다. 여러 약재를 베어 넣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청명상하도>에 보면 번화한 북송 개봉의 풍경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이 시에서 말한 대로 섣달그믐에는 불꽃놀이를 하고 해가 밝아 오면 대문의 도소판을 새로 갈고 도소주를 마시며 건강을 기원한 것을 알 수 있다.
도소주를 마시는 풍습은 한국의 경우 정월 대보름의 귀밝이술과 유사하며 불꽃놀이는 12월 마지막 날의 제야의 종을 치고 불꽃놀이를 하는 의식과 닮아 있다. 도부판의 교체는 오늘날 다이어리를 교체하는 것과 좀 비슷할까. 풍습은 바뀌었지만 그 의식의 본질은 어딘 가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시 첫 구의 동사는 ‘제(除)’로 ‘지나가다.’라는 뜻을 지니며 두 번째 구의 동사 입(入)과 잘 어울려 송구영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 번째 구의 일(日)과 마지막 구의 신(新), 이런 말들이 시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데 동사는 각각 ‘동이 터오다’는 의미의 동동(曈曈)과 환(換)이다.
오래된 송나라 개봉의 도회적 분위기와 설날 풍경을 동시에 느껴 볼 수 있는 시이다.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은 사마광과 정치적인 운명이 엇갈린 인물로 사마광이 북쪽 인사들의 여론을 반영하였다면 왕안석은 남방 인사들의 여론을 반영한 인물이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을 정도로 왕안석은 문장에도 뛰어났다.
365일 한시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