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東皐의 들녘에서 바라보며野望/수말당초隋末唐初 왕적王績
東皋薄暮望 동고에서 저물 무렵 바라보나니
徙倚欲何依 배회하는 나 어디로 가야 하나
樹樹皆秋色 나무마다 모두 가을 풍경이고
山山唯落暉 이산 저산 석양이 지고 있거니
牧人驅犢返 소치는 이 송아지 몰고 돌아오고
獵馬帶禽歸 사냥하는 말엔 새 달고 귀가하네
相顧無相識 서로 돌아보아도 모르는 사람들
長歌懷采薇 길게 노래하며 채미가 생각하네
왕적(王績, 약589~644)은 수나라 강주(絳州) 용문(龍門), 지금의 산서성 하진(河津) 사람으로, 효렴에 천거되어 비서 정자(秘書正字)에 제수되었지만 병을 핑계로 조정을 떠났고, 나중에 다시 벼슬을 받았지만 천하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나라 때 다시 벼슬을 받았지만 얼마 안 있어 고향에 돌아가 동고산(東皋山)에서 농사를 짓고 살면서 호를 동고자(東皐子)라고 하였다. 강의 섬에 중장자광(仲長子光)이라는 사람이 처자도 없이 은거하고 있었는데 성품이 진솔하여 그 집 옆에 집을 짓고 날마다 술을 마시며 지냈다. 주량이 술 다섯 말이라 <오두선생전(五斗先生傳)>을 짓고 주경(酒經)과 주보(酒譜)를 편찬하였다. 금(琴)을 잘 탔다. 이와 같은 그의 생애는 《당재자전(唐才子傳)》에 실려 있다.
동고(東皐)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나온 말이고 <오두선생전> 역시 <오류선생전>을 염두에 둔 말이니 도연명의 은거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구에서 “배회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마지막의 채미(采薇)라는 말과 함께 이 시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이 말은 모두 《사기(史記)》에서 맨 처음 나오는 열전인 <백이전(伯夷傳)>과 관련이 있다.
백이와 숙제는 본래 은나라 사람으로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이었다. 이 두 사람은 마음이 너무 착하여 서로 왕위를 양보하고는 서백(西伯) 창(昌)이 노인을 잘 모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는데 가보니 벌써 죽고 그 아들 무왕이 아버지 장례도 치르기 전에 은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아버지 장례도 안 치르고 전쟁을 하는 것은 불효이고 신하로서 임금을 치는 것은 불인이라고 말렸지만 듣지 않아 떠나갔다. 주나라가 드디어 천하를 차지하자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는다며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면서 은거하였다. 굶어죽기 직전에 노래를 하나 지어 불렀는데 이러하였다.
登彼西山兮 저 서산에 올라가
採其薇矣 고사리를 꺾노라
以暴易暴兮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면서
不知其非矣 그 잘못을 모르네
神農虞夏忽焉沒兮 신농과 우순과 하우가 다 사라졌으니
我安適歸矣 나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於嗟徂兮 아아 이제 가야지
命之衰矣 나의 운명이 다했구나
그리고는 드디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서산(西山)은 수양산을 말한다. 여기서 간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이다. 이 시인이 ‘배회하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두 번째 구에서 말한 것은 바로 백이숙제가 ‘나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라고 한 말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며, 이러한 자신의 지향을 마지막에 ‘채미’라는 말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시의 내용으로 볼 때 이 시는 왕적(王績)이 당 태종 시기에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 지은 시로 추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나라를 폭정의 시대라 보고 당나라, 그 중에서도 태종을 성군으로 보면서 정관지치(貞觀之治)라고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시는 이런 당나라를 주나라가 은나라를 찬탈한 것과 같은 경우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나무마다 하나하나 가을 색깔로 물들고 이산 저산 모두 떨어지는 황혼 빛에 물들었다는 시인의 말은 시인이 동고의 들녘에서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몰락하는 수나라의 황혼을 은유한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은거하면서 송아지를 몰고 돌아오는 소 주인을 보아도 누군지 모르고 사냥을 하여 꿩을 잡아 말에 매달고 오는 사람을 보아도 누군지 모르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 옛날 백이숙제의 고결한 정신을 따라 자신도 조용히 은거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이긴 자의 필요에 따라 지나간 사실을 선택적으로 간단하게 정리하지만 그 당시를 살던 사람의 실체는 우리가 문헌으로 대하는 것과는 역시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어떤 것은 진실이 거꾸로 왜곡되어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허구적으로 만들어 내기도 했을 것이며, 중요한 일을 일부러 숨기거나 축소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오늘날도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여러 경로로 교차 검증을 하는 등 노력을 해야 하듯이 역사적 사실 또한 여러 문헌을 풍부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시는 바로 이런 점을 환기시켜 준다.
365일 한시 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