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와 달 霜月/당唐 이상은李商隱
初聞征雁已無蟬 매미는 가고 멀리 온 첫 기러기 울음
百尺樓高水接天 백 척 높은 누각 물과 하늘 맞닿았네
青女素娥俱耐冷 서리와 달의 여신 모두 추위 잘 견뎌
月中霜裏鬪嬋娟 달과 서리 속에서 고운 자태 다투네
이상은(李商隱, 813~858)의 <상월(霜月)>을 <서리와 달>이라 번역한 것은 이 시가 서리와 달을 중심 제재로 노래한 영물시(詠物詩)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서리와 달에 대한 신화를 바탕으로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여 그 차고 결곡한 아름다움을 탐색한 일종의 유미적인 작품이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음력 7월에는 매미가 울고 8월에는 기러기가 날아오며 9월에는 서리가 내린다.”라고 하였다. 이 시의 첫 구에서 기러기 소리가 처음 들리고 매미 소리는 이미 들리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바로 상강(霜降)으로 접어드는 계절을 표현한 것이다. 기러기는 통상 8월에 남으로 와서 2월에 북으로 가고 매미는 여름에 나타나 6, 7일 정도 울다가 죽으니 매미와 기러기는 서로 계절을 반대로 하는 것이기에 첫 구에 저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런 때에는 하늘도 구름 하나 없이 파랗게 갤 뿐 아니라 물도 수량이 줄어들어 더욱 깨끗해진다. 높은 누각에서 멀리 보이는 물을 보고 하늘과 그 물이 붙어 있다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서리와 눈의 여신을 청녀(靑女)라고 한다. 《회남자(淮南子)》에 의하면, 늦가을이 되어 모든 벌레가 땅 속으로 기어들면 청녀가 나와서 서리와 눈을 뿌린다고 한다. 또 달에 있는 여신을 항아(嫦娥)라고 한다. 이 항아는 본래 명사수 예(羿)의 부인이었는데 장수에 효험이 있는 복숭아를 곤륜산에 살고 있는 서왕모(西王母)에게 받아와 혼자 먹으려고 달로 도망갔다가 죄를 받아 두꺼비로 변한 여신이다. 그런데 본래 미인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미인의 이미지는 남아 있어 항아의 별칭을 소아(素娥)라고도 한다. 달이 희기 때문이다. 김소월이 소월(素月)이란 호를 쓴 것은 이 때문이다.
시인은 서리와 달빛이 가을에 모두 차기 때문에 추위에 잘 견딘다고 표현하였다. 또 달 속과 서리 안에 산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사물을 신화에 바탕하여 의인화한 것이다. 선연(嬋娟)은 매우 고운 여인을 표현하는 말이다. 평양(平穰) 기자묘(箕子墓) 뒤에는 선연동(嬋娟洞)이 있다. 기생들의 공동 무덤이다. 평양 기생들이 얼굴도 곱고 악기도 잘 다루고 그림도 잘 그려 많은 선비들의 혼을 뒤흔들었기 때문에 기생들의 무덤에도 이런 말이 붙은 것이다.
이 시를 어떤 분은 ‘난세에 소인들의 권력 다툼을 비유한 것은 아닐까?’ 라고도 하는데, 내가 볼 때는 이 시는 처음 말한 대로 유미적인 시로 보인다. 늦가을에 창공을 가르는 기러기 울음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물과 하늘도 푸른빛으로 이어졌다. 공기도 차고 상쾌한 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교교한 달빛은 쏟아지고 찬 서리는 내린다. 이런 고요하고 청량한 밤에 결곡하게 빛나는 달과 서리의 차가운 아름다움을 묘사한 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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