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호를 바라보며 望洞庭/당唐 유우석劉禹錫
湖光秋月兩相和 호수의 물빛과 가을 달 서로 어울리니
潭面無風鏡未磨 바람 없는 수면은 안 닦아도 되는 거울
遙望洞庭山水翠 멀리서 동정호의 푸른 산과 물을 보면
白銀盤裏一青螺 하얀 은쟁반에 담긴 하나의 푸른 고둥
유우석(劉禹錫, 772~842)이 동정호를 지나간 것은 모두 6번 정도 되는데 가을에 동정호에 있었던 것은 824년 기주 자사(夔州刺史)로 있다가 화주(和州)로 근무지를 옮길 때라고 한다. 기주는 지금의 장강 삼협에 잇는 봉절(奉節)이고 화주는 안휘성 마안산(馬鞍山) 시이니 장강 물길로 이동하자면 자연 동정호가 있는 악양(岳陽)를 거치게 된다,
조선 초기에 우리나라에 《소상팔경도》 병풍이 유행하였는데 그 팔경 중에 <동정추월(洞庭秋月)>이 있다. 보통 조선 후기의 팔경은 8곳의 각기 다른 장소의 경치를 말하지만 소상팔경은 한 곳이지만 다른 때의 경치를 말한다. 즉 8경이 모두 동정호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계절과 시간만 다른 것이다. <동정추월> 앞에는 <소상야우(瀟湘夜雨)>가 있다. 즉 여름철 동정호로 밀려드는 소상강에 내리는 밤비를 말한다. 이런 경치가 가을이 되어 호수와 하늘이 모두 맑게 개인 동정호의 가을 달 경치가 되는 것이다. 동정호는 그만큼 한 지역에서 다양한 표정의 경치가 나온다는 말인데 이런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 바로 송나라 때 범중엄의 <악양루기(岳陽樓記)>이다.
유우석은 지금 동정호의 여러 경치 중에서 가을 달이 떠 있는 군산(君山) 주변의 경관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앞 2 구는 가을 달과 동정호 물빛이 서로 잘 어울려 있는 풍경과 거울처럼 잔잔한 동정호의 수면을 말했고, 뒤의 2구는 달빛이 비치어 흰 밤바다에 자리 잡은 고둥 같은 군산의 경치를 말하고 있다.
산수취(山水翠)가 산취소(山翠小), 산취색(山翠色) 등으로 된 판본이 있어 동정호의 산과 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정호에 있는 산, 즉 동정산(洞庭山)을 주로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정산은 지금 군산(君山)이라 부르는 섬으로 동정호의 보석과도 같은 존재이다.
이 산은 푸르기 때문에 녹산(綠山)이라고도 하고 상수가 흘러와 상산(湘山)이라고도 하는데 악양루에서 보면 보인다. 필자는 이 섬에 2004년에 가 봤는데 요임금의 딸이자 순임금의 두 비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여기서 순임금이 남쪽에서 붕어했다는 비보를 듣고 피눈물을 흘리다 죽었기 때문에 사당이 있고 그 전설이 얽힌 반죽이 있었다. 또 이곳에는 동정은침(洞庭銀鍼)이라는 좋은 차가 나온다.
이 시는 유우석의 시풍으로 볼 때 단순히 가을 달밤 동정호를 바라보며 느끼는 아름다움을 형상화하려고 쓴 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닦지 않아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에 달빛이 비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맑고 너른 그릇을 표현한 것이며, 멀리서 바라본 군산의 아름다운 자태는 바로 자신의 심성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천인합일(天人合一)과 정경교융(情景交融)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시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동정호는 도교에서 중시하는 여동빈(呂洞賓)의 고사도 있고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지나간 자취가 있으며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진 문화 명승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동정호에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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