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샤오제小婕 , 서점의 수험생书店考研生
광저우의 12월은 아주 추운 편은 아니어도 날씨가 꽤 쌀쌀하다. 그런데 서점에 매일 한 아가씨가 반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두 다리를 드러낸 사람은 남들의 눈길을 끌게 마련이다. 더구나 그녀는 늘 나와 얼굴을 마주쳤다. 그녀와 시선이 부딪칠 때마다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결국 어느 날 그녀가 옷으로 몸을 가린 면적이 70퍼센트에 이르렀을 때 나는 침묵을 깨고 말했다.
“드디어 긴 바지를 입었군요.”
그녀는 내게 답했다.
“저는 서북 지역 출신이라 추위가 두렵지 않아요.”
그리고 바로 화제를 바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치아가 부정교합이 심하네요. 교정을 받으셔야겠어요.”
나는 얼른 입을 다물고 목구멍소리로 바꿔 물었다.
“시각이 아주 독특하시네요.”
그녀는 또 웃으며 말했다.
“직업병이에요.”
그녀는 손을 들어, 보고 있던 책을 내게 보여주었다. 치과교정학이었다. 이름만 봐도 눈이 어지럽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는 치의학 전공이에요. 낯선 사람을 보면 제일 먼저 그 사람의 치아가 눈에 들어오죠. 좀 친해져야 신경이 안 쓰인답니다.”
“교정하는 데 돈이 얼마나 들죠?”
“2년에 1만 위안 정도 들 거예요.”
“맙소사, 치아 교정이란 게 원래 그렇게 비싸군요. 예상을 훨씬 초월하는데요.”
나는 단념하지 않고 더 캐물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교정을 받지 않는다고 치면 내 치아는 미관상으로 평균 이상은 되나요?”
그녀에게 긍정적인 답을 듣고 나는 즉시 마음을 놓고서 그 교정을 해야 할지 말지 긴가민가한 치아를 드러낸 채 활짝 웃었다.
바로 그날 나는 그 아가씨의 이름이 샤오제(小婕)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는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몇 마디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 그녀가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면 아마 누구도 그녀가 서북 출신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시안에서 10년간 생활한 뒤, 부모님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그 대도시를 떠나 남쪽으로 와서 중국에서 가장 젊은 대도시 선전(深圳)에 정착했다. 뜨거운 바닷바람이 그녀의 어릴 적 황사를 다 날려 보냈고 그녀는 감쪽같이 남방의 아가씨로 성장했다.
선전에서 9년 동안 산 뒤, 그녀의 거주지는 광저우로 바뀌었다. 2009년 중산(中山)대학 의대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남방의 가을이 아직 시작되기 전에 그녀는 자기 고등학교보다 더 작은 그 대학 캠퍼스에 발을 디뎠다. 축구장과 농구장을 가운데에 두고 지어진 그 학교는 크기는 작아도 명성은 만만치 않았다. 그 전신은 1866년 세워진 박제의학당(博濟醫學堂)과 1908년 봄에 세워진 광동광화의학당(廣東光華醫學堂) 그리고 이듬해 봄에 세워진 광동공의학당(廣東公醫學堂)이었다. 이곳 출신의 의과대학생들은 모두 여러 대학병원의 일순위 영입 대상이 되곤 했다.
광저우에서 공부한 선전 사람이어서 그녀는 장차 광저우나 선전에서 취직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학부 학력만으로는 두 대도시의 대형병원에 자리를 얻기가 무척 어려웠다. 작은 병원에 들어가기 싫었던 그녀와 그녀의 동기들은 대학원에 진학해야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샤오제는 대학원 시험 준비기간에 병원에서 실습을 하느라 충분히 공부를 하지 못했다.
첫 번째 시험에 떨어졌지만 그녀는 결코 낙담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로는 첫 번째 시험을 치기 전에 벌써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부 장소가 문제였다. 예전에 있던 학교 자습실은 아는 후배들과 자주 마주쳐서 그때마다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느라 공부에 방해가 되었다.
“그때 이 24시간 서점이 떠올랐어요. 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여명을 앞둔 8월의 뜨거운 밤이었다고 한다. 막 대학원 시험 자료를 구한 그녀는 친구 몇 명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근처 상가의 노래방에 가서 새벽 4시까지 놀았다. 피곤하고 흥분된 상태로 막 영업이 끝난 노래방을 나왔을 때는 이미 막차가 끊겼고 첫차도 꽤 오래 기다려야만 했다. 그 애매한 시간에 그녀는 불현듯 근처에 24시간 서점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곳이 그 광란의 밤의 종점이 되었다.
이제 이곳은 그녀의 고단한 수행의 기점이 되었다. 그 후로 두 달간 그녀는 거의 매일 꿋꿋이 서점에 나와 출근 도장을 찍었다. 보통 정오에 와서 밤 한 시 가까운 시간까지 있다가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테이블 위에는 항상 남들은 보기만 해도 골머리가 아픈 책과 자료가 잔뜩 쌓여 있었는데 그 위에 얼굴을 묻고 즐거운지 고통스러운지는 그녀 자신만 알 노릇이었다.
그녀는 진즉에 이곳의 모든 점원들과 얼굴을 익혔지만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당시 그녀가 컵을 들고 카운터 앞에 서기만 하면 점원들은 뜨거운 물을 따라주었다. 서점 내에 마련된 무료 독서 코너는 그녀에게 공공도서관의 자습실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밖에 그녀는 늘 출몰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전우들을 알아보았다. MBA 응시를 위해 밤공부에 몰두하는 젊은 오빠, IELTS에 도전하는 아가씨, 체육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청년, 교사자격증 시험을 보는 음악과 학생까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미소를 지어주고 벗이 되어 함께 정진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경험을 나누고, 같이 서점에 나타나는 괴인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면서 흠뻑 취해 나란히 백사장을 뒹구는 듯한 감정을 절로 느꼈다.
만약 삶이 어떤 선이라면 이 24시간 서점은 그때까지 그녀가 거쳐온 선의 마지막 점이자, 새로운 선과 이어지는 연결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점원’으로서 나는 그녀가 결코 걸핏하면 흥분해서 자기 자랑을 일삼는 부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깊은 밤, 사람이 없을 때 그녀는 내게 말했다.
“가끔은 소도시 출신 동기들이 부러워요. 그 애들은 고향에 돌아가 현지에서 가장 좋은 병원에 쉽게 취업할 수 있거든요. 심지어 소도시 병원의 월급이 대도시 병원보다 더 높아요. 사실 그런 곳의 의료 시스템이 다른 지역보다 더 낫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런 복이 없네요.”
나는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하지만 금세 그녀는 다시 활기차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제 전공이 좋아요. 치아를 교정해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니까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다시 내 치아를 유심히 보았다.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시험 준비 때문에 분투한 이들 중, 샤오제는 서점에 가장 오래 머문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이곳을 일종의 ‘대피항’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구 2천만이 넘는 이 광저우라는 도시에서 시간은 저마다 바쁜 행인들의 발걸음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금세 대학원 시험의 날이 닥쳤다. 시험 전에 그녀는 나를 찾아와 물었다.
“제가 사는 데가 시험장이랑 좀 멀어서요, 혹시 서점 소파 방에서 하루 묵을 수 있을까요?”
그 방은 이미 사전 신청자가 있었지만 우리는 두말 않고 그녀를 위해 직원휴게실에 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이틀 뒤, 시험을 마치고 그녀가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앞으로도 자주 올 거죠?”
그녀는 말했다.
“그럼요, 시험에 붙든 안 붙든 계속 책을 봐야 하거든요. 의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또 다음 준비를 해야 해요.”
아, 또 시험을 봐야 한다니. 많은 이들에게 노력의 역사는 곧 시험의 역사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24시간 서점이 그들의 노력의 역사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위안이 되었다.
아마도 샤오제가 결국 시험에 붙었는지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삶은 선이며 이 24시간 서점은 단지 그녀가 거쳐온 선의 마지막 점이자, 새로운 선과 이어지는 연결점일 뿐이었다. 삶은 또 계속되고 그녀의 삶의 선은 분명히 이미 더 먼 곳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녀는 어디로 갔든, “수많은 전투에 갑옷이 다 닳았어도, 적을 못 무찌르면 고향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黃沙百戰穿金甲, 不破樓蘭誓不還. 당나라 시인 왕창령[王昌齡]이 북방 이민족과의 전투를 소재로 쓴 「종군행」[從軍行] 중 두 구절) 서북 지역의 용맹한 혈통을 이어받은 그녀가 이 시의 내용처럼 언제나 씩씩하게 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