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 여사张太 , 서점의 천국书店天堂
내가 서점을 열지 않았다면 아마 이 광저우에 홍풍엽서점이라는 곳이 있고 이미 16년을 버텨왔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홍풍엽서점을 몰랐다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 장 여사를 알게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맨 처음 내게 홍풍엽서점에 관해 알려준 사람은 1200북숍의 진펑(金鳳)이라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전에 홍풍엽서점의 직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홍풍엽서점이 광저우에서 오랫동안 운영돼온 독립서점이며 광저우쇼핑센터 6층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막 서점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광저우의 기존 서점들, 특히 오래된 서점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프라인 서점들이 퇴조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대부분의 기존 서점들은 그리 참고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 당시 내가 자주 들르는 서점은 네다섯 곳에 불과했고 또 나는 줄곧 내가 생각하던 서점을 꾸리고 있었다.
9월에 내가 1200북숍 우산로점(五山路店)을 준비하고 있을 때, 광저우쇼핑센터는 마침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려 했고 그 안의 많은 민영 서점들은 어쩔 수 없이 이전을 해야만 했다. 그때 진펑이 갑자기 내게 전화를 걸어와 홍풍엽서점이 폐업을 하는데 책꽂이를 무료로 가져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녀가 보내온 사진을 보았지만 그 낡은 책꽂이들은 내가 만들려는 서점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완곡한 말로 거절을 했다.
뜻밖에도 며칠 뒤, 그녀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인수할 사람이 없어서 그 책꽂이들이 쓰레기로 처분될 것 같다고 했다.
“그 서점은 완전히 문을 닫나요? 나중에 재개장할 계획은 없는 건가요?”
그녀는 그렇다고, 홍풍엽서점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풍엽서점은 몇 년간 경영이 안 좋았던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인인 장량주 선생이 8월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이어받을 사람도 없어서 이제 완전히 문을 닫아야 할 상태라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마음이 안 좋아서 가서 살펴보겠다고 바로 답했다.
진펑은 이튿날 오후에 장 여사를 만나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쇼핑센터 6층으로 갔다. 온 사방이 다 황량했다. 사람들이 비우고 간 그곳에서 많은 인부들이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금세 그곳은 처참한 철거 현장이 될 예정이었다. 한편 홍풍엽서점의 유리문은 굳게 잠긴 채 ‘금일휴업’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들어보니 지난 일 년 간 그 팻말은 거의 매일 그렇게 걸려 있었다고 했다. 팻말 귀퉁이에는 손으로 쓴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잠시 후, 장 여사가 왔다. 본래 나는 그녀가 16년이나 서점을 운영한 주인의 아내이므로 어느 정도 배운 사람 티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만약 사람들 속에 있으면 누구도 그녀를 서점이나 책과 연관시키지 못할 것 같았다. 또한 무척 말라보였고 걸음걸이가 느렸으며 온몸에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얼굴에 가득한 피곤한 표정만 봐도 그녀의 하루하루가 무척 고생스럽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몸을 굽혀 자물쇠를 열 때, 나는 그녀의 머리가 벌써 반백이 된 것을 보았다.
그녀는 문을 열어주러 일부러 온 것이었다. 문을 열고나서 문가의 네모난 걸상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대신 진펑이 꼭 중개인처럼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가게 안의 물건을 내가 모두 가져가기를 바랐다. 새로 여는 서점에는 이미 다른 물건을 둘 만한 자리가 없었지만 나는 궤짝 몇 개를 가져가기로 했다. 가게 안에 흩어져 있는 쇼핑백 같은 것은 겉에 홍풍엽서점의 이름이 찍혀 있어 쓰기가 어려워서 에둘러 거절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몇 차례 장 여사의 눈치를 보았다. 그녀는 곧 사라질 그 서점을 계속 둘러보다가 이어서 몇 가지 물건을 주시하며 어떤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나는 그것이 그녀가 과거와 헤어지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온 뒤 저녁에 그 스산했던 광경과 장 부인의 피곤한 얼굴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홍풍엽서점과 주인 장 선생의 과거에 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장 선생은 본래 은행원이었으며 1998년에 회사를 나와 홍풍엽서점을 열었다. 책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이상주의적 열정에 힘입어 몇 번의 고비를 넘으며 끈질기게 16년간 그 서점을 경영했다. 그 기간에 그는 모든 일을 몸소 처리하며 좋은 평판을 얻었고 많은 독자들이 장 선생의 충실한 고객이 됐다. 홍풍엽서점도 광저우의 지식인들이 마음속으로 가장 좋아하는 서점이 되었다.
장 선생은 서점 경영에서는 사회적인 인정을 받았지만 너무 일에만 정력을 쏟은 탓에 가정은 잘 돌보지 못했다.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그랬다. 장 여사는 틀림없이 원망이 많았을 것이다. 비록 자기 힘으로 살림을 꾸려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남편의 이상을 존중하여 그가 계속 책과 벗하며 살아가게 해주었다.
하늘은 공평하지 못했다. 끈질긴 이상주의자이자 성실했던 그 호인은 중년의 나이에 그만 세상을 하직하고 의지할 데 없는 아내와 딸만 남겨 사람들을 탄식하게 만들었다. 나는 몇몇 애도문을 통하여 홍풍엽서점이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이 장 선생의 꿈이었음을 알았다. 막 서점업계에 발을 들인 후배로서 나는 내 능력이 닿는 한 장 선생의 그 꿈이 이뤄지도록 일정 정도 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준비 중인 1200북숍의 우산로점을 홍풍엽서점의 후신으로 만들기로 했다.
하룻밤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나는 다시 쇼핑센터 6층으로 달려갔다. 너무 늦지는 않았는지, 서점 안의 물품이 철거 인부들에 의해 싹 치워지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됐다. 도착하고 나니 전날 짐차가 너무 작아 가져가지 못했던 궤짝 2개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홍풍엽서점의 이름이 찍힌 쇼핑백들은 아직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모아 종이 박스에 넣었다. 나중에 이 쇼핑백들만 세상에 유통되더라도 홍풍엽서점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닌 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떠나기 전, 나는 텅 빈 서점을 둘러보았다. 천장에 단풍잎(홍풍엽은 단풍잎이라는 뜻) 몇 점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집어 내렸다. 표구를 하거나 액자에 넣어 서점에 걸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홍풍엽서점에 대한 회고와 장 선생에 대한 경의 그리고 그의 이상주의에 대한 계승을 표시하려 했다.
나는 장 여사에게 장 선생이 남긴 책을 모두 인수하고 싶다고 밝혔다. 정가 총액 10만 위안에 가까운 그 책들을 나는 심지어 제목조차 잘 몰랐다. 단지 모두 문학과 사회과학 책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책에 대한 장 선생의 마음씀씀이를 알고 있었으므로 품질은 틀림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장 여사에게 가격을 제시하라고 하는 동시에 나는 흥정을 안 할 것이라고 했다. 장 여사는 그런 나의 제안이 뜻밖이었던지 잠시 가격을 못 말하고 있다가 친구와 좀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하루가 지나서 장 여사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정가의 70%에 팔겠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도매상과 출판사의 공급가는 모두 70% 이하이고 반품도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은 설명하길, 장 여사의 집이 어렵고 장 선생이 쇼핑센터에 빚진 월세도 6만 위안이 넘는데다 밖에 다른 빚도 있어서 이미 집이 저당 잡힌 상태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집에는 여자 세 명밖에 없고 딸은 막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처지이므로 그들을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우리 서점에는 투자자가 많고 나는 다른 주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므로 그들과 상의를 좀 해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한 뒤, 다른 사람들과 상의하지 않고 그들 대신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 그 70% 조건에 동의하기로 했다. 나는 ‘변명거리’를 생각해두었다. 온정은 우리 1200북숍의 경영 이념인 이상, 주주라면 누구나 이 결정에 따라줘야 한다고 설명할 작정이었다.
세부적인 협의를 위해 우리는 약속을 잡고 1200북숍 티위동로점에서 만났다. 서점과 카페와 문구점이 결합된 그 서점의 다원화 경영 방식과 적지 않은 고객 숫자를 보고서 장 여사는 생전에 장 선생이 책에만 집착하고 다원화 경영을 꺼렸던 것을 한탄했다. 어려운 집안 사정과 많은 부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매체의 보도를 빌려 사회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즉시 거절했다.
“기자가 방문하면 우리 딸애의 생활이 방해를 받을까 걱정돼요. 또 그런 도움을 받은 걸 알고 빚쟁이가 찾아와 빚 독촉을 할까 무섭기도 하고요.”
그녀의 놀라고 두려워하는 눈빛을 보고 나는 얼른 그 제안을 접었다. 그리고 최대한 장 선생의 가정을 돕기 위해 그녀와 절충적인 방식을 상의했다. 새 서점이 개장하는 첫 달에 홍풍엽서점이 남긴 책들을 전시해 판매하고 정가 판매 후, 나머지 30%의 이윤도 그녀에게 넘겨 사용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월세가 밀린 탓에 재고 도서는 쇼핑센터에 차압당해 있었다. 창고 공간만 차지하던 그 책들의 임자가 드디어 나타났고 게다가 월세까지 회수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서 쇼핑센터 측은 득달같이 책들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돈을 지불했으며 그중 9할이 넘는 돈은 월세로, 따라온 어느 직원의 은행카드로 곧장 들어갔다. 모든 물품을 처리하고 난 뒤, 겨우 5천 위안도 안 되는 돈만 남아 장 여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사람들을 다 보내고 나서 나는 장 여사에게 물었다.
“쇼핑센터도 여사님 댁 사정을 알고 있었을 텐데 설마 월세를 조금도 안 깎아줬나요?”
그녀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가기 전에 내게 말했다.
“집에 가게와 관련된 물건이 더 있어요. 와서 가져가셔도 돼요.”
며칠 뒤, 나는 그녀가 준 주소를 보고 지은 지 대략 3, 40년은 된 듯한 서민 아파트에 들렀다. 장 여사의 집은 인테리어가 소박하긴 했지만 깔끔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거실 벽에는 장 선생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머리숱이 많고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장 여사는 죽은 남편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우리 딸이 어릴 적, 도서시장이 지금처럼 저조하지 않았을 때, 걔는 아빠를 따라 함께 짐을 가지러 가곤 했지요. 그러면 택시를 탈 수 있었으니까요. 더 좋았던 건, 그때마다 남편이 걔가 좋아하는 책을 몇 권씩 사준 것이었지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따님은 서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좋은 기억도 많은데, 만약 나중에 따님이 서점을 열고 싶어 하면 찬성하시겠습니까?”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새 서점이 문을 연 지 한 달 뒤, 나는 책의 일부 판매액에서 30%를 떼어 약속대로 장 여사에게 제공해야 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갖다 주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그녀는 직접 딸을 데리고 방문해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튿날, 서점 문 앞에 나타났을 때 그 모녀는 손에 귤 한 봉지와 커다란 포도 두 송이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말주변 없는 장 여사의 순박한 감사의 표시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양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씻어 테이블 위에 놓고 두 사람과 함께 맛을 보았다. 장 여사의 어린 딸은 그해에 막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조금 부끄러워했다. 장 여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빠 책은 다 위에 있어. 가서 봐보렴.”
그녀는 위층에 올라갔다. 벽에 가득한, 홍풍엽서점의 이름이 찍힌 책꽂이를 보고 그녀가 어떤 심정일지 상상이 잘 안 갔다.
또 어느 날, 나는 서점에 들어갔다가 뜻밖에도 장 여사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용무가 있어 온 줄 알았는데 그녀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그냥 지나가다 들렀을 뿐이에요.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세요.”
나는 그녀가 이층에 올라가 홍풍엽서점의 이름이 찍힌 책꽂이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한때 무수히 남편의 손을 거친 책들을 살며시 어루만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문득 그날이 장 선생의 기일이 아닐까 싶었다.
만약 이승과 저승의 구분이 있다면 그때 서점이 바로 그 경계였다. 보르헤스는, 서점이 곧 천국의 모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천국이 서점의 모습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책꽂이 앞에 서기만 하면 지금 저 세상에서 장 선생이 어떨지 상상할 수 있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 행복하게 자신의 낙원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장 여사도 좀 더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