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엄마가 해준 집밥’이 최고라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외국에서 생활하는 유학생들에게 있어서 엄마표 밥상은 그리움의 원천이며, 부족한 영양과 에너지 대사량을 채워 줄 절실함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타이완(台灣) 유학시절,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의 학생식당의 다양한 요리에 감동하고, 타이완의 아기자기한 먹거리에 감탄하면서 나름 잘 먹고 건강하게 지냈다. 4년 동안 비록 엄마가 해준 집밥은 없었지만 타이완의 다양한 먹거리는 나에게 충분한 영양과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고 무엇보다 먹는 즐거움에 눈 뜨게 해 주었다. 타이완에 유학하는 동안 훈련된 식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나는 담백한 한국요리보다 기름기 충만한 중국요리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제 아무리 잘 챙겨 먹는다 해도 건강은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유학 초기 집밥을 못 먹고 영양이 부족해져서 면역력이 떨어졌던 것일까? 아니면 덥고 습한 날씨에 기숙사에서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잔 것 때문일까? 그 더운 타이완의 여름 날씨에 그만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며칠 동안 열이 나고, 온 몸이 쑤시더니 기침과 재채기 콧물까지 된통 앓아누웠다가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는데, 발등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과 초췌한 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앓고 나서 골골하는 나의 모습을 본 타이완 친구 한 명이 “너 기운 차리려면 田鷄(tiánjī)를 한 번 먹어봐, 기운 회복하는데 田鷄만한 것이 없다”라고 하면서, ‘田鷄’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중국어 교재에서 글자로만 봐오던 낱말 ‘田鷄’!
그렇다. 중국어로 개구리를 ‘田鷄’라고 부른다. ‘靑蛙’(qīngwā)라는 낱말은 음식 이름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중국 사람들은 다소 혐오스러운(?) 식재료로 만든 요리에 우아한 이름을 가져다 붙인다. 우리말에서도 개고기라고 하지 않고 ‘단고기’라고 하듯이 중국어에서도 개고기를 ‘香肉’(xiāngròu)라고 하고, 닭발을 ‘鳳爪’(fèngzhuǎ)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개고기를 ‘香肉’라고 이름 붙인 것을 보면 중국 사람들도 그 맛에 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닭을 봉황새에 비유하는 중국인의 센스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실 ‘田鷄’는 개구리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靑蛙’를 우아하게 불러서 ‘田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靑蛙’보다 오히려 더 속된 표현으로 ‘田鷄’라고 부른다. 우리가 ‘개구리’를 ‘개구락지’라고 하면 낮잡아 부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 이름에는 ‘靑蛙’보다 ‘田鷄’의 어감이 조금 낫다는 데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적어도 눈으로 보이는 글자의 의미가 식욕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때문에 ‘田鷄’가 ‘靑蛙’보다 우아한 느낌을 주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감기 몸살로 며칠 앓고 나서 극도로 몸이 쇠약해졌던 나는 친구의 권유로 ‘田鷄’라도 한 번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실 한 번도 먹어 본 적도 없고, 또 어디서 구해서 어떻게 요리해 먹어야할지도 몰라 그저 ‘그림의 떡’이 아닌 ‘그림의 개구리’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찾아 왔다. 가깝게 지내던 한국인 유학생 선배 몇 명이 유학생활 하면서 밥이라도 잘 챙겨 먹자고 해서 다 함께 학교 밖 음식점으로 함께 외식을 하러 갔다. 무엇을 먹어야 기력을 회복할까 생각하면서 메뉴판을 보던 중 ‘田鷄’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메뉴판에는 ‘田鷄’가 들어간 요리이름 이외에도 정말 많은 요리이름이 있었는데, 그 당시는 오로지 ‘田鷄’라는 두 글자만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형, 나 개구리 요리 하나 시켜도 돼요?”라고 선배들한테 물어보니까 다들 내키진 않지만 당시 우리학교 한국인 유학생 가운데 막내였던 나의 부탁을 차마 거절 하지 못하고 하나 시켜주었다. 그런데 다양한 개구리 요리 중에 어떤 것을 시켜 먹어야 좋을지 몰라 고민하다가 결국 종업원의 추천으로 탕을 하나 주문하였다.
잠시 후 맑고 뽀얀 국물에 생강채를 가득 썰어 넣은 개구리탕이 커다란 사기그릇에 담겨 나왔다. 처음 개구리탕을 보는 사람에게는 따로 개구리 고기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누구도 그것을 개구리 고기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평범한 모습의 요리였다. 국물은 닭곰탕과 비슷한 맛이었는데 기름기가 훨씬 적고 담백한 맛이었고, 고기 역시 닭고기보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육질로 맛이 좋았다. 다만 자잘한 뼈가 있어서 닭고기가 아니고 혹시 병아리고기는 아닐까 라고 착각할 만했다.
사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메뉴판의 ‘田鷄’라는 이름만 보고 글자 그대로 ‘밭에서 사는 닭’(?), 혹은 ‘밭에서 기른 닭’(?)이라는 뜻인 줄 알고 ‘田鷄’요리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 설마 ‘田鷄’가 개구리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 날 함께 식사를 하던 한국 선배들은 개구리라는 말에 식욕을 잃었는지 전혀 손도 대지 않아 한 그릇 가득한 개구리 탕은 온전히 나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플라시보 효과’(僞藥효과)였을까? 생강 채를 가득 썰어 넣은 향긋한 탕과 개구리 고기를 몽땅 먹고 나서 국민 약골이 되어 가던 나의 저질 체력은 태능 선수촌 국가 대표 부럽지 않은 자신감과 함께 회복되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국의 일부 스포츠 종목의 어린 선수들이 중국에서 전지훈련 할 때 스태미너 보강을 위해 개구리 고기를 특별히 챙겨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코치가 일부러 어린 선수들에게 개구리라는 말은 하지 않고 맛보게 해준 다음 자연스럽게 그 맛에 길들여지게 하고, 어린 선수들이 그 맛에 매료되어 개구리 고기를 끊을 수 없게 만든 다음에 개구리 고기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선수 가운데는 은퇴 후에도 개구리 요리의 맛이 그리워 중국을 찾는다는 이도 있다. 개구리고기는 한 번 맛보면 끊을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그 후로 나는 ‘田鷄 매니아’가 되어 기회만 생기면 꼭 챙겨먹으면서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고, 또 집밥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해 나갔다. 이렇듯 타이완의 유학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먹거리에 대한 추억이고, 지금도 ‘타이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고 또 그리운 것도 타이완의 먹거리다. 추운 겨울 여럿이 모여 앉아 뜨끈한 국물에 이것저것 넣어 먹던 ‘대만식火鍋’(huǒguō),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타이완 야시장의 먹거리, 동네 골목골목이나 거리 좌판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小吃’(xiǎochī), 더운 여름 갈증해소를 위해 마시던 다양한 과일주스와 음료, 그리고 빙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타이완의 먹거리 덕분에 나의 유학생활의 연차와 몸무게는 서로 비례한다. 특히 내가 유학했던 도시 타이난(台南)은 대만에서도 최고로 맛있고 다양한 ‘小吃’로 유명한 도시였다.
(계속)
Taiwan의 먹거리, 먹는 즐거움과 배우는 기쁨 (2)
by 송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