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거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소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자서전이나 평전이다. 별 재주 없이 어쩌다 역사라는 분야를 만나서 즐겁게 일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근래에 읽은 이런 류의 책 중 인상적인 두 권이 떠오른다. 민족주의 연구에 한 획을 그은 베네딕트 앤더슨 (1936~2015)과 서양 사람들의 중국 인식에 큰 전환을 초래한 조세프 니덤(1900~1995)에 관한 책이다. 전자는 자서전, 후자는 평전의 형식이다

두 분 모두 영국에서 어린 시절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은 인재로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이다. 상당히 활동적인 좌파 지식인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진정한 지역연구가라고 할 수 있는 앤더슨은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연구로 일가를 이루었다. 민족주의 연구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상상의 공동체]라는 불멸의 업적을 남겼고.

생화학자로 40대 초반에 이미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간 니덤은 40대 이후부터는 중국에 매료 되어 과학사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 1954년 제 1권이 출간된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1995년 니덤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2018년까지 총 25책이 출간되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두 세기를 아우르는 중국학 분야 최고 저작으로 남을 것임이 분명하다.

앤더슨의 책은 자신이 지역 연구가로 성장하는 과정과 연구 역정, 은퇴 이후의 삶까지 찬찬한 필체로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다. 학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와 외국어 공부, 비교의 시각과 학제적 접근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양한 거시적 이론 연구들을 섭렵하며 새로운 분야를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950~60년대 영국과 미국의 대학 및 대학원 교육과 미국 지역학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이해도 덤으로 따라온다. 동남아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국과는 상당히 다른 관점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에 열중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특히 새로움을 모색하는 독서인이라면 무릎을 치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한국의 학문과 지성계의 현실에 대한 자조가 뒤따를 수 있겠지만.

니덤은 책의 제목처럼 중국을 정말 사랑한 남자였다. 앤더슨이 섬세한 노력파라면 니덤은 타고 난 정력이 넘치는 천재성 거인이다. 작가가 그를 조물주의 걸작으로 느끼게끔 만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여성 편력과 함께 중국 여성과의 운명적 만남이 그를 중국으로 이끌었다. 일본의 침략으로 처참한 상황에 처한 중국 대학 원조 임무를 띠고 1943년 중국에 도착하여 4년 동안 어느 탐험가보다 많은 지역을 누비며 거작의 토대를 닦았다.

우여곡절 끝에 1948년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거대한 프로젝트의 산물들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가 중국에서 만난 왕링이라는 학자를 부편집인으로 케임브리지로 초청하여 정식 월급이 나올 때까지 자신의 월급 절반을 나눠서 썼다는 인상적인 얘기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 시리즈가 출간되는 과정 과정은 정말 감탄과 감동의 연속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그의 삶도 마찬가지니, 이 책을 손에 든 사람은 쉽게 놓기 어려울 것이다. 과학기술에 그토록 뛰어났던 중국이 왜 근대 유럽에 그 앞자리를 내주었는지에 대한 의문, 즉 “니덤 퀘스천”은 현재까지도 많은 연구자들이 탐구중이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며 서양에서는 아시아에 대한 최고 수준의 연구가 쏟아져 나오는데 왜 그 반대의 경우는 별로 존재하지 않을까 착잡한 의문을 품어보았다.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이는 한국 학술계의 녹록치 않은 상황에 한숨지으면서도 서양이 주도한 근대의 막차에 겨우 올라탄 한국이 이 정도면 선방하고 있지 않나 위안을 삼아본다.

어느 분야나 최고의 경지가 있다. 이 책을 통해 동종 업계 최고의 경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미력하나마 거기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을 버리지 않고 있음에, 그리고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음에 안도한다.

마지막으로 두 책의 훌륭한 번역에 찬사를 보낸다. 손영미 선생의 역자 서문에 특히 공감하며, 코로나 이후에 아직 못 가본 동남아시아의 여러 곳을 누비고픈 꿈을 꾼다.

《중국을 사랑한 남자》에서 아주 사소한 문제들을 발견했다. 150쪽 “역사연구소”는 “역사어언연구소”가 맞다. 153쪽의 “예언용 뼈”는 우리가 다 아는 갑골이다. 299쪽~302쪽에 나오는 1946~47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위한 혹독한 작업 언급 부분은 연대가 맞지 않은 듯하다. 당시 니덤은 파리의 UNESCO에서 일했고, 1948년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본격적 연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