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졘우李健吾(1906∼1982년)
필명이 류시웨이刘西渭이며 저명한 작가, 희극가이다. 어려서부터 희극과 문학을 좋아해서 1930년 칭화대학清华大学 문학원文学院 외국문학과外文系를 졸업한 뒤 1931년 프랑스 파리로 건거나 파리현대언어전수학교에서 공부하고 1933년 귀국해 지난대학暨南大学 문학원文学院 교수와 상하이쿵더연구소上海孔德研究所 연구원과 상하이 시 희극전과학교戏剧专科学校 교수, 베이징대학 문학연구소, 중국과학원 외문소外文所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장편소설 『마음의 병心病』 등이 있으며, 몰리에르와 톨스토이, 고리키, 투르게네프, 플로베르, 발작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다.
베이징 성의 모습은 ‘철凸’ 자같이 생겼는데, 장갑차와 비슷하기도 하다. 경극 『매룡진梅龍鎭』에서 명 왕조의 정덕正德 황제가 하나의 비유를 들어 자신의 주소를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대체적인 뜻은 이러하다. 커다란 울타리가 작은 울타리를 두르고 있고, 작은 울타리는 또 더 작은 울타리를 두르고 있다. 이른바 커다란 울타리는 베이징의 외성으로, ‘철凸’ 자의 하반부이고, 베이징의 내성은 ‘철’ 자의 상반부로, 성은 비록 내외로 나뉘지만, 외성이 내성을 전체로 감싸고 있지 않아 누가 누구를 감싸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작은 것 안의 또 다른 작은 울타리가 내성의 중심인 것은 확실한데, 통상적으로 또 다른 존귀한 명칭인 ‘쯔진청紫禁城’이라 불린다.
쯔진청 안에도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데, 작은 것은 진청禁城으로 황제가 살던 곳으로 현재는 황제는 없고 통상적으로 고궁故宮이라 부른다. 큰 것은 황청皇城으로 담장이 황토빛 붉은색이라 사당의 담장과 비슷한데, 사실은 누런색도 아니고 보라색도 아니다. 베이징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이런 안팎의 성곽에 있지 않다. 성루는 대부분 비둘기 집이 되어버렸고, 벽돌 사이에는 가시풀로 덮여 있어, 지나가 버린 세기가 그대의 눈앞에 고요하게 펼쳐져 있다.
베이징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면 비행기를 타고 조감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지 않으면 진청의 우먼午門 위에 서서 사방의 들판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녹음이 져서 내가 ‘들판’이라고 한 것도 지나친 것은 아니다. 집은 나뭇가지와 이파리 아래로 은은하게 드러나고, 가로는 세류細流 같이 가지런히 흩어져 정연하면서도 단조롭지 않은데, 붉은 담장과 푸른 기와가 투영되어 색과 향이 오래된 금색과 녹색 비단의 바탕 같고, 가로는 회색의 네모난 격자에 붉은 꽃과 푸른 줄기로 점철되어 있다.
외성 톈탄天壇의 기년전祈年殿은 서남쪽 방향의 시선을 막아서고 있다. 번화하고 너른 쳰먼다졔前門大街은 정양먼正陽門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곧게 뻗어 있고 중국의 심장으로 통하는 듯하다. 동남쪽을 바라보면 밭두렁이 있고 중간에 관각館閣이 우뚝 서 있는데, 과거 시인들이 옛일을 추모하던 타오란팅陶然亭이다. 서에서 북으로 저 멀리로는 연면히 이어진 시산西山이 있고, 가깝기로는 백탑白塔 두 개가 맑은 하늘을 아스라이 받들고 있다. 정북쪽에는 숭정 황제가 목을 맨 징산景山이 있다. 동쪽에는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이 없는 듯한데, 나무들이 있다. 그대는 그것들이 도덕군자인 양 엄연한 송백松柏인지, 그렇지 않으면 하늘거리는 다양한 자태를 뽐내는 수양버들과 회나무인지 분간을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나무들이 겪어낸 세월의 굵기를 분별해내지 못한다. 다만 녹음은 파리의 녹음과 같이 꾸미지 않았고, 파리의 위압적인 고층 빌딩의 두 날개가 하늘 가득 펼쳐져 있는 것과 다른데, 집집마다 나무가 있고, 집집마다 나무를 그늘로 삼아, 푸른 파다가 넘실대며, 삼해三海 통상적으로 베이징 시내에 있는 베이하이北海, 중하이中海, 난하이南海 세 호수를 가리킨다. 와 후청허護城河의 물빛 위에 떠오른 것이 오히려 크고 작은 화려한 배와 같다. 마지막으로 그대는 진아오위둥챠오金鰲玉蝀橋를 어슬렁거리며 건너다 그 위에 서서 모든 것을 잊을 수도 있다.……모든 게 아름다움이다.
여름의 녹음을 대신하는 것으로 겨울의 흰 눈이 있다.
회색은 베이징의 모래바람이다. 이것은 막북漠北의 숨결과 낙타의 방울소리, 일종의 몸부림을 띠고 있다. 흙먼지는 그대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데, 후통은 한 편의 로맨스다. 후통의 이름을 듣다 보면 구이먼관鬼門關에 공포를 느끼고, 양웨이바후통羊尾巴胡同에 웃음 짓고, 온갖 꽃들의 심처深處는 낭만적이다.
베이징에 오래 살다 보면 모래 바람도 청정하다. 여기에는 고찰의 그윽함이나 조계의 소란스러움이 없으며, 젊은이는 공부하기 적당하고, 노인들은 휴양하기에 편하다. 장년의 경우 이곳을 떠나면 인간 세상의 전쟁터로 향하게 된다. 실패하고 돌아오면 베이징은 그대를 위로하고, 승리하고 돌아오면 그대에게 필요한 안온함을 줄 것이다. 하지만 장년일 때는 이곳에 오면 안 된다. 까딱하다가는 베이징이 그대를 들이마실 것이다. 베이징은 요람이고 무덤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고향이 있다. 베이징은 그대의 제2의 고향이고, 정신의 귀환처이다. 그래서 이상적인 고향이다.
베이징은 누구에게나 속해 있고, 그 시원시원하고 대범한 말과 같아서 전중국적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베이징은 없어서는 안 될 것이고, 중국 평화의 상징이다.
1938년 8월 13일 (리졘우, 『절몽도切夢刀』, 1948년 11월 상하이문화생활출판사上海文化生活出版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