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계혁명【부록】신료재新聊齋․당생唐生

평등각주平等閣主* 지음, 민정기 옮김

당생唐生**은 본디 광동廣東 사람이다. 아버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사를 했는데 후에 관세가 너무 올라가자 해안의 외진 곳에 집을 한 채 임대해서 규모를 줄여 살림을 꾸렸다. 생이 아버지를 따라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간 것은 다섯 살 때로 어언 십 여 년이 흘렀다. 그의 성격은 고집스러웠고 자존심이 대단했다. 어렸을 적에 고향을 떠났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매우 간절했다.

이웃에 일레인***이라는 아가씨가 살았는데 미국 시카고 태생으로 그의 아버지 역시 상인이었다. 검은 눈동자에 붉은 입술, 긴 속눈썹에 가느다란 허리,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하늘하늘 흔들리는 자태가 마치 선녀 같았다. 생과는 나이가 엇비슷했기에 두 아이는 거리낌 없이 마치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 조금 나이가 들자 서로 아끼는 마음이 점점 돈독해져서 늘 꼭 붙어 다니니, 한 사람은 신세계의 사람이고 한 사람은 구제국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했다.

날씨가 맑은 초봄 어느 날, 둘은 함께 나들이를 했다. 해안에는 사람들이 쉬러 가는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을 찾아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새가 지저귀고 이런 저런 꽃잎이 흩날렸다. 여린 녹색이 마음을 움직였고 옅은 붉은 빛이 눈을 간지럽혔다. 일레인이 말했다:

“이 세상 꽃과 새들은 하나같이 다정하여 동서 대륙의 구분 같은 건 없지요. 제가 듣기로 지나의 산수는 아시아에서도 으뜸이라던데, 당신과 함께 손잡고 노닐어보는 것이 제 평생의 꿈이에요.”

당생이 말했다:

“항주의 서호와 같은 풍경은 구미에까지도 오래 전부터 이름이 알려졌지요. 하지만 그밖에도 황산黃山․백악百岳․안암雁巖․천대天臺, 그리고 화산華山과 대산岱山의 구름, 아미산峨嵋山에 쌓인 눈, 팽려彭蠡에 낀 안개, 동정호洞庭湖의 파도 등 뛰어난 경치가 많아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랍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백성들의 마음이 꽉 닫혀있어서 외국인이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지요. 훗날 풍조가 바뀌어 그대와 함께 그곳의 산수를 노닐며 회포를 풀 수 있길 기원합니다.”

여인이 말했다:

“제가 중국을 유람하고 싶은 것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을 사랑하기에 지나도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대 역시 저를 사랑하기에 미국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생은 웃으며 고대를 끄덕였다. 서로 담소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있었다.

의화단의 난으로 인해 여덟 나라의 연합군이 북경을 함락한 일이 일어났다. 미국의 신문마다 지나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이 나날이 늘었다. 생은 고국을 생각하며 울분을 삭여야 했다. 여인이 그를 위로하여 말했다:

“지나는 땅도 넓고 인구도 많으니 이번 굴욕을 계기로 국시를 정하고 정책을 개혁하게 되면 십 년 후에는 반드시 세계에서 그 웅위를 떨치게 될 거예요. 잠깐의 좌절은 크게 마음에 둘 일이 아닙니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이렇게 이래저래 달랬지만 생은 결코 기뻐할 수 없었다.

미국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경멸하는 태도로 대하자 생의 가슴속의 한은 나날이 깊어졌다. 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도 왕래가 끊겼다.

여인이 어느 날 생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아버지가 저를 어느 부자 상인의 자제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십니다. 저는 당신 때문에 결단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지요. 하지만 요사이 당신의 마음이 전과는 크게 달라진 것 같아 제 가슴은 찢어질 듯합니다. 이 마음이 당신 것이니 이 몸도 당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요. 저는 이미 지나인이에요. 미국인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겁니다. 당신이 지금 미국에 살면서 행복하지 않고, 그래서 만약 제게도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망치는 않겠어요! 일이 급하게 되었는데, 당신께서 한 때의 울분으로 백년대계를 저버리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당생이 말했다:

“그대의 마음은 내 이미 다 알고 있소. 하지만 지금은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어요. 신분이 크게 다른 사람들끼리는 혼인하지 않는 것이라는 옛 가르침도 있지요. 그대야 저를 가벼이 여기는 마음이 없다고 하나, 사람들 수군거릴 것은 어찌 하구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긴데 그대 역시 신중히 생각해 보세요.”

여인이 이 말을 듣고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흐느끼며 말했다:

“낭군께서는 기어이 저를 버리시렵니까? 오, 하느님! 십 년 동안 아침저녁을 함께 하며 마음속의 하고픈 말을 오직 당신께만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습니다. 제 가슴속에는 다시는 어느 누구도 자리 잡을 수 없고 제 이 몸 또한 결단코 다른 누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당신께서 이토록 모질게 나오시니, 자신 생각만을 하고 저를 위해서는 털끝만한 정도 남겨두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당생이 말했다:

“이는 모두 당신을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그대 고귀한 종족의 몸으로 내게 시집을 온다면 훗날 함께 길을 걸을 때 모두들 비웃을 것이오, 춤이라도 함께 춘다면 모두들 자리를 피할 겁니다. 조롱과 비난이 시시로 닥칠 터, 그대가 그런 모욕을 당한다면 내 마음이 어찌 편하겠소? 형세가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다만 그대와 오래도록 좋은 벗으로 지내다가 삶을 다하렵니다.”

여인은 생의 뜻을 절대로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는 한 참 동안 묵묵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가는 볼이 붉어지며 눈물을 참으려는 듯 이맛살을 찡그렸다. 결국 그녀는 창연히 슬픈 기색을 드러내며 비척비척 떠나버렸다.

생은 성격이 고집스러워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본심까지 거슬러가며 그녀를 물리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서는 마음이 너무나도 슬펐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 후, 얼마나 슬퍼하며 울고 있을까 생각하니 밤새도록 뒤척이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침에 되어 그녀를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찾아가 한참 동안 문을 두드렸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녀 집안사람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가스 냄새가 방안 가득했다. 가스등을 틀어놓은 채로 불은 붙이지 않고 잠에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탁자 위에 유서 두 통이 놓여있었다.

첫 번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버지께. 저는 이제 죽습니다. 제 마음에는 오직 한 사람 당 공자뿐입니다. 제 몸과 마음은 이미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인들이 지나를 능멸한 이유로 저는 당 공자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제 죽음은 미국인이 그렇게 내몬 것입니다. 제가 입고 쓰던 물건 그리고 제 앞으로 갈 재산은 모두 당 공자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연지와 가락지를 통해 낭군을 사모하는 제 마음을 영원히 남기고자 하니, 저는 비록 죽지만 오히려 살아있는 것입니다. 저는 기꺼이 죽음으로써 살아있는 고통을 넘어선 것입니다. 저 때문에 슬퍼하지 마세요.

두 번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사랑해주신 당 공자께. 바로 곁에 계시는 듯하군요! 하늘이 무심하여 저를 지나가 아닌 미국에 태어나게 하였고, 또한 당신을 미국이 아닌 지나에 태어나게 하였으니, 그리하여 저를 끝없는 슬픔에 빠트리고 우리가 함께 해로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니, 이는 운명, 운명입니다. 제가 쓰던 것들을 모두 그대에게 남깁니다. 이는 제 마음을 이미 당신에게 드렸기에 제 물건들을 보고 저를 생각해 주시길 바라서입니다. 향기로운 손수건에는 눈물자국 남아 있고 거울에는 먼지가 앉지 않듯, 영혼은 죽지 않아 홍안으로 남으리니. 백년 후 천국에서 영원히 맺어지길 바랍니다. 낭군께서는 진중하시어 그리움에 몸을 해치지 마옵소서.

생은 편지를 보고는 슬픔에 혼절할 듯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언에 따라 일체의 물건과 그녀 몫의 재산을 생에게 주었다. 생은 마다했지만 결국 그녀의 뜻에 따랐다. 생은 돈을 일레인의 이름으로 샌프란시스코 화교 학교에 기부하여 그녀가 지나를 흠모한 유지를 받들었다. 당생은 이후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등각주인은 말한다: 당생의 일은 일찌기 샌프란시스코의 모 중문 신문에 실렸었다. 내가 들은 바와는 약간 다른 부분이 있지만 대체로는 같은 이야기였다. 내 벗 태평양객太平洋客****은 만 여 마디에 달하는 평론을 통해 그 일을 거듭 칭송하였는데, 요지는 당생이 혼인을 거절한 마음에는 바로 나라를 지키고 종족을 보존하려는(保國存種)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하와이의 원주민이 백인종에 의해 망한 것은 그 부녀 가운데 조금이라도 미모가 있거나 재산이 있는 이들이 모두 백인과 결혼하는 것을 영화로운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그들의 토지 소유권을 모두 빼앗았다. 지금 그 땅에는 결혼할 처녀들이 하나도 없어져 버렸으니 십 년도 못 되어 종족 전체가 멸절된 것이다. 중국은 경자사변庚子事變 이후로 조야 상하가 일변하여 외국에 아첨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시랑侍郞 벼슬을 하는 귀한 신분으로 집안의 딸을 외국인 장교의 술시중을 들도록 내보는 일까지 있었다. 북경의 기녀들은 서양인 하나 꿰어 차면 큰 행운으로 여기니 큰 벼슬이나 하는 것 같았다. 오호라! 이렇게 가다가는 십 년도 못 되어 하와이 원주민이 당한 꼴이 우리나라에도 닥칠 것이다. 종족 간의 경계가 엄하지 않았을 때 미칠 화가 저와 같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랴! 혹자는 이쪽에서 시집을 가는 것은 잃는 것이라 하더라도 저쪽에서 오는 것이야 무슨 해가 되겠느냐고 말하지만 이는 형세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남자는 그와 같이 하면서 여자들더러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30년 전 파견해 보낸 미국 유학생들이 각기 저 족속의 비천한 여인을 끌어안고서는 옴짝달싹 못하게 속박되어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되고, 결국 조국을 경멸하고 조국을 적대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예가 한둘이 아님에랴! 그러니 당생과 같은 이들은 족히 모범이 될 만하다. 내가 당생의 일을 서술하고 태평양객이 쓴 논술의 대의를 위와 같이 적노라.

― 『新小說』 제7호, 1903년 7월

* 본명은 적보현(狄葆賢, 1873~1939 또는 1940). 변법파 활동가이자 언론인.

** 생(生)은 중국 고전 악극에서 남자 주인공을 가리키며, 소설에서 성씨 뒤에 쓰여 남자 주인공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 원문에는 ‘의랑(漪娘)’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서양인임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비슷한 소리의 서양 여성 이름으로 옮겼다.

**** 본명은 구구갑(歐榘甲, 1870~1911). 강유위 문하생으로 무술변법에 참여,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해 양계초와 함께 언론활동에 종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