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부부를 논한다夫婦論, 因畜有感>

<부부를 논한다夫婦論, 因畜有感>

부부(夫婦)는 사람의 시초이다. 부부가 있어야 부모 자식도 있는 것이고, 부모 자식이 있어야 형제도 있는 것이고, 형제가 있어야 상하 관계도 있는 것이다. 부부가 바르게 정립되면 만사가 바르게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와 같이 부부는 만물의 시초이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하늘과 땅은 하나의 부부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이 있어야 만물이 있다. 그렇다면 천하의 만물은 모두 ‘일’(一)에서 나오지 않고 ‘이’(二)에서 나온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 또 ‘일’이 ‘이’를 낳고, ‘리’(理)가 ‘기’(氣)를 낳고, 태극(太極)이 음(陰)과 양(陽)을 낳는다니, 이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사람이 처음에 태어날 때에는 오직 음․양의 두 기(氣)와 남(男)․녀(女)의 두 명(命)이 있었을 뿐, 애시당초 ‘일’(一)이니 ‘리’(理)니 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또 무슨 태극(太極)이 있었겠는가?

‘일’(一)이란 과연 무엇인가? ‘리’(理)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태극이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가? 만약 ‘이’(二)가 ‘일’(一)에서 생긴다면, ‘일’(一)은 또 어디서 생기는가? ‘일’(一)은 ‘이’(二)와 짝이 되고, ‘리’(理)는 ‘기’(氣)와 짝이 되고, 음양은 태극과 짝이 되고, 태극은 ‘무극’(無極)과 짝이 된다. 이렇게 끝까지 계속해서 따져보면, 둘이 아닌 것이 없다. 도대체 어디서 ‘일’(一)이라는 것을 보고 그렇게 멋대로 말하는가!

이에 나는 만물의 시초를 탐구하여, 부부가 바로 그 시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오직 부(夫)․부(婦) 두 가지만 말할 뿐, 더 이상 ‘일’(一)이니 뭐니 말하지 않고, 또한 ‘리’(理)도 말하지 않는다. ‘일’(一)도 말하지 않는데 하물며 ‘무’(無)를 말하겠으며, ‘무’(無)도 말하지 않는데 하물려 ‘무무’(無無)를 말하겠는가? 무엇 때문이겠는가? 천하가 미혹에 빠질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말을 많이 하면 자꾸만 궁지에 빠지고, 도리어 사람들의 미혹을 부풀린다. 그렇다면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 언급하지 않은 채 그저 ‘천지(天地)와 사람은 모두 부부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서, 밥 먹고 숨 쉬고 말 하며 살아갈 뿐이다.

《역경》(易經)에서 “크도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그 힘을 빌어 시작되었구나! 지극하도다, 곤원(坤元)이여! 만물이 그 힘을 빌어 태어나는구나! 그 힘을 빌어 시작되고 그 힘을 빌어 태어나서, 변화가 끝이 없다. ‘태화’(太和)를 합하여 보전하며, 각각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는구나”[1]라고 말했다. ‘성명’(性命)은 ‘태화’(太和)로부터 바르게 되고, ‘태화’(太和)는 ‘건곤’(乾坤)으로부터 합해진다. ‘건’(乾)은 ‘남편’[夫]이고 ‘곤’(坤)은 ‘아내’[婦]이다. 그러므로 ‘성명’(性命)이 각각 바르게 되면 저절로 바르게 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부부의 관계는 어떻길래, 이럴 수 있을까. 이럴 수 있을까.(권3)


[1]  《역경》 <건괘>(乾卦) <단전>(彖傳)의 “대재건원. 만물자시”(大哉乾元, 萬物資始)와 “각정성명, 보합태화”(各正性命, 保合太和), 그리고 <곤괘>(坤卦)의 <단전>의 “지재고원, 만물자생”(至哉坤元, 萬物資生)을 섞어서 인용하였다. 이를 통해서 건괘와 곤괘가 만물 창생의 근원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