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 콘텐츠로 승부하는 중국의 민영서점 단향공간

최근 몇 년 간 중국 오프라인서점업계의 매출은 계속 하향 추세였지만 반대로 새로운 민영 프랜차이즈 서점(중국의 오프라인 도서 유통은 국영인 신화서점 계열과 나머지 민영 서점 계열로 양분된다)의 개업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시시포(西西弗)서점, 판덩(攀登)서점, 중신(中信)서점, 지위공간(機遇空間) 등은 향후 1~3년 내에 각기 100여 곳의 새 점포를 전국 각지에 열 계획이다. 이 서점들은 전통적인 오프라인서점과 비교해 여러 가지 차별점이 있다. 우선 타이완 청핀(誠品)서점과 일본 츠타야서점을 벤치마킹해 서점을 책과 고급 라이프 스타일이 함께 전시되는 공간으로 진화시켰고 동시에 문구, 의류, 식음료 판매를 결합해 궁극적으로 복합 매장 또는 편집숍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대규모 자본을 투자받아 가능한 한 유동 인구가 집중되는 시내 번화가와 고급 쇼핑몰에 대형 매장을 확보함으로써 다수의 잠재 고객들을 유인하는 데 힘쓰고 있다.

중국 서점업계의 이런 새로운 바람은 종이책이라는 오래된 매체의 전 지구적 퇴조에 맞선 출판업의 한 경향으로서 분명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러나 지나친 상업주의로 인해 매장에서 도서보다 기타 상품의 전시 면적이 더 넓어진다든가, 방문 고객의 확대에 뒤따라 전시 도서가 대부분 베스트셀러로 채워짐으로써 도서의 다양성이 위축된다든가 하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도서 판매와 독자 확대를 목표로 한 서점의 새로운 경영 전략이 거꾸로 그 목표를 저해하는 역설적인 위험이 대두된 것이다.

이 위험에 대한 유력한 해결책은 아마도 2005년 말, 베이징에서 탄생한 민영서점 단향공간(單向空間. 중국어로는 ‘단샹쿵젠’이라고 발음된다)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인문학 전문 서점인 단향공간은 유명 작가이자 프리랜서 기자인 쉬즈위안(許知遠)과 그의 출판계, 언론계 친구 12명에 의해 세워졌고 중국 서점업계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벌써 15년째 생존해 오며 현재 6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본래는 본거지인 베이징에만 매장이 있었지만 2018년 최초로 다른 지역인 저장성 항저우(杭州)와 허난성 친황다오(秦皇島)에 진출했다. 2012년 베이징 외곽의 신흥 상업지역에 위치한 점포가 유일한 매장이었고 그것조차 임대료가 오른 뒤 단골 고객들로부터 10만 위안의 크라우드 펀딩을 받고서야 간신히 인테리어비를 마련해 이전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셈이다. 사실 단향공간은 그때 속절없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마침 당시는 온라인서점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베이징의 디싼지(第三極)서점, 펑루쑹(風入松)서점 같은 유명 인문학 서점들이 차례로 문을 닫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향공간은 2012년 대형 쇼핑몰인 차오양 다웨청에 입주하고 2013년 말, 즈신캐피탈(摯信資本)로부터 1천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 새롭게 브랜드 포지셔닝에 돌입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단향서점 프랜차이즈의 본거지 역할을 하고 있는 다웨청점은 거대한 쇼핑몰 5층의 나이키, 스타벅스 같은 유명 브랜드 의류점과 식음료점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매장에 들어가 보면 도서 전시 공간은 절반에 못 미치며 나머지는 카페, 문구 전시대, 이벤트 공간 등으로 나뉜다. 이벤트 공간은 평소 작가 사인회와 강연회, 신간 발표회, 음악회와 와인 시음회 등을 위해 유료 대여되며 문구는 고급 펜과 노트, 문진, 도장 등 독서인의 일상 물품 위주로 갖춰져 있다. 그리고 커피와 디저트를 다 제공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카페 공간에는 독서와 문서 작업을 하는 젊은이들이 늘 가득하다. 사실 이 광경만 보면 단향서점의 새 브랜드 이념이 높은 트래픽이 보장되는 입지와 고급 라이프 스타일을 표방하는 인테리어 그리고 다각화 경영이 특징인 기타 프랜차이즈 서점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감이 잘 안 온다. 하지만 전시된 책과 문구를 유심히 살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본래 소수 엘리트 독자를 위한 인문학 전문 서점으로 출발한 단향공간은 한적한 변두리에서 화려한 쇼핑몰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도서 큐레이팅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화하여 난이도 높은 국내외 인문학 도서와 외국문학 도서만을 서가에 꽂고 베스트셀러는 전혀 비치하지 않았다. 심지어 ‘판매부진 양서’ 코너까지 마련해 안타깝게 묻힌 양서들을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있다. 게다가 일 년 내내 일절 할인을 하지 않아, 은연중에 어떤 양질의 부가가치를 그 책들에 부여한다. 게다가 언제나 도서 전시대 한가운데에서 발견되는 격월간 무크지 『단독』(單讀)은 콘텐츠에 대한 이 서점의 야망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젊은 교사, 작가, 번역가들의 서평, 영화평, 시론(時論), 에세이 등의 모음집인 『단독』은 2009년 탄생하여 작년에 벌써 10주년 기념호까지 발간된, 중국 젊은 엘리트 지식인들의 아성 같은 정기간행물이다. 비록 성격상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그 저자와 독자들을 서점의 열렬한 애호가로 응집시켜온 단향공간의 강력한 고유 콘텐츠인 셈이다.

무크지 <單讀>

또 하나의 고유 콘텐츠는 훨씬 더 실질적이고 파급력도 더 큰데, 뜻밖에도 문구 코너에서 눈에 띈다. 그것은 바로 2015년 출시한 ‘단향력(單向曆)이다. 지금은 50여 가지의 크고 작은 제품들로 확장된 이 달력은 단향공간이 9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 수익을 거두기 시작하게 해준 최고의 효자 상품이다. 단향공간이 직접 기획, 디자인해온 이 상품은 미니멀한 디자인과 독특한 운세 풀이 그리고 엄선한 경구와 하루에 한 장씩 뜯는 방식으로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15만 권, 30만 권, 50만 권, 이렇게 매년 판매량이 늘어 4년 만에 100만 권을 돌파했다. 이 단향력의 의미에 대해 단향공간 측은 SNS에 올린 공식 입장을 통해 회고하길, “우리는 각양각색의 시도를 해보았지만 마지막에 뜻밖에도 단향력이 최근 2년간 회사를 구해주고 우리가 파산의 길을 가지 않게 해주었다.”라고 했다. 이처럼 단향력은 최근 몇 년 간 주된 캐시 카우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단향공간이 2015년 단향가서점문학상을 제정하고 또 2018년 젊은 인재들에게 해외여행과 글쓰기 교육을 제공하는 ’선원 계획‘을 출범시키는 데 든든한 재원을 제공해주었다. 물론 이 2가지 새로운 프로젝트 역시 콘텐츠 확보에 대한 단향공간의 남다른 집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요컨대 단향공간은 지난 15년간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매력적인 고유 콘텐츠로 엘리트 독자에게 소구하는 인문학 프랜차이즈 서점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자리매김해왔으며 이 시도는 매장 숫자의 지속적인 확대뿐만 아니라 전국적 범위의 브랜드 인지도 제고로 어느 정도 성공했음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사실 단향공간이 훨씬 더 큰 규모의 다른 민영서점들을 제치고 오늘날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 프랜차이즈 서점 브랜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단독과 단향력보다는 또 다른 고유 콘텐츠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것은 바로 상품 콘텐츠가 아니라 인물 콘텐츠, 즉 단향공간의 공동 창업자인 쉬즈위안의 전방위적 활약 덕분이었다.

許知遠, 출처 Baidu

1976년 생으로 베이징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여러 신문과 잡지의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며 중국의 사회, 경제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해온 쉬즈위안은 저서 『미성숙한 국가』, 『독재의 유혹』, 『저항자들』의 한국어판 출간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진 인물이다. 주로 중국의 일부 비판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각광 받던 그가 전국적 인지도를 갖게 된 시점은 2016~2020년 사이 총 시즌4까지 제작, 방영되어 화제가 된 텐센트의 인물 대담 프로그램 《13인의 초대》의 사회를 맡은 뒤부터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 영화감독, 벤처 사업가들을 인터뷰하며 중국의 현대화 과정과 현실 사회문제를 심도 있게 진단하면서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지식계의 거물을 CEO로 둔 덕분에 단향공간은 지속적으로 유, 무형의 혜택을 보고 있다. 쉬즈위안의 매체 노출은 곧 단향공간에 대한 간접적인 홍보나 다름없으며 또 그가 단향공간의 SNS 채널에 칼럼을 연재하는 동시에 개인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여 오프라인 강연프로그램 ’단향공간 살롱‘에 유명 저자들을 연달아 섭외하면서 단향공간은 젊은 지식인들의 ’정신적 성지‘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이처럼 쉬즈위안은 걸어 다니는 단향공간 그 자체로서 앞으로도 단향공간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킬러 콘텐츠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2016년 자신의 저서 『저항자들』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쉬즈위안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당신은 자신의 정체성이 정확히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답하길, “지금은 사업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군요.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판매하는 사업가 말입니다.”라고 했다. 당시 필자는 그와 단향공간의 연관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탓에 그 대답이 다소 의외였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쉬즈위안은, 그리고 그가 경영하는 단향공간은 단순히 기존의 지식이나 지식상품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전통적인 플랫폼이 아니다. 당대 젊은 지식인과 독자들의 취향과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 그것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를 독자적으로 기획, 생산, 판매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단향공간은 서점이면서 서점을 능가하는, 일종의 종합 콘텐츠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