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주석의 도움으로

2016년 가을은 한국과 중국의 콘텐츠 합작에 관련된 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계절이었다. 그해 여름, 한국 정부는 사드 1개 포대의 한반도 배치를 공식 발표했고 가을에는 영상, 공연, 게임, 출판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 콘텐츠의 중국 수입 및 한중 콘텐츠 합작 활동이 중지되었다. 출판 분야만 놓고 보면 한국 도서의 대중 저작권 수출이 완전히 막혔는데 그 여파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대중 저작권 수출로 쏠쏠한 부수입을 올렸던 한국 출판사들과, 이를 중개하던 저작권 에이전시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나 역시 손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도서 저작권 수출이 막혔지 중국 도서 저작권 수입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지만 역시 그랬다. 왜냐하면 나는 2016년부터 “시진핑 주석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중국문학 번역의 돌파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의 도움’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해 중국 정부의 해외번역지원 사업을 뜻한다. 이것은 2007년 제17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식 제기된 ‘저우추취(走出去)’ 전략의 문화 분야 정책으로서 ‘중국 문화의 세계 보편화’와 ‘중국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의 대외 선전’을 표방하여 국제 출판 저작권 교류 분야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예컨대 2007년 중국도서대외추광계획(中國圖書對外推廣計劃), 2009년 경전중국국제출판공정(經典中國國際出版工程), 2010년 중화학술외역항목(中華學術外譯項目) 2014년 실크로드서향출판공정(絲路書香出版工程)을 국무원, 신문출판광전총국, 국가사회과학기금, 중국편집학회의 주도 하에 차례로 출범시켜 중국의 문화와 학술 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발전상과 주요 정책을 담은 주요 도서의 해외 번역, 출판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비공식적으로 그 지원 액수는 연간 700억 원을 상회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지원 도서 종수는 2018년 기준, 연간 672종에 이른다.

중국의 해외번역지원 사업은 한국의 중국 번역서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에서 중국 번역서의 출간 종수는 2012년 364종, 2013년 318종, 2014년과 2015년 각기 480종으로 꾸준히 높아져 왔다. 이런 수치는 사실 불가사의하다. 최근 한국 출판시장에서 중국 번역서의 판매가 워낙 부진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8년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상위 200위 중 중국 번역서는 자기계발서인 120위인 쉬셴장, 󰡔하버드 첫 강의 시간관리 수업󰡕 단 1권뿐이었다. 그 이전을 생각해도 1990년대 후반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과 󰡔허삼관 매혈기󰡕 이후로는 일반 독자들의 뇌리에 뚜렷하게 남은 중국 베스트셀러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 번역서는 출간 종수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 논리와는 무관한 인위적 요인을 제외하고는 설명이 안 되는데 바로 중국의 해외번역지원 사업이 그 요인인 것이다. 나는 조사를 통해 매년 적어도 60여 권의 중국 도서가 중국의 해외번역지원금을 받아 한국에서 출간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 이 사업을 이용해서 한국에 꼭 소개해야 할 중국소설을 들여오자!’

마침 인민문학출판사가 한국 저작권에이전시를 통해 번역지원금을 줄 테니 자사의 현대소설들을 출간할 수 있는지 글항아리에 문의해왔다. 나는 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루네이(路內)의 《자비》, 장웨란(張悅然)의 《고치》, 아이(阿乙)의 《도망자》 등 6권을 골라내 인민문학출판사에 통보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아예 내 쪽에서 중국출판사에 접근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진행한 ‘찾아가는 중국도서전’과 매년 열리는 베이징국제도서전을 이용해 산둥(山東)문예출판사, 화청(花城)출판사, 외국어교학출판사와 차례로 접촉하여 내가 고른 중국소설을 갖고 해외번역지원금 사업에 신청서를 넣게 했다. 그 결과, 2017년 솽쉐타오(雙雪濤)의 《톈우 수기》, 쉬쩌천(徐則臣)의 《아, 베이징!》 등 중국소설 5권에 대한 번역지원금을 따냈다.

1년여에 걸친 그 과정은 퍽 복잡다단했지만 다행히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김영사 시절 중국을 왔다갔다하면서 내 중국어 실력이 그나마 좀 는 덕도 있었고(매번 똑같은 ‘출판 중국어’만 구사하니 더 그랬다) 중국출판사들의 적극적인 태도도 한몫을 했다. 국유기업인 중국출판사들에게 해외 저작권 수출은 반드시 완수해야 할 국가적인 임무로서 정부의 고과 평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난데없는 사드와 한한령의 내습이 글항아리와 나의 이 야심만만한 프로젝트에 지장을 초래했다. 문화 관련 중국 기업들의 한국 송금에 대한 검열이 엄격해져 이미 중국출판사들에 지급된 해외번역지원금이 그들의 계좌에서 꼼짝없이 묶여 버린 것이다. 그나마 중국 문학 전문 출판사 중 가장 강력한 베이징의 인민문학출판사는 약속한 시점에 번역지원금을 보내주었지만, 다른 출판사들은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1, 2년 뒤 한한령이 다소 완화되고 나서야 차례로 번역지원금 송금을 완료했다.

중국의 해외번역지원금은 국내 유일의 중국 현대소설 전문 브랜드인 ‘묘보설림’ 시리즈 출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미 출간된 12권 중 9권이 지원금 수혜 도서이다. 비록 지원금 규모가 실제 번역비를 훨씬 상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내 외서 출판에서 번역비가 절약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더욱이 묘보설림 시리즈가 잘 판매되는 편도 아니어서 더더욱 그렇다. 미안하게도 나는 《이중톈 중국사》뿐만 아니라 묘보설림 시리즈로도 글항아리에 크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번역지원금을 끌어와 그 민폐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려고 한다.

아마도 누군가는 내가 이런 방식으로 한국에 중국소설을 들여오려는 것에 대해 반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외면받는 외국의 콘텐츠를 굳이 그렇게 인위적으로 수입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다. 솔직히 일리 있는 의견이다. 중국 해외번역지원금 사업을 통해 한국에 출간된 중국 번역서 중 일부가 중국의 정책과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책임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하지만 나는 시장 논리에만 의지해서는 도저히 한국에서 출판되기 어려운 중국의 긴요한 지식 콘텐츠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들여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현대문학은 현대 중국인의 살아 숨 쉬는 역사와 삶을 한국인에게 생생히 이해시킬 수 있는 문화적 매개체로서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에게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나로서는 나를 비롯한 여러 중국어 출판번역가들의 생존도 염두에 둬야만 한다. 최대한 중국의 양서들을 선별하고 번역지원금으로 그것들의 출판이 용이해지게 만듦으로써 능력과 열정이 있는데도 마땅한 일감을 못 찾는 중국어 출판번역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시 주석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중국소설을 들여오려고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