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제33권 1

제33권 장원외는 의롭게도 양아들을 키워주고
포룡도는 지혜롭게 각서를 찾아내다

張員外義撫螟蛉子 包尤圖智賺合同文

먼저 시 한 수를 소개한다.

영고성쇠는 모두 하늘에 달렸으니
온갖 계략 다 써 봐야 부질없도다
사람의 탐욕은 한도 끝도 없고
세상일이란 결국 눈앞의 이익 좇다 끝나는 것
재상이라도 목숨 늘여줄 약은 없고
돈이 있어도 현명한 자손 사긴 어렵지
분수를 지키며 운명에 따라 산다면
그것이 바로 유유자적한 신선이라네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대량(大梁)에 성이 장씨인 한 부자 노인이 있었다. 부인은 이미 죽었고 아들 없이 딸 하나만 있어 데릴사위를 맞아들였다. 장노인은 나이가 이미 일흔이 넘었으므로 집안의 재산을 모두 사위에게 넘겨 따로 일가를 이루게 해서 그들의 봉양에 기대 여생을 마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딸과 사위 역시 거짓으로나마 알랑거리면서 고분고분하게 잘 모셨으므로 그 역시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바램은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후로는 그를 봉양하는 것이 점점 태만해져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문 앞에 서있으려니 외손자가 아버지께 진지를 들라고 찾으러 나오는 것이었다. 장노인이

“나 밥 먹으라고 찾냐?”

하고 물으니 외손자는

“저는 우리 아버지를 찾는 거지 당신을 찾으러 온 게 아녜요.”

라고 하는 것이다. 장노인은 그 말을 듣고 몹시 불쾌했다.

“딸은 결국은 남의 집 사람이 된다더니 과연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내 비록 늙었지만 정력은 아직 시들지 않았으니 첩 하나 맞아들이지 못하겠나? 만약 사내아이를 하나 낳는다면 역시 장씨 가문의 후손이지.”

그리고는 자신의 남은 재산으로 매파에게 부탁하여 노씨(魯氏)의 딸을 맞아들였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연 임신을 하였고, 바야흐로 결혼 1년이 되었을 때 아들을 하나 낳았다. 장노인은 너무나 기뻐하였고 친척들도 모두 와서 축하해주었다. 오직 딸과 사위만은 몰래 걱정하고 있었다. 장노인은 곧 아들에게 일비(一飛)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사람들은 모두 그 아이를 장일랑(張一郞)이라고 불렀다. 다시 한두 해가 지나자 장노인은 병환이 심해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목숨이 위급해졌을 때 유서 두 장을 써서 그 중 한 장을 노씨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단지 사위와 외손자가 불효했기 때문에 당신을 첩으로 맞아들인 거요. 하늘이 가련히 여겨 아들을 보게 해주셨으니 본디 가산을 모두 그 애에게 주어야 하지만, 그 애가 너무 어리고 또 당신은 여자라 가문을 유지할 수 없으니, 사위에게 주어 관리하게 할 수밖에는 없소. 내가 만약 가산이 나중에는 내 아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드러내놓고 말해버린다면, 또 걔들이 몰래 악독한 계략을 꾸며낼까 두렵소. 지금 내가 이 유서 속에 몰래 수수께끼를 만들어놓았으니, 당신은 꼭꼭 숨겨두었다가 내 아들이 성인이 되는 날 고소를 하면 되오. 만약 청렴한 관리를 만난다면 다 알아서 처리해줄 게요.”

노씨가 그 말에 따라 유서를 숨기자, 장노인은 곧 사람을 시켜 딸과 사위를 불어오게 하여 몇 마디 분부를 하고는 유서 한 장을 그들에게 주었다. 사위가 받아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장일은 내 아들이 아니니 가산은 모두 나의 사위에게 주며 다른 사람은 상속권을 다툴 수 없다(張一非我子也家財盡與我婿外人不得爭占)

사위는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부인에게 주어 간직하게 하였다. 장노인은 또 몰래 자신의 남은 재산을 노씨 모자에게 주어 생활비로 쓰게 하고, 집 한 채를 세내 살게 하였다. 며칠이 지나 장노인은 병이 심해져 세상을 떠났다. 사위는 장인의 장례를 마치고 나자, 가산은 모두 자기 것이라고 했다. 두 부부가 득의양양해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각설하고, 노씨는 아들을 키워 점차 장성하게 되었다. 남편의 유언을 기억하고 있었기로, 그 유서를 가져다가 아들을 데리고 관가에 가서 고소를 하였다. 그러나 관가에서는 모두들 친필 유서가 이와 같은 내용이라면 당연히 사위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위가 돈으로 매수를 해놓았으니, 그들을 위해 해명해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친척들은 모두 장일랑을 위해 불평을 하였다.

“장노인이 병중에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유언을 남기다보니 이렇게 우습게 되었군!”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흘러 새로운 지현(知縣)이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는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다. 이에 노씨는 다시 아들을 데리고 관가에 가서 고소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죽음에 임박해서 유서 속에 몰래 수수께끼를 만들어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지현은 유서를 한 번 보고 또 보고 나서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곧 사람을 시켜 장노인의 딸과 사위, 친척들과 그 지방의 원로들을 모두 불러오게 하였다. 지현은 그 사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장인은 정말로 총명한 사람이다. 만약 이 유서가 아니었다면 가산을 모두 네가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읽는 것을 잘 들어보아라.

‘장일비는 내 아들이니 가산을 모두 그에게 준다. 나의 사위는 바깥사람이니 상속권을 다툴 수 없다.(張一非, 我子也, 家財盡與. 我婿外人, 不得爭占.)’

너는 왜 ‘비(飛)’자를 ‘비(非)’자로 썼는지 알겠느냐? 그것은 네 처남이 너무 어려서 네가 이 유서를 보면 모해할 마음이 생길까봐 일부러 이러한 수를 썼던 것이다. 지금 내가 알아냈으니 가산은 자연히 네 처남 것이 된다. 더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리고는 즉시 유서에다가 붓으로 구두점을 찍고는 가산을 모두 장일비에게 돌려주도록 판결하니, 사람들은 모두 승복하고 돌아가면서 그제서야 장노인이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이미 마음속에 계책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성씨가 어찌 많은 재산을 차지하리요?
마땅히 친자에게 돌아가야 함은 의심할 필요도 없는 걸
유서 속의 수수께끼 그 누가 알아볼 수 있었던가?
지현의 신명함은 과연 기이하도다

이 이야기만 봐도 직계 자손과 직계가 아닌 사람의 구분은 명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한때 모호해지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청렴한 관리가 시비를 가려내어 양심을 속이는 일은 통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 제가 다시 포룡도(包龍圖)가 지혜롭게 각서를 찾아낸다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어느 지방에서 나온 이야기일까요?

송나라 때 변량(汴梁) 서관(西關) 외곽의 의정방(義定坊)에 유천상(劉天祥)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양씨(楊氏) 성을 가진 아내가 있었다. 그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천서(天瑞)이고 장씨(張氏) 성을 가진 아내를 맞아들였다. 이들 친 혈육 몇 식구는 지금껏 분가하지 않고 같은 집에서 살았다. 유천상에게는 자녀가 없었는데, 양씨가 재혼한 사람이라 결혼할 때 딸을 하나 데리고 왔으니 속된말로 ‘의붓자식’이었다. 유천서는 아들을 하나 낳았고, 이름은 유안주(劉安住)라고 지었다. 그곳에는 이사장(李社長)이란 사람이 있어 정노(定奴)라고 하는 딸 하나를 낳았는데 유안주와 동갑이었다. 이사장과 유가네와는 친분이 두터웠기로 아직 낳기도 전에 뱃속에 있는 두 아이의 혼사를 미리 정해 놓은 터였다. 유안주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유천서는 벌써 아들을 이사장의 딸과 약혼시켜주었다.

그런데 양씨는 어진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고, 또 내심 딸이 크면 데릴사위를 맞아들여 많은 재산을 그에게 나눠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이 때문에 동서들 간에는 늘상 말다툼이 있었다. 다행히 유씨 형제는 화목했고 장씨도 스스로 삭히는 성격이라 서로 사이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근이 들어 아무런 곡식도 거둬들이지 못하게 되자, 관아에서는 공문을 내려 주민들에게 인구를 줄이는 차원에서 풍년이 든 타향에 나가 굶주림을 면하도록 하였다. 이에 유천상은 동생과 상의를 하여 멀리 떠나려 하였다. 그러자 유천서는 이렇게 말했다.

“형님은 연로하시니 타향으로 나가셔선 안됩니다. 제가 처자식을 데리고 잠시 떠나있겠습니다.”

천상은 그 말에 따르기로 하고 곧 이사장을 청해 와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둔 댁이 여기 계시지만, 흉년이 들어 살아가기가 힘들군요. 위에서도 주민의 수를 줄이기 위해 타향에 나가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 동생네 세 식구가 날을 택해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지금껏 분가한 적이 없었으니, 각서 두 장을 써서 집안의 재산을 모두 그 문서에 기록해두려고 합니다. 저희들이 각자 한 장씩 간직하고 있다가 동생이 한두 해 있다 돌아오게 되면 괜찮지만, 만약 오년 십년이 되도 오지 못하고 그 사이에 만에 하나라도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이 문서가 확실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사돈어른을 청하여 증인이 되셔서 저희들에게 수결을 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이사장은

“그야 물론 해드려야지요.”

하며 응낙하였다. 유천상은 곧 백지 두 장을 꺼내와서 붓을 들어 쓰기 시작했다.

동경(東京) 서관 의정방 주민인 유천상, 동생 유천서와 어린 조카 안주는 흉년을 당해 인구를 줄이기 위해 잠시 각처로 나가있도록 하는 관아의 공문을 받들기로 한다. 동생 천서가 자원하여 처자를 데리고 풍년이 든 타향으로 잠시 나가있기로 한다. 집안의 모든 재산은 나누지 않는다. 이제 각서 두 장을 써서 각자 한 장씩 증거로 간직하기로 한다.

모년 모월 모일 문서 작성자 : 유천상
동생 : 유천서
증인 : 이사장

그 자리에서 각자 수결을 하고 두 형제는 각기 한 장씩 가지고는 이사장을 대접한 후 헤어졌다. 천서는 길일을 택해 행장을 꾸려 형과 형수에게 작별을 고하고 길에 올랐다. 두 형제는 모두 눈물을 흘렸는데, 오직 양씨만은 그들 세 식구가 빨리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던 터라 매우 기뻤다. <선려(仙呂)⋅상화시(賞花時)> 노래 한 곡이 당시의 일을 잘 말해준다.

두 장의 각서 각자 간직하고
하루아침에 헤어지니 근심이 가없구나
고향을 등지고 타향을 향하는 건
단지 흉년 때문인지만
마음이 한번 떠나면 잡아두기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