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롤스톤David Rolston 교수와의 대담

박소현(朴昭賢 成均館大學 副教授) 정리

데이비드 롤스톤 교수. 오른쪽은 아들은 벤자민. 사진 ⓒ 조관희, 2003

현재 미국학계의 중국고전소설 연구는 대체로 두 가지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지배적인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문학이론의 영향 아래 텍스트 자체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시도하는 경향과, 또 한 가지는 작자와 독자의 관계 및 성향 등, 소설 생산과 관련된 텍스트 외적인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그것이다. 물론 후자 또한 독자 반응과 독서 행위 등에 관한 최근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전자와 후자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후자의 연구 경향은 특히 문학사 및 문화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

데이비드 롤스톤 교수의 중국고전소설비평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주로 후자의 연구 경향을 반영한다. 1997년에 출간된 선생의 저서 『중국전통소설과 소설 평점―행간 읽기와 쓰기(Traditional Chinese Fiction and Fiction Commentary: Reading and Writing Between the Lines)』도 역시 『중국고전소설독법(How to Read the Chinese Novel)』(1990)의 편집에 이어, 중국고전소설의 출판․독서 관습․소설 생산에 미친 당대 비평가 및 독자의 기대 지평의 영향 등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이다. 특히 최근에 출간된 선생의 전통적인 소설비평에 대한 저서는 어느 한 작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소설비평 소사(小史)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적으로 다양한 작품들과 비평가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서, 전통적 소설비평의 실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저서들을 통해 널리 알려진 선생의 연구 스타일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백과사전적인 박학다식함”과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고도 철저한, 그러나 통시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문학을 다루는 연구자라면, 롤스톤 교수의 연구 스타일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는 것을 금새 느낄 것이다. 방대한 자료의 섭렵, 자료들에 대한 서지학적 정리 및 체계화와 범주화, 기원의 추적으로부터 전이에 이르기까지 통시적 흐름의 파악에 대한 고집스런 집착(?) 등은 현대 문학연구의 자유분방한 스타일보다는, 오히려 역사 연구나 청대(淸代)의 고증학(考證學)을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연구 자세에 가깝다. 그러기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롤스톤 교수는 패트릭 해넌(Patrick Hanan)과 같이, 타이완(臺灣)의 중국문학연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미국의 “1세대” 중국문학 연구자로 오인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다양한 문학 장르를 넘나드는 선생의 방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대학자에게서 풍기는 “연륜”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선생은 1952년 생으로, 학자로서는 아직 전성기에 이르렀다고 하기에도 젊은 학자이기에, 왕성한 활동력과 함께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어서, 아직도 선생의 연구에서 새로운 전환을 기대해 볼 만하다. 따라서 롤스톤 교수에게 박학함은 단편적 지식의 총합이라기보다는, 역동성을 동반한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의 저서들은 유사 분야의 문학연구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완벽한 목록학적 정리를 제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상들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탁월한 분석력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선생의 연구는 문학 연구자들에게 가장 모범적인 사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롤스톤 교수의 이와 같이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연구 성향은 평소에도 잘 나타난다. 1997년부터 미시간 대학에 재학 중인 필자의 지도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의 세심한 정성과 헌신은 언제나 학생들로 하여금 진지한 학자의 자세에 대해 다시금 생각게 하곤 했다. 특히, 선생이 진행하는 수업은 필자를 비롯한 모든 학생에게 가장 생산적인 대학원 수업 중의 하나로 기억될 정도였다. 1997년 겨울 학기에 『금병매(金甁梅)』 연구 세미나가 있었고, 1998년에는 공안극(公案劇)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는데, 이들 세미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방대한 작품들 자체뿐만 아니라, 그 동안 생산된 중요한 연구 업적의 대부분을 직접 읽고 토론했다는 것이다. 4개월로 한정된 한 학기로는, 그와 같은 방대한 분량을 끝내기는 도저히 불가능할 듯 했었지만, 결국 계획대로 세미나를 끝마칠 수 있었다. 자칫하면, 산만해지기 쉬운 세미나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읽을거리의 모든 세목들을 세심하게 조직하고, 계획하고, 조정하는 선생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었다. 게다가, 모든 문학 연구 방법론 및 주제론으로부터 항상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선생의 균형 감각 덕분에, 필자는 다양한 문학 연구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열린 시각으로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접하기도 했다. 이러한 선생의 문학 수업과 지도는 문학을 주관적인 장르로 여기는 선입견 때문에 경험 많은 연구자들조차 흔히 범하게 되는 지나친 주관성의 추구와 객관적 시각의 결여라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면서, “인문인(人文人)”으로서 보다는 “전문인(專門人)”으로서 가져야 할 철저한 자세를 되새기게끔 만들었다.

롤스톤 교수의 이러한 연구 경향은 사실, 문학연구 자체로부터 보다도, 중국사 연구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사실,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본격적인 중국학 연구는 시카고 대학(The University of Chicago) 대학원 과정에서 비교적 늦게 시작했다고 한다. 시카고 대학에서 선생은 『제국주의 중국에서 성공으로 가는 사다리: 사회 이동의 양상들, 1368~1911(The Ladder of Success in Imperial China: Aspects of Social Mobility, 1368-1911)』(1964)라는 저서로 유명한 빙디 허(Ping-ti Ho) 교수와 함께 『사기』와 『한서』, 『자치통감』을 공부하면서, 중국 문인문화의 특성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선생은 『사기』와 『한서』의 역사서로서의 중요성보다도 서사적 특성에 매료되었으며, 이러한 계기로 당시 시카고 대학에서 『금병매』를 연구하고 있었던 데이비드 로이(David Roy) 교수와 『서유기(西遊記)』의 영역(英譯)을 맡기도 했던 앤쏘니 위(Anthony Yu) 교수와 함께 비로소 중국고전소설에 접근하게 되었다. 처음에 오대사평화(五代史平話)를 연구하게 된 것도 역사서와 소설 장르의 상호영향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의 소설비평에 대한 관심도 또한, 이 시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역사 연구에서 시작한 그의 문학 연구가 평점 등 소설비평에 대한 연구로 기울어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통 사가(史家)들의 역사 편찬에 있어서, 역사비평, 즉 어떻게 역사 사실을 기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중국학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선생이 쌓은 경험은 결국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결실을 맺었다. 『유림외사(儒林外史)』에 대한 선생의 학위 논문(1988)은 천여 페이지에 이르는 거대한 작업이었다. 선생의 최근 저서들의 기초도 실제로는 이미 이 때에 거의 다져진 거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하게 된 타이완과 중국 난징(南京)으로의 유학은 그의 관심 영역을 더욱 넓혀 놓았다. 이 시기에 그는 소설 장르뿐만 아니라 중국 고극(古劇) 장르에도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선생은 중국문학 내에서 소설과 희곡 장르 사이에서 이루어진 활발한 교류에 대해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 펴낸 논문에서 선생은 금병매의 상호텍스트적 특성과 희곡 장르와의 상호 영향을 자세히 다루기도 하였다. 롤스톤 교수의 학문 세계는 이처럼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아직도 미완성의 열린 세계이다. 즉, 아직도 선생은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 과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롤스톤 교수와의 대화는 평소에 학생으로서 그를 대하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인상들을 더욱 새롭게 만들었다. 선생은 언제나 참으로 흔들림이 없는 강건한 인상을 풍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박한 유머 감각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열어 놓고 있었다. 여기에 한 시간 여에 걸친 선생과의 대화를 옮겨 놓는다.

박소현 : 최근에 출간된 선생님의 저서, 『중국전통소설과 소설 평점―행간 읽기와 쓰기(Traditional Chinese Fiction and Fiction Commentary: Reading and Writing Between the Lines)』가 한국에 소개되고, 한국의 많은 중국소설 연구자들이 선생님의 저서와 선생님께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렇게 ‘한국중국소설학회(韓國中國小說學會)’를 대신해 제가 선생님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중국소설학회’는 특히, 올해 1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특별한 기획을 마련하고 있는데, 한 마디 인사 말씀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롤스톤 : 한국에 제 책이 소개되고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니,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게다가, ‘한국중국소설학회’가 10주년을 맞이한다니, 정말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앞으로 한국의 중국소설 연구자들과 많은 교류가 있기를 바라고, ‘한국중국소설학회’가 그러한 역할을 잘 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까지는, 한국과 미국학계의 교류가 미흡한 감이 없지 않지만, 앞으로는 많은 바람직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박소현 : 그러면, 이제 선생님의 연구의 족적을 짚어 보기로 하죠. 중국문학 공부를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아들인 벤자민과 함께 한 롤스톤 교수. 사진 ⓒ 조관희, 2003

롤스톤 : 대학에서 처음 중국어 공부에 관심을 가질 때만 하더라도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가르치는 비(非)서구언어로는 스와힐리어 밖에는 없었어요. 따라서, 처음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 때는 거의 독학을 해야만 했어요. 그러나 중국문화의 고유성과 위대성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기였죠. 그래서 시카고 대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을 때가 거의 본격적인 중국문학 공부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유림외사』에 대해 썼는데, 그 때에도 소설비평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유림외사』는 근대적인 소설로 평가받을 만하지만, 한편, 소설비평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입니다.

박소현 : 중국의 소설비평 전통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롤스톤 : 소설비평 전통에 대한 관심은 고전소설의 구조와 표현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전통적 시각을 알 필요가 있다는 데서 출발했어요. 중국의 소설비평 전통은 이미 16 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소설 비평가들은 소설 텍스트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초기 소설들의 미숙함을 보완한다는 차원에서 텍스트의 수정과 삭제 등, 소설 생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중국 고전소설 연구에서 소설비평의 중요성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처음에 소설비평은 주로 전체 구조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편이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인물 성격의 제시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설비평은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읽는가에 대해 다루는 데 그치지 않았고, 주요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쓰는가였습니다. 소설비평전통에서도 내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작가 혹은 화자(話者)와 비평가의 관계지요. 전통적인 소설비평에서 작가와 비평가는 점점 구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렇지만, 비평가가 작가의 영역을 완전히 점령하고 그들의 창작활동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후대의 작가들 또한 비평가의 간섭에 반기를 들고 도전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측면들, 즉 작가와 독자와 텍스트의 관계는 소설의 줄 사이사이에 씌어진 중국 고전소설비평에서 생생하게 관찰될 수 있습니다.

박소현 : 선생님께서는 소설뿐만 아니라, 중국 고전희곡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롤스톤 : 경극(京劇)에 대한 관심은 1981년부터 1982년까지 국립타이완대학에 있었을 당시에 경극학교 등에서 일하면서 생기기 시작했지요. 경극의 형식, 이해하기 어려운 노래, 상징적인 동작 등 모든 것들에 쉽게 매료되었지요. 더군다나, 이러한 고극은 소설의 창작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1986년 남경에 있었을 때는 중국 당국의 감시 아래 중국학자들과 자유로운 교류가 허락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남경은 옛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라, 전기(傳奇) 등 고극을 연구하기에 좋은 장소였어요. 지금은 이미 소설비평에 대한 연구를 일단 끝내 놓았기 때문에, 희곡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가되고 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박소현 : 선생님께서는 범죄와 처벌 등의 공안(公案) 주제를 가지고 이미 대학원 세미나도 여러 번 했을 만큼 이 주제에 관한 관심이 각별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롤스톤 : 내가 범죄 사건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 내용보다도 범죄 사건을 다루는 소설 및 희곡의 형식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주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중국의 통속문학 작품에서 반복해서 재현되고 있기에 통속문학의 형식 및 내용의 특성을 광범위하게 파악하는 데 가장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지요.

아들인 벤자민과 함께 한 롤스톤 교수. 사진 ⓒ 조관희, 2003

박소현 : 지금 미국학계의 중국 고전소설 연구의 경향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죠.

롤스톤 : 미국의 고전소설 연구는 대체로 두 가지 경향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한 가지는 고전소설의 근대화 및 서양화 현상을 서양의 시각에서 보려는 경향과, 또 한 가지는 중국 고전소설 텍스트가 다루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텍스트 중심의 연구 경향이 그것입니다. 후자의 경향은 그러나, 종종 지나친 분석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어요. 텍스트 전체가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박소현 : 한국의 중국 고전소설 연구에 대해서 한 마디 말씀해 주시죠.

롤스톤 : 한국에서 중국 고전소설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 중요성 또한 과소평가될 수 없으리란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연구가 국외에 잘 소개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학자들이 국제 학술대회에 좀더 활발하게 참여하고, 중요한 연구 성과를 중국어나 영어로 번역한다면, 한국에서의 소설 연구가 국제적으로 평가되고 읽히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지금의 상황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뀌리라고 봅니다.

박소현 : 끝으로 바쁘신 와중에도 틈을 내어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인터뷰를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엮은이 주: 이 글은 원래 『중국소설연구회보』 제36집(1998년 11월)에 실린 것을 엮은이가 수정 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