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서울의 친구에게 또 답장하다又答京友

서울의 친구에게 또 답장하다又答京友

선(善)과 악(惡)은 상대 관계이다. 이는 마치 음(陰)과 양(陽)이 상대 관계이고 부드러움[柔]과 강함[剛]이 상대 관계이고 남(男)과 여(女)가 상대 관계인 것과 같다. 둘이 있으면 상대 관계인 것이 있다. 둘이 있으면 부득불 실상과는 관계없이 허구인 이름이라는 것을 내세워 양자를 분별해야 한다. 장삼이사(張三李四) 같은 것이 그 예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 장삼(張三)은 사람이고 이사(李四)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가능하겠는가?

그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처음 태어난 후에 사용하는 아명(兒名)이 있고, 조금 자라면 정식 이름이 생기고, 성인이 되면 자(字)가 생기고, 또 별도로 호(號)가 있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서너 개의 명칭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을 부르면 휘(諱)1)를 어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윗사람을 말할 때는 모두 그 이름을 피하여 자(字)로 호칭하며, 동년배의 경우에는 자(字)를 피해야 한다고 하여 호(號)로 호칭한다. 이는 호(號)가 이름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만약 (호(號)가) 이름이 아니라면, 단지 호(號)만 이름이 아닌 것이 아니라, 자(字) 역시 이름이 아니며, 휘(諱) 역시 이름이 아니다.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부터 이름과 자(字)를 함께 가지고 온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이름이 있게 되었는가? 또한 어찌하여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구별이 있게 되었는가? 만약 단지 이름일 뿐이라고 한다면, 휘(諱)도 이름이요, 자(字)도 이름이요, 호(號)도 이름이다. 원래 이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휘(諱)를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한단 말인가?

심하구나! 세상 사람들이 미혹에 빠진 것이. 혹자는 그래도 변명삼아 호(號)는 미칭이고 이름은 간혹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회옹(朱晦翁)이라는 호(號)는 결코 아름답지 못하고, 주희(朱熹)라는 이름은 아름답다. 희(熹)란 빛나고 밝은 것을 뜻하고, 회(晦)란 어둑어둑 밝지 않다는 뜻이다. 주자(朱子)가 스스로 겸손의 뜻으로 지었던 호(號)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회암(晦菴)이라고 호칭하면 학자들이 모두 좋아하는데, 만약 주희(朱熹)라고 호칭했다가는 필시 몹시 노하여 칼을 어루만지며 죽이려고 대들기라도 할 것이다. 이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호칭하는 것을 휘(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호칭하는 것을 도리어 좋아하는 것이다. 이는 주자(朱子)가 아름답게 되기를 바라지 않고 주자가 아름답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심하게 본말이 전도될 수 있겠는가?

또한 근래에는 호(號) 역시 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여, 그저 무슨무슨 옹(翁)이니 무슨무슨 로(老)라고 호칭한다. 나이 많은 어른을 뜻하는 옹(翁)으로 호칭하는 것이 사람을 존경하는 뜻이 담긴 것이 될 수 있다면, 할아버지를 뜻하는 야(爺)로 호칭하거나 아버지를 뜻하는 다(爹)로 호칭하는 것 역시 사람을 존경하는 뜻이 담긴 것이 될 수 있다. 야(爺)라는 호칭이 노예들이 주인을 호칭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도, 오늘날 아들이 아버지를 다(爹)라고 호칭하고 손자가 할아버지를 야(爺)라고 호칭한다고 해서 손자가 할아버지의 노예는 아니다. 야(爺)의 의미가 극에 달하면 옹(翁)이 되고, 다(爹)의 의미가 극에 달하면 로(老)가 된다. 옹(翁)이니 로(老)라고 호칭하는 것이 노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니, 단지 아들과 손자만 그렇게 호칭하지 않는 것이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또한 무엇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와 아들과 손자가 된단 말인가?

근래에 들어서 옛 풍속을 조금 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이 혹은 같은 연배끼리 서로 자(字)를 호칭하며, 속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것이 정말로 속되지 않다면, 자(字)를 호칭하는 것이 본래 속되지 않다면, 호(號)를 호칭하는 것 역시 일찍이 속된 적이 없다. 모든 것이 단지 이름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무엇 때문에 세속의 풍습과 같으면 안된단 말인가? 나는 다(爹)나 야(爺)로 호칭해도 역시 안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보자면 이른바 선(善)이니 악(惡)이니 하고 명명(命名)하는 것도 대략 이와 같다. 오직 인(仁)에 뜻을 두어야만 악(惡)으로 명명할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선과 악이 나뉘기 전으로부터 보자면, 그때는 선 또한 없는데, 어찌 악이 있겠는가? 아! “진실로 일에 뜻을 둔 자”[苟志於仁者]가 아니면 그 누가 알 수 있으리오? ‘구’(苟)란 ‘성’(誠)의 뜻이요, 인(仁)은 타고나는 이치이다. 배우는 사람은 악이 없는 것을 알고자 하는가? 나는 아직 인(仁)에 뜻을 두는 학문이란 것을 보지 못했구나!(권1)

1) 이 글에서 휘(諱)는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다’ 또는 ‘(함부로 부르지 않는) 남의 이름’ 두 가지 뜻으로 쓰였다. 후자의 경우에 원래는 생존해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명’(名)이라고 하고 사망한 사람의 이름을 ‘휘’(諱)라고 했다.

李贄墓, 출처 北運通州

卷一 書答 又答京友

善與惡對,猶陰與陽對,柔與剛對,男與女對。蓋有兩則有對。既有兩矣,其勢不得不立虛假之名以分別之,如張三、李四之類是也。若謂張三是人,而李四非人,可歟?不但是也,均此一人也,初生則有乳名,稍長則有正名,既冠而字,又有別號,是一人而三四名稱之矣。然稱其名,則以為犯諱,故長者咸諱其名而稱字,同輩則以字為嫌而稱號,是以號為非名也。若以為非名,則不特號為非名,字亦非名,諱亦非名。自此人初生,未嘗有名字夾帶將來矣,胡為乎而有許多名?又胡為乎而有可名與不可名之別也?若直曰名而已,則諱固名也,字亦名也,號亦名也,與此人原不相干也,又胡為而諱,胡為而不諱也乎?

甚矣,世人之迷也。然猶可委曰號之稱美,而名或不美焉耳。然朱晦翁之號不美矣,朱熹之名美矣。熹者,光明之稱,而晦者晦昧不明之象,朱子自謙之號也。今者稱晦庵則學者皆喜,若稱之曰朱熹,則必甚怒而按劍矣。是稱其至美者則以為諱,而舉其不美者反以為喜。

是不欲朱于美而欲朱子不美也,豈不亦顛倒之甚歟!

近世又且以號為諱,而直稱曰翁曰老矣。夫使翁而可以尊人,則曰爺曰爹,亦可以尊人也。若以為爺者奴隸之稱,則今之子稱爹,孫稱爺者,非奴隸也。爺之極為翁,爹之極為老,稱翁稱老者,非奴隸事,獨非兒孫事乎?又胡為而舉世皆與我為兒孫也耶?近世稍知反古者,至或同儕相與呼字,以為不俗。籲!若真不俗,稱字固不俗,稱號亦未嘗俗也。蓋直曰名之而已,又何為乎獨不可同于俗也?吾以為稱爹與爺亦無不可也。

由是觀之,則所謂善與惡之名,率若此矣。蓋惟志于仁者,然後無惡之可名,此蓋自善惡未分之前言之耳。此時善且無有,何有于惡也耶!噫!非苟志于仁者,其孰能知之?苟者,誠也,仁者生之理也。學者欲知無惡乎?其如志仁之學,吾未之見也歟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