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갈령공이 구슬아씨를 억지로 되돌려 보내다葛令公生遣弄珠兒 1

갈령공이 구슬아씨를 억지로 되돌려 보내다葛令公生遣弄珠兒

춘추오패 중의 하나였던 장왕,
그는 사실 오패 중에서도 으뜸이었지.
다들 여인네 때문에 나라를 망치건만,
여인 대신 인재를 택한 장왕 같은 인물은 정말로 드물지.

얘기할라치면 춘추 시대, 초나라 장왕의 성은 우芋요, 이름은 여旅라, 그는 춘추 오패 가운데 하나였다. 어느 날 장왕이 침전寢殿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미인이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지고 사방이 어두워진 그 때 누군가가 여인의 옷을 더듬었다. 그 미인은 자신의 옷을 더듬은 그 남자의 갓끈 자락을 움켜쥐고는 장왕에게 아뢰기를 갓끈이 풀어헤쳐진 남자를 색출하여 벌주시라 하였다. 장왕은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술을 마시다 춘정이 동함은 보통 남자들이 흔히 있는 일이 아닌가. 내가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장수 하나를 잃을 수야 없는 법. 장수보다 여인을 더 중히 여긴다면 이 역시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 아니랴.”

이에 장왕은 명령을 내렸다.

“오늘 이 술자리가 참으로 즐겁도다. 여러분들도 모두 다 즐거울 것이니 다 갓끈을 풀어헤치고 즐기도록하라. 과인은 갓끈이 풀어헤쳐지지 않은 자들은 잔치를 즐기지 않은 것으로 알겠노라.”

다시 촛불에 불을 붙여 놓고 보니 갓끈이 풀어헤쳐지지 않은 자가 하나도 없으니 그 여인을 희롱한 자가 누구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초나라와 진나라가 전쟁을 하게 되었으니 장왕이 진나라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진퇴양난에 빠져 마침내 적들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던 그 순간 한 장수가 홀연히 나타나 적병을 쳐부수며 장왕을 구출해내었다. 장왕이 나중에 물었다.

사진 출처 gulbransen

“나를 위험에서 구출해준 장수가 누구인가?”

이에 장수 하나가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소신은 예전에 한 여인에게 갓끈이 잘린 적이 있사옵니다. 하나 폐하의 은혜를 입어 벌을 받지 않았으니 이에 신은 죽음으로 폐하를 모시고자 마음먹었나이다.”

장왕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과인이 당시 여인네의 말을 따랐더라면 나를 죽음에서 구해준 장수를 잃을 뻔하였구료.”

후에 초나라는 진나라의 병사를 크게 무찔렀고, 제후들도 진나라에게 등을 돌리고 초나라를 섬기게 되었으니 마침내 장왕은 패자가 되었다.

장수의 갓끈을 끊어낸 미인이여,
어찌 그대 때문에 용맹한 장수를 버리겠는가?
초나라 장왕에게 패자의 기운이 있었음은 하나도 이상치 않으리니,
여산에서 거짓 봉화 올린 유왕과는 비교하지 말지라.

세상 사람들은 속 좁고 도량이 협소하니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자신이 뭔가 대단한 양 자랑하기를 좋아하니 뭐 사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이 죄는 아니라 하더라도 잘못이 까발겨진 사람들이 어찌 그런 사람들을 좋게 생각하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결국 평생 남의 원망을 사게 되는 것이니 자신에게 다급한 일이 생겨도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장왕처럼 남의 허물을 너그럽게 덮어주면 나중에 큰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이 역시 영웅의 풍도로다. 하나 이게 어찌 쉬운 일이랴.

장왕과 같은 인물이 정말 세상에 다시 없을까?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그런 이야기 하나를 또 해드리지요. 그게 누구 이야기인고 하니 당말오대 사람 이야기로소이다. 오대 시대란 게 도대체 뭐냐. 양梁, 당唐, 진晋, 한漢, 주周 이렇게 다섯 조대를 일러 오대라 하는데, 양은 주온朱溫, 당은 이존욱李存勗, 진은 석경당石敬塘, 한은 유지원劉知遠, 주는 곽위郭威가 각각 세웠다.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양나라의 용맹한 장수 갈주葛周로 어려서부터 도량이 바다처럼 넓고 뜻이 산처럼 높으며 힘은 어른 만 명을 당할 만하며 수없는 전쟁을 몸소 겪었도 다. 그는 본디 망탕산芒碭山에서 주온과 같이 병사를 일으킨 자로다. 주온은 당나라로부터 선양으로 받아 양나라를 세우고 황제로 등극한 다음 갈주를 중서령과 절도사에 겸직시키고 연주兗州를 맡아 다스리도록 하였다. 이 연주는 하북과 매우 가깝고 하북은 또 후당 이극용의 근거지였다. 하여 양나라의 태조인 주온은 자기가 특별히 신임하는 갈주에게 연주를 맡아 다스리면서 하북과 대치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하북 사람들은 갈주를 두려워하고도 존경하여 이런 말들을 하였다고 한다.

산동에 칡(갈주의 성인 갈이 바로 칡이라는 의미임)이 한 줄기 있으니,
무사히 지내고 싶으면 그 칡 줄기를 건들지 마시게나.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갈령공(칡 어른)이라 불렀다. 그 휘하에는 날랜 병사가 10만이요, 싸움 잘하는 장수가 구름 같았다. 그중에서도 성이 두 자로 신도申徒라 불리며 이름이 한 글자로 태泰라 불리는 자가 있었으니 그자는 사수泗水 사람으로 키가 칠 척이요, 위용이 당당하고 칼도 잘 쓰고 활도 잘 쏘았다. 갈령공의 눈에 들기 전에 신도태는 갈령공 휘하의 호위 병사를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갈령공이 증산甑山으로 사냥을 떠난 날 신도태가 사슴 한 마리를 쏘아 맞추었고 이때 갈령공 휘하의 무술 교관들이 달려와 그것이 자신들이 쏘아 맞춘 것이라고 우겨대었다. 신도태는 혈혈단신으로 그들을 싸워 이기고는 그 사슴을 들춰 매고는 갈령공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벌을 청하였다. 갈령공이 신도태를 보니 용기도 가상하고 힘 또한 장사인지라 아무 말하지 않고 그저 그를 언젠가는 중용하리라 하는 마음을 다져먹었다.

다음 날 교장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있는 신도태를 보고서 갈령공은 크게 칭찬하고 난 다음 그를 우후虞侯 자리에 봉하고 늘 자기를 옆에서 수행하도록 하였다. 더불어 군사문제에 관한 모든 것을 맡기고 그의 의견을 존중하여주었다. 한편 신도태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직 장가도 들지 않은 처지이므로 갈령공 댁의 곁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갈령공을 모셨다. 갈령공 집에서 갈령공을 호위하는 병사들 사이에 신도태는 ‘방장房長(호위대장)으로 불렸다. 병사들이 그를 방 장이라 부르는 바람에 신도태의 상사든 아랫사람이든 모두 따라서 그를 방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소하는 진나라의 옥을 다스리는 관리였고,
한신은 한때 창을 들고 궁을 호위하는 관리였다네.
애벌레로 살 것인가, 용이 되어 날아갈 것인가는 지인을 만나고 못 만나느냐에 달려 있을 뿐,
사내대장부에게 뉘 집 자손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네.

한편,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뉘어, 갈령공에게는 애첩이 많았으니 애첩들 때문에 그 넓은 집 이 다 좁아 보일 정도였다. 하여 갈령공은 지관을 시켜 좋은 집터를 고르게 하여 동남쪽의 길지 에 사무실 겸 관사를 엄청난 규모로 새로 짓게 하였는데 1년을 기한으로 하고 그 총책임은 신도태가 맡도록 하고 매일 두 차례씩 직접 현장을 가보도록 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청명절, 모든 남녀들이 집에서 나와 푸른 들판을 유람하고 사람들이 곳곳을 누비며 경치를 구경하곤 하였다. 갈령공은 악운루嶽雲樓에서 연회를 베풀도록 하였다. 이 악운루 는 연주성에서 가장 높은 누각이었다. 갈령공은 애첩들을 거느리고서 누각에 올라 경치를 감상 하였다. 갈령공의 수많은 애첩 가운데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이름이 바로 농주아弄珠兒였다. 농주아의 생김새가 어떠하였던고?

가을날 맑은 물처럼 맑고 투명한 눈,
멀리 두 봉우리의 산처럼 생긴 두 눈썹,
앵두 같은 입술,
버들가지처럼 가늘고 하늘거리는 허리.
요염함은 양귀비 못지않고,
날씬하고 어여쁨은 조비연1) 못지않도다.
선녀가 인간 세상에 강림한 듯,
서시와 남위보다도 더 아름다운 저 여인이여.

갈령공은 농주아를 아끼고 또 아껴서 낮이면 늘 자기 옆에서 시중들게 하고 밤이면 자신의 침실을 오로지 농주아하고만 나눴다. 갈령공 집안의 권속들은 모두 그녀를 구슬아씨(珠兒)라고 불렀다. 이날에도 농주아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악운루 연회에 참석하였다. 이때 신도태 역시 새로 짓는 건물의 진행상황을 보고하러 악운루에 있는 갈령공을 찾았다. 갈령공이 신도태를 불러 누대로 올라오게 하여 연꽃 장식이 아로새겨진 술잔에 연거푸 석 잔 을 따라 주며 마시게 하였다. 신도태는 갈령공에게 감사하다 인사를 올리고 받아마셨다. 그러고는 갈령공 옆에 배석하여 서 있었다. 신도태가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갈령공의 애첩이 눈에 들어오는데 맑은 눈동자에 하얀 치아, 요염함은 그 누구라도 비길 자가 없을 정도였다. 신도태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다 있단 말인가? 천상에서 하강한 선녀로다.”

신도태는 바야흐로 한참 혈기방강한 나이, 형편이 어려워 아직 장가도 들지 못한 처지에다 평 소에 갈령공에게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고, 특히 농주아라는 여인이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와서 언제고 한 번 보았으면 하고 바라왔다. 그런데 이렇게 면전에서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을 보게 되니 이 여인이 바로 농주아인가 보다 하고 짐작하였다. 정신이 오락가락 가슴이 두근두근 눈길은 온통 그녀에게만 향하고 또 향하였다. 신도태는 그 여인에 눈이 팔리고 정신이 팔려서 갈령공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도 듣지 못하였다.

“방장, 그래 공사는 언제쯤 끝날 것 같소? 아, 신도태, 신도태! 공사가 언제쯤 끝날 것 같은가?”

이렇게 몇 차례나 물었으나 신도태는 묵묵부답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호라, ‘정신이 팔리면 다른 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지 않는가? 신도태는 그 여인에게 정신이 팔려 다른 소리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었다. 자신의 주인인 갈령공이 뭐라고 묻는 것인지도 전혀 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갈령공은 신도태가 자신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눈길도 한 번 돌리지 않는 것을 보고서는 대충 상황을 짐작하였다. 갈령공은 너털웃음을 짓고서 술자리를 어서 마무리하라고 서둘러 분부하였다. 갈령공은 신도태를 더 이상 찾지도 부르지도 문제 삼지도 않았다.

한편, 갈령공을 옆에서 시중하던 병사와 장교들은 신도태가 갈령공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손에 땀을 쥐면서 걱정하였다. 갈령공이 그 자리에서 불호령을 내리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그래도 신도태에게 몇 마디 해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신도태는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사색이 되어버렸다.

“아이고, 내 목숨이 이제 오래가지 못하겠구나. 내가 어쩌자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였던고.”

신도태는 밤새 고민에 사로잡혔다.

시비는 쓸데없이 입을 놀려서 생기는 것이고,
고민거리는 모두가 노련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라.

1) 조비연趙飛燕, 한나라 성제成帝(B. C. 33 – B. C. 7 재위)의 황후였으며, 미색을 겸비하여 전통시기 중국 미인의 대명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