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즈카이豊子愷-기차 속 세상車廂社會

기차 속 세상車廂社會

내가 처음 기차를 탄 것이 열예닐곱살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이다. 그 전부터 일찌감치 기차는 다니고 있었지만, 우리 고향이 기차 역에서 30리나 떨어져 있어서, 평소 그저 그 이름만 들었을 뿐, 기차를 보거나 타러 갈 기회가 없었다. 열예닐곱살 때, 고향의 소학교를 졸업하고 항주(杭州)로 중등학교 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다. 그제서야 처음으로 기차를 보기도 하고 타기도 했다. 그 전에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었다. “기차가 얼마나 무섭다구. 철로 위를 걷다가 까딱 잘못하면 몸이 깔려 두 동강이 난다니까.” 이런 말도 들었다. “기차는 말도 못하게 빠르다구. 기차 안에 앉아서 창밖 전봇대를 보면 꼭 울타리처럼 휙휙 지나가지.” 나는 그런 말을 듣고 기차를 상상해 보았는데, 거의 포탄 유성같이 사납고 당돌한 모습이 떠올라, 무섭기만 했다. 그러나 나중에 보기도 하고 타기도 하니, 그냥 그저 그랬다. 세상 일이라는 게 종종 그렇다.

그때 처음으로 기차를 탄 이후 20여년 동안 나는 끊임없이 기차와 관계를 맺었다. 적어도 매년 서너 차례는 탔으며, 매달 서너 차례 탈 때도 있었고, 많을 때는 매일 서너 차례 타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건 강만(江灣)에서 상해(上海)까지 다니는 작은 기차였다.) 지금까지 기차를 탄 횟수를 이루 다 셀 수는 없다. 기차를 탈 때마다 늘 이런저런 느낌이 있었다. 만약 매번 기차를 내렸을 때마다 기차를 탔을 때의 느낌을 기록했다면, 지금까지 아마 수백만 자 이상의 분량이 쌓였을 것이며, 어마어마한 기차 승차 전집을 출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기록할 시간과 능력이 내게 어디 있었겠는가? 다만 과거에 기차를 탔을 때의 심경을 회상해보면,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기록을 해보겠는데, 반은 스스로 즐기기 위한 것이고, 반은 기차를 타본 경험이 있는 이 세상의 독자들도 기차를 타면서 나하고 똑같이 생각했는지 한 번 얘기해보기 위한 것이다.

첫째 시기는 처음 기차를 타는 시기이다. 그때에는 기차를 탄다는 것은 나로서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었다. 자기 몸이 커다란 나무상자에 실리고, 기계가 그 커다란 나무상자를 끌고 미친 듯이 달리는 그런 경험은 내가 그때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니, 어찌 신기하고 재미있지 않을 수 있으랴? 그때, 차표를 산 나는 차가 빨리 오기를 열렬히 바랐다. 차를 타면 언제나 창가 쪽 좋은 자리를 골라 앉았다. 그래야만 창밖에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먼 경치와 순식간에 천변만화하는 가까운 경치와 크고 작은 정거장을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년 사철 늘 똑같은 집에서 살다가 그 광대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을 보게 되니 끝없는 흥미가 생겼다. 기차 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너무 빨리 도착하는 게 싫었고, 내릴 때는 아쉬웠다. 나는 오랫동안 탈 수 있는 장거리 기차를 타는 게 좋았다. 제일 좋은 건 완행열차를 타는 것이었다. 차를 타는 시간이 제일 길고, 역마다 모두 서서,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차를 탄 승객들도 저마다 나처럼 유쾌한 것을 보니, 저마다 그렇게 기차를 탄 새 생활을 목적없이 즐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 기차역은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하나하나가 마치 무릉도원의 입구 같았다. 등에 온통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짐을 메고 있는 사람, 기차를 타려고 숨을 헐떡이며 미친 듯이 달려오는 사람, 짐을 짊어지고 황급히 내리는 사람, 빨강 초록 깃발을 들고 운전을 지휘하는 사람, 내가 보기에는 모두 재미있는 놀이를 하거나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세상은 정말 커다란 놀이터이고, 기차를 타는 것은 정말 유쾌하기 짝이 없는 즐거움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시기가 아주 짧아, 즐거웠던 것이 오래 가지 않아 고생스런 것으로 변했다.

둘째 시기는 기차를 자주 타고 다니던 시기이다. 모든 것에 염증이 나, 기차 타는 것이 나로서는 지겨운 일로 변했다. 전에는 차표를 사면 차가 빨리 오기를 열렬히 바랐다. 이때도 차가 빨리 오기를 바라긴 했는데, 열렬하게가 아니라 초조하게였다. 제발 그게 빨리 와서 나를 목적지로 실어다주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전에는 차에 오르면 창가 쪽 좋은 자리를 골랐는데, 이제는 개의치 않고, 그저 자리만 있으면 됐다. 전에는 차 안에서 끊임없이 창 안팍 사람과 경치를 구경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고, 차에만 올랐다 하면 주위 경치가 움직이는지 가만 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한 권 꺼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오직 책에 머리를 파묻고 들여다보았다. 늘 기차를 타다 보니 모든 것이 이미 익숙하게 본 것이라, 그런 천편일률적인 것들에는 아무 볼거리가 없으니, 차라리 그 길고 무료한 시간을 이용하여 공부라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공부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었다. 책을 보다가 피곤해질 때마다, 책을 아주 많이 본 것 같은데도 겨우 두 정거장밖에 지나지 않았나 하며, 기차가 너무 느리게 가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때는 차를 탄 모든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입장인 듯, 모두 초조하게 차간에 앉아서 목적지에 도착하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차창에 기대어 이것저것 가리키며 담소하는 아이들을 보면 유치하게 생각했고, 처음 집을 나서서 보는 것마다 그렇게 신기해하는 것은 천박하고 우습다고 생각했다. 때로 창 밖에서 비행기가 지나가면 차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구경했는데, 나도 그저 사람들을 따라 슬쩍 돌아보고 곧장 책에 머리를 묻었다. 결국, 그때 나는 형식상으로는 기차를 탔지만 정신상으로는 세상을 벗어나 혼자 서 있는 듯, 그전처럼 스스로의 서재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세상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고, 즐길 만한 것은 없고 오직 번민․피곤․고통만이 존재하는 것이, 기차 타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는 상당히 오래 이어져, 중년에 깊이 들어서서야 멈추었다.

셋째 시기는 기차를 타는 게 습관이 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많이 타다 보니, 마냥 그렇게 지겨워만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도 순리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니 심경이 변하여, 이전에 지겹게 보았던 것들도 새로 의미를 지니기 시작하여, 마치 “온고지신”이 된 것 같았다. 처음 기차를 탈 때는 즐거웠고, 나중에 괴로움으로 변했고, 마지막에 또 즐거움으로 변하니, 마치 “노인이 회춘한” 것 같았다. 처음에는 기차 타서 경치 보는 것을 좋아했고, 나중에는 머리를 파묻고 책을 보고, 마지막에는 또 책을 보지 않고 경치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번에 보기를 좋아한 것은 처음에 보기를 좋아한 것과 성격이 달랐다. 처음에 본 것은 모두 기쁜 것이었고, 나중에 본 것은 대다수가 놀라운 것, 우스운 것, 슬픈 것이었다. 머리 파묻고 책을 보는 것보다 놀라운 것, 우스운 것, 슬픈 것을 발견하는 것에서 더 많은 흥미를 느꼈을 뿐이다. 그래서 전자의 환희는 정말로 “환희”인 셈이라, 영어로 옮기면 “happy”나 “merry”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후자는 “like”나 “fond of”일 뿐으로, 진심의 환락이 아니었다. 사실 이는 원래 비교에서 나온 결과이다. 책을 보자하니, 기차 타는 번민을 싹 잊고 재미에 빠지게 할 만한 좋은 책이 사실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차 속 세상의 갖가지 인간상이 도리어 살아 있는 좋은 책이어서, 때때로 나에게 새로운 page를 펼쳐주었다. 기차 타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아마도 나의 이 말에 어느 정도 동감하는 부분이 있으리라!

기차 속 세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그만 두고, 각각의 사람의 자리만 보아도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똑같이 표를 한 장 샀는데, 어떤 사람은 줄곧 거리낌없이 누워, 대여섯 명 자리를 혼자서 차지하고 간다. 자리를 찾는 사람이 오면 안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일부러 코고는 소리를 내거나, 환자인 것처럼 가장하거나, 손을 들어 저쪽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앞쪽에 텅텅 비었어요, 앞쪽에 텅텅 비었어요.”

착하고 순진한 시골 사람은 대체로 그의 말을 믿고, 그가 편히 자도록 놔두고, 짐을 짊어지고 그가 가리킨 앞쪽으로 “텅텅 빈” 자리를 찾아서 간다. 어떤 사람은 자기 좌우의 두 자리를 차지하게 짐을 나누어 놓아서, 자기 호위대로 삼는다. 그게 네모난 가죽 상자면 차탁자로 쓰기도 한다. 자리를 찾는 사람이 오면, 죽어라 하고 고개를 파묻고 신문을 본다. 상대방이 서슴없이 그에게 의견을 제시한다.

“선생, 미안합니다만, 그 상자를 위에 올려놓고 같이 좀 앉지요!”

그는 먼 곳을 가리키며 거들먹거리는 말투로 거절한다.

“저기도 좋은 자리 많은데, 왜 꼭 여기 앉으려는 거요?”

그리고는 아랑곳 않고 신문을 본다. 착하고 순진한 시골 사람은 대체로 더 이상 부탁하지 않고, 그가 짐의 호위 속에 앉아서 신문을 보게 하고, 아이를 안고 그가 가리킨 저쪽으로 “좋은 자리”가 있는 곳을 찾아서 간다. 어떤 사람은 짐도 없는데 몸을 비비 틀어 엉덩이 한쪽과 허벅지 한쪽이 두 사람 자리를 차지하게 하고, 유유자적 창에 기대 담배를 피운다. 그는 큰 거북이 등딱지같은 등 부분을 오른쪽 사람을 향하게 하고, 왼쪽 허벅지를 가로로 턱 걸쳐 왼쪽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는다. (역주: 당시의 기차는 세로로 좌석을 배열하여, 양쪽 창가에 기대게 각각 길게 한줄 의자가 놓이고, 중간에 등과 등이 맞닿게 길게 두 줄 의자가 놓였다. 세로로 긴 의자 네 줄이 각각 마주보게 설치된 셈이다.) 그 허벅지가 차지한 공간은 완전히 그의 소유여서, 거기서 조용히 담배도 피우고 신문도 보곤 한다. 자리를 찾는 사람이 와서 마주치면 신문지를 허벅지에 쌓아놓고 창 밖으로 머리를 밀어내, 보지도 못한 척 듣지도 않은 척 한다. 허벅지 책략을 쓰지 않고 책과 모자 등을 자기 옆 자리에 놓는 술수를 쓰는 사람도 있다. 자리를 찾는 사람이 와서 치워달라고 그에게 부탁하면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착하고 순진한 시골 사람은 대체로 그의 말을 믿게 마련, 그가 말한 그 “사람”이 앉도록 그 빈 자리를 남겨두고, 노인을 부축하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찾아서 간다. 자리를 찾지 못하면, 짐을 출입구에 놓아두고 자기가 짐 위에 앉거나, 아이를 안고 노인을 부축하고 WC 문 앞에 서 있다. 검표원이 오면, 자리 차지하고 누운 사람이나 허벅지나 모자로 자리를 다 차지한 사람에게는 뭐라고 하지도 않으면서, 오가는 데 방해가 된다며, 짐 위에 앉은 사람과 아이를 안고 노인을 부축하고 WC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몇 마디 욕을 내뱉는다.

그런 기차 속 세상의 모습을 보자면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모두 똑같이 돈 내고 똑같은 표를 샀으니까, 분명히 한결같이 평등한 승객인데, 어떻게 그런 불평등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놀랍다. 억지로 자리를 차지한 그 사람들은 자기 하나만의 구차한 편안을 꾀하여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고 연기를 하는데, 나중에는 결국 그 좋은 자리를 버리고 가야 한다는 것이 우습다. 기차를 탄 시간 내내, 착하고 순진한 승객들이 고생고생하게 하고, 그들은 끝까지 그저 입구의 짐 위에 앉거나 아이를 안고 노인을 부축하고 WC 입구에 서 있으면서, 게다가 검표원에게 몇 마디 욕을 얻어먹어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

기차 속 세상에서 자리와 관련된 이런 점만 봐도 충분히 경탄하고도 남는다. 하물며 그밖의 갖가지 모습이야 말할 필요 있겠는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인간 사회의 모든 모습이 기차 속 세상에 축소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차를 타면 책을 볼 필요없이 그저 기차 속 세상을 인간 세상의 모형이라고 간주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기차를 타고 다닌 세 시기의 나 자신의 심경을 회상해봐도 역시 놀랍고, 우습고, 슬프다. 처음 기차를 탔을 때부터, 자주 타고 다니던 때를 거쳐, 기차를 타는 게 습관이 된 시기까지, 시간의 순서에 따른 변화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 놀랍다! 알고 보니 기차 타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그저 보통 일이었다는 것이 우습다. 어렸을 때 “전봇대가 나무 울타리같기도 하고” 정거장이 무릉도원같기도 하다고 생각한 것도 물론 우습고, 나중에 그걸 그렇게 지겨워해서 책에 머리를 파묻은 것도 마찬가지로 우습다. 기차 타는 것에 대해 지난날 환희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기차 속 세상의 괴이한 모습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 슬프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외국에서 탔던 기차를 동경한다. 그 기차간에선 아주 질서가 있었고, 지금 보는 것과 같은 괴이한 광경이 전혀 없었다. 그때 우린 차간에서 아무 고충이란 걸 모르고 오직 여행의 즐거움만 느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일로, 지금 세상에서는 그런 기차 속 세상을 더 이상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저께 한 친구와 기차에서 내렸다. 역을 나온 뒤에 그가 내게 신시(新詩)처럼 몇 구절을 읊었는데, 아직 그걸 기억하고 있다. 지금 여기 적음으로써 결말을 삼는다.

인생은 차 타기
일찍 타서 일찍 내리기도 하고
늦게 타서 늦게 내리기도 하고
일찍 타서 늦게 내리기도 하고
늦게 타서 일찍 내리기도 하고
차에 올라타면 자리를 다투고
차에서 내리면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차에서는 차표를 잘 보관해서
내릴 때 차표를 원래 그대로 돌려줘야지.

1935년 3월 26일
(《車廂社會》에서 선록, 1935년 7월, 上海良友圖書印刷公司)
《豊子愷代表作》, 1998년 1월 초판, 北京, 華夏出版社

車廂社會

我第一次乘火車,是在十六七歲時,即距今二十餘年前。

雖然火車在其前早已通行,但吾鄉離車站有三十里之遙,平時我但聞其名,卻沒有機會 去看火車或乘火車。十六七歲時,我畢業於本鄉小學,到杭州去投考中等學校,方才第一次 看到又乘到火車。以前聽人說:「火車厲害得很,走在鐵路上的人,一不小心,身體就被碾 做兩段。」又聽人說:「火車快得邪氣,坐在車中,望見窗外的電線木如同柵欄一樣。」我 聽了這些話而想像火車,以為這大概是炮彈流星似的兇猛唐突的東西,覺得可怕。但後來看 到了,乘到了,原來不過爾爾。天下事往往如此。

自從這一回乘了火車之後,二十餘年中,我對火車不斷地發生關係。至少每年乘三四次 ,有時每月乘三四次,至多每日乘三四次。(不過這是從江灣到上海的小火車)一直到現在 ,乘火車的次數已經不可勝計了。每乘一次火車,總有種種感想。倘得每次下車後就把乘車 時的感想記錄出來,記到現在恐怕不止數百萬言,可以出一大部乘火車全集了。然而我哪有 工夫和能力來記錄這種感想呢?只是回想過去乘火車時的心境,覺得可分三個時期。現在記 錄出來,半為自娛,半為世間有乘火車的經驗的讀者談談,不知他們在火車中是否乍如是想 的?

第一個時期,是初乘火車的時期。那時候乘火車這件事在我覺得非常新奇而有趣。自己 的身體被裝在一個大木箱中,而用機械拖了這大木箱狂奔,這種經驗是我向來所沒有的,怎 不教我感到新奇而有趣呢?那時我買了車票,熱烈地盼望車子快到。上了車,總要揀個靠窗 的好位置坐。因此可以眺望窗外旋轉不息的遠景,瞬息萬變的近景,和大大小小的車站。

一年四季住在看慣了的屋中,一旦看到這廣大而變化無窮的世間,覺得興味無窮。我巴 不得乘火車的時間延長,常常嫌它到得太快,下車時覺得可惜。我歡喜乘長途火車,可以長 久享樂。最好是乘慢車,在車中的時間最長,而且各站都停,可以讓我盡情觀賞。我看見同 車的旅客個個同我一樣地愉快,彷彿個個是無目的地在那裡享受乘火車的新生活的。我看見 各車站都美麗,彷彿個個是桃源仙境的入口。其中汗流滿背地扛行李的人,喘息狂奔的趕火 車的人,急急忙忙地背著箱籠下車的人,拿著紅綠旗子指揮開車的人,在我看來彷彿都幹著 有興味的遊戲,或者在那裡演劇。世間真是一大歡樂場,乘火車真是一件愉快不過的樂事! 可惜這時期很短促,不久樂事就變為苦事。

第二個時期,是老乘火車的時期。一切都看厭了,乘火車在我就變成了一樁討嫌的事。 以前買了車票熱烈地盼望車子快到。現在也盼望車子快到,但不是熱烈地而是焦灼地。意思 是要它快些來載我赴目的地。以前上車總要揀個靠窗的好位置,現在不拘,但求有得坐。以 前在車中不絕地觀賞窗內窗外的人物景色,現在都不要看了,一上車就拿出一冊書來,不顧 環境的動靜,只管埋頭在書中,直到目的地的達到。為的是老乘火車,一切都已見慣,覺得 這些千篇一律的狀態沒有甚麼看頭。不如利用這冗長無聊的時間來用些功。但並非歡喜用功 ,而是無可奈何似的用功。每當看書疲倦起來,就埋怨火車行得太慢,看了許多書才走得兩 站!這時候似覺一切乘車的人都同我一樣,大家焦灼地坐在車廂中等候到達。看到憑在車窗 上指點談笑的小孩子,我鄙視他們,覺得這班初出茅廬的人少見多怪,其淺薄可笑。有時窗 外有飛機駛過,同車的人大家立起來觀望,我也不屑從眾,回頭一看立刻埋頭在書中。總之 ,那時我在形式上乘火車,而在精神上彷彿遺世獨立,依舊籠閉在自己的書齋中。那時候我 覺得世間一切枯燥無味,無可享樂,只有沉悶、疲倦、和苦痛,正同乘火車一樣。這時期相 當地延長,直到我深入中年時候而截止。

第三個時期,可說是慣乘火車的時期。乘得太多了,討嫌不得許多,還是逆來順受罷。 心境一變,以前看厭了的東西也會從新有起意義來,彷彿「溫故而知新」似的。最初乘火車 是樂事,後來變成苦事,最後又變成樂事,彷彿「返老還童」似的。最初乘火車歡喜看景物 ,後來埋頭看書,最後又不看書而歡喜看景物了。不過這會的歡喜與最初的歡喜性狀不同: 前者所見都是可喜的,後者所見卻大多數是可驚的,可笑的,可悲的。不過在可驚可笑可悲 的發見上,感到一種比埋頭看書更多的興味而已。故前者的歡喜是真的「歡喜」,若譯英語 可用happy或merry1。後者卻只是like或「快樂」或「愉悅」。

fond of,不是真心的歡樂。實際,這原是比較而來的;因為看書實在沒有許多 好書可以使我集中興味而忘卻乘火車的沉悶。而這車廂社會裡的種種人間相倒是一部活的好 書,會時時向我展出新穎的page來。慣乘火車的人,大概對我這話多少有些兒同感的 吧!

不說車廂社會裡的瑣碎的事,但看各人的坐位,已夠使人驚歎了。同是買一張票的,有 的人老實不客氣地躺著,一人佔有了五六個人的位置。看見找尋坐位的人來了,把頭向著裡 ,故作鼾聲,或者裝作病了,或者舉手指點那邊,對他們說「前面很空,前面很空」。和平 謙虛的鄉下人大概會聽信他的話,讓他安睡,背著行李向他所指點的前面去另找「很空」的 位置。有的人教行李分佔了自己左右的兩個位置,當作自己的衛隊。若是方皮箱,又可當作 自己的茶几。看見找坐位的人來了,拚命埋頭看報。對方倘不客氣地向他提出:

「對不起,先生,請把你的箱子放在上面了,大家坐坐!」他會指著遠處打官話拒絕他 :「那邊也好坐,你為甚麼一定要坐在這裡?」說過管自看報了。和平謙讓的鄉下人大概不 再請求,讓他坐在行李的護衛中看報,抱著孩子向他指點的那邊去另找「好坐」的地方了。 有的人沒有行李,把身子扭轉來,教一個屁股和一支大腿佔據了兩個人的坐位,而悠閒地憑 在窗中吸煙。他把大烏龜殼似的一個背部向著他的右鄰,而用一支橫置的左大腿來拒遠他的 左鄰。這大腿上面的空間完全歸「喜歡」或「愛好」。

他所有,可在其中從容地抽煙,看報。逢到找尋坐位的人來了,把報紙堆在大腿上,把 頭攢出窗外,只作不聞不見。還有一種人,不取大腿的策略,而用一冊書和一個帽子放在自 己身旁的坐位上。找坐位的人倘來請他拿開,就回答他說「這裡有人」。和平謙虛的鄉下人 大概會聽信他,留這空位給他那「人」坐,扶著老人向別處去另找坐位了。找不到坐位時, 他們就把行李放在門口,自己坐在行李上,或者抱了小孩,扶了老人站在WC1的門口。查 票的來了,不干涉躺著的人,以及用大腿或帽子占坐位的人,卻埋怨坐在行李上的人和抱了 小孩扶了老人站在WC門口的人阻礙了走路,把他們罵脫幾聲。

我看到這種車廂社會裡的狀態,覺得可驚,又覺得可笑、可悲。可驚者,大家出同樣的 錢,購同樣的票,明明是一律平等的乘客,為甚麼會演出這般不平等的狀態?可笑者,那些 強佔坐位的人,不惜裝腔、撒謊,以圖一己的苟安,而後來終得捨去他的好位置。可悲者, 在這乘火車的期間中,苦了那些和平謙虛的乘客,他們始終只得坐在門口的行李上,或者抱 了小孩,扶了老人站在WC的門口,還要被查票者罵脫幾聲。

在車廂社會裡,但看坐位這一點,已足使我驚歎了。何況其他種種的花樣。總之,凡人 間社會裡所有的現狀,在車廂社會中都有其縮圖。故我們乘火車不必看書,但把車廂看作人 間世的模型,足夠消遣了。

回想自己乘火車的三時期的心境,也覺得可驚,可笑,又可悲。可驚者,從初乘火車經 過老乘火車,而至於慣乘火車,時序的遞變太快!可笑者,乘火車原來也是一件平常的事。 幼時認為「電線同木柵欄一樣」,車站同桃源一樣固然可笑,後來那樣地厭惡它而埋頭於書 中,也一樣地可笑。可悲者,我對於乘火車不復感到昔日的歡喜,而以觀察車廂社會裡的怪 狀為消遣,實在不是我所願為之事。

於是我憧憬於過去在外國時所乘的火車。記得那車廂中很有秩序,全無現今所見的怪狀 。那時我們在車廂中不解眾苦,只覺旅行之樂。但這原是過去已久的事,在現今的世間恐怕 不會再見這種車廂社會了。前天同一位朋友從火車上下來,出車站後他對我說了幾句新詩似 的東西,我記憶著。現在抄在這裡當做結尾:

有的早上早下,
有的遲上遲下,
有的早上遲下,
有的遲上早下。
上了車紛爭坐位,
下了車各自回家。
在車廂中留心保管你的車票,
下車時把車票原物還他。 

1935年 3月 26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