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핑위안陳平原 교수와의 대담

이등연(李騰淵 全南大 中文科 敎授) 진행/정리

천핑위안 교수, 사진 ⓒ 조관희, 2001

[진행자의 말] 천핑위안 교수는 1954年 중국 광둥성(廣東省) 차오저우(潮州)에서 출생했고, 1982년 1월 중산대학(中山大學)에서 학사학위를, 1984년 6월 중산대학(中山大學)에서 문학석사학위를, 1987년 6월 베이징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부터 베이징대학 중문과(中文系)에서 강사로, 1990년부터 부교수로 재직한 후, 1992년부터 지금까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중이며, 현재 박사지도교수,중문과(中文系) 현대문학교연구실 주임, ‘베이징대학이십세기중국문화연구중심학술위원회(北京大學二十世紀中國文化硏究中心學術委員會)’ 주임 등을 맡고 있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일본 학술진흥회 방문학자 자격으로 도쿄(東京)대학과 교토(京都)대학에서, 1997년에는 미중학술교류기금회(美中學術交流基金會) 초청으로 컬럼비아대학에서 각각 연구에 종사한 바 있다. 그의 학문적 성과는 일찍이 ‘국가교위(國家敎委)’와 ‘국무원학위위원회(國務院學位委員會)’에서 “두드러진 공헌을 이룬 중국박사학위 취득자(作出突出貢獻的中國博士學位獲得者)(1991)로 평가되었고, 1995년과 1998년에 제1차 및 제2차 ‘전국고교인문사회과학연구우수성과장(全國高校人文社會科學硏究優秀成果獎)’을 수여받기도 했다.

주요 저작으로 『재동서방문화팽당중(在東西方文化碰撞中)』(1987), 『중국소설서사모식적전변(中國小說敘事模式的轉變)』(1988), 『이십세기중국문학삼인담(二十世紀中國文學三人談)』(合著,1988), 『이십세기중국소설사(二十世紀中國小說史)』第一卷(1989), 『천고문인협객몽무협소설류형연구(千古文人俠客夢武俠小說類型硏究)』(1992), 『소설사:이론과실천(小說史:理論與實踐)』(1993), 『학자적인간정회(學者的人間情懷)』(1995), 『진평원소설사논집(陳平原小說史論集)』(1997),『진평원학술자선집(陳平原學術自選集)』(1997), 『중국현대학술지건립(中國現代學術之建立)』(1998), 『노배대적고사(老北大的故事)』(1998), 『中華文化通志․散文小說志』(1998), 『文學史的形成與建構』(1999), 『觸摸歷史五四人物與現代中國』(主編,1999), 『北大精神及其他』(2000)등이 있다. 또한, 이상의 학술 작업외에도 『書里書外』, 『大書小書』, 『書生意氣』, 『閱讀日本』, 『漫卷詩書』, 『游心與游目』등의 수필․산문집이 있으며, 1991년부터 학술의 대중화라는 취지에서 몇 동인들과 인문학연구집 『학인(學人)』과 문학연구집 『문학사』를 편집해오고 있다. 이상 저작 가운데 『중국소설서사모식적전변(中國小說敘事模式的轉變)』이 『중국소설서사학』(이종민 역, 도서출판 살림:1994)이란 이름으로 국내에 번역․소개되어 상당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아래 글은 필자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남대학교 인문과학대학 특성화사업위원회와 전남대 인문과학연구소가 지난 6월 2일 공동주최한 “새 천 년, 세계 속의 인문학”이란 제목의 ‘인문학 국제학술대회’에 중국 지역 발표자 자격으로 초청된 천핑위안 교수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등연 : 우리가 처음 만난 게 1998년 여름 베이징 천(陳) 교수 집에서였는데, 두 해 만에 이렇게 제가 사는 광주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한층 반갑군요.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는 갔던 걸로 알지만, 한국은 처음이죠?

천핑위안 :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운 나라지만 한국은 처음 길입니다. 꼭 한 번 오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마련되어 참 기뻤습니다.

이등연 : 이틀 동안 광주와 부근 지역을 함께 여행했는데, 특별한 소감이라도?

천핑위안 : 짧은 일정이었지만 화엄사(華嚴寺)․천은사(泉隱寺)에서는 한국 불사(佛寺)의 정취를, 남원 광한루에서는 그 유명한 ‘춘향전’의 문학적 배경을, 담양 가사문학(歌辭文學) 현장에서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교류 분위기를, 망월동 광주항쟁 묘역에서는 한국 현대정치사의 상흔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한국의 고대와 현대, 종교․문학․정치 등을 골고루 맛볼 수 있었던 기회였지요. 사실, 대도시 여행에서는 대부분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게 볼 수 있는 것을 만나기 일쑤입니다. 이번 여행길에서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실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게 좋았습니다.

이등연 : 언젠가 천(陳) 교수가 쓴 ‘서화(書話)’를 읽을 때 필요한 책을 찾아 중국 남방을 여행하던 심정 묘사가 인상에 남더군요. 일본에서 연구할 때 자전거 타고 고서점 순회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구요. 학문하는 사람들은,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개는 번화한 관광명승지보다는 ‘직업병’처럼 문화여행을 선호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학술대회 끝나고 하루 소풍 가는 길을 주로 그런 쪽으로 택해 봤지요. 괜찮은 체험이었다니 다행이군요. 아침에 광주항쟁 묘역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는 것 같던데…….

천핑위안 : 오늘이 바로 6월 4일이지요. 묘역에 가면서부터 89년 천안문 사태 11주년 되는 날이라, 사회 변혁 속에서 지식인의 입장이랄까, 그런 생각들이 새삼 많았습니다. 묘역 입구의 석조 부조 그림들이 퍽 힘있고 인상 깊게 다가오더군요.

이등연 : 지식인의 입장 얘기와 연관이 되는 문제이겠는데, 이번 우리 학교에서 개최한 ‘인문학 국제학술대회’에서 그런 토론이 있었지요. 우리가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배경에는 최근 극도의 정보 산업사회 속에서 자연과학의 지배적 위상에 비해 인문학이 갈수록 홀시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가치관 부재나 왜곡 현상이 만연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陳) 교수는 「디지털 시대의 인문 연구」란 제목으로 중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학술대회에서 거론된 ‘인문학의 위기’란 표현이 중국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셨는데…….

천핑위안 : 제 뜻은 ‘인문학의 위기’를 강조하는 나라나 지역을 보면 대개 기술 발달, 물질적 안정, 정적(靜的) 사회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서구나 아시아 일부 국가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사회 변화나 변혁이 심각하게 요구되거나 진행되고 있는 지역, 저는 중국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라에서는 여전히 ‘지식인’이 할 일이 많고, 지식인의 역할이 충분히, 그리고 한층 의미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위기’란 말의 보편적 적용 문제를 거론한 겁니다.

이등연 : 천(陳) 교수의 끊임없는 학문적 시도와 대화도 그런 의미망에서 이해될 수 있겠군요. 10여 년 동안 많은 작업을 하셨는데, 천(陳) 교수의 학술작업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중국소설적서사모식적전변(中國小說的敘事模式的轉變)』은 한국 학자들, 특히 젊은 학자들이나 학생들도 자주 토론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진행한 천(陳) 교수의 작업 흐름을 보면 하나의 큰 틀 속에서도 어떤 단계적 변화가 보이는 것 같은데,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떤 쪽입니까?

천핑위안 : 그렇습니다. 1988년에 『중국소설적서사모식적전변(中國小說的敘事模式的轉變)』과 『이십세기중국문학삼인담(二十世紀中國文學三人談)』이 출간되었는데, 이처럼 당시 제 관심은 소설연구와 20세기문학사에 걸쳐 있었습니다. 사실 이 두 저작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80년대는 주로 ‘20세기중국문학론’에 치중한 편이었습니다. ‘20세기중국문학론’이 학술계에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논의되는 동안, 저는 차츰 관심을 고대 소설과 산문 장르로 확대하거나 심화시키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초부터는 현대 중국의 학술사로 범위를 넓혀 작업을 했고, 최근에는 여기에 현대 중국의 교육사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된 관심의 확대나 심화가 변화라면 변화라 할 수 있겠죠.

이등연 : 천(陳) 교수의 저작을 보면 확실히 방금 말씀하신 변화의 궤적을 비교적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관심의 변화에 어떤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천핑위안 : 글쎄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작업을 하다보면 그런 쪽의 정리나 분석이 절박하게 느껴지게 되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편이지요. 현대 중국문학사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현대를 별도로 다루는 것보다 고금을 꿰뚫어 그 궤적을 따지는 게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등연 : 관심 분야의 변화에 따른 연구방법상의 변화도 보이는 것 같은데…….

천핑위안 : 문자를 이용한 글쓰기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문자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을 병행하는 서술 방식을 채택하는 데서 그런 느낌을 가지신 게 아닌지. 전 요즘 고대 중국에서 말하는 ‘좌도우사(左圖右史)’의 맥이라 할까요, 그림이 주는 텍스트 효과가 매우 크다는 걸 실감합니다. 말하자면 ‘도문해사(圖文解史)’의 방식에 갈수록 매력을 느낍니다. 그림은 많은 문자 텍스트보다 설명 내용이 분명하고, 사용이 편리하지요. 특히, 청말 민국초 시기의 교육이나 문화 활동을 설명할 때 당시 사진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사진과 그림 자료집으로 석인(石印)되었던 『점석재(點石齋)』(1884-1898)를 곧 출판할 예정입니다. 그 자료집은 당시 사회․정치․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자와 대조해 볼 때 정말 생동적이지요.

이등연 : 천(陳) 교수의 연구대상 공간이 주로 19세기말 20세기 초에서 시작했기에 그런 자료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소설 장르에 대해서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좀 소원해진 것이 아닌지?

진평원 : 그림에 관심을 갖는 연구방법은 소설에 관한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명청 소설의 ‘수상(繡像)’에 관해 신문에 글을 연재하기도 했으니까요. 궁극적으로는 소설의 수용, 전파, 판각, 작품 속의 도상(圖像) 등에 관해 복합적으로 탐색하려는 겁니다. 물론 이런 관심은 『중국소설적서사모식적전변(中國小說的敘事模式的轉變)』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었지만 최근 학술사나 교육사에 몰두하면서 그 결과를 다시 소설의 사회학과 접목하려고 생각합니다.

이등연 : 간단한 예를 하나 듣고 싶군요.

천핑위안 : 예컨대 『유림외사』나 『홍루몽』 연구시 당시의 교육제도나 학술사상에 관한 구체적 연구가 전제되면 한층 다른 각도에서 이 작품들을 설명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제가 학술사상사와 교육사 연구에 심취하고 있지만 결국엔 다시 소설 연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때의 연구는 텍스트 분석적인 일반적 연구 방식과는 차이가 있는, 작품을 사회라는 커다란 범주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형태가 되겠지요.

이등연 : 그랬군요. 이건 반은 농담이지만, 요즘 천(陳) 교수의 작업 내용을 보는 일부 한국 학자들은 이제 주전공인 소설을 벗어나 ‘큰 물’(?)에서 활동하는지라 소설 전공자로서의 연대의식이랄까, 친밀감보다는 소원해진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다시 소설 연구로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보니 반가운 마음도 드는데요?

천핑위안 :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지요, 뭐. 참, 이번에 ‘한국중국소설학회’ 회장을 맡으셨다는데, 고생이 적지 않겠습니다. 학회를 꾸려나간다는 게 힘이 많이 드는 일이지요? ‘한국중국소설학회’는 저도 얘기 많이 들었고, ‘회보’도 받아보았지요, 한글로 되어 있어 다 읽지는 못했지만요. 몇 분 학자들과 만나 얘기 나눈 적도 있어서 분위기를 좀 아는 편입니다. 아주 진지하고 열성적인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이등연 :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한국 학자들의 연구와 관련해 그간의 느낌이나 생각을 좀 더 전해주시죠.

천핑위안 : 사실 한국 학자들과의 교류는 많은 편이 아닙니다. 대개는 베이징에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느낌들이 많지요. 한국과 중국의 실제적 교류가 10년쯤 되었듯이 한국 학계와의 교류도 최근에서야 빈번해졌지요. 그런데 교류상의 첫 번째 문제는 언어의 소통 문제인 것 같아요. 저의 경우, 외국어는 영어와 일어를 읽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이고 한국어는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한국학자들의 성과를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이죠. 대부분 중국학자들도 저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국학자들의 논저가 어떤 형태로든 중국에 소개되는 과정이 절실합니다. 우선 ‘한국중국소설학회’의 ‘회보’나 ‘논총’부터라도 내용을 중국어나 영어로 요약한 걸 함께 실어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음은 한국은 중국․일본과 더불어 같은 한자문화권이었다는 점입니다. 이점은 구미 학계와 다른 분명한 특징입니다. 이런 전제에서 세 나라가 함께 연대해 추구하는 목표와 노력이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 학자들을 보면 젊은 층이 많게 느껴집니다. 구미에 가보면 나이가 지긋한 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젊은 학자들의 경우에는 예리한 시각을 갖추고 기성의 학문적 틀을 과감히 타파해보려는 의식이 강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일까요, 한국 학자나 학생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아쉬움은 너무 급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최단기간에 제일 앞에 서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너무 ‘최신’의,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요? 일본과 비교해 볼 때 일본은 100년이 넘는 연구 전통을 바탕으로 한 걸음씩, 조금씩 나아가는 느낌이거든요.

이등연 : 글쎄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의 중국학 연구가 한 동안 단절되었고, 심화의 기회가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구방법에서 그들은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도 있겠는데, 그걸 ‘차분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천핑위안 : 물론 두 지역의 우열을 가리는 의도가 아닙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볼 때 한국 학자들의 일반적 경향이 기초보다는 ‘창신(創新)’을 너무 중시하는 게 아닌가, 그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겁니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지만, 특히 인문학이란 ‘뿌리’가, 기초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국에서도 ‘많이(多), 빨리(快), 좋게(好), 줄여서(省)’라는 식으로 표어를 내세운 적도 있었지만, 역사적 경험을 통해 볼 때 문제가 많았지요.

이등연 : 한국에서는 최근 현대문학 전공자들이 확대되면서 ‘현대문학회’를 통해 시각의 탐색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陳 교수의 ‘중국 20세기문학사론’에 관한 논의도 적지 않았고,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지요. 21세기로 진입한 지금, ‘중국 20세기문학사론’은 계속 유효한 겁니까?

천핑위안 : ‘중국 20세기문학사론’을 제기한 지 10 여 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던 걸 이 교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주장은 3 사람이 공동으로 마련한 것인데, 저의 경우는 그러한 논의 뒤에 이론적 논쟁보다는 구체적 작업 쪽에 치중한 편이었습니다. 물론 ‘중국 20세기문학사론’은 10 여 년 논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비판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 그런 주장을 내세웠을 때의 중국 학계 상황을 먼저 주목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 개방․개혁과 더불어 현대화․서양화라는 문단과 학계 추세 속에서 ‘중국 20세기문학사론’은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지극히 간단한 용어나 설명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논의의 여지가 많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좀 더 생동적이고 구체적인, 세부적인 작업을 통해 지역․시간․작가․문체 등 여러 측면에서 20세기 문학사를 재구성하고자 노력했던 것이지요. 당시 현대성에 자체에 관한 문제를 단순히 처리한 것도 물론 인정합니다. 문학사 시기는 역사적 시간과 이론적 시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 지금 21세기에 와서 1,20년 또는 50년 정도의 가감은 여전히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문제는 반성적 검토를 해나가는 중이고, 구체적 작업을 통해 계속 논의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등연 : 저도 그런 비판적 검토 과정에 한국 학자들의 시각이 전달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한층 좋은 대화가 전개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대화의 기회는 많지 않겠지만, 글을 통해 자주 대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천핑위안 : 물론입니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소중합니다. 한국의 상황을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 관심을 더 갖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등연 : 우리 ‘한국중국소설학회’에도 계속 관심을 잃지 마시구요.

천핑위안 : 예, 좋은 교류가 계속 되도록 노력해야지요.

이등연 : 건강과 학문적 성과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엮은이 주: 이 글은 원래 『중국소설연구회보』 제36집(1998년 11월)에 실린 것을 엮은이가 수정 보완했다.]

[참고] 천핑위안(陳平原, 1954~ ) 교수 소전(小傳)

문학평론가. 광둥(廣東) 차오저우시(潮州市)에서 태어나 1981년에 중산대학(中山大學) 중문과(中文系)를 졸업하였고 1984년에 중산대학(中山大學) 석사연구생반을 졸업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중문과(中文系) 박사연구생원을 졸업하여 박사학위(지도교수: 王瑤)를 받았고 1991년 국가교위(國家敎委)와 국무원 학위위원회에 의해 「두드러진 공헌을 낸 중국박사학위 취득자」라고 평가받았다. 지금은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중문과(中文系) 교수이며 인문과학 집간 『학인(學人)』과 문학연구 집간 『문학사(文學史)』(北京大學出版社)를 공동으로 주편하고 있다. 그의 주요 저작으로는 『在東西方文化碰撞中』(浙江文藝出版社, 1987), 『中國小說敍事模式的轉變』(上海人民出版社, 1988), 『書裏書外』(浙江文藝出版社, 1988), 『二十世紀中國文學三人談』(黃子平·錢理群과 공저, 1988), 『二十世紀中國小說史(제1권)』(北京大學出版社, 1989), 『二十世紀中國小說理論資料(1897~1916)·제1권』(夏曉虹과 공편, 北京大學出版社, 1989), 『千古文人俠客夢: 武俠小說類型硏究』(人民文學出版社, 1992), 『大書小書』(人民文學出版社, 1992), 편저 『生生死死』(人民文學出版社, 1992), 『佛佛道道』(人民文學出版社, 1992), 『閑情樂事』(人民文學出版社, 1992), 『神神鬼鬼』(人民文學出版社, 1992), 『小說史: 理論與實踐)』(北京大學出版社, 1993), 『書生意氣』(1993)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論曹禺戱劇人物的民族風格」(『中國現代文學硏究叢刊』 1983년 제1기), 「魯迅的『故事新編』與布萊希特的‘史詩戱劇’」(『魯迅硏究』 1984년 제2기), 「論四十年代的諷刺文學及其知識分子形象」(『學術硏究』 1987년 제2기), 「江湖仗劍遠行遊: 唐宋傳奇中的俠」(『文藝評論』 1990년 제2기), 「儉與俠: 武俠小說與中國文化」(『中國文化』 1990년 제2기), 「俠情義膽英雄志-淸代俠義小說論」(『中國古代近代文學硏究』 1990년 제10기), 「現代中國散文之轉型」(『文學史·제3집』 北京大學出版社, 1996) 등이 있다. 이중에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中國小說敍事模式的轉變』은 李琮敏교수에 의해 번역되어 『中國小說敍事學』(도서출판 살림, 1994)으로 출간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