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제15권 2

제15권 위조봉은 악독한 마음으로 귀중한 재산을 차압하고
진수재는 교묘한 계책으로 원래의 집을 되찾다
衛朝奉狠心盤貴產 陳秀才巧計賺原房

이것은 아직 본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바로 수도가 세워졌던 곳이자 물고기가 용으로 변하는 고장인 금릉(金陵) 지방의 이야기이다. 금릉성은 석산(石山) 옆에 세워진 까닭으로 석두성(石頭城)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수문(水門)을 통해 성을 들어가면 진회(秦淮)의 십리 누대(樓臺)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호수는 옛날 진시황(秦始皇) 때에 만든 것이어서 진회호(秦淮湖)라고 불렀다. 그 물은 양자강과 연결되어 있어 아침저녁으로 밀물을 따라 강으로부터 갖가지 물건들이 흘러들어왔다. 호수 위에는 언제나 아름답게 장식한 배 위에 이름난 기생들이 모이고, 피리 소리가 맑게 울리며 선남선녀들이 노는 소리가 떠들썩하다. 호수 기슭에는 버드나무 그늘이 길 양쪽을 잇고 있고, 호수 건너편에는 화각(畵閣)들이 휘황찬란하다. 대나무로 만든 화려한 난간에서는 늘 문인묵객들이 시를 읊고 아름답게 장식한 문들의 주렴 사이로는 종종 아리따운 여성들이 살포시 얼굴을 드러낸다. 또 열서너 군데의 술집과 열일여덟 곳의 찻집이 있으니 그야말로 번화한 곳이다.

이야기꾼 양반, 거 마냥 진회의 풍경만 이야기하니 좀 뜬금없소 그려.

독자분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제가 거기 사는 근래의 유명한 부자 진수재(陳秀才)라는 사람 이야기를 해드리려는 겁니다.

그는 이름은 형(珩)이고 진회호 부근에 살고 있었다. 마씨(馬氏)를 처로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매우 어질고 덕이 있어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갔다. 진수재에게는 소작지에 딸린 별장과 거주하는 집 두 채가 있었다. 두 채는 모두 진회호 부근에 있었지만, 별장은 호수 건너편에 있었다. 진수재란 사람은 손님 청하기를 좋아하고 또 풍류를 좋아해서, 매일같이 친구들을 불러 기생집에 가서 놀거나 놀잇배를 띄워 술을 마셨다. 그래서 그의 주위에는 한량들이 떠나질 않았고, 술자리에는 반드시 여자가 있었다. 가수는 항상 새로운 곡조로 노래를 부르고, 광대는 갖은 방법으로 재주를 부리며, 여자를 보내는 사람은 날마다 새로운 여자를 바치고, 요리사는 항상 다양하고 진기한 음식을 올렸다. 또 원래 이익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꼬이기 마련인데, 진수재가 돈을 물 쓰듯 쓰는 우두머리 격이다 보니 사람들은 모두 뭔가 얻어 보려고 죄다 그에게 와서 아양을 떨었다. 만약 돈 없고 인색한 사람이라면 그들의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었다. 당시 남경성에서는 진수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진수재는 또 시도 읊고 부(賦)도 지을 수 있는 데다가 사람 됨됨이 또한 부드럽고 남을 잘 돕는 성격이라, 기루의 여인들 가운데 진수재를 흠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가? 그야말로 날마다 명절이요 밤마다 잔치였다. 그러나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진수재는 예닐곱 해 동안 주색에 빠져 놀다 보니 가산을 거의 탕진하게 되었다. 마씨가 매번 간곡히 타일렀지만, 옛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그런 생활을 계속했다. 비록 예전처럼 여유는 없어도 아직은 그럭저럭 돈을 변통할 수가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다시 그렇게 반년쯤 돈을 써버리고 나니, 이제는 좀 다급해지게 되었다. 마씨도 그런 사정을 알아차리고

‘차라리 완전히 망하게 내버려두면 할 수 없이 그만 두겠지.’

하고 생각하며 더 이상은 그를 타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진수재는 사치스런 생활이 이미 몸에 뱄는데 어찌 금방 고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쓸 돈이 없자 사람들이 그에게 양도 증서를 쓰도록 꼬드겨 삼산가(三山街)에서 전당포를 하는 휘주(徽州) 사람 위조봉(韋朝奉)에게서 은 3백 냥을 빌리게 되었다. 이 위조봉이란 자는 또 지독히 돈을 밝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진수재의 명성이 아직은 남아 있던 터라, 조봉은 그가 갚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고 3할 이자로 은 3백 냥을 빌려주었다. 진수재가 그 돈을 가지고 또 예전처럼 써버린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편 위조봉이란 사람은 원래 매우 각박한 사람이었다. 처음 남경에 왔을 때는 그저 보잘것없는 전당업자에 불과했으나, 그는 갖은 수단으로 양심을 속여 가며 이익을 취하였다. 만약 다른 사람이 물건을 가지고 저당 잡히러 오면, 그는 질이 낮은 은을 순은이라고 속여서 주고, 또 작은 저울로 달아서 얼마간의 차액을 챙겼다. 나중에 저당을 도로 찾을 때는 오히려 커다란 저울로 달아서 돈을 더 내게 하고, 또 높은 순도로 맞춰줘야지 조금이라도 모자란 경우에는 절대로 물건을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금은이나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를 잡히러 왔는데 금의 순도가 높은 것을 보면 곧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슬쩍 바꾸어놓았다. 잘 세공된 구슬을 조악한 구슬로 바꿔치기하고, 좋은 보석은 값싼 돌로 바꾸어버렸다. 그의 이런 행패는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었다. 진수재가 3백 냥의 빚을 진 후, 위조봉은 그의 별장을 차압하려고 일부러 사람을 시켜 독촉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꼬박 3년을 버티니 원금과 이자를 합쳐 그 집값과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위조봉은 곧 진수재의 집에 사람을 보내 빚을 독촉하게 하였다. 진수재는 그때 이미 빈털터리가 되어 마음을 잡고 집에서 공부나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위조봉이 빚을 독촉하자 어쩔 도리가 없어 ‘집에 없으니 돌아오면 말하라’고 대답하게 한 것이 서너 차례였다. 보기 무서운 것이 귀신이고, 피하기 힘든 게 빚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이렇게 몇 번 허탕을 치자 위조봉도 자연 믿지 않게 되었다. 위조봉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을 보내 재촉하였고, 진수재는 계속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그러자 위조봉은 사람을 보내 아예 문 앞에 앉아서 지키게 하고 심지어 거친 말도 했지만, 진수재는 그저 꾹 참고 버텼다.

돈 많을 때는 귀신도 무서워하더니
무일푼 신세 되니 도깨비도 깔보네
오늘의 수모 일찍 알았어야 했거늘
흥청망청한 지난날 후회막심하구나

진수재는 참기 힘들었으나 아무런 도리가 없어 나가서 원 중개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위조봉에게 빚진 돈이 이자까지 모두 6백 냥인데, 나는 지금 변통할 방법이 없소. 호수 건너편에 있는 별장이 대충 천여 냥 나가니, 내가 그걸 위조봉에게 양도해서 위가가 천 냥을 쳐주면 될 거요. 여러분이 내 대신 이 일을 해주면 고맙겠소.”

사람들은 그가 갚을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응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위조봉에게 가서 알리자 위조봉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미 그 집을 봤는데, 그 집이 어떻게 천 냥이나 나간다고 큰소리를 쳐? 어림도 없지. 6백 냥이라고 해도 너무 비싸다고 할 판인데, 당신들은 어떻게 이런 말을 해?”

“나리 그 집은 6백 냥으론 부족합니다. 그가 지금 급박하게 되었으니, 대충 그에게 백 냥 정도 남겨 주고 그 집을 사면 제일 좋겠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돈을 내고 사간다면, 이 정도 좋은 재산은 그 돈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위조봉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져서 말했다.

“애당초 당신들이 그렇게 좋은 고객이라고 떠벌려서 돈을 빌려줬는데, 원금이고 이자고 눈곱만큼도 손에 들어온 것이 없어. 그런데 도리어 나에게 돈을 내라고 하다니. 그리고 내가 무슨 살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 낡아빠진 집을 갖다 뭣해? 만약 딱 6백 냥이라면 손해 보는 셈치고 수락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돈으로 갚아야 돼.”

그리고는 하인들을 불러 중개인들을 따라가서 말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일제히 진수재의 집으로 몰려가 한차례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진수재는 화가 나서 어안이 벙벙했지만, 뭐라고 말하려 해도 실은 자기가 망친 일이고 돈을 갚을 길도 없으니 어찌 그들과 맞설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천 냥 값이 안 된다면 8백 냥만 받아도 되오. 처음에 그 집을 지을 때 천 이삼백 냥은 족히 들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까. 번거롭겠지만 당신들이 다시 가서 내 생각을 전달해 주시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아아 그건 곤란합니다. 방금 우리가 백 냥만 달라고 해도 위조봉은 여전히 정색을 하고 ‘내가 무슨 살 집을 찾나! 집을 되찾으려면 돈으로 갚아야 돼’ 하고 말한 걸요.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나리께서는 도리어 8백 냥이라고 하시면 죽어도 안 될 겁니다.”

“재산에 관련된 중대한 일이 어찌 말 한마디에 결정되겠어? 위조봉이 처음 부른 돈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일부러 난색을 한 것이고, 이제 다시 2백 냥을 깎았는데 설마 싫다고 할 리가 있겠나?”

사람들은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위조봉에게 다시 가서 말했다. 그래도 위조봉은 응낙하지 않고 얼굴을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하인 너덧 명이 나와서는 중개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인님이 우리들한테 진수재 집으로 가서 돈을 받아오라고 했으니, 집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마시오.”

사람들은 일이 글렀다는 것을 알고 조봉의 하인들과 함께 진수재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중개인들이 아직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조봉의 하인들이 딱 잘라 말했다.

“주인님이 우리들에게 여기에 와서 앉아 있다가 돈을 갚으면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진수재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수치스러워 화가 나도 감히 뭐라고 하지 못하고 그저 중개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조봉네 하인들을 좀 달래서 돌려보내주신다면, 내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보겠소.”

중개인들은 미적미적하면서 그들을 달래서 돌려보내고 자신들도 각자 헤어졌다.

진수재는 가슴속에 꽉 찬 분노를 풀 길이 없어, 안으로 들어와 탁자를 치면서 통탄해 마지않았다. 마씨는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속으로 이미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나리 오늘은 어쩐 일로 청루거리에 가서 밤새 마시며 놀지 않으세요? 여기서 한숨을 쉬면서 걱정하시는 것을 보니, 노는 걸 좀 줄이셨나 봐요?”

“낭자 정말 날 이렇게 놀릴 거요? 내가 처음에 당신의 말을 듣지 않고 돈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오늘 그 휘주 놈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게 됐소. 호수 건너편 별장을 그에게 넘겨주려고 은 2백 냥을 달라고 했더니, 원통하게도 그 작자는 죽어도 안 된다고 하면서 계속 빚을 독촉하고 있소. 게다가 하인 몇 놈을 보내 우리 집에 버티고 앉아있게 했소. 다행히 사람들이 달래서 돌아갔지만, 내일 아침에 틀림없이 다시 올 거요. 우리 그 별장이 설마 6백 냥 값어치밖에 안 되겠소? 하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구려.”

“처음에 당신이 방탕한 생활을 할 때는 집에 무슨 도깨비방망이라도 있는 것처럼 얘기하셨지만, 세월이 흘러 천 냥이 넘던 돈을 다 써버렸어요. 오늘에 와서 다른 사람한테 은 1, 2백 냥 달라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그가 돈을 안 주겠다면 그냥 넘겨줘버리면 되지 뭐가 걱정이에요? 3년 전 같았으면 몇 채 더 있어도 팔아치웠을 텐데, 이 집 하나 정도가 뭐가 힘들겠어요?”

진수재는 마씨의 꾸지람을 듣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에는 마음이 편치 못해 저녁밥을 조금 먹은 후 손발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기쁘고 즐거울 때는 밤이 짧음이 아쉽지만, 쓸쓸할 때는 길어서 원망스러운 법이다. 진수재는 마음속에 그 일이 걸려 전전반측하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그렇게 오경이 되어 닭이 울 때가 되자 몸은 몹시 피곤하고 몽롱하여 졸음이 쏟아지는데, 하인이 서너 차례 들어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위조봉네서 아침부터 돈을 달라고 왔어요.”

진수재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중개인들을 불러모아놓고, ‘모 별장을 은 6백 냥에 모처에 매각함’이라는 매도 증서를 써서 중개인들에게 주었다. 중개인들은 어제와는 달리 흔쾌히 받고는 위조봉에게로 가서 알렸다. 진수재는 분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집안의 소란은 면하게 되었으니 잠자코 있어야 했다. 위조봉은 그 집을 원치 않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돈을 원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진수재가 매우 다급함을 알고 계속 빚 독촉을 해댔으니, 그 집이 그의 손에 들어오지 않을 리가 만무했다. 이제 진수재는 결국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별장을 팔게 된 것이다. 위조봉이 흡족해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편 진수재는 그 집을 판 후로 마음이 너무 괴로워 종일 미간을 펴지 못하며 잠도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 계속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내 만약 뜻을 이루면 반드시 되갚아 주리라.”

하고 뇌까렸다. 마씨는 남편이 그러는 걸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탓하지 않고 도리어 남을 원망해요? 다른 사람이 돈이 생기면 당연히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 이득을 챙기려는 법이에요. 누가 당신처럼 다른 사람 돈을 빌려다가 펑펑 다 써버려요?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했나 보죠? 그렇게 좋은 재산을 그냥 홀랑 날려버리게. 다른 사람이 당신한테 애원해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이제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내 어찌 후회하지 않겠소? 하지만 과거의 잘못이라 후회해도 소용이 없구료.”

“말은 잘 하시네요. 하지만 마음이란 게 말하는 것하고 달라서 ‘후회’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어려운 거라고요. 또 옛말에도 ‘탕자가 마음을 바로잡는 것은 귀신이 사람으로 변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했어요. 지금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으니 머리를 움츠리고 집안에 앉아서 원망할 수밖에요. 1, 2백 냥 돈이 생기면 또 펑펑 쓰면서 놀 것 아녜요?”

진수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는구려. 사람이 초목이 아니거늘 내 어찌 모르겠소. 예전엔 사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남들에게 꾀여 아침저녁으로 놀면서 가산을 탕진해버렸소. 지금은 이미 온갖 마음고생 다 하고 사람들 냉대를 받고 있는데, 그래도 놀 생각을 한다면 정말 정신 나간 사람이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아직 기개는 남아있군요. 제가 당신은 쫄딱 망하지 않고서는 마음을 고치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지금 이미 완전히 망했으니 그런 마음도 없어졌어야 마땅해요. 제가 당신에게 묻겠는데 만약 돈이 생기면 뭘 하실 거예요?”

“돈이 생긴다면 우선은 반드시 그 집을 되찾고 그 휘주 놈을 한 번 창피를 줘서 한을 풀 거요. 그리고 가게를 하나 열든가 아니면 밭을 사서 명대로 살면서 과거에 급제하는 게 소원이오. 만약 천 냥 정도 생긴다면 충분할 게요. 하지만 어디서 그런 돈이 나오겠소?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지.”

진수재는 이렇게 말하고는 탁자를 탁 내리치며 또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마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그 말대로만 한다면 그깟 천 냥이 뭐가 어렵겠어요?”

진수재는 뭔가 있는 듯한 얘기를 듣고는 황급히 물었다.

“돈이 어디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빌린다는 거요, 아니면 친구들에게 부탁하려는 거요? 그것도 아니면 돈이 어디서 나온단 말이오?”

마씨는 또 웃으며 대답했다.

“만약 빌린다면 또 위조봉이지요. 세상의 인정은 그 사람의 지위가 높고 낮음에 달려있는 법이에요. 당신이 이런 처지에 있는 걸 보면 어떤 친구가 돈을 내서 당신을 도우려 하겠어요? 아무래도 집안에서 구해보면 혹시 살 길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집안에서 누구에게 구한단 말이오? 당신에게 나를 도울 방법이 있는 게 틀림없지? 여보 제발 도와주시오. 나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준다면 정말이지 무한한 은혜가 될 거요.”

“당신이 평소에 같이 놀던 그 친한 친구들은 왜 한 사람도 와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 나에게 도와주네 마네 할 수밖에 없겠지만, 나 같은 아녀자가 어떻게 당신을 도울 방법이 있겠어요? 그저 당신에게 한마디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여보 무슨 할 말이 있소? 하고 싶은 대로 해보구려.”

“당신 이제 정말로 마음잡고 성실해질 거예요?”

“여보 어찌 아직도 그 말을 하는 거요? 나 진형이 만약 또 한 번 기생집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앞날이 영원히 불길하여 비명에 죽을 것이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가 그 집을 당신께 되찾아드리겠어요.”

마씨는 이렇게 말하고는 열쇠를 꺼내서 사랑방 안의 컴컴한 통로를 열어 가죽 상자 하나를 가리키며 진수재에게 말했다.

“이걸 당신이 가져가서 집을 찾고 남은 것은 도로 나에게 돌려주세요.”

진수재는 너무도 뜻밖이라 믿어지지가 않았다. 상자를 열어보니 눈처럼 하얀 은덩이가 들어 있는데, 대략 천 냥 정도 돼 보였다. 진수재는 그걸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나리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퍼하세요?”

하고 마씨가 묻자 진수재는

“내가 불초해서 가산을 탕진했는데, 어진 아내가 고생고생해서 이렇게 많은 돈을 저축한 덕분에 못난 놈의 재산을 되찾게 해주니, 정말이지 남편 구실도 못한 것을 나 자신도 용서할 수가 없구려.”

“나리께서 잘못을 고치고 새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가문의 행복입니다. 지체할 것 없이 내일 당장 가셔서 집을 다시 찾으세요.”

그날 진수재는 한량없이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