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인문학 16-순록을 찾아서

얼핏 보면 뿔이 멋진 사슴이고 가까이서 머리를 보면 말인가 싶다. 습지를 거뜬히 헤치는 견고한 발굽을 보면 소인 것 같고, 튼튼한 몸뚱이는 당나귀인 듯하다. 이렇게 네 동물을 닮았지만 그 어느 것도 아니라서 사불상(四不像)이라 한다. 바로 북방 삼림의 순록이다.

내몽골 대흥안령 북단 삼림에 사는 야쿠터 어원커족은 수렵을 하면서 순록을 키워왔다.

야생도 있지만 이름 그대로 사슴[鹿] 가운데 유일하게 길들일[馴] 수 있다. 커다랗고 선하고 순수한 눈망울에는 신비함이 감도는 느낌이다. 시베리아에서 핀란드까지, 바다 건너 그린란드와 캐나다까지, 남으로는 중러 국경인 헤이룽강(아무르강) 중상류에서 북극해까지 분포되어 있다. 중원에서 보면 북방초원을 넘어가야만 볼 수 있는, 멀고 먼 변방의 동물이다.

그들을 키우는 사람도 변방 사람들이다. 겨울이 길고 추위가 혹독하다. 삼림은 울창하지만 척박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부지런하고 영리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과 지순하기만 한 순록이 서로 기대어 산다. 순록의 먹이를 좇아 이동하는 유목민들이다.

순록을 키우는 어원커족 남매.

사람들은 순록에게 소금을 먹여준다. 사람의 오줌조차 순록에게는 소금 섭취원이다. 순록은 사람들이 알뜰하게 챙겨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아니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내어준다. 교통과 운송의 수단이다. 매일 젖을 내어준다. 자연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매년 뿔도 잘라서 사람에게 준다. 고기와 뼈는 말할 것도 없다. 가죽은 옷이나 깔개가 되거나 원뿔형의 천막집인 셰런주(斜仁柱)의 겨울덮개가 되기도 한다.

영적인 역할도 한다. 순록의 뿔은 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닮아 우주수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샤먼들은 영계여행을 할 때 순록을 타고 간다. 하얀 색의 순록은 헤벡(또는 세벡)이라 하여 가정의 수호신으로 주인의 병을 치료해주거나 고난에서 구원해준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헤벡은 다른 순록과는 달이 잡일을 면하고 주인이 죽으면 함께 묻힌다.

순록을 키우는 사람들 가운데 시베리아와 몽골에 넓게 퍼져 사는 에벤키족이 있다. 중국에서는 내몽골자치구 동북단의 후룬베이얼 초원과 대흥안령 삼림지대에 산다. 중국의 에벤키족은 어원커(鄂溫克)라고 한다. 어원커는 1958년 스스로 선택한 족칭이다. 어원커란 말은 “숲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란 뜻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의미는 확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원래 시베리아의 레나강 유역에 살던 어원커족은 모피를 찾아 동진한 러시아인에 밀려 중국 경내로 들어왔다가 중국에 살게 되었다. 이동해 온 노선에 따라 3개 계통으로 구분되는데 생산방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난다.

건허시의 외곽에 있는 아오루구야 사록부 마을. 야쿠터 어원커족의 정착촌이다.

후룬베이얼시 어원커족 자치기(自治旗)와 대흥안령 산지에 걸쳐 농사와 유목으로 살고 있는 어원커인은 쒀룬(索倫) 어원커라고 한다. 그 북쪽으로 어얼구나강 일대의 후룬베이얼 초원에서 목축을 하는 이들은 퉁구쓰(通古斯) 어원커라고 한다. 가장 북쪽의 대흥안령 북단 삼림에서 사는 어원커도 있다. 바로 이들이 수렵을 하면서 순록을 키우는 야쿠터(雅庫特) 어원커이다. 이들은 중국 경내에서 유일하게 순록을 키운다. 사록부(使鹿部)라고도 한다.

야쿠터 어원커 인구는 3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400여 년 전 러시아 레나강 일대에서 어얼구나강 인근으로 이동해왔다. 신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의해 치젠(奇乾)에 어원커족 민족향(鄕 중국의 가장 낮은 행정단위)을 세웠다. 그 후 아오루구야(奥魯古雅)로 이주했고 2003년 중국 정부가 건허시 외곽에 정착촌을 지어주고 정착하게 했다. 이때 수렵은 금지됐다. 중국 정부가 요구한 수렵금지와 정착정책은 일단 성공했다. 중국에서 더 이상의 순록 유목은 없다. 방목이 일부 있을 뿐이다.

내몽골자치구의 후룬베이얼시가 관할하는 건허시의 외곽에 있는 아오루구야 사록부 마을이 바로 야쿠터 어원커의 정착촌이다. 이곳에는 어원커 박물관이 있어 그들의 순록문화를 차분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박물관 옆에는 정부가 지어준 독특한 모양의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주거용으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기념품 상점이나 민박으로 사용되는 게 대부분이다. 중국인들의 여행수요가 증가하면서 이곳은 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덕에 관광수입은 상당히 늘었다. 지난여름에 찾아갔더니 대형 숙박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정착촌 바로 옆에는 순록 농장도 있다. 순수한 사육농장은 아니고 관광객들에게 순록을 보여주는 일종의 체험관광 코스로 만들어진 것이다. 관람 편의를 위해서인지 예전과 달리 순록을 곳곳에 묶어두고 있다. 일반 동물원에 비하면 낫기는 해도 목줄에 묶인 동물은 내게는 여전히 거북해 보인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 정도 삼림 속으로 들어가면 방목하는 순록을 볼 수 있다. 외부인은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지역이다. 들어가는 길에 딸랑이는 방울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순록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면서 먹이를 찾는다. 눈으로 보기 전에 귀로 먼저 맞이하는 순록은 신비감을 더해준다.

순록은 오후가 되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농장을 나선다. 주변 20~30킬로미터를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아먹다가 아침이 되면 방울소리를 울리면서 돌아오는 것이다. 주인은 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큼직한 나무 등걸에 불을 지피고 나푸칸이란 풀을 태워 연기를 피운다. 순록들이 벌레를 피해서 편안히 쉬게 해주려는 것이다. 햇살이 안개를 헤집고 들어서는 숲속의 아침에 순록이 방울소리 울리며 돌아오는 광경은 그야말로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더 깊은 산림 지대인 모얼다오가(莫爾道嘎) 삼림공원에 가면 마리야 쒀(瑪利亞 索) 할머니의 가족들이 순록을 키우며 살고 있다. 마리야 쒀는 중국에서 ‘마지막 추장'(실제로는 연장자일 뿐 추장은 아니다)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루쉰 문학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작가 츠쯔젠(遲子建)의 작품 <어얼구나강의 오른쪽>의 실제 모델이다. 2003년 산속에서 살던 어원커인들이 ‘생태이민’이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정착촌으로 하산할 때 산속에 홀로 남았다. 그런데 정착지로 이동한 순록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적지 않게 죽었다. 마리야 쒀의 선택이 옮았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어원커박물관 전시관의 순록 사진.

순록의 생명을 지킨 ‘마지막 추장’ 마리야 쒀는 중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들이 하산하기 일 년 전, 어원커족 최초의 대학 졸업자인 화가 류바(柳芭)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에 미술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 소수민족의 성공사례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삼림의 어원커도, 도시의 생활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방황했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마흔 둘의 나이에 어얼구나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류바의 죽음을 들은 츠쯔젠이 어얼구나를 찾게 되었고, 마리야 쒀를 통해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이 작품을 썼다. 순록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연을 경외하고 운명을 사랑하는 순수함이 영롱하게 빛이 나는 어원커 사람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소설을 떠올리며 다시 정착촌으로 돌아오면 씁쓸하다. 소수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준 정착촌에서부터 많은 것이 삭제되었음에 한탄하게 된다. 정부가 지어준 주택은 그들의 전통이 아니라 북유럽에서 가져온 것이다. 부실공사는 논외로 치더라도 외관과 구조 자체가 이미 국적 불명이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일본 제국주의까지 그들의 터전인 삼림을 엄청나게 파헤쳤다. 삼림이 개발될수록 사냥감도 없어지고, 순록의 먹이인 이끼도 사라졌다. 어떤 권력이든 백성들이 이동하는 것을 싫어한다. 정착하기를 강요했다. 그러는 사이에 어원커족은 자녀를 신식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다. 일부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났다. 외지인과 결혼하고 대도시로 나가 대학생이 되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하나둘 현대문명의 구심력에 끌려 하산했으나, 적응력이 부족한 중장년과 노년은 삼림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하산한 것이 바로 이 정착촌이다. 정착촌과 관광업이라는 새로운 기회와 함께 또 다른 불행도 함께 하산했다. 순록을 사불상이라고 했지만, 하산한 사람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불행한 사불상이라고 탄식했다. 산에서 순록을 키우는 것도 아니요, 하산해서는 장사와 농사도 모르며 노동자가 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명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약한 문화를 수없이 쓸어버렸다. 그것은 온당한 일일까. 그들의 의사에 반해서 열악한 환경을 감수하면서 고유문화를 보존하라는 것도 부당한 일일 것이다. 변방은 힘이 없고 작은 것들이 소리 없이 소멸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은 어원커족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창을 열고 밤하늘을 보라. 어려서 보이던 별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해온 일들이 결국 우리 시야에서 별을 사라지게 했다.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을 찾아 무언가를 기록하여 기록만이라도 남기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현대문명의 쓰나미는 계속되고 있다. 그 끝은 어디일까.

<도움말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중국여행객 윤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