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중국 베스트셀러가 되다

조남주 작가의 화제작 『82년생 김지영』은 이미 전 세계 17개국에 판권이 판매되었고 올해 전반기 일본과 타이완에서 차례로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본판은 1월 출간 후 3일 만에 4차례 증쇄되었고 3개월간 판매량 13만 권을 돌파하며 일본 아마존 외국문학 분야 1위에 올랐다. 타이완판도 5월 출간 후 2주 만에 중쇄를 찍었고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종이책 30위, 전자책 4위에 올랐다.

이어 중국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2019년 9월 귀저우(貴州)인민출판사에서 출간된 중국판 『82년생 김지영』도 중국 최대 온라인서점 당당닷컴에서 10월 16일 기준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1위에 올랐다고 한국 민음사 관계자가 밝혔다. 추가로 초판 제작 부수 4만 부가 금세 소진되고 전체 제작 부수가 6만 5천 부를 넘어섰다고도 했다(「중국서도 ’82년생 김지영’ 열풍…베스트셀러 1위」, 조선일보 2019. 11. 17).

당시 광저우 출장 중에 이 뉴스를 접한 필자는 일부러 시내 중심의 서점가에 들렀고 과연 베스트셀러 코너에 『82년생 김지영』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광저우는 대도시이긴 해도 중국의 문화 중심지 베이징, 상하이와는 꽤 거리가 먼데도 어느 서점에서나 『82년생 김지영』을 눈에 띄는 자리에 배치해놓고 있었다. 2017년 말 한국의 사드 배치와 한한령 개시 이후 중국 출판계에서 한국 도서가 이렇게 주목받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감개무량하기까지 했다.

50여 일이 흐른 현재, 『82년생 김지영』은 당당닷컴 12월 첫째 주 소설 분야 25위이다. 그간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든 것일까? 분석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했다. 11월에는 소설 분야 32위였고 10월에는 아예 10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차근차근 순위가 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10월 16일에 당당닷컴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1위에 올랐다”는 국내 뉴스는 거짓이었던 것일까? 아무래도 중간에 다소 착오가 있었던 듯했다. 관련 중국 뉴스를 검색해보니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1위’가 아니라 ‘신간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1위’였다. 당당닷컴의 신간 베스트셀러는 최근 3달간 출시된 도서들의 판매 성적에 대한 순위이다. 즉, 『1982년생 김지영』은 10월 중순 어느 한 시점에서 잠시 신간 소설 중 1위를 차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982년생 김지영』이 중국 서점가에서 전혀 영향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당당닷컴 올해 11월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10위를 살펴보기로 하자. 1위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인간실격』, 2위는 위화(余華)의 『인생』(活着), 3위는 류츠신(劉慈欣)의 『삼체』(三體), 4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 5위는 마이자(麥加)의 『인생해해』(人生海海), 6위는 루야오(路遙)의 『평범한 세계』(平凡的世界), 7위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간의 고독』, 8위는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 9위는 뤄광빈(羅廣斌), 양이옌(楊益言)의 『홍암』(紅岩), 10위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였다. 이 중에서 2019년 신작은 마이자의 『인생해해』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출간된 지 오래된 국내외 고전과 스테디셀러이다. 바로 이 순위에서 『1982년생 김지영』은 32위인 것을 감안해 31위까지의 도서를 전부 훑어보아도 신작은 고작 국내 도서 2권, 외서 1권뿐이다. 더욱이 그 외서 1권도 오츠이치의 호러물,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이므로 『1982년생 김지영』은 사실상 현재 외국 순문학 신간 중 판매량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11월까지의 누적 판매 부수는 18만 부로 알려져 있다).

그다음으로 중국 최대의 서평 사이트 더우반(豆瓣)에서의 서평 현황을 통해서도 역시 『1982년생 김지영』의 중국 독서계 내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82년생 김지영』보다 2달 앞선 2019년 7월에 출간되었고 위의 11월 소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는 23위인 중국 작가 다빙(大氷)의 『아이』(小孩)는 서평 수가 352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은 『아이』보다 순위가 9계단 밑인데도 서평 수가 무려 8374개나 된다. 5위인 중국 추리작가 마이자의 신간 『인생해해』는 서평 수가 14306개이지만 출간 시점이 2019년 4월로 6개월이나 빠르고 장르도 추리물인 것을 참작해야 한다. 따라서 이를 통해 『82년생 김지영』이 판매 성적과 무관하게 중국 독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논쟁적인 작품으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

한편 『82년생 김지영』의 댓글 중 가장 많은 동감을 얻은 것은 아래와 같다.

diduan: 2019. 8. 12
거의 모든 동아시아 여성들은 김지영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고 여성으로서 당한 그 불공평한 일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는 내가 엄마보다 더 자유롭게 살고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가졌는지 생각해본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수많은 선배들의 노력을 통해 여성들은 어쨌든 더 많은 권리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여전히 고난과 장애물이 가득하다. 최근 몇 년간 나는 내가 아는 여성들에게 있는 힘껏 이야기하고 있다. 제발 쉽게 결혼을 하고 애를 낳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많지 않았던 자유까지 잃게 될 것이라고. 이것이 내가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절실한 충고이다.

중국은 한국보다 여권이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82년생 김지영의 불행한 처지에 동감하는 여성 독자들이 많으며, 바로 그들의 존재가 『82년생 김지영』을 중국에서 베스트셀러로 만든 주요 동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다음으로 중국판 『82년생 김지영』의 역자와 출판사도 주목할 만하다. 먼저 역자인 인자쉬안(尹嘉玄)은 타이완에 거주하는 한국 화교, 즉 한국에서 살다가 타이완으로 돌아간 화교로서 타이완판 『82년생 김지영』의 역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중국판 『82년생 김지영』의 출판사는 타이완판 『82년생 김지영』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와서 쓴 것이다. 두 판본은 단지 간체자와 번체자의 표기 차이만 있으므로 간단한 편집만으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중국판 『82년생 김지영』에 관한 서평을 훑어보다 보면 “200쪽도 안 되는 분량이 순식간에 읽힌다”, “가독성이 좋다” 같은, 번역의 퀄리티에 대한 호평이 자주 눈에 띈다. 그간 기계적이고 비문학적이라는 혹평을 자주 듣던 중국의 한국문학 역자들에 비해 인자쉬안은 훨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한국어 출판번역의 수준에 있어서 아직까지 타이완이 중국보다 한 수 위라는 필자의 심증을 한층 더 굳어지게 했다.

그리고 중국판 『82년생 김지영』은 표면상 귀저우인민출판사에서 나오긴 했지만 실제로는 중국 최대의 민영출판기업 중 하나인 베이징모톄(磨鐵)도서유한공사가 저작권 수입, 편집, 제작, 유통을 전부 담당했다. 2007년에 설립된 이 기업은 6개 출판 브랜드로 연 평균 600여 종의 도서를 내며 13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고 특히 베스트셀러 소설의 기획과 마케팅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10월 중순, 『82년생 김지영』이 잠시나마 신간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1위에 오른 것도 바로 이 기업의 마케팅 노하우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이번에 『82년생 김지영』이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우리 출판계로서도 반가운 일이다. 이는 한한령의 해제와 대중 저작권 수출의 본격적인 재개를 뜻하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2017년 1월, 김애란의 『비행운』이 인민문학출판사에서 출판된 후로 한국소설은 무려 2년 가까이 중국에서 나오지 못하다가 2018년 12월이 돼서야 역시 인민문학출판사를 통해 구경미의 『라오라오가 좋아』가 겨우 나왔다. 그 후로 2019년에 들어와 현재까지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과 『그녀 이름은』 등 5권이 계속 출간되어, 중국에서 한국 도서의 출판 환경이 다소 호전되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산 문화콘텐츠인데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마케팅과 공개적인 논의가 허용된 것을 보면 이제 한한령의 보이지 않는 장막은 다 거둬졌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물론 한국 문화콘텐츠가 중국에서 2년여 전의 위상을 다시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82년생 김지영』이 중국에서 거둔 이 작은 성공은 우리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