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술굴기는 “거대한 갈라파고스”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기존의 패턴과는 다른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후반 이래로 양국 간에 무역불균형이 심화되며 중국과 미국 간에 무역분쟁은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2010년에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 문제를 제기하며, 중국의 환율평가절상을 요구했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도 당시 자신의 기명 칼럼을 통해 미국이 중국에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야 하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명시하고 수입품에 과징금을 부과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미국 측의 강력한 주장에 맞서 중국의 경제를 이끌던 당시 원자바오 전 총리도 “한 나라의 환율은 그 나라의 경제가 결정하는 것이다”라며 강하게 맞섰고, 중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중국이 미국의 평가절상 압력을 받아들이면 지난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 평가절상을 했다가 불황으로 빠져버린 일본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했다. 이렇듯 기존의 중미 무역분쟁은 양국 간의 무역불균형과 중국의 환율 조작 문제 등에 초점이 맞춰진 측면이 있으며, 강한 설전 이후, 양국 정상회담에 맞춰 중국의 보잉 항공기 대량 수입이나 대미 투자 확대 약속 등으로 봉합되어온 방식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트럼프 집권 이후 2018년부터 진행된 중미 무역분쟁은 기존의 패턴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표면적으로 기존의 무역분쟁과 비슷하게 시작되었으나, 실제 상호 관세부과로 이어지는 등 격렬한 무역전쟁으로 확대되었다. 무엇보다 기존의 패턴과 다른 지점은 미국이 중국의 산업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문제삼기 시작했으며, 중국의 ZTE(中興)을 시작으로 5G 기술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화웨이(華爲) 등에 직접 제재를 가하며, 중국의 제조업 굴기를 전면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한 부분이다. 즉, 미국은 기존의 무역 적자나 환율 문제를 넘어서 앞으로 미국의 기술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고 전 분야에서 미국의 패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중국 기술굴기의 양면성

이렇듯 미국이 중국의 견제에 강하게 나서는 이유는 바로 중국의 기술굴기 때문이며, 이것이 가져올 미국의 패권 침식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동안 실제로는 “Made in China”가 아니라 “Assembled in China”에 다름아니었던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조립만을 담당하는 위치에서 탈피해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관제고지를 차지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중국의 발전모델을 전환시키고, 중속성장의 함정을 뛰어넘는 동시에, 세계적 차원에서도 미국과 서구 중심의 질서에 균열을 내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진정한 제조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제조업과 ICT의 융합을 필두로 한 산업고도화를 추진하는 “중국제조 2025”와 “인터넷 플러스” 전략을 수립하고 국가적으로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을 통해 다수의 기업을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육성해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생각보다 단기간 내에 국가의 집중 투자와 거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를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에 맞대응할 수 있는 규모를 가진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5G, 드론, AI, 핀테크 등의 영역에서는 이미 기술적으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중국의 기술굴기가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기술강국으로의 성장은 많은 측면에서 두드러지지만, 다른 나라와의 기술 협력이나 상업적 교류의 측면에서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바이두나 텐센트가 확실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측면도 있지만, 중국 당국이 그에 상응하는 경합재나 대체재가 될 수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기업의 진입을 정책적으로 막았기에 성장한 측면도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ICT 기업들이 빅데이터와 AI 등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단기간에 극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세계적 차원에서 사용자들을 확산시키기보다는 중국 국내의 단일한, 하지만 거대한 시장에만 국한된 상황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신기술의 상용화를 선도하는 중국이지만 그 산업생태계는 “거대한 갈라파고스”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중국의 ICT 생태계가 “거대한 갈라파고스”에 머물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체제의 정치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의 과학 기술 영역에 대한 정치적 통제와 인권 개념의 차이는 혁신의 측면에서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빅데이터와 빅브라더의 친연성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우는 기술의 발전은 인류 사회에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져다주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광범위한 감시 사회 등 인권 침해에 대한 논의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캐시 오닐은 <대량살상 수학무기>라는 저서에서 빅데이터와 IT 기술이 결합해 만들어내는 혁신은 정치는 물론 교육, 행정, 서비스 분야 등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광범위한 불평등의 심화와 인권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는 국민들의 데이터가 국가 기관에 의해 수집되면서 국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감시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와 비판은 단순히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뿐만 아니라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게도 똑같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AI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 기술들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사물인터넷은 인터넷, 스마트폰 등 여러 디바이스를 통해 인간 및 사물에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를 측정, 수집하는 기술이고, 빅데이터는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 처리할 수 있는 여러 기술들의 조합을 뜻하며, AI는 이렇게 축적, 분석된 데이터를 통해 기계를 학습시켜 인간의 판단이나 결정과 유사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즉, 광범위하게 수집된 데이터들은 빅데이터 기술을 통해 분석되고, 이는 AI를 통해 최적화되어 전자상거래, 제조업, 금융, 자율주행차, 금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빅데이터의 특징이다. 미국의 DB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오라클(Oracle)은 빅데이터가 가진 주된 특징으로 3개의 V를 얘기했는데, 바로 규모(Volume), 다양성(Variety), 속도(Velocity)이다. 중국은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우위를 가지고 있는데, 우선 엄청난 인구가 높은 인터넷 보급률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는 거대하고 다양한 규모의 데이터 양이며, 이것이 세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5G의 속도를 가지고 수집, 유통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빅데이터 모형에서는 데이터가 분산되거나 격벽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중앙에 집중되어야 빅데이터로서의 가치나 활용도가 높아진다. 이런 측면에서 사적재산권이나 프라이버시 개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고, 빅브라더에 가까운 중앙집권적인 일당 통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기술의 현실 적용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면에서 중국은 다른 서구 국가에 비해 많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빅브라더”와 “멋진 신세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실제로 중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우위를 가지고 있는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사회 안정을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도시 지역에서 안면 인식 기술을 내장한 고성능의 CCTV 2000만대를 활용한 ‘톈왕(天網)’이라는 보안 감시 시스템이고, 농촌 지역의 도로 등에 설치한 CCTV를 주민들의 TV, 스마트폰 등과 연결해 공안 당국과 주민들이 함께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중감시 네트워크 구축 프로젝트인 쉐량(雪亮) 공정이다. 나아가 중국 정부는 2016년 사회신용시스템 구축 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수집된 개인의 신용, 금융, 사회, 시민 활동 등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350~950점 사이의 점수를 부여하고 이를 대출, 교육, 의료보장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당국은 이러한 첨단 기술의 활용이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국가의 안정과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고 역설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실화한 “빅브라더”와 “판옵티콘”을 우려한다.

이렇듯 중국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첨단 기술과 사회 관리 체제의 결합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예견했던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이런 모습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중국의 첨단 기술의 굴기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하기 보다는 두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중국의 기술 굴기가 가져올 세계가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 매력을 상실한다면, 중국이 스스로 내세우고 있는 중국식 솔루션이 새로운 글로벌 대안이 되기는 힘들다. 중국은 스스로 천명한 “신시대(New Era)”가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 충분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