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국어 번역 요령 24가지 1

출판번역가는 자신의 모국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번역은 무수한 선택과 결단의 과정이다. 대부분은 자동적으로, 가끔은 고심을 통해 서로 대체 가능한 여러 단어와 표현, 문장 구조 중 어느 하나를 골라 결정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시시각각 진행해야 하는데 본인의 모국어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단 한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과신은 또 금물이다. 확신을 갖고 선택을 해나가더라도 그 선택이 유일무이한 것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에게 어떤 번역의 원칙들이 있다면 그것 역시 100퍼센트 통용되지는 않는 ‘요령’에 불과하다는 것을 늘 유념해야 한다. 먼저 가장 기본이 돼야 할 중국어 고유명사 표기법조차 예외가 아니다.

1. 중국어 고유명사는 1911년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그전 것은 한자음 표기를 허용하고, 그 후 것은 문교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원음으로 표기한다.

중국어 고유명사 표기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계속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반복하게 된다. 제일 먼저 문교부 외래어 표기법은, 중국어의 음운적 특성을 완벽하게 변별해 표기하기에는 부족한 체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예컨대 설면음 j, q, x와 권설음 zh, ch, sh을 똑같이 ㅈ, ㅊ, ㅅ으로 표기해야만 하고, 중국어 4성의 차이를 반영해줄 방법이 없어서 ‘陝西(Shan[3성]xi)省’과 ‘山西(Shan[1성]xi)省’을 똑같이 ‘산시성’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그래서 꼭 한자를 병기해줘야 한다). 복모음 ‘yuan’을 ‘위안’으로 표기하라고 하는 것도 원음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훨씬 더 나은 표기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한국의 모든 매체에서 문교부 표기법을 표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출판번역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문교부 표기법을 문서로 출력해 옆에 두고서 그 표기 원칙들을 숙지해 따라야 한다.

이어서 고대 중국과 현대 중국의 분기점으로 간주되는, 1911년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고유명사의 한자음 표기와 원음 표기를 달리하는 ‘억지’도 어쩔 수 없다. 이는 고대 중국의 표상이 한국 문화에서 아직 완전히 객관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공자를 쿵쯔로, 맹자를 멍쯔로 번역할 수 있겠는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모택동을 마오쩌둥으로, 등소평을 덩샤오핑으로 표기해도 되는 데까지도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러면 1911년 전후의 세월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을 번역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다. 일괄적으로 한자음 표기를 하는 것이 그나마 자연스러울 것이다. 300페이지 전까지는 북경으로, 300페이지 이후로는 베이징으로 번역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중요한 단어가 원음 표기 시 느낌이 매우 고약하다면 역시 어쩔 수 없다. 문교부 표기법을 어기고 안 고약하게 고쳐야 한다. 예전에 번역한 『영국 연인』의 저자 이름이 ‘虹影’(Hong Ying)이었다. 젊은 시절 모델까지 한 그 미녀 작가의 이름을 원칙대로 ‘훙잉’이라고 표기해놓고 보니 무척 난감했다. ‘훙’이라니, 너무 흉하지 않은가. 그래서 스스로 예외를 허용하여 ‘홍잉’이라고 번역해 책을 냈는데 그만 어느 기자의 서평에서 톡톡히 지적을 듣고 말았다. “표준 중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훙잉’인데 ‘홍잉’이라고 표기해 아쉽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었다. 도저히 그녀를 ‘훙잉’으로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2. 문장 부호는 되도록 쉼표, 느낌표, 마침표만 쓴다.

중국어는 한국어보다 문장 부호를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쓴다. 쉼표와 느낌표의 사용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을뿐더러 ‘;’, ‘:’, ‘—’ 같은, 한국어에서는 거의 안 쓰는 문장 부호를 자주 사용해서 번역가를 골치 아프게 만든다. 이에 대한 대응은 철저히 모국어 중심적이다. 먼저 쉼표와 느낌표는 번역 과정에서 대폭 줄인다. 중국어에 쉼표가 많은 것은 띄어쓰기가 없는 언어적 특성 때문이므로 띄어쓰기가 발달된 한국어에서는 원문의 쉼표를 고스란히 살려줄 필요가 없다. 더구나 한국어의 어문 추세는 계속 쉼표 사용을 억제하는 쪽으로 진행되어 왔다. 과거에는 접속사마다 뒤에 쉼표를 달아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구조가 복잡한 복문에서나 가독성을 위해 절과 절 사이에 쉼표를 찍어줄 뿐이다. 역시 띄어쓰기로 쉼표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어 원문에서 느낌표를 남발해 뜬금없이 감정을 고조시킨다는 느낌이 들면 역시 조심스레 줄여보기를 권한다. 내 경험상 동일한 문맥에서 중국 저자는 한국 저자보다 느낌표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원서가 웹소설이 아닌 이상, 느낌표의 남발은 한국 독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가능성이 크므로 반드시 원서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그 수량을 줄여야 한다고 본다.

이어서 ‘;’, ‘:’, ‘—’ 등의 생경한 문장 부호는 삭제와 동시에 그 기능을 아래와 같이 번역문 내에 흡수하기로 하자.

多亏他的大哥介绍給他的禁书—中国三○年代的左翼文学、俄国小说,还有青春特有的英雄主义—他瘋狂地崇拜拿破崙、亚历山大、林肯,还有当时刚崛起的古巴的卡斯楚。
큰형이 소개해준 1930년대 중국의 좌익문학과 러시아 소설 같은 금서 그리고 청춘기 특유의 영웅주의 덕분에 그는 나폴레옹, 알렉산더 대왕, 링컨 그리고 당시 막 부상한 쿠바의 카스트로를 열광적으로 숭배했다.

‘—’와 달리 병렬, 전환의 ‘;’와 설명, 부연의 ‘:’는 처리하기 쉽다. 적절한 연결어미로 대체하거나 별도의 계산 없이 삭제해줘도 된다.

3. 의성어, 의태어를 적극 활용해 생동감을 높인다.

발음의 표현에서 한국어 문자체계는 중국어보다 상대적으로 음상(音相)이 다채로워 의성어, 의태어가 훨씬 더 많다. 이런 특징을 이용해 중국어의 정태적 표현을 의성어, 의태어를 활용해 번역하면 문장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물론 이런 번역 기법은 장르와 문체에 따라 선별적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대체로 아동서 책 번역에서 대단히 유효하다.

鲁智胜完全戒了烟,说是见了它就想到可能要爆炸,把情绪全吓退了。
루즈성은 완전히 담배를 끊었다. 담배만 보면 꼭 폭발할 것 같아 피우고 싶은 기분이 싹 달아난다고 했다.

老鲁拍拍脑袋,”事情办成,我带你们两个出去旅游一趟,坐飞机去!“
루즈성의 아빠는 자기 머리를 툭툭 치면서 “성공만 하면 너희 둘을 데리고 여행을 시켜 주겠어. 비행기를 타고 말이야.”라고 말했다.

사실 아동서 편집자는 다른 분야 편집자보다 훨씬 더 많이 번역 원고에 손을 댄다. 성인인 번역가가 아이들 수준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기는 아무래도 어렵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원고가 아동서 편집자의 손을 거친 뒤, 모든 단어가 밝아지고 동글동글해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게 된 핵심 요인 중 하나는 아마도 의성어, 의태어의 강화였을 것이다. 어쨌든 아동서든 성인서든 중한 번역에서 의성어, 의태어의 활용은 단어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장면의 분위기를 더 극적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4. 가독성을 위해 높임말 사용을 줄인다.

한국어의 발달된 경어법은 종종 번역을 어렵게 만든다. 높임말 사용에 동원되는 존칭어, 접사, 어미 등이 문장의 리듬을 망치고 늘어지게 해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그나마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과 에세이를 만나면 화자와 그의 윗사람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나올 때마다 갈등에 부딪친다. 물론 대화는 예외다. 문제는 서술문에서 화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윗사람을 묘사할 때이다. 이럴 때는 높임말을 써야 할까, 반말을 써야 할까?
우선은 반말 사용을 기본으로 삼자.

母亲几乎步伐踉跄了,可是手上的重担却不肯放下来交给我,我知道,只要我活着一天,她便不肯委屈我一秒。
어머니는 비틀비틀 간신히 걸으면서도 끝내 손에 든 짐을 내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하루를 살아도 어머니는 단 일 초도 나를 힘들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대화체의 서술문에서는 높임말을 써야만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父亲,母亲,这一次,孩子又重重的伤害了你们,不是前不久才说过,再也不伤你们了,这么守诺言的我,却是又一次失信于你们,虽然当时我应该坚强些的,可是我没有做到。
아버지, 어머니, 이번에도 이 못난 딸이 두 분께 상처를 입혀 드렸어요. 얼마 전에야 겨우 말씀 드렸는데, 다시는 속상하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그런데 그렇게 약속을 하고도 또 다시 두 분의 믿음을 저버리고 말았어요. 그때 더 굳게 마음을 먹었어야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번역가는 예의는 포기해도 문장의 리듬은, 다시 말해 가독성은 포기할 수 없다.

5. 동어반복과 동음반복을 피하라.

번역문의 한 문단 안에서 특정 표현이 반복되면 안 된다. 따라서 자동적으로, 한 문장 안에서는 더더욱 특정 표현이 반복되면 안 된다. 아래 예문을 보자.

“우리는 이러한 천재들이 자기 두뇌를 이용하여 질 좋고 편안한 삶을 누리면서 살았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 천재들은 누구나 다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말년에 그 누구보다도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모차르트와 같은 음악 신동이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라파엘로 등의 많은 천재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한 학생이 번역 숙제로 낸 글인 위의 예문에서 동어반복의 예는 ‘실제로’이며 대응되는 원어는 둘 다 ‘其实’이다. 만약 나였으면 앞의 ‘其实’은 ‘사실’이라고 번역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누구는 “원어가 똑같은데 똑같은 단어로 번역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라고 묻겠지만 내 의견은 다르다. 원어가 같더라도 한 문단이 문장에서 같은 원어를 2번 이상 번역하게 되면 각기 다르게 변주해줘야 한다. 이것은 번역가를 넘어 모든 글쟁이의 기본 수칙으로서 이를 어기면 독자에게 눈총을 받아 마땅하다. 나아가 단어의 동어반복뿐만 아니라 구조의 동어반복도 피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번영과 여유를 누리는 이 사회가 자신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무관심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한 문장에 ‘∼것’이 3차례나 반복된다. “더 심각한 것은, 번영과 여유를 누리는 이 사회가 자신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무관심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로 바꾸면 적절하겠다. 반복은 독자를 무료하게 만든다. 원문의 의미에 손상을 안 입히는 한도 내에서 다채롭게 단어와 문장 구조를 변주해야 한다.
반복에 대한 경계는 음운 차원에서도 실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어지는 두 단어의 끝모음이 같은 것도 독자의 눈에는 거슬린다.

“나는 역 광장 한구석에서 말없이 멍하니 참새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이 번역문은, “나는 역 광장 한구석에서 넋을 잃고 말없이 참새들에게 먹이를 주었다.”로 변경해도 본래 뜻과는 전혀 다르지 않다. 동음반복도 동어반복만큼이나 묵독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해치므로 되도록 피하기로 하자.

6. 초벌 번역은 없다.

출판번역가 지망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꼼꼼하게 번역을 하시나요, 아니면 먼저 초벌 번역을 다 해놓고 나중에 완벽하게 손을 보시나요?“

이에 대해 내 대답은 거의 한결같았다.

“번역가마다 다르죠. 누구는 전자이고 누구는 후자예요. 저는 전자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번역하고 번역이 끝나면 한나절 정도만 훑어보고 출판사에 원고를 보냅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대답을 고치고자 한다. 새로 초벌 번역의 사전적 의미가 ”여러 차례 거듭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맨 처음 대강 하는 번역“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에 근거하여 엄밀히 말하면, 출판번역가에게 초벌 번역이란 없습니다.“

어떻게 책 번역을 ”맨 처음에 대강 하고“ 또 ”여러 차례 거듭“한단 말인가. 일차 번역을 마치고 세심하게 마무리 작업을 하는 스타일의 번역가도 책의 난이도와 분량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 마무리 작업에 최소 일주일, 최대 한 달 이상을 쏟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 대충 번역하고 여러 차례 거듭 번역을 고칠 수 있을 만큼 출판번역은 작업 기간을 오래 받지도, 그 기간을 넉넉히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보수가 많지도 않다.

나중을 기약하고 어색한 문장을 놔두거나 모르는 원문을 미뤄둔 채 넘어가면 안 된다. 문장이 꼬였든, 낯선 고유명사가 나왔든, 원문의 맥락이 이해 불가이든 문제에 부딪히면 기필코 해결한 뒤, 그 다음 페이지로 전진해야 한다. 출판번역은 수백 페이지를 몇 달에 걸쳐 번역하는 마라톤이다. 중간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계속 레이스를 펼칠 수는 없으며 그랬다가는 그 구멍들 때문에 더 큰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책 제목과 각 챕터의 소제목은 처음에 대충 번역을 해놨다가 번역을 완료한 후 최종 결정해야 정확하다. 제목은 본문 내용을 완벽히 소화했을 때 가장 정확하게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번역가가 책 제목을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견은 반영할 수 있어도 그것은 엄연히 마케팅을 담당할 출판사의 몫이다.

7. 허사를 잘 다루면 군더더기가 없다.

2010년 김영사에 다닐 때 회사에서 어처구니없는 미션을 받은 적이 있었다. 원고지 3400매 분량의 2권짜리 번역소설을 1권으로 낼 수 있게 줄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다른 장르도 아니고 소설인데 어떻게 본래 스토리를 살리는 동시에 분량을 반 토막 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먼저 그 소설을 전체적으로 훑어보고 난 뒤, 정말 반으로 줄일 수는 없어도 두껍게 1권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까지는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번역문에 군더더기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본문의 일부를 통째로 삭제하지 않고 군더더기만 쳐내도 꽤 많은 분량을 덜어낼 수 있을 듯했다. 과연 보름간의 편집 끝에 나는 내 예상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30여 개의 챕터 중 완전히 삭제한 것은 단 1챕터뿐이었다. 메인 스토리와 연관성이 거의 없어서 그럴 수 있었다. 나머지 덜어낸 분량은 전부 ‘군더더기’였다. 결국 그 소설은 원고지 3400매에서 2700매로 줄었고 삭제한 1챕터가 원고지 100매였음을 감안하면 내가 쳐낸 군더더기는 무려 원고지 600매, 전체의 17.6%에 달했다.

그러면 내가 쳐낸 군더더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 문제의 그 번역소설은 사실 초고가 아니었다. 이미 출간이 된 책의 편집 완료 원고였다. 동일 내용의 중언부언 같은 것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래도 좀 더 세밀한 차원의 군더더기가 보였는데 불필요한 보조용언의 남발을 빼면 그것은 주로 허사와 관련이 있었다. 위에서 이미 인용한 예문에서 그런 것들을 체크해 보았다.

“우리는 ①이러한 천재들이 자기 두뇌를 이용②하여 질 좋고 편안한 삶을 누리면서 살았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사실 천재들은 누구나 다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말년에 그 누구보다③도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모차르트④와 같은 음악 신동이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라파엘로 등의 많은 천재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⑤하였다.

어미와 조사 같은 한국어의 허사를 사용할 때는 가능한 한 음절을 압축하고 또 불필요한 곳에 쓰지 않도록 주의한다. 위에서 ①은 ‘이런’으로, ②는 ‘해’로, ⑤는 ‘했’으로 음절을 압축할 수 있고 ③과 ④는 의미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으므로 빼도 무방하다. 이런 식으로 허사를 경제적으로 다루면 글이 놀라울 만큼 간결해지고 읽기의 부담도 줄어든다. 실제로 내가 편집한 그 번역소설의 새 원고를 읽고서 여러 사람이 훨씬 술술 읽힌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허사의 음절을 압축하려고 구어적인 줄임말까지 써 버릇하면 곤란하다. “우린 서로에게 은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처럼 말이다. 이런 줄임말은 문어의 표준에 어긋난다. 그리고 원서의 문체적 특성으로 인해 음절 압축을 자제해야 할 때도 있다. 정적이고 유장한 문체를 번역해야 할 때 허사의 과도한 음절 압축이 그 리듬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8. 장르 문법의 체화

외부 출판번역 강좌에서 여러 장르의 원문을 교재로 삼아 수강생들을 가르쳐보면 의외로 그들의 취향이 특정 장르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에세이에는 강하지만 사회과학에는 약하다. 여성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소설, 수필, 동화 등 감성적인 문체의 장르는 대체로 번역을 잘하는데 역사, 사회비평, 경제경영, 고전해설처럼 축적된 지식과 관념적 어휘 사용이 필수인 장르는 번역도 잘 안 되고 관심 자체가 없다. 현재 중국어 출판번역 현장에서 일감이 많은 쪽은 오히려 후자인데도 말이다.

내 경험상 출판번역가는 특정 장르의 책과 맞닥뜨렸을 때 그 장르의 글쓰기 문법이 체화되어 있지 않으면 거의 번역이 불가능하다. 평생 독서의 범위가 난잡했던(?)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오래전 궈징밍의 로맨스 소설을 번역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몇 페이지 넘겨보고 놀라서 바로 손을 들었다. 로맨스의 문법에 전혀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출판번역가들과는 달리 장르소설과 꽤 오래 깊은 인연을 맺어왔지만 무협, 판타지는 잘 알아도 게임소설과 로맨스는 젬병이다. 기획 능력을 키우려고 한때 2, 3백 권을 한꺼번에 읽으며 로맨스의 장르 문법을 어렴풋이 이해하기는 했지만 ‘체화’에까지 이르는 것은 무리였다. 어떤 장르의 문법을 체화하려면 오랜 독서와 애호의 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출판번역가도 모든 장르의 문법에 다 익숙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획이든 번역이든 자기가 자신 있는 장르에 집중해야 하지만 다룰 수 있는 장르의 종류가 너무 적다면 부득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용기도 내봐야만 할 것이다. 자기계발, 심리처럼 비교적 대중성이 강한 장르는 뒤늦게 노력해도 무난히 그 문법을 체득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