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은 융통성 있게: 기획서 쓰기의 ABC

일반적으로 외서 기획서의 기본 틀은 아래와 같다.

1. 원서 이름과 출판사, 간행 연도
2. 예상 원고량
3. 저자 소개: 약력 외에 지명도를 강조.
4. 내용 소개: 책의 주제와 핵심 콘셉트 제시.
5. 현지 반응: 판매 부수나 베스트셀러 순위 또는 특징적인 매체 보도.
6. 기획자 코멘트: 책의 내용에 대한 평가, 책의 타깃 독자, 현재 한국에서의 동종 도서 판매 현황 등을 언급하되 가장 중요한 것은 마케팅 포인트의 제시.
7. 샘플 번역: 책의 특징과 재미가 가장 잘 나타난 부분을 골라 A4 3∼5쪽 분량을 번역.

우선 기획서에는 되도록 중국어는 노출시키지 않기를 권한다. 원서와 작가의 이름, 다른 중요한 고유 명사 등 한자를 꼭 병기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한자도 번체자를 써야지 간체자를 쓰면 안 된다. 기획서는 대학 리포트가 아니다. 결국 볼 사람은 출판사 사람이며 그들 중 중국어를 읽고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이들에게 중국어가 잔뜩 들어간 기획서를 보여주는 것은 잘난 체하는 것일 뿐, 일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2번의 ‘예상 원고량’은 원서 페이지 수가 아니라 ‘원고지 매수’를 뜻한다. 200자 원고지 매수로 텍스트의 양을 계산하는 관습은 오직 출판계에만 아직까지 남아 있다. 아마도 10년 뒤에는 웹소설계처럼 글자 수를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보통 중국 책의 판권부에 적혀 있는 중국어 글자 수를 예상 원고량으로 삼아도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안 된다. 그것은 한국어 글자 수가 아니라 중국어 글자 수일뿐더러 또 실제 글자 수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책 판권부의 글자 수는 이른바 ‘판형 글자 수’이다. 즉, 그 책의 판형과 페이지 수로 최대한 담아낼 수 있는 글자 수를 말한다. 절대 실제 글자 수로 오해하면 안 된다. 그러면 중국 출판사들은 왜 이렇게 글자 수를 뻥튀기하는 것일까? 독자들이 여전히 책의 분량, 즉 정보량의 많고 적음을 중시하기 때문인 듯하다. 글자 수가 많다고, 책이 두껍다고 좋은 책은 아닌데도 말이다. 한편 기획서의 예상 원고량은 단순히 기본 정보에 속하는 듯하지만 의외로 국내 출판사의 판단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원고량이 많을수록 번역비, 외주 편집비, 인쇄비가 상승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중국 책은 한국 책에 비해 분량이 월등히 많아 늘 골치가 아프다. 원고지 1000매 이하여야 딱 좋은데 그런 책은 타이완 도서뿐이다. 대부분 1500~2000매이니 국내 출판사는 비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3번인 저자 소개에서는 원서에 적힌 저자 약력을 간단히 번역해 놓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원서의 저자 약력은 그 나라 사람을 위해 적은 것인지 우리나라 사람을 위해 적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저자가 유명 저자라면 우리가 보기에 유의미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더 검색해 부가하는 것이 좋다. 만약 입지전적인 삶을 살아왔거나 최근 중국에서 큰 화제를 부른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꼭 써넣기로 하자. 출판사든 독자든 ‘스토리’를 좋아한다. 저자든 책이든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어야 독서와 판매에 다 유리하다.

다음으로 4번 내용 소개는 중국 인터넷 서점에 게재된 ‘편집자 추천의 말’, ‘내용 소개’, 매체 보도 그리고 본인이 해당 도서에서 파악한 내용을 종합하여 해당 도서의 주제와 컨셉트를 A4 반 페이지 정도로 압축해서 제시하면 된다. 책 전체를 완벽하게 조명하려는 욕심으로 줄줄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패착이 되기 쉽다. 출판사에서 내 기획서를 오랫동안 꼼꼼히 읽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내 기획서는 출판사에 매일 무수히 날아드는 기획서, 검토서, 제안서, 샘플 원고 중 하나일 뿐이다. 긴 설명보다는, 눈길을 확 잡아끄는 몇 가지 포인트 중심의 요약문이 더 유리하다.

5번 현지 반응을 작성하려면 중국 웹사이트를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밀리언셀러가 아니면 특정 도서의 판매 부수를 알기 힘들며 베스트셀러 순위는 당당닷컴에 최근 5년간의 베스트셀러 순위가 분야별로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참고하면 된다. 그리고 해당 도서에 대한 매체 보도는 포털인 바이두에서 검색되는 게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다면 독자 서평만 서너 개를 잘 골라 번역한다. 하지만 당당닷컴의 독자 서평은 베스트셀러마다 1만 개, 10만 개가 넘어도 건질 만한 게 별로 없다. 서평을 올려야 마일리지를 받는 시스템이어서 “빨리 왔어요!”, “책이 예뻐요!” 같은 게 대부분이어서 그렇다. 역시 서평 전문 사이트인 더우반(豆瓣)에 가서 뒤져야 전문 독자의 날카로운 서평을 구할 수 있다.

이어서 6번 기획자 코멘트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역시 ‘마케팅 포인트’의 제시이다. 이는 한 마디로 기획서를 읽는 출판사 담당자로 하여금 “그래, 이 책은 이렇게 포장하면 되겠어!”라는 확신을 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찬쉐(殘雪)라는 중국의 여성 작가의 『신세기의 사랑 이야기』라는 소설을 기획한다고 치자. 스토리와 타깃 독자에 대한 설명으로는 담당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세상에는 기발한 스토리가 이미 넘치고 중국소설의 타깃 독자는 어차피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종 도서의 판매 현황도 언급하기가 계면쩍다. 하지만 “찬쉐는 이 작품으로 2019년 맨부커상 후보가 되었으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녀는 현재 구미와 일본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중국 현대 작가이다.”라고 쓴다면? 아마 담당자는 순간적으로 눈빛이 반짝일 것이다. 어느 정도 훌륭한 마케팅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정보이고, 또 이 책을 발간한 뒤 혹시나 찬쉐가 정말로 맨부커상을 받는다면 판매 부수가 껑충 뛸 수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마케팅 포인트를 잡는 것은 기획서 작성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서 출판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마케팅 포인트는 기획서의 구조 전체를 좌우하기도 한다. 마케팅 포인트가 무엇이냐에 따라 기획서에서 강조되는 부분이 달라진다. 위의 『신세기의 사랑 이야기』는 당연히 저자 소개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 프랑스, 일본에 찬쉐의 소설이 얼마나 많이 출간되고 두터운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는지 강조하여 그녀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알려야 한다. 또한 ‘홍콩-마카오-광둥 지역’(粤港澳大灣區) 신개발 정책에 관한 사회과학서를 기획한다면 내용 소개와 기획자 코멘트에서 이 정책이 2020년 중국 공산당의 핵심 정책이며 향후 중국 경제의 큰 방향을 결정 지을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당연히 이 주제로 아직까지 국내에 출간된 책이 없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도 안 유명하고 중국 내 판매 성적도 그저 그랬던 에세이집이라면? 최대한 내용과 문체의 개성을 부각시켜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역시 샘플 번역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기획서는 책의 성격과 마케팅 포인트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작성해야 한다. 기본 형식에 따라 각 부분에 일정량을 채워 넣는 식으로 기획서를 작성하면 절대 출판사의 관심을 끌 수 없다.

마지막으로 기획서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샘플 번역은 그 기획이 출판사에서 통과되어 출간이 결정된 뒤, 기획자가 번역자도 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기획자가 원하면 해당 도서의 번역은 그에게 맡기는 것이 외서 출판의 통례이긴 하지만, 출판사가 책만 마음에 들고 샘플 번역은 마음에 안 든다면 사태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기획자는 소정의 기획료만 받고 다른 사람에게 번역의 권리를 넘겨야 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기획자인 출판번역가나 출판사나 난감하기 그지없다. 번역가는 심혈을 기울여 책을 고르고 기획서를 써서 출간까지 이끌어냈는데 번역을 못하게 됐으니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그래도 출판사는 나름대로 큰 투자를 해서 책을 내야만 하므로 못 믿을 사람에게 번역을 맡길 수는 없다. 외서 출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쨌든 번역의 퀄리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판번역가는 샘플 번역을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까지 세심하게 살피며 교정을 마무리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