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슈를 노려라: 《중국제국 쇠망사》와 리인허 에세이

2008년은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난 해였다. 한 해 내내 경제적 파국에 대한 공포가 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했고 정치적으로도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논쟁이 계속 신문 지면을 뜨겁게 달궜다. 당시 나는 이런 사회 이슈와 관련된 중국 도서가 없을까 싶어 당당닷컴을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어렵사리 찾아낸 책이 《중국제국 쇠망사》였다. 이 책의 원서 제목은 “멀리 제국의 수도를 보며 눈물을 뿌리다”이다. 진나라, 서한, 동한, 당나라, 북송, 남송, 원나라, 명나라, 이 8개 왕조의 멸망에 얽힌 역사를 ‘수도’라는 모티프를 씨줄로 삼아 맵시 있게 이어놓은 대중 역사서였다. 각 왕조의 최후의 무대가 된 함양, 장안, 낙양, 항주, 임안, 북경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당시의 권력 투쟁과 그 문제점을 담아냈다.

나는 이 책이 당시 한국의 사회 이슈와 관련해 내가 생각하던 2가지 키워드, 즉 ‘파국’과 ‘수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판단해 기획서를 마련했다. 그리고 기획서의 마지막 코멘트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본 기획자는 이 책이 지금의 혼란한 국내, 국제 정세에서 역사를 통해 교훈을 찾으려는 역사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 책이 ‘흥성’과 ‘건국’의 역사가 아니라 ‘쇠락’과 ‘멸망’의 역사이기에 더 그렇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일종의 반면교사로 삼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다행히 이 기획서는 웅진지식하우스에 받아들여졌다. 바빴던 시기여서 직접 번역을 맡지 않아 판매 성적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손해는 보지 않은 듯하다. 사실 출판 기획에서 어둡고 부정적인 주제는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일반 독자들은 보통 위안과 새로운 모색이 필요할 때 책을 찾기 때문에 ‘다크한’ 책은 절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예전 김영사 박은주 사장의 평소 지론이기도 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는 못 만들어낼지언정 나는 일부러 밝은 주제의 책만 찾고 싶지는 않다. 책이, 지식이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밝게 보는 데만 기여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내 사회 이슈에 대한 주목에서 출발해 기획한 또 한 권의 책은 2018년에 기획한 리인허(李銀河)의 에세이, 《마음에 앉은 먼지를 살며시 불다》이다. 그리고 그 사회 이슈는 페미니즘이었다. 국내 출판시장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맹위를 떨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진작 리인허를 염두에 두었다. 중국 최고의 여성 사회학자로 꼽히는 그녀는 중국 최초로 동성애 조사보고서를 작성, 발표한 중국 LGBT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본래 천재 소설가 왕샤오보와 결혼했지만 왕샤오보의 이른 요절 후 20년간 트랜스젠더 여성과 동거하며 입양한 아들을 키워온 것이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맨 처음 나는 그녀의 자서전을 국내에 들여오려 했지만 저작권 확인을 위해 중국 출판사에 연락을 했다가 바로 벽에 부딪혔다.

“우리가 낸 책이기는 하지만 해외 저작권 수출은 곤란합니다.”

납득이 갔다. 최근 리인허가 중국 정부의 언론 통제 정책을 비판한 것이 문제가 된 듯했다. 그녀의 자서전에 무슨 정치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 출판사로서는 괜히 그녀 책의 해외 수출이 외부에 알려져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결국 포기한 상태에서 몇 달 후 국제도서전을 관람하러 베이징에 갔을 때 나는 서점에서 우연히 《마음에 앉은 먼지를 살며시 불다》를 발견했다. 갓 나온 리인허의 신작 에세이집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 옆에는 한국 B출판사의 편집자 한 분이 있었다. 나는 그분에게 리인허에 관해 간단히 소개해주었고 그분은 바로 그 에세이집을 욕심냈다. 하지만 역시 어떻게 저작권을 수입할지가 문제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제가 방법을 찾아보죠. 우선 귀국해서 기획서부터 만들어드릴게요.”

귀국 후, 내가 작성한 《마음에 앉은 먼지를 살며시 불다》의 기획서는 바로 B출판사의 검토를 통과했다. 남은 일은 저작권 수입뿐이었다. 나는 B출판사의 저작권 담당자에게 나 스스로는 번거로워 시도하지 않았던 최후의 방법을 알려주었다.

“출판사가 수출을 거부하면 작가에게 직접 연락해야죠.”

“리인허 선생의 연락처를 아세요?”

“아뇨. 그분의 친구 연락처를 알아요.”

사실 2016년 난징에서 열린 한중 저작권교류회에서 한 민영출판사 사장과 만나 연락처를 교환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 사장은 내게 자기가 유명 작가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떠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죽은 왕샤오보의 아내 분도 잘 알아요. 왕샤오보의 저작권 관리까지 나한테 맡기고 있죠.”

그렇다. ‘죽은 왕샤오보의 아내’는 바로 리인허였다. 결국 B출판사는 내가 준 연락처로 그 민영출판사 사장을 통해 리인허와 《마음에 앉은 먼지를 살며시 불다》의 저작권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직까지 한국에서 출간되지 않았다. 무슨 일 때문인지 조금 궁금하기는 하지만 내가 번역자가 아니므로(나는 여성 저자의 책은 잘 번역하지 않는다) 알 도리가 없다. 어쨌든 중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리인허의 이 책이 빨리 출간되어 그녀의 글과 생각이 한국에 알려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