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없는 중국문학

2008년 1월, 베이징의 여우이(友誼)호텔 일층 커피숍에서 주원(朱文) 을 만났다. 그는 키가 180센티미터는 되는 듯했고 살집이 꽤 있어서 실제보다 더 커 보였다. 당시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극작가 겸 영화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던 그는, 그 자리를 마련해준 중국 친구 장위안(張園)을 통해 내게 물었다.

“내 소설을 어떻게 알았죠? 책도 살 수 없었을 텐데.”

당시 나는 중국어 회화를 전혀 못했다. 이미 중국어 번역을 10년 가까이 하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확실히 말과 글은 서로 다른 차원의 능력이다. 할 수 없이 나도 장위안을 매개로 이야기해야 했다.

“선생님 작품은 인터넷에 다 있는 걸요. 인터넷에서 긁어 출력을 해서 읽었습니다. 세미나에서 토론도 하고요.”

1997년 발표된 주원의 소설집 『나는 달러가 좋아』는 파격적인 성 담론과 사회 비판적 알레고리로 인해 중국 당국으로부터 2만 권 한정 출판 처분을 받았다. 화제가 된 만큼 2만 권은 금세 다 팔렸고 바로 품절이 되었다. 저작권 보호 의식이 전무한 중국 네티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 당대문학 세미나에서 읽을 교재를 마련하려고 중국 웹에 불법 게재돼 있는 소설들을 훑어보다가 나는 우연히 그의 「나는 달러가 좋아」, 「재교육」, 「난징의 두안리」 등의 소설을 발견했다. 솔직히 그의 소설과 만나지 못했다면 중국 현대소설의 재미와 다양성을 훨씬 늦게까지 몰랐을 것이다. 또 그와 함께 난징(南京)의 작가군을 대표하는 한둥(韓東)의 존재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뛰어난 시인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한둥의 소설도 위트와 냉소 그리고 울림 있는 스토리로 나를 매료시켰다.

“선생님 작품과 한둥 선생님 작품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작품 먼저 계약하고 싶더군요.”

한둥보다 6살 밑이지만 친분이 깊은 주원은 장난스레 씩 웃으며 말했다.

“내 작품이 한둥 선생의 작품보다 재밌기는 하죠.”

그렇기는 했다. 『나는 달러가 좋아』의 표제작 「나는 달러가 좋아」의 서두는 소설가인 화자가 대낮에 자신의 자취방에서 연상의 여인과 섹스를 하고 있을 때 시골에서 올라온 아버지가 눈치 없이 탕탕, 문을 두드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여자가 도망치듯 집을 나간 뒤, 아버지가 화자를 나무라며 한 잔소리는, “너, 오늘 날씨가 얼마나 좋으냐. 내가 여러 번 말했지 않니, 바깥에서 운동을 좀 하라고. 햇빛도 있고 물도 있고 신선한 공기도 있는 곳에 가서 말이야.”였으며 이에 대해 화자가 마음속으로 외친 항변은, “하지만 아빠, 방 안에서밖에 할 수 없는 일도 있잖아요. 저도 그게 얼마나 유감인지 몰라요.”였다. 『나는 달러가 좋아』에는 이처럼 노골적인 욕망의 담론이 가득하다. 그것이 전체주의 사회에서 탈출구도 없이 억눌려 있는 개인의 욕망을 암시하는 알레고리적 표현이라는 것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이 소설집은 그저 싸구려 ‘색정 문학’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이 소설집의 편집을 맡은 외주 편집자가 “왜 이런 쓰레기 같은 책을 내는 거죠?”라고 푸념을 했겠는가.

그러나 국내에서 『나는 달러가 좋아』(황매, 2008. 6)보다 3달 늦게 출간된 한둥의 『독종들』(웅진하우스, 2008. 9)은 전자보다 ‘재미’는 적어도 시대와 역사에 대한 통찰은 훨씬 더 깊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함께 자란 세 친구가 문화대혁명 후기부터 2000년대까지 현대화의 격랑을 겪으며 풀어내는 이야기는 몇 권의 역사서보다 더 실감 나게 동시대 중국인들의 삶과 정체성을 우리 독자들에게 전달해준다.

나는 한둥의 존재 역시 중국 당대문학 세미나를 통해 알았으며 그와 주원, 이 두 사람의 작품을 읽고 나서 그전까지 한국에 소개된 ‘전형적인 중국문학’과는 다른, 역사와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인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참신한 중국문학을 기획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다.

내 희망은 2007년과 2008년, 때맞춰 국내 출판계에 밀어닥친 중국 현대소설 출간 붐을 타고 날개를 얻었다. 당시 문학동네, 김영사, 은행나무, 웅진지식하우스, 실천문학 등 국내 유수의 출판사들은 한창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던 중국의 문화적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경쟁하듯 중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속속 출간했다. 지금 생각하면 언젠가 도래할 중국문학의 시대를 예비하는 선투자였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그런 추세 속에서 웅진지식하우스와 김영사의 중국현대소설선 외주 기획자가 되어 줄줄이 작품을 기획했고 그 결과로 옌롄커(閻連科)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웅진지식하우스, 2008), 예자오옌(葉兆言)의 『화장실에 관하여』(웅진지식하우스, 2008), 한둥의 『독종들』, 류헝(劉恒)의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김영사, 2007), 팡팡(方方)의 『행위예술』(비채, 2008), 쑤퉁의 『측천무후』(김영사, 2010) 등이 속속 출간되었다. 나로서는 오랫동안 축적해온 중국 현대문학에 대한 지식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었던 엄청난 기회였다.

그러나 그 기회는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우선 출간작들의 판매량이 출판사들의 기대에 한참 못 미쳤던 탓이 컸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아무리 미래를 위한 선투자라 해도 기본 성적은 거둬 줘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2008년 9월에는 출판 외적인 엄청난 변수가 등장해 나의 기획 작업을 완전히 스톱시켰다. 그것은 바로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였다. 달러화의 강세로 외서 저작권 가격이 급등했고 그로 인해 ‘돈 안 되는’ 중국소설 저작권 구입부터 중지되었다. 아울러 위기에 따른 긴축 정책에 따라 웅진지식하우스와 김영사 모두 중국현대소설선 출간을 전면 중지했다. 나는 졸지에 기획의 터전을, 나아가 “훌륭한 중국소설을 내 손으로 발굴해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꿈을” 송두리째 잃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일 년 넘게 목표 없이 시름했다. 아직 번역 일은 끊기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문학을 비롯한 중국 인문학 도서의 총체적인 부진은 지금까지도 현재형이다. 무엇보다도 기획자로서 내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중국의 작가와 작품들이 국내 독자들에게 외면을 받는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나를 우울하게 했다.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내가 기획한 작품들이 외면을 받은 것은 그 작품들의 저자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들이었기에 독자들에게 너무 낯설어 그랬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잘 알려진 작가들의 신간도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위화도 쑤퉁도, 그리고 『삼국지 강의』를 히트시킨 역사 저자 이중톈(易中天)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는 G2의 하나로 한국인들에게 점점 더 그 거대한 위상을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출판에서는 갈수록 맥을 못 췄다. 그나마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던 고전 처세서와 역사서 분야의 중국 번역서 점유율조차 급격히 떨어져서 나중에는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나는 절망 속에서 씁쓸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중국을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구나. 중국이 한국에 대해 그러는 것처럼.”

어느새 해가 2번 바뀌었고 유난히 많은 눈이 내리던 2010년 1월 초의 어느 아침,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으로 종로구 가회동의 김영사 사옥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날은 내 평생 최초이자 마지막 직장인 김영사에 처음으로 출근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