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상건常建 우이에 배를 정박하고泊舟盱眙

우이에 배를 정박하고 泊舟盱眙/당唐 상건常建

泊舟淮水次 회수의 부두에 배를 정박하니
霜降夕流清 상강이라 저녁 물결도 맑아라
夜久潮侵岸 밤 깊어 밀물은 강 안에 차고
天寒月近城 날씨 추워 달은 성에 가깝네
平沙依雁宿 모래톱에 자는 기러기 깃들고
候館聽雞鳴 역관에서 닭 우는 소리 듣네
鄉國雲霄外 고향은 저편 하늘 너머 있으니
誰堪羈旅情 누군들 타향의 감회를 견디리

상건(常建, 708~765)은 장안 출신으로 727년에에 왕창령(王昌齡, 698~757)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였다. 천보 연간에 우이(盱眙)의 위(尉), 즉 지금의 경찰 서장으로 갔는데 벼슬살이가 잘 안 맞아 그만두고 방랑 생활을 하면서 자연 속에서 금(琴)과 술을 즐기는 날들을 보냈다.

그는 장안의 종남산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어느 날 그곳에서 진나라 시대의 도망친 궁녀를 만났다. 그녀는 머리가 아주 길어 몸을 덮고 있었고 솔잎을 먹어 추위와 배고픔을 모르고 지냈다. 상건은 이 여자에게 솔잎을 먹으며 양생하는 비법을 배웠다. 나중에 지금의 무창(武昌) 서산(西山)에 가족을 데리고 가 은거하면서 왕창령도 불러 함께 은거하였다. 《당재자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상건은 이런 방외(方外)의 삶을 살았다. 때문에 그의 시는 은일을 지향하는 야인다운 풍격을 띠게 되는데 산수를 음미하고 음악에 대한 일가견도 있어 시에 독특한 운치와 맛을 더해준다.

이번에 소개하는 이 시는 바로 상건이 관인의 신분에서 방랑자의 삶으로 전변하는 바로 그 지점에 지어진 작품인 만큼 그의 삶에서 매우 중대한 위치에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상건의 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작품이다.

우이는 당시 남경 북쪽 회수가에 위치한 현이다. 차(次)는 잠시 머무는 곳을 말하는데 여행 중에 잠시 머무는 곳을 여차(旅次)라고 한다. 여기서는 배가 잠시 머무는 주차(舟次)를 말하니, 오늘날의 간이 부두 같은 곳이다. 석양 무렵에 이곳에 와서 이곳의 강변 풍경을 감상하고 향수에 젖어 숙소에서 새벽까지 지새다가 지금 이 시를 쓰는 중이다.

조수가 강 안을 침식한다는 말은 이곳에 큰 호수가 있는데 저녁에 강 언덕으로 물이 밀려드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날이 추워 달이 성에 가깝다는 말은 겨울은 여름에 비해 달이 더 높이 뜨기 때문에 더 밝게 빛나 더 가깝게 보이는 것을 말한 듯하다. 조선에 사신으로 온 웅화(熊化)는 윤근수(尹根壽)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 문학을 논하면서 이 구절과 함께 306회에 소개한 ‘진나라 때의 밝은 달 한나라 때의 관문[秦時明月漢時關]’을 예로 들면서 시의 묘미는 알 듯 모를듯한 사이에 있기 때문에 뜻을 고착시키면 안 되고 이 때문에 중국 사람은 시 해설을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사람의 말은 당시 명나라 지식인들의 한 태도를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실체를 그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저명한 시인의 작품은 그걸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역대로 많은 주석서가 나왔으며 시를 쓰는 사람 역시 많은 시문을 외우고 많은 책을 참조하여 쓴다.

보통 부임지에 관인이 가면 연회를 벌이고 하는데 이 시인의 경우엔 자기 혼자 제공 받은 숙소에서 이리저리 산책하며 풍경을 감상하고 또 자신의 방에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객수에 젖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미 벼슬에서 마음이 떠나 있는 느낌을 준다.

이 시가 위건(韋建)의 문집에도 들어 있어 그의 작품으로 보기도 하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책에 상건의 작품으로 올라있다. 상건의 행력과 시풍을 볼 때 상건의 작품이라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시문을 종류별로 편찬한 문헌에서는 상강(霜降)과 행려(行旅) 항목에 수록되어 있어 고인들이 이 시를 보는 시각을 엿보게 한다.

明 戴进 《月下泊舟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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