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심주沈周 국화 그림墨菊

국화 그림 墨菊/명明 심주沈周

寫得東籬秋一株 동쪽 울타리의 국화 한 그루 그려내니
寒香晩色淡如無 추국의 향기와 색깔 없는 듯 담박하네
贈君當要領賞此 그대에게 주니 요령 있게 감상하시길
歸去對之開酒壺 돌아가 이 그림 대할 땐 술병을 열게

도연명이 사랑했던 국화 한 그루를 그렸다. 차가운 늦가을 국화의 향기와 색깔은 있는 듯 없는 듯 담박하기만 하다. 사공도(司空圖)는 ‘떨어지는 꽃은 말이 없고 사람이 담담하기가 국화와 같다[洛花無言, 人淡如菊]’고 했던가. 그대에게 이 국화 그림을 주네. 그런데 이 그림을 감상하는 데에는 한 가지 요령이 있네. 집에 돌아가 이 국화를 대할 때면 반드시 술 단지를 열도록!

심주(沈周, 1427~1509)의 제화시 한 편을 감상한다. 심주는 명나라 4대가의 한 사람으로 산수, 화훼에 뛰어났다. 특히 그는 명대에 사의(寫意), 즉 자신의 내면세계를 물상에 투영한 화훼 그림의 개창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화풍은 남송과 원나라 화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산수화처럼 화조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이 그림을 보면 아래에서 위로 뻗는 국화 한 그루가 찬 날씨에도 꼿꼿이 서 있고 그 상부에 몇 송이 아름다운 국화꽃을 달고 있다. 구륵법을 구사하여 외곽선 없이 국화의 자태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은자의 마음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에서 말한 동리추(東籬秋), 즉 동쪽 울타리의 가을 국화는 바로 도연명의 상징 아니던가? ‘귀거(歸去)’나 ‘호(壺)’ 역시 <귀거래서>에 나오는 말이다. 도연명이 그 국화를 보면서 쓴 시가 바로 유명한 <음주(飮酒)> 시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림과 시를 조화시켜 도연명으로 상징되는 은자의 정신과 마음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느끼듯이 그의 그림은 사의적인 면이 강하지만 물상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기 역시 잘 포착하여 그려내고 있다. 사의(寫意)와 사생(寫生)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그는 본래 학문을 하여 인품이 고매한 데에다 시를 잘 쓰고 글씨도 잘 썼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언제나 시와 글씨, 그리고 그림이 어울려 있어 그림을 넘어서는 정취가 깃들여 있기에 감상의 즐거움이 아주 깊고도 풍부하다.

이 제화시는 희학적인 면이 있다. 그림을 가지고 가는 상대에게 이 국화를 제대로 감상하자면 집에 돌아가서 이 그림을 걸어 놓고 보면서 술을 마시라고 한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좋은 그림을 보면서 음주의 흥취를 느끼라는 말인가?

집에 가서 이 그림을 앞에 두고 술병을 열라는 말은 앞에서 설명한 은자의 마음을 향유하라는 말이고 자신이 이 그림을 주는 것은 그림을 받는 사람을 은자로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은자야말로 늦가을 국화처럼 색과 향이 담담하여 없는 것 같지만 뚜렷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은 후인이 붙인 것이다. 옛 사람들의 작품에는 제목이 없는 그림이나 시가 많다. 3구는 일반적 7언처럼 4, 3으로 끊어지지 않고 2, 5로 끊어지며 요령(要領)은 붙은 말로 부사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그림에 찍힌 인장을 보면, 강희제가 만든 황실 자손의 공부방인 무일재(無逸齋)에도 있었고, 건륭제의 서실 삼희당(三希堂) 안에도 이 그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청나라 황실의 서화 목록집인 《석거보급(石渠寶笈)》에 이 작품이 기록되어 있으며, 가경제와 선통제가 이 그림을 감상한 것 역시 알 수 있다.

그림 : 심주, 종이에 수묵, 137.3×32.2cm, 고궁박물원 소장.
그림 : 심주, 종이에 수묵, 137.3×32.2cm, 고궁박물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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