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원진元稹 국화 菊花

국화 菊花/당唐 원진元稹

秋叢繞舍似陶家 가을 국화 집을 둘러싸 도연명의 집 같은데
遍繞籬邊日漸斜 울타리 따라 감상하니 어느덧 해가 기우네
不是花中偏愛菊 꽃 중에서 특별히 국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此花開盡更無花 이 꽃이 다 지고 나면 다른 꽃이 없기 때문

원진(元稹, 779~831)은 낙양 사람으로 젊었을 때 백거이와 함께 신악부(新樂府)를 주창한 적이 있어 당시 사람들이 두 사람을 ‘원백(元白)’이라 불렀다. 원진의 시는 190회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한다.

추총(秋叢)은 가을 국화 떨기를 말한다. 국화가 한 송이씩 따로 피는 것이 아니라 몇 송이씩 붙어 피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도가(陶家)는 도연명의 집을 말한다. 도연명은 집 앞에 버드나무 5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고 했다. 또 집 옆에 큰 소나무가 한 그루가 있어 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산책을 하다가 소나무를 어루만지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동쪽 울타리에 국화를 길러 가을에는 국화를 따서 술을 담가 먹곤 했다.

그러기에 벼슬을 내던지고 아무런 짐도 없이 흔들거리는 배를 타고 집으로 왔을 때 첫 마디가 ‘3줄기 오솔길은 황폐해졌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구나!’라고 말했던 것이다. 후대인들은 도연명의 이런 고사를 잘 알고 또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의 시에도 은연중 그런 내용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화가들이 도연명을 그린 그림을 보면 반드시 바자울 울타리에 국화를 그리고 버드나무와 소나무를 그려 넣는 것이다.

이 시를 대략 6년 전에 번역했는데 그땐 이 시의 구조를 정확히 몰랐다. 지금 보니 제2구는 시인의 행위이고 3, 4구는 그 이유를 쓰고 있다, 편요이변(遍繞籬邊)! 이 말은 국화가 울타리를 따라 피었다는 말도 아니고 저녁에 지는 햇빛이 여기에 머문다는 말도 아니다. 바로 시인이 울타리 가를 두루 돌아보는 것이다. 그럼 시인은 왜 울타리 가를 빙빙 돌아다니는가?

그 이유를 해명한 것이 3, 4구이다. 이 꽃을 다른 꽃보다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 꽃이 지고 나면 더 이상 다른 꽃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이 꽃이 있을 때 실컷 감상하기 위해 울타리를 따라 돌아다닌다고 한다. 해가 점점 진다는 말은 이 시인이 하루종일 국화를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간다는 말이니, 이 시인이 얼마나 마지막 국화를 아끼고 탐닉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고인들이 말한 놀이에 빠져 돌아갈 줄 모른다는 ‘유련망반(留連忘返)’이 바로 이것이다.

국화가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지조를 지니는 것 역시 이 말에 자연 들어가 있으니 시인의 해명은 겸손하지만, 그 국화에 대한 사랑은 도연명 못지않은 것이다. 말은 평범하지만 그 구성이 치밀함을 알 수 있다. 첫 구에서 자신의 집을 도연명의 집 같다고 한 말도 여기에서 자연 이해가 된다.

황봉지(黃鳳池)가 편찬한 《당시칠언화보》에는 이 시와 함께 이 시의 시의(詩意)를 그린 판화가 함께 제시되어 있다. 그림은 채여좌(蔡汝佐)가 그리고, 판각은 유차천(劉次泉)이 한 것이다. 그림에는 이 시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람이 울타리 옆에서 무슨 책을 든 채 국화에 빠져 앉아 있고 동자로 보이는 사람이 책 한 권을 들고 온다.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음주(飮酒)> 시가 실려 있는 도연명 집을 들고 오는 것일까?

《中國古畵譜集成》 에서

365일 한시 287